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에 버젓이 '창조과학관'이 있다니…"

과학과 종교의 대화 <13> 나의 창조과학 탈출기

'과학과 종교의 대화'는 이번 회부터 한국의 상황에 주목한다.

김윤성 교수는 "외국의 경우 일부 근본주의 개신교 교단만이 신봉하는 창조 과학을 한국 개신교 전체가 널리 받아들이고 있는 독특한 현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KAIST 구내에 창조 과학 전시관이 존재하고 △한국창조과학회가 중등 교원의 직무 연수 기관으로 지정된 것을 언급하면서 "창조 과학이 얼마나 정확하든, 그것이 과학이든 아니든, 거기에 일말의 종교적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결코 공교육 속으로 들어올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김윤성 교수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종교학과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영혼', '생명 논의와 모호성의 윤리' 등의 논문과 <거룩한 테러>, <다윈 안의 신> 등의 번역서가 있다.

이 글의 초고는 2007년 4월 작성되었다. <편집자>

장대익 선생님과 신재식 선생님께

보스턴은 아직 봄소식이 요원하겠고, 남도는 지금쯤 한창 봄이겠죠. 여기도 모처럼 내린 비에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캠퍼스 뒷산에 올라 봄내음에 취하고도 싶고, 연못가에 앉아 봄볕에 취하고도 싶지만, 잠시 미루어야겠죠. 해야 할 숙제가 있으니까요. 지난번 편지에서 진화와 창조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고 했었죠? 그동안의 편지에서도 이 문제가 간간이 언급되기는 했죠. 하지만 진화와 창조 문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과학과 종교에 관련해 가장 많이 또 가장 치열하게 논란되어 온 주제인 만큼 한 번쯤 제대로 짚어 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과학이나 신학에서 진화 vs 창조 논쟁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는 두 분이 잘 말씀해 주시리라 기대하겠고요, 저는 종교학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사실 종교학도로서 이 문제를 다루기가 좀 껄끄럽기는 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종교학은 '진리' 자체보다는 '진리 주장'이나 '진리에 관한 담론'에 관심을 갖는데, 진화 vs 창조 논쟁에서는 아무래도 과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죠.

신 선생님이야 신학적 차원에서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 같은 과학적 창조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나름의 견해가 있으시겠죠. 장 선생님도 과학적 차원에서 이들을 평가하는 분명한 입장이 있으실 테고요. 저는 종교학을 하는 사람인만큼 두 분과 달리 되도록이면 이 문제를 종교적 진리나 과학적 진리 차원보다는 현상적 차원에서 다루고 싶습니다.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이 신학적으로 옳든 그르든, 과학적으로 옳든 그르든, 이들이 유행하는 모습이나 이들을 둘러싸고 온갖 논쟁이 벌어지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흥미로운 종교적 현상이죠. 종교학자라면 이런 현상이 어떤 맥락에서 출현했고, 어떤 과정으로 펼쳐져 왔으며, 그 사회 문화적 효과는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질 만합니다.

그런데 국내외 종교학계에서는 이런 논의가 이루어진 바가 별로 없고, 제가 이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리 오래지 않은지라, 아직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또 비록 종교학이 판단 중지와 가치 중립을 중시하기는 하지만, 저는 아무리 종교학자라도 모든 판단과 평가를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종교들은 역사 속에서 성차별을 조장하기도 했고 양성 평등을 진작시키기도 했는데, 종교학자가 이를 다루면서 판단과 평가를 보류한 채 판단 중지와 가치 중립만 운운한다면 이는 학자이기 이전에 사회 구성원인 자신의 도의적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겠죠.

진화와 창조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여기에는 과학적 진리나 종교적 진리의 차원만 있는 게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윤리적 차원을 비롯한 온갖 차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게다가 과학계와 종교계 안팎에서는 전문가나 비전문가나 할 것 없이 무신론적 진화론, 유신론적 진화론, 과학적 창조론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각기 나름의 기준에 따라 판단과 평가를 수행하며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죠. 결국 진화와 창조 문제를 다루면서 판단과 평가를 완전히 배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니,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오히려 저는 그런 배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며, 이런 착각은 학자로서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최대한 가치 중립을 지키려 애는 쓰겠습니다만, 과학과 종교에 대한 제 나름의 판단과 평가가 제 이야기에 종종 끼어들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창조 과학 탈출기

그동안 우리는 무신론, 유신론, 불가지론의 입장에서, 또 과학, 신학, 종교학의 시각에서 종교와 과학의 주제들에 관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펼쳐 왔고, 이는 진화와 창조 문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오랫동안 공적인 자리나 사적인 자리에서 함께 확인했듯이, 이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셋 사이에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가 우리 모두의 삶에 일정 정도 관련되어 있었거나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진화 vs. 창조 논쟁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과학적 엄밀성의 문제라고 보는 점에서도 그렇죠.

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제가 진화 vs 창조 논쟁을 처음 접한 건 대학 2학년 말인 1986년 겨울이었습니다. 물론 고등학교 때도 생물 시간에 배운 것과 교회에서 배운 것 사이에 괴리감을 느끼긴 했지만, 공부는 공부고 신앙은 신앙이라 생각하며 적당히 접고 지냈죠. 대학생이 된 후에도 이런 식의 분리는 그럭저럭 편안했고요. 하지만 점차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지식과 신앙이 따로 노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한 거죠.

