"MB가 오바마의 '소신' 꺾겠다고?"

[토론회]"동시다발적 FTA는 무전략의 극치"

"오바마 미 대통령 개인으로 보면 2007년 6월 당시 상원의원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입장을 밝힌 이래로 한번도 입장이 변하지 않았다. '현 상태의 한미 FTA는 반대'라는 상원의원 시절 입장이 대통령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되풀이 됐고, 대통령 당선 이후 오늘 이 시간까지 같은 입장이 미 국무성, 무역대표부 등을 통해 재확인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 입장도 되풀이 되고 있다. '설마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하겠냐'는 태도다. 2년 동안 계속 '반대' 입장을 밝혔던 오바마 집권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입장 변화를 조금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을 보면 우리 정부의 외교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이런 외교력을 갖고 체결한 한미FTA가 어떤 수준이겠냐."


▲ 커크 무역대표부 대표 지명자가 국회 인준 청문회에서 한미FTA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뉴시스
오바마 대통령, 클린턴 국무부 장관에 이어 커크 무역대표부 대표 등 오바마 정부의 한미 FTA 재협상 의사가 계속 구체화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선비준 후 버티기' 전략을 쓰겠다고 한다. "재협상은 절대 없다"며 4월 임시국회에서 한미FTA 비준을 서두르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 맞서 한국 국회가 먼저 비준한 뒤 '여기서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다'는 식으로 버티겠다는 얘기다. 정부의 이같은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까?

미국이 재협상 하자는데 한국이 버틴다고?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18일 서울 광화문 한글회관에서 열린 '한미FTA재협상,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정부가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라. 하지만 미국 정부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건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미국이 모든 채널을 통해 압박하고 들어올 것이다"며 정부와 여당의 '선비준 후 버티기' 전략은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최재천 법무법인 한강 변호사(전 민주당 국회의원)도 "오바마 대통령은 2004년 상원의원 선거 때 이미 나프타(북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며 "얼마 전 당선 후 첫 방문지로 캐나다를 갔다오면서 나프타에 있어 환경과 노동 부문의 재협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소신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정부에서 한미FTA 재협상은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30개월 이상 쇠고기·자동차 관세철폐 유예는 '제2의 선결조건'

한미간 권력관계를 감안할 때 한미FTA는 불평등한 협정이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최재천 변호사는 "한미FTA가 발효될 경우 미국은 개정할 법안이 하나도 없지만 한국은 30여개가 된다고 정부 스스로가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재협상을 요구하는가?

신범철 경기대 교수는 "현 상태로는 미국의 경제규모에 비해서는 이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쇠고기와 자동차와 관련해 재협상 요구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해영 교수는 미국의 요구 내용도 명확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미FTA 체결에 앞서 스크린쿼터, 쇠고기, 의약품, 자동차 등 '4대 선결조건'을 내걸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제2의 선결조건'을 내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FTA 협상 당시 쇠고기 문제에 매우 적극적이어서 '미스터 쇠고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던 민주당의 보커스 의원이 청문회에서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허용' 문제를 따지자 커크 대표는 "그 문제를 최우선에 두겠다"고 답했다고 이 교수는 밝혔다.

또 하원에서는 자동차 문제에 있어 '미국 내 자동차 수입관세 2.5% 철폐'를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 시장에서 얼마나 팔리는지를 봐가면서 15년 후로 미루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는 것.

'국회 망신' 강요하지 말고 적극적 재협상 전략을

▲ 국회에 무리한 압력을 넣지 말고 공세적으로 재협상을 요구하는 게 외교적으로 훨씬 나은 전략이라는 게 이날 토론회의 결론이다.ⓒ뉴시스
재협상을 피할 수도 없고, 재협상에 응할 경우 잘못하면 더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할까?

토론회 참석자들은 "지금이라도 재협상 전략을 세우고 오히려 공세적으로 재협상을 요구하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봤다. 정부의 압력으로 우리 국회에서 비준하더라도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 응할 경우, 국회가 다시 비준을 해야 하는 '망신'이 불가피하다는 것.

이해영 교수는 "미국 의회 내에서 새 통상법이 제출돼 있는 상태인데 우리 입장에서도 동의할 수 있는 상당히 진보적인 내용"이라며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한미FTA의 상당 부분이 법안과 충돌한다"고 말했다. 또 2008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경제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이런 변화된 상황을 감안하면 재협상을 할 수 밖에 없고, 한국 입장에서는 이를 최대한 활용해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

김종걸 한양대 교수는 재협상 원칙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첫째, 통상협상과 한미동맹을 혼동하지 말 것, 둘째, 협상시 반드시 지켜야할 부분과 버릴 수도 있는 것을 구분할 것, 셋째, 지역구상과 연동해 재협상 전략을 짤 것 등을 큰 원칙으로 제시했다.

그는 '반드시 지켜야할 것'으로 "사회적 공공성을 훼손해서는 안 되며, 국가의 정책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간은 충분하다…올해 안에 결론 내기 어려워"

그는 또 "한미FTA 때문에 기존의 지역 구상이 엉망이 됐다"며 "재협상을 하게 되면 한중일, 아세안, 에이펙 등에서 어떤 구상을 가질 것인지를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은 한미FTA로 아시아 국가들과 협상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잃어버렸다"며 한미FTA가 다른 나라와 FTA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강조했다.

"미국에게 투자자국가제소(ISD)를 내주고, 중국과 FTA에서 ISD를 요구할 경우 이게 받아들여질 것 같나. 아직도 국가가 산업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는 중국에서 이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또 일본은 우리 농업의 최대 수출시장인데, 일본과 FTA에서는 농업 부문에서 양보를 요구할 방법이 없다. 이처럼 각종 구상이 한미FTA 때문에 다 일그러지다보니 나온 게 그냥 무작정하겠다는 '동시다발적 FTA'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은 충분하다"는 점이다. 김종걸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는 현재 G20회의 등 새로운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끝난 뒤에야 FTA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해영 교수도 "올해 미 의회 의사일정에 한미FTA가 잡혀 있지 않다. 올해 안에 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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