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책읽기가 요구되는 시대

[북앤시네마]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탐서주의자의 책』(마음산책)을 쓴 출판평론가 표정훈 씨는 - 그가 스스로 지칭한 '탐서주의자'란 책의 소유를 삶의 유일지상의 목적으로 삼고 책 내용보다는 책 자체를 중시하며 책을 진眞과 선善 위에 두는 사람을 말한다 - 다매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독서 대차대조표'를 만들 것을 권유한다. "일단 양적으로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또 질적으로는 읽은 책 가운데 만족스러웠던 책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지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크게 도움이 된 '결정적 한 권'은 없었는지,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려 애썼는지, 한 분야에 편중된 독서를 하지는 않았는지, 자녀의 독서 생활에 신경을 썼는지, 이런저런 사항들을 가만히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책을 읽느라 자신의 아들조차 몰라본 독일 역사학자 테오도르 몸젠과 감옥에 면회 온 한 기자에게 음식보다 책을 원했던 단재 신채호 등 독서 삼매경에 빠진 명사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책을 읽는 '기술'에 대해 담백하게 펼쳐 놓았다. 저마다 일리 있는 다양한 독서론과 독서법을 취하는 게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독서는 행동"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점도 눈에 들어온다. "Just Do It이 아닌 Just Read It"이라는 재기 넘치는 표현으로 갈무리하면서 말이다(물론 이 책은 단순히 책을 읽는 법을 전수해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책에 관한 모든 '풍경'을 담은 책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독서론과 독서술, 그리고 서재론 하면 일본의 다치바나 다카시를 빼놓을 수 없다.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하나의 테마에 대해 비슷한 관련서를 몇 권이든 찾아 읽어라,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등 그의 '14가지 독서법'은 한때 이 땅에서도 화제를 모을 정도였다. 지금 와서 보아도 허투루 넘길 게 전혀 없어 보일 정도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정리하고, 소장하는지도 중요한 일이다. 결혼 5년차인 책벌레 부부가 고집스레 각자만의 책을 소장하다가, 서로의 책들을 합방시키는 에피소드를 담은 『서재 결혼시키기』(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지호)와 스스로 '보물창고'로 부르는 각종 도서관들을 샅샅이 훑어 '책꽂이'의 역사를 추적한 『서가에 꽂힌 책』(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정영목 옮김, 지호)은 이들을 만족시키기에 그만인 책이다. 특히 넘쳐나는 책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이라면 『서가에 꽂힌 책』의 뒤에 실려 있는 '부록(서가의 책정리)'이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몇 가지 소개하자면, 저자의 성(姓), 제목 순서, 주제, 크기 순서, 색깔 등에 따라 책을 정리하란다. 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최근 출간된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역시 책에 관한 책의 고전으로 불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앞에 소개한 책들에 비해 제목(독서의 기술)이 다소 '실용적'인 냄새가 난다. 헤르만 헤세의 이름값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러나 더욱 이 책이 흥미를 모으는 까닭은 책에 관한 그 어떤 책보다 더욱 인문적이라는 데 있다. 일단 시작부터 깐깐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왜 책을 읽는지조차 정확히 모른다." 이뿐만이 아니다. 헤세는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책을 너무 많이 읽는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전혀 감동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일에 비해 독서에 시간과 노력을 지나치게 바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세 수입이 대폭 줄어들지언정 심드렁한 독자 수천보다는 단 열 명이라도 제대로 알아주는 독자들이 더 고맙고 기쁘다"라고 일갈할 정도다. "무가치한 독서로 시간을 허비한다면 미련하고 안타까운 일 아니겠는가?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책의 수준이 아니라 독서의 질이다. 삶의 한 걸음 한 호흡마다 그러하듯, 우리는 독서에서 무언가 기대하는 바가 있어야 마땅하다. (중략) 아무 생각 없이 산만한 정신으로 책을 읽는 건 눈을 감은 채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적어도 이 말만 놓고 본다면, 헤세에게 있어 도쿄 한복판에 '고양이 도서관'을 만들고 인류의 정신사를 종횡으로 오가며 무차별적으로 책을 읽어대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론은 그다지 마뜩치 않을 듯하다. 물론 다카시는 '넓고 깊게' 읽는, 좀처럼 찾기 힘든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로 하자. 아무튼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은 책과 독서, (독일) 문학에 관한 헤세의 글을 모은 비교적 괜찮은 책이다. 1900년대 초에 쓰인, 게다가 헤세라는 불세출의 작가가 써내려간 글을 읽다보면 책을 읽는 기술과 방법보다 책을 대하는, 책을 읽는 자세가 더없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두려워질 정도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언론과 인터넷 서점 등에서 주도하는 '올해의 책'이니, '~ 책 100선' 등의 수식어가 붙은 기획을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직업상 곁눈질 정도는 해줘야겠지만, "각자가 끌리고 수긍하고 아끼고 좋아하여 특별히 선택하는 책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헤세의 충고가 더욱 좋은 건 어떡하랴. 미술과 책에 관한 잡글을 쓰고, 덤으로 책을 기획하는 호사를 누리는 내게 책은 두려운 존재다. 하루에도 수백 권에 달하는 책이 새로 쏟아지고, 서점을 채우고 넘쳐나는 현실을 막기는커녕 방조하는 자리에 있는 탓이다. 게다가 짬짬이 온라인상의 이 공간과 오프라인의 이곳저곳에서 글과 말로 밥을 벌어먹는 나로선 이 책 저 책을 분주히 오가는 독서법에 길들여진지 오래다. 이런 나에게 헤세가 전하는 '독서의 기술', 즉 진지한 책읽기는 너무도 무겁게 다가온다. 나는 과연 친구나 연인을 대하듯이 책을 진정 사랑하는 것일까, 책의 본성에 맞지 않는 것을 요구하느라 책에 밉보인 건 아닐까, 비록 소수일지언정 책을 진지하게 대하는 이들에게 내놓기 부끄러운 책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혹시 당신도?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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