그때 마침 제가 가입한 복음주의 계열의 개신교 서클에서 창조 과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읽을 자료라고는 한국 창조 과학회가 1981년에 창립과 동시에 펴낸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라는 책 한 권과 인쇄 상태가 조악한 약간의 복사물이 고작이었지만, 모두가 정말 열심이었죠.

대체로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진화론은 하나의 이론일 뿐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생명이 무기물에서 저절로 생겨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진화는 무질서도의 증가라는 열역학 제2법칙에 어긋난다. 탄소 연대 측정법은 잘못되었으며 지구의 나이는 6000년에서 1만 년 정도다. 노아의 방주 파편이 발견되었고, 대홍수의 사실성이 입증되었다. 노아의 세 아들에서 인종들이 유래되었다…."
▲노아의 방주의 증거로 제시되곤 하는 터키 동부 아라라트 산의 위성 사진. ⓒ프레시안

과학과 성경의 모순이 해결된 것만 같았습니다. 혼자만 아는 게 아까워 교회 친구들과 세미나도 하고, 주일학교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했고요. 순전히 자발적으로 창조 과학 전도사가 되었던 셈이죠.

하지만 공부는 채 반 년을 못 갔습니다. 한 줌의 자료로는 지적 호기심이 채워지지도, 신앙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죠. 해결은커녕 풀리지 않는 의문만 늘어갈 뿐이었습니다. 자료에 언급된 주장과 증거에 대해 더 알고 싶어도, 각주나 참고 문헌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너무 소략해서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요. (물론 창조 과학도 계속 발전해서 요즘 책들은 꽤 충실한 전문 자료들을 제시합니다. 그 자료가 과학적으로 얼마나 타당한지는 꼼꼼히 짚어 볼 문제겠지만요. 이에 대해서는 장 선생님의 도움을 기대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조 과학이 옳다면 전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다 틀렸다는 말인가? 그들이 모두 착각과 환상에 빠져있는 걸까?" 소수만 아는 진리를 나도 알게 되었다는 자부심보다는 착각과 환상에 빠진 건 오히려 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렸고 우리만 옳다는 생각이 오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중에 혼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생물학 개론과 종교학 개론 수업이었죠. 생물학 교수님은 첫 시간에 자신은 비록 교회 장로지만 그 전에 무엇보다도 과학자이며, 자신에게는 신앙과 과학이 충돌하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기대에 부풀었죠. 하지만 교수님은 과학적 내용만 가르칠 뿐 창조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종의 다양성과 분화를 가르치실 때도 그랬죠.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밀러-유리 실험의 개념도. ⓒ프레시안

그런데 학기말에 생명의 기원과 관련해 밀러-유리 실험(1953년에 미국의 생화학자 스탠리 밀러(Stanley L. Miller, 1930∼2007년)와 헤럴드 유리(Harold C. Urey)가 원시 지구의 가상적 상태로 조성된 플라스크 속의 무기물들로부터 유기물을 합성해 낸 실험. 생명의 기원 문제 자체를 해결한 건 아니었지만, 생명이 무기물로부터 저절로 생겨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창조 과학자들은 이 실험은 단지 특정 조건에서 유기물을 합성한 것일 뿐,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 주는 바가 없다고 비판한다. : 필자)을 다루면서 교수님의 개인적 경험을 말씀하셨죠. 유학 시절 뉴욕 지하철역에서 수십 년 만에 오래전 친구를 우연히 만난 이야기였는데, 교수님은 이렇게 말을 마치셨습니다.

"나와 그 친구가 그 시각 그 자리에서 만날 확률은 지극히 낮다. 하지만 우리는 만났다. 무기물에서 생명이 저절로 생겨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확률이 희박하다고 해서 곧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확률은 통계적 지표일 뿐 현실 자체가 아니다.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 물론 나는 크리스천이고 신을 믿는다. 하지만 그건 개인적인 신앙일 뿐이다. 과학적으로 볼 때 생명이 무기물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설령 이것이 사실이라 해도, 이 때문에 이 자연적 사건의 이면에서 신의 섭리가 작용했으리라는 믿는 내 신앙이 망가지지는 않는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죠. 그런데 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수천 쌍의 동물을 태운 채 수백 일 동안 물 위에 떠 있었다면, 그 많은 동물을 어떻게 일일이 먹였으며, 그 양이 엄청났을 배설물은 또 어떻게 처리했을까? 노아의 방주 파편이 정말로 있다면 굉장한 일일 텐데, 왜 실물이 아닌 사진밖에 없으며, 그리스도교 인조차 이를 모르거나 안 믿는 사람이 더 많을까? 탄소 연대 측정법이 엉터리라면, 과학자들이 멍청하거나 악의적이지 않은 한 왜 모두 이 방법을 계속 쓸까? 노아의 세 아들이 각기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의 조상이라는 이야기는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성경엔 없는데, 이는 결국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판타지가 아닐까?' 온갖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었고, 제 얄팍한 창조 과학 지식은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죠.
▲<종교학 서설>(정진홍 지음, 전망사 펴냄, 1980. ⓒ프레시안

제 생각이 바뀐 또 다른 계기는 종교학 개론 수업이었습니다. 제가 종교학을 계속 공부하게 만든 수업이자, 훗날의 스승인 정진홍 교수님을 만난 수업이기도 했죠. 지금도 제 서가에는 당시 교재였던 정진홍 교수님의 <종교학서설>과 수업 노트가 꽂혀 있는데, 가끔 들추어보면 비록 제가 지금은 이론이나 방법 면에서 스승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기는 해도 제 문제의식의 많은 씨앗이 그 책과 노트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걸 보고는 합니다.

