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용의자 정모(31) 씨는 고시원 자신의 방 침대에 불을 지르고 놀라 복도로 뛰쳐나오던 피해자 10여 명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르는 잔인함을 보였다.
◇ '종달새'에서 묻지마 살인마로 = 정 씨는 평소 말이 많고 남의 일에 참견하기 유별나게 좋아하는 활달한 성격이었다는 점에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정 씨와 5년간 같이 지냈다는 A씨는 "평소에 사람들이 이야기하는데 끼어드는 것을 좋아하고 가끔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기도 하는 등 지나치게 외향적이어서 별명이 '종달새' 혹은 '달새'였다"며 끔찍한 살인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주민은 "정 씨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끼어들기를 좋아하는데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없이 움츠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탈모가 심해 평소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다녔고 가끔 침울한 모습을 보이는 등 감정의 기복이 있을 때가 있지만 겉보기에는 전반적으로 밝은 성격이었다고 주위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그는 중학교에 다닐 때 자살을 시도했고 가끔 두통을 호소한 일은 있지만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전력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범행에 사용한 흉기와 가스총 등을 수년 전에 구입해 놓은 것으로 조사돼 말하기 좋아하는 외향적인 성격과 달리 끔찍한 살인극을 준비해올 정도로 비뚤어진 성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그는 5년 전쯤 이 고시원에 들어왔으며 뚜렷한 직업 없이 오토바이 배달일이나 대리주차 일 등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가끔 누나에게 생활비를 받아 밀린 고시원비를 내기도 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다.
그는 경찰에서 "향토예비군법위반으로 부과받은 벌금 150만 원이나 고시원비, 휴대전화 요금 등을 내지 못해 속상해 살기 싫어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자세한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은 경제적 궁핍 등 자신의 사회 불만과 그에 대한 책임을 자신과 아무런 상관없는 무고한 일반인에게 전가한 전형적인 묻지마식 범행으로 분석되고 있다.
유범희 성균관대 의대 정신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평소에 자기 조절능력이 약한 사람이 사회와 자기 자신에 누적된 불만이 폭발해 발생한 화풀이 범죄"라고 규정하고 "사회적 긴장도가 높아지거나 불경기, 실업자 증가 등 사회적 아노미 상태에 처하면 개인의 이익을 떠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묻지마 범죄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 한국판 조승희 사건(?) = 정 씨의 살인 수법 등을 보면 작년 4월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를 뒤흔든 재미교포 조승희 씨의 버지니아공대 살인 사건과 유사점이 많이 발견된다.
우선 조승희 씨가 범행 때 전투복을 갖춰 입었는데 정 씨도 이날 범행 당시 검은색 '킬러' 복장을 하고 있었던 점에서 닮았다.
정 씨는 이날 아침에는 평소에 한 번도 입지 않았던 검은색 상·하의에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을 하고 있어 "옷을 왜 이렇게 입었지"하는 의아심이 들 정도였다고 주변인들은 전했다.
또 정 씨는 이날 살인극을 위해 회칼 1개와 과도 2개, 가스총 등을 준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정 씨는 범행 당시 발목에 회칼을 소지할 수 있는 칼집을 별도로 구입해 차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스총과 회칼 등은 정 씨가 2004-2005년 동대문 등에서 사들인 것으로 경찰은 정 씨가 오래전부터 살해극을 준비해왔을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범행 수법의 잔혹성에서도 두 사건은 닮은꼴이다.
정 씨는 고시원 3층 자신의 방 침대에 불을 지른 후 복도에 쏟아져 나온 피해자 4~5명에게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렀고, 이도 모자라 4층으로 올라가 그곳에 있던 나머지 피해자 5~6명을 찔렀다.
이 역시 교실 문을 쇠사슬로 걸어 잠그고 한 명씩 처형하듯 권총 방아쇠를 당긴 조승희의 수법과 유사하다.
피해자 대부분은 좁은 복도에서 정 씨가 휘두르는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옆구리와 복부 등에 깊은 자상을 입어 이날 오후 2시 현재 6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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