"종교의 다양성은 타자를 인정하고 차이를 수용하는 윤리를 요청하는데, 배타적 신앙은 이 윤리적 의무를 저버린다. 경전을 역사나 과학이 아닌 신화로 여긴다고 해서 그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경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대착오가 오히려 경전의 의미를 훼손할 수 있으며, 반대로 경전을 신화적 은유와 상징으로 이해할 때 그 의미가 더 풍성해질 수 있다."

학기가 진행되면서 제 머릿속에서 혼란의 구름이 걷혀 갔습니다. 장애인이나 외국인의 성소 출입을 금하라는 내용, 노예는 주인에게 복종하라는 내용, 다른 신을 믿는 종족은 여자와 아이 심지어 가축까지 다 죽이라는 내용, 간음한 자나 동성애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는 내용…. 제가 속한 복음주의 교회와 서클에서도 이런 내용들은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교훈적 의미의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었죠. 저는 생각했죠.

'결국 완벽한 문자주의란 없는 것 아닌가? 문자주의자든 자유주의자든 정도와 선택의 차이만 있을 뿐 경전을 현대적 맥락에 맞게 탄력적으로 해석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면 땅이 평평하고 그 위를 뚜껑처럼 생긴 하늘이 덮고 있다고 생각하던 고대인이 쓴 창조 이야기를 굳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들은 저로 하여금 경전에 대한 문자주의적 태도를 버리게 만들었고, 이와 동시에 문자주의에 근거한 창조 과학도 버리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진화와 창조 문제에 대한 관심 자체도 이내 시들었고요. 당시에는 진화론의 토대 위에 신학을 재구성하려는 흐름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고, 아는 거라곤 창조 과학뿐이었는데, 그걸 버리고 나니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1987년 6월 항쟁을 목격하면서 현실 사회에 무관심했던 제 삶과 신앙에 대한 회의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던 중이었죠. 결국 저는 서클을 그만두고 교회에서 맡은 일들도 정리한 후에 도망치듯 공군에 입대했습니다. 비교적 자유 시간이 많은 보직이었기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지만, 진화와 창조 관련 책은 읽지 않았습니다. 문학, 종교학, 민중 신학, 사회 과학 서적을 주로 읽었죠.

엘리아데가 펼쳐 보이는 성스러움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했고, 진보적 신학자인 게르트 타이센(Gerd Theissen, 1944년∼, 독일의 자유주의 신약학자)과 안병무(1922∼1996년, 전 한신대 교수, 민중 신학자)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초월적 메시아가 아닌 사회 혁명가로서 인간 예수의 모습에 반하기도 했죠. <태백산맥>을 읽으며 우리 현대사의 격동과 파란만장한 민중의 삶에 전율하기도 했고, 사회 과학 서적들을 통해 마르크스를 재발견하기도 했고요.
▲민중 신학자 안병무. ⓒ프레시안

제대 후에는 한신대 신학 대학원에 진학해 민중 목회를 하고픈 생각도 잠시 했지만, 목회자의 자질이나 소명감이 있는 것 같지 않아서 포기했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한신대에서 종교 문화학과 선생으로서 신학하고는 그 성격 자체가 다른 종교학을 가르치고 있으니 좀 아이러니하죠?) 결국 이런저런 관심들이 하나로 수렴되면서 부전공이던 종교학을 더 공부하기로 했고, 대학원에 진학했죠. 그 후에 제가 어떻게 종교학의 낭만주의적 흐름으로부터 계몽주의적, 비판적, 진보적 흐름으로 옮겨갔는지에 대해서는 일전의 편지에서 쓴 대로고요.

이야기가 좀 길어졌네요. 아무튼 제가 창조 과학을 공부하고 진화와 창조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건 학부 시절 몇 개월 동안이 전부였습니다. 몇 년 전 강남대 신학과의 김흡영 교수님을 도와 과학과 종교 국제 학술 회의 간사 일을 맡고, 장 선생님과 신 선생님도 만나고, 두 분이 이 분야의 원로이신 김용준 선생님을 모시고 시작한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하면서 과학과 종교 논의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창조 vs 진화 논쟁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공부가 많이 부족합니다. 장 선생님과 신 선생님은 진화와 창조 문제에 오래 관심을 기울여 오셨고,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를 주장하는 과학적 창조론 진영의 연구자들과도 지속적으로 논쟁을 해 오셨으니 제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요.

진화 vs 창조 논쟁의 긴 역사에 관한 짧은 이야기: 영국과 미국의 경우

이제 좀 다른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종교학도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진화 vs 창조 논쟁의 역사적 맥락을 검토하고 그 사회 문화적 함의를 규명하는 일일 테니, 이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국내에서 이 논쟁이 어떻게 펼쳐져 왔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한복판에 계셨던 장 선생님이 더 잘 설명해 주시리라 믿고, 저는 국외의 경우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국외라고는 했지만, 주로 미국 이야기이고, 사실 그것이 거의 전부죠. 유럽의 경우 영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서는 별다른 논쟁이 벌어진 적이 없고, 영국에서도 약간의 논쟁은 있었지만 그다지 치열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황 레오 13세(가운데). ⓒ프레시안

19세기 후반 영국 성공회는 고등 비평을 활용한 자유주의적 성서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진화론에 신경 쓸 겨를이 별로 없었죠.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 교파들이 진화론의 무신론적 함의를 염려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미국의 보수적인 개신교 교파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고, 그 연결 고리는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죠.) 성공회 전반에서나 주류 개신교 교파들에서는 신이 진화를 통해 일한다고 보는 절충적 입장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교황 레오 13세(재위 1873∼1903년)가 인간이 진화의 산물임은 인정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신이 직접 창조하신다는 입장을 표명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가톨릭도 진화론에 그리 적대적이지는 않았고요. (가톨릭은 1996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진화론을 전면 수용하기 전까지 상반된 입장들이 계속 교차해 왔습니다.)

적어도 20세기 초까지는 미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영국이나 대륙과 달리 미국에서는 복음주의 개신교 교파들이 주류였지만, 이들도 진화론을 딱히 거부하지는 않았죠. 물론 가톨릭도 마찬가지였고요. 진화를 인정하면서 이를 신의 창조 과정의 일부로 보는 입장이 주류였죠. 하지만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여파와 경제 공황의 위기 속에서 미국의 보수 세력이 결집하기 시작했는데, 그 핵심에 있었던 건 바로 건국 이후 내내 미국의 주인을 자처해 온 복음주의 개신교인들이었죠. 그들은 근대화를 세속화로 여겼고, 자유주의 신학이 성경의 권위를 훼손한다고 보았으며,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종교가 다양해지는 것을 염려했죠. 이런 배경 속에서 근본주의 신앙이 흥기하기 시작했고,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미국 개신교 진영의 상당 부분이 근본주의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과학에 대해서도 매우 적대적이었고, 특히 진화론에 관해서는 그것이 성경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무신론과 우생학적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나쁜 과학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죠.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은 이내 진화론과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1923년 오클라호마 주에서는 진화론을 배제한 비검정 교과서가 승인되었고, 이어 플로리다 주에서는 반진화론법이 통과되었으며, 1925년에는 테네시 주가 공립 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죠. (미국에서 창조론과 진화론 교육 문제는 공립 학교에만 국한되었습니다. 사립 학교는 자율권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와 별 상관이 없었죠. 물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테네시 주 법안은 미국의 진보 세력을 자극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법이 시민권에 대한 침해이자 국교를 금지한 '헌법 수정 조항 제1조'에 대한 위반이라고 여겼죠. 진보 세력의 중심인 미국 시민 자유 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이 즉각 조치를 취했는데, 그 조치란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다가 기소됨으로써 법정 싸움을 통해 진화론 교육 금지법을 문제화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스코프스 재판을 영화화한 Inherit the Wind(1960) 포스터. ⓒ프레시안

존 토머스 스코프스(John Thomas Scopes, 1900∼1970년)가 자원자로 나섰고, 계획대로 진화론을 가르치다가 기소되었죠. '원숭이 재판'이라 불리기도 한 이 '스코프스 재판'에 대해서는 두 분 모두 잘 아실 테니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주 정부 측의 브라이언과 자유연맹 측의 클래런스 대로(Clarence Darrow) 사이에 오간 법정 공방은 워낙 유명해서 연극, 영화,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죠(<신의 법정>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출시된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비디오는 1988년에 TV 드라마로 제작된 것이다 : 필자).

영화 같은 데서 사실이 너무 많이 각색되고, 브라이언이 너무 고집스럽고 멍청하게 묘사된 탓에, 스코프스 재판은 흔히 진화론이 창조론을 이긴 사건으로 오해되고는 하죠. 물론 스코프스 재판이 진화론 교육 금지법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는 성과를 거두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법이 위헌이 아니라는 결론과 함께 스코프스에게 100달러(지금으로 치면 1,000달러 정도)의 벌금형을 부과했죠. 그리고 이에 항소해 연방 대법원까지 재판을 끌고 가려던 자유 연맹 측의 계획은 테네시 주의 독특한 배심원 제도 때문에 좌절되었고요. (벌금이 50달러가 넘을 경우 판결은 판사가 아닌 배심원의 권한이었고, 결국 스코프스는 무죄 판결을 받았죠.) 게다가 이 재판 때문에 교육계와 교과서 출판업자들이 진화론을 껄끄럽게 여기게 되는 바람에 오히려 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초래되었죠. 이는 수십 년간 지속되었고요.

상황이 반전된 것은 1960년대였습니다. 소련이 미국에 앞서 세계 최초로 인공 위성을 발사하자 미국은 자존심이 상했고, 정부와 온 사회가 과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죠. 이런 분위기 속에 1967년에는 테네시 주에서, 1968년에는 아칸소 주에서 진화론 교육 금지법이 폐지되는 등 일련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진화론이 수십 년 만에 다시 교실로 돌아왔고, 바야흐로 과학 교육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죠.

하지만 창조론 진영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에만 근거해 창조론을 주장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진화론을 이길 수 없다는 건 분명했죠. 이제 교실에서 진화론을 쫓아낼 수 없다는 것도 명백했고요. 그렇다면 전략을 바꿔야 하는 법. '진화론을 쫓아낼 수 없다면, 대신에 창조론을 교실로 들여보내자. 진화론과 창조론을 나란히 가르치게 하자.' 이것이 새로운 전략이었죠. 하지만 과학적 토대가 빈약한 기존의 성서적 창조론으로는 이런 전략이 실현되기 힘들었습니다.
▲존 휘트콤과 헨리 모리스의 저서 <창세기 대홍수>(1961). ⓒ프레시안

해결책은 금세 확보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창조 과학이었습니다. 창조 과학의 효시는 존 휘트콤(John Whitcomb)과 헨리 모리스(Henry Morris)가 1961년에 쓴 <창세기 대홍수(The Genesis Flood)>라는 책인데, 이는 창조 과학자들 중에서도 '젊은 지구 이론'을 주장하는 극단적인 사람들이 지금도 지지하고 있는 견해, 즉 지형과 지층을 형성한 지질학적 대격변의 원인은 노아의 대홍수이며, 지구의 나이는 6000년에서 1만 년 정도라는 주장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한 최초의 책이죠. 이후 1970년대 들어 남침례교를 비롯한 일부 근본주의 개신교 교파들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창조 과학 연구소가 세워지고, 연구자들이 늘어나고, 교회, 서클, 신학교, 종단 설립 사립 학교에서 대대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창조 과학의 저변은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창조 과학이 진화론과 대등한 과학적 위상을 지닌다고 여기게 된 창조론자들은 이를 공립 학교에서도 가르칠 수 있게 만들려는 로비를 펼쳤죠.

전략은 그럭저럭 성공하는 듯했습니다. 아칸소 주나 루이지애나 주 등 일부 지역에서나마 진화론과 창조 과학을 나란히 가르쳐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창조 과학이 다시 교실로 들어오게 되었죠. 하지만 성공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 이런 주들에서는 교사, 학부모, 과학자 들이 연이어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소송이 막바지에 이른 1987년, 미국 대법원이 창조 과학은 과학이 아닌 종교이며 따라서 이를 공립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국가와 종교의 분리를 명시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창조 과학은 교실 밖으로 완전히 밀려났고, 다시는 교실로 되돌아올 수 없게 되었죠.
▲사상과 윤리 재단이 펴낸 <판다와 인간에 관하여>(1989). ⓒ프레시안

창조 과학이 무용지물이 되자, 창조론 진영은 다시 새로운 대안을 모색했습니다. 그 대안이 바로 지적 설계론이죠.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라는 용어는 사상과 윤리 재단(Foundation for Thought and Ethics, FTE)이 1989년에 펴낸 <판다와 인간에 관하여: 생물학적 기원에 관한 중심 질문(Of Pandas and People: The Central Question of Biological Origins)>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이 책은 '창조'나 '신' 같은 단어를 사용하거나 성경을 직접 인용하는 식의 종교적 색채를 철저히 배제하면서 단지 자연 뒤에는 이를 설계한 지적인 행위자가 있다고만 주장하고 있었고, 많은 사립 학교들에서 이를 교과서로 사용하기 시작했죠.

1990년대 들어 관련 연구소가 설립되고, 필립 존스(Phillip E. Johnson), 마이클 베히(Michael Behe),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ski) 같은 논객들이 잇따라 저술들을 출판하는 등 지적 설계론의 기반이 탄탄해지고 저변이 넓어지자, 창조론 진영은 이를 공립 학교에서도 가르칠 수 있게 하기 위한 운동과 로비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지적 설계 운동의 기본 전략은 창조 과학 운동 당시와 마찬가지로 '진화론과 나란히 지적 설계론도 가르치게 하자'는 것이었는데, 여기에 '논쟁을 가르치라'는 모토가 하나 더 추가되었죠.

하지만 이 노력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2005년 5월에 시작된 열린 캔자스 주의 진화론 청문회에서 보수 정치인들이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을 나란히 담은 공립 학교 교과 과정을 관철시키려 했지만, 반대가 만만치 않았죠. 결국 지난 2007년 2월에 "과학이란 우주에서 관찰되는 것에 대한 자연적 설명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정의 아래 "지적 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최종 결론이 나면서 청문회가 종료되었습니다.

또 2005년에 펜실베이니아 주 도버 지구에서는 교육 위원회가 "진화론은 하나의 이론일 뿐"이라는 내용 등을 담은 문건을 교실에서 낭독하고 지적 설계론 서적을 교과서로 사용하게 하는 정책을 강행하자, 교사, 학부모, 과학계가 소송을 제기해 대대적인 재판이 열렸죠. 전례 없이 많은 과학자들이 참여한 이 재판은 9월에 시작되어 12월에 종료되었는데, 결국 원고 측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139쪽에 이르는 판결문은 과학의 정의를 다시 한 번 명확히 하면서 지적 설계론은 창조 과학을 계승하는 종교적 주장일 뿐이며 결코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죠. (도버 재판의 과정은 2007년 11월에 2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 3월에 EBS를 통해 방영되었다. : 필자).

정책이 관철되거나 재판에서 이긴 적은 없지만, 지적 설계론을 공립 학교 교실로 들여보내기 위한 창조론 진영의 운동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처럼 독실한 근본주의 신앙을 지닌 보수 정치인들이 이를 적극 후원하고 있죠. 1925년의 스코프스 재판에서 2005년의 도버 재판에 이르기까지 진화론과 창조론을 둘러싼 일련의 논쟁과 법정 공방은 진화 vs 창조 문제가 단지 종교와 과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 정치를 비롯한 온갖 요소가 얽힌 극도로 복잡한 문제임을 말해 줍니다. 진화 vs 창조 논쟁을 쉽게 끝나지 않는 지속적인 과정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이 복잡성이죠. 여러 요소들 중에 어느 하나만 변해도 판이 새로 짜이면서 논쟁이 재개되고 법정 공방이 다시 시작될 겁니다.

한국 개신교계에서 창조 과학이 지배적인 이유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죠. 기존에 연구된 바가 없기에 우리나라에서 창조 vs 진화 논쟁이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 종교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1920년대와 30년대에 과학과 종교를 둘러싸고 무신론자들과 사회주의자들, 자유주의 신학자들, 근본주의 신학자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원론적 차원에서 서로 비방하거나 대화를 모색하거나 간섭하지 말자는 내용의 논의였을 뿐 진화와 창조 문제 같은 세부 주제에 대한 논의는 아니었죠.

그 후로도 한동안 진화와 창조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혹시 논쟁이 있었더라도 지금처럼 구체적인 과학적 증거나 이론을 놓고 벌이는 논쟁은 아니었을 겁니다. 과학적 사안을 둘러싼 구체적인 논쟁은 미국에서도 창조 과학이 확산된 1980년대에나 본격화되었으니까요.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진화 vs 창조 논쟁이 본격화된 것은 아마도 한국 창조 과학회가 설립된 1981년 즈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한국 창조 과학회의 설립 연도를 보면 우리나라 개신교계가 창조 과학을 얼마나 신속하게 들여왔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실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개신교는 전래 초기부터 줄곧 미국 개신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고, 근본주의 교파들이나 사실상 근본주의와 별 차이가 없는 복음주의 교파들이 주류를 이루어 왔으니, 당연한 일이겠죠.

창조 과학은 걸출한 개신교계 지도자와 내로라하는 대형 교회들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개신교 교회들과 개신교계 사립 학교는 물론 일반 고등학교, 대학교의 서클들을 통해 널리 보급되었고, 지금도 그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미국에서는 지적 설계론이 등장하면서 창조 과학이 극단적 근본주의자들만의 게토로 위축되어 들어간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지적 설계론도 일찌감치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적 설계론보다는 창조 과학이 압도적이죠.

이러한 현실과 그 원인에 대해서는 장 선생님과 신 선생님이 더 잘 아실 테니, 두 분의 설명을 기대하겠습니다만, 일단 제 나름대로 진단해 본 이유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지적 설계론보다 창조 과학이 우세한 건 미국과 우리나라의 상황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너무 간단한가요? 좀 더 이야기를 풀어 보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미국의 진화 vs 창조 논쟁에는 종교, 과학, 교육, 정치 등 온갖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미국은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엄연한 세속 국가지만, 개신교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죠. 특히 교계 지도자와 보수 정치인들의 연합 속에 개신교와 정치가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창조 vs 진화 논쟁과 법정 공방이 신학계와 과학계의 대립보다는 주로 교육을 둘러싼 보수 정치권과 시민 운동권의 대립 속에 펼쳐져 온 것은 이 때문이죠. 개신교계와 보수 정치권이 손을 잡고 공립 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거나 창조론 교육을 추가하려 하면, 올바른 과학 교육을 원하고 국교를 금지하고 종교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적 권리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이를 문제 삼으며 법정 싸움을 벌여 온 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개신교가 미국에서처럼 그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지는 않습니다. 개신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개신교가 너무 두드러진다고 불평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 개신교는 천주교와 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들과 경쟁하며 공존하는 하나의 종교일 뿐이죠. 또 종교들이 정치와 영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개신교만 그런 건 아니기 때문에 미국에서처럼 개신교계와 보수 정치권이 결탁해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일이 쉽게 벌어지지는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기에 우리나라에서 진화 vs 창조 논쟁은 일단 일부 개신교인들과 과학자들에게만 국한됩니다. 그래서 미국과 달리 우리의 경우는 교육계와 정치권이 개입하여 논쟁이 확대되는 일도, 교육 정책이 바뀌는 일도, 법정 공방이 벌어지는 일도 없었던 거죠. 미국에서는 종교, 과학, 교육, 정치가 뒤엉키면서 치열한 논쟁과 법정 공방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창조 과학으로는 도저히 진화론에 맞설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지적 설계론이 창조 과학을 대체하게 되었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대적인 논쟁이 벌어진 적도 없고, 더욱이 법정 공방이 벌어진 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창조 과학은 공적인 시험대 위에 오르는 일 없이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에서와 같은 치열한 논쟁과 법정 공방이 벌어진다면, 창조 과학이 퇴조하고 지적 설계론이 창조론 진영의 주류 이론으로 떠오를지도 모르죠. 그런 일이 쉽게 벌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진화 vs 창조 문제가 개신교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

위에서 제가 창조 vs 진화 문제가 일부 개신교인들과 과학자들에게 국한된 일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좀 더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상황은 좀 더 복잡하죠. 그렇기에 저는 이 문제가 좀 더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죠.

우선, 창조 과학이든 지적 설계든,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과학적 창조론이 일부 근본주의 개신교 교단뿐만 아니라 거의 한국 개신교 전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영국과 유럽에서는 근본주의적 흐름이 미약했기 때문에 창조-진화 문제 자체가 크게 불거진 적이 거의 없었죠. 미국의 경우 근본주의 개신교 진영이 아무리 막강해도 자유주의나 온건한 복음주의 계열의 개신교 진영이 이와 팽팽히 맞서며 균형을 이루어 있기 때문에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이 개신교 전반을 장악하지는 못해왔습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개신교에서는 일부 자유주의 교단을 제외하고는 복음주의나 근본주의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교단이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일단 짐작하기로는 우리나라에서는 자유주의 개신교 진영의 규모가 너무 작고,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의 경계가 아주 모호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만, 정확한 원인은 좀 더 따져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신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실 수 있겠는지요?

창조 vs 진화 문제를 일부 개신교계에 국한된 지엽적 문제로 접어 둘 수만은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미국에서처럼 종교계와 정치권이 결탁하거나, 논쟁이 공론화되거나, 법정 공방이 벌어진 적은 없어도,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창조 vs 진화 문제가 종교계뿐만 아니라 과학계와 교육계가 일정 정도 관련된 공적인 문제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켄터키 주의 창조 과학 박물관 내부. ⓒ프레시안

장 선생님이 아마 자세하게 잘 아시겠지만, 카이스트 구내에 작은 창조 과학 전시관이 있죠? 한국 창조 과학회가 1993년에 설립한 전시관이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가 2003년에 카이스트 구내로 이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고, 또 가능했는지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물론 이곳 말고도 전국에 작은 창조 과학 전시관이 몇 군데 더 있기는 하죠. 또 대형 교회들을 중심으로 막대한 후원 기금이 마련되어 대규모 창조 과학 박물관을 건립하는 일도 착착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미국에서도 얼마 후면 세계 최초의 대규모 창조 과학 박물관이 개관한다고 하더군요. (켄터키 주 신시내티의 피터스버그에 소재하고 있으며, 2007년 5월에 개관했다. : 필자)

이런 전시관이나 박물관이 개신교계가 마련한 일반 부지에 있다면야 굳이 제3자가 나서서 시비를 걸 것까지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국립 연구 교육 기관인 카이스트 구내에 창조 과학 전시관이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창조 과학이 맞는지 틀리는지, 과연 그것이 과학인지, 이런 문제를 굳이 따지지 않아도, 창조 과학이 개신교라는 특정 종교의 교리와 신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러니 규모가 크든 작든, 또 그 위상이 어떠하든, 국립 기관인 카이스트 측이 구내에 창조 과학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공간을 제공했다는 건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많아 보입니다.

물론 누구든 사적인 차원에서 종교 서클 활동을 할 수 있고, 국립 기관에서도 이들에게 서클룸을 제공할 수는 있습니다. 카이스트에서도 교수들과 학생들이 공식 수업과 별도로 얼마든지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을 공부할 수 있고, 이는 그들의 자유이자 권리죠. 하지만 소규모 공동체의 사적 공간인 서클룸과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는 공적 공간의 성격이 강한 전시관은 엄연히 다릅니다. 국립 서울 대학교에 많은 종교 서클들이 있고 강당 같은 데서 수시로 종교 집회들이 열리기는 해도, 결코 교회나 사찰 같은 종교 시설이 서울대 구내에 설립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죠. 카이스트 쪽 상황을 잘 몰라서 일이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카이스트 구내의 창조 과학 전시관은 다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중등 교원들을 위한 '특수 분야 직무 연수'라는 것에 대해 들어보셨는지요? 2000년대 초반에 한국 창조 과학회가 이 직무 연수 기관으로 지정되었더군요. 한국 창조 과학회와 몇몇 개신교계 사립 대학들이 공동으로 매년 정기적으로 개신교인 교사들을 위한 창조 과학 연수를 제공해 오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여기도 문제의 소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직무 연수 기관에 교육부 보조금이 얼마나 제공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제공된다면 이 역시 헌법의 국교 금지 조항에 위배될 수 있죠. 설령 교육부 보조금이 없다 해도, 연수 과정에서 이수한 학점이 교사의 인사 고과 평가 점수에 포함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기는 여전히 마찬가집니다. 보조금을 지원하든, 인사 고과 점수에 반영하든, 정부가 공교육 영역에서 특정 종교를 직접적으로 후원하는 셈이기 때문이죠.

사립 학교의 경우라면 굳이 문제가 되겠느냐고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은 물론 다른 어느 나라와도 달리, 우리나라는 사립 학교가 정말 사립 학교가 아니기 때문이죠. 초등학교와 대학교는 국고 보조금이 거의 없고, 입학도 전적으로 학부모와 학생의 자율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므로 굳이 문제될 게 없습니다. (사실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사립 학교라도 운영비의 대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한 재단의 자율권에는 일정한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죠.)
▲1인 시위 중인 강의석 학생. ⓒ프레시안

하지만 중고등학교는 다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사립 중고등학교들은 운영비의 거의 전액을 국고 지원금과 학생 등록금에 의존합니다. 재단 전입금은 거의 없거나 아주 미미하죠. 게다가 현재의 교육 제도에서 특수 학교나 대안 학교 등을 제외하면 학생들은 일방적으로 학교를 배정받을 뿐 선택의 기회나 권리가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기에, 우리나라 사립 중고등학교는 이름만 사립일 뿐 사실상 공립이나 마찬가지죠. 사립 중고등학교는 사학 재단의 자율권보다 학생의 피교육권이 더 중요한 엄연한 공교육 영역에 속합니다. (2004년에 대광고의 강의석 군이 종교 행사 참여를 의무화한 학교 규정을 거부하며 싸움을 벌였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죠.) 그러니 아무리 사립 학교라도 특정 종교 단체가 관련된 창조 과학 직무 연수 성과를 인사 고과에 반영하는 건 공교육에 대한 침해의 소지가 큽니다.

또 공립 학교는 물론 사립 학교에서조차도 과학 교사가 수업 시간에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을 가르치는 건 더더욱 안 될 일이죠. (많지는 않아도, 그런 일이 전혀 없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수업 외 서클 시간에 교사와 학생이 사적으로 진화와 창조 문제를 공부하는 거야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사립 학교가 공교육 영역 안에 있는 한 특정 종교에 근거한 창조론은 결코 교실로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이는 미국과 우리가 크게 다른 점이죠. 미국에서 창조론과 진화론 교육 문제는 어디까지나 공립 학교에 국한된 문제입니다. 사립 학교와 공립 학교가 철저히 구분되기 때문에 사립 학교의 교육 내용에 대해 설령 학부모는 간섭할 수 있어도 정부가 절대 간섭할 수는 없죠. 이와 달리 우리는 사립 학교와 공립 학교의 구분이 거의 없고, 사립 학교가 사실상 공교육 영역 안에 있기 때문에 사학 재단의 자율권보다 학생의 권리가 우선되고, 정부의 교육 정책이 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립 학교나 사립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혹시 창조론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사되거나 연구된 바가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98년에 전국의 많은 개신교인 교사들이 단체를 결성해 창조 과학을 연구하고 진화론 위주 교과서와 교육 정책을 비판하는 활동을 해 온 것을 보면, 교실 현장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해 실태 조사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창조론 교육이 사립 학교나 공립 학교의 공교육 현장으로 들어온다면 과학 교육은 일거에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창조 과학이 과학이다,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문제는 다른 자리에서 논할 사안이죠.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종교의 다양성과 종교의 자유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교회(Church of Flying Spaghetti Monster)'라고 들어보신 적이 있죠? 2005년에 열린 캔자스 주의 진화론 청문회에서 지적 설계론을 공립 학교 교과 과정에 끼워 넣으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물리학을 전공한 한 대학원생이 캔자스 주 정부에 긴 항의 편지를 보냈죠. "나는 스파게티 괴물 교회 신자다. 우리에게도 자연에 관한 과학적 이론이 있다. 그러니 진화론이나 지적 설계론과 나란히 우리의 이론도 교실에서 가르칠 수 있게 해 달라." 대략 이런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물론 그런 종교가 실제 있는 건 아니고, 단지 종교를 패러디한 것일 뿐이었죠. 캔자스 주 정부는 이를 가볍게 무시했고요. 다행히 지적 설계론이 교과 과정에 포함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교회는 창조 vs 진화 논쟁의 한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되었죠. 종교 패러디 놀이에 흥미를 느낀 많은 사람이 스파게티 괴물 교회에 가입하기 시작해 지금은 가입자가 엄청나게 많아졌고, 스파게티 괴물 복음서도 내고, 스파게티 괴물을 소재로 한 소품들을 판매해 기금을 마련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스파게티 괴물 교회의 종교 패러디 놀이가 무신론 운동과 반종교 운동의 중요한 거점이 되어 가고 있는 거죠.

스파게티 괴물 교회의 사례는 창조론이 공교육 현장으로 들어와서는 안 되는 이유를 웅변적으로 말해 줍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을 동시에 가르칠 수 있다면, 화학과 연금술, 천문학과 점성술, 뇌과학과 골상학, 신경 과학과 기(氣)과학도 나란히 가르칠 수 있어야 마땅하죠. 이런 것들도 한때는 모두 '과학'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이를 '과학'이라 믿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과학' 개념의 정의와 범주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더 이상 올바른 과학 교육은 불가능할 겁니다. 온갖 사이비 과학들이 교실에서 난무하겠죠.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교회 홈페이지의 첫 화면 사진. ⓒ프레시안

좀 극단적인 가정이긴 했습니다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겁니다.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이 얼마나 정확하든, 또 그것이 과학이든 아니든, 거기에 일말의 종교적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또 거기에 실제로 종교적 요소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명백한 한, 그것은 결코 공교육 속으로 들어올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아직은 이런 문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것 같아 다행스럽긴 합니다만, 겉으로만 불거지지 않았을 뿐 문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미국처럼 노골적이거나 치열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창조 vs 진화 문제가 개신교 일부 진영에만 국한되지 않고 공적 교육의 제도와 현장에도 일정 정도 얽혀 들어와 있기 때문이죠.

머리가 복잡하고 풀리지 않은 생각들도 많지만, 제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신 선생님과 장 선생님은 개신교계에서 또 과학계에서 창조-진화 논쟁에 직접 뛰어들어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을 연구하시는 분들과 지속적으로 토론을 해 오셨으니, 두 분께 듣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습니다. 새벽인가 싶더니 어느새 바깥이 환하네요. 오늘은 이만 접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곧 다시 뵙지요.

2007년 4월 15일

오산 양산봉 기슭에서

김윤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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