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축구의 중심이 대표팀에만 맞춰져 있고, 유소년 축구 육성 등 축구 저변확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20년이 지나도 한국이 월드컵 16강에 드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영표의 말은 축구 팬들에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축구가 정신력과 투혼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축구가 아니라 기술축구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는 쓴 소리였다.
이영표는 "재능있는 선수는 열심히 뛰는 선수를 이길 수 없고, 열심히 뛰는 선수는 즐기면서 플레이 하는 선수를 이길 수 없다"는 말도 남겼다. 4년마다 되풀이 되는 월드컵 성적 등의 수치에 얽매이기 보다 길게 보고 '즐기는 축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프레시안>은 15일 이영표와 만나 에코토(카메룬)의 영입으로 뜨거워진 토트넘에서의 주전 경쟁과 2006 독일 월드컵에 관한 얘기를 들어봤다.
'토털축구'의 발상지인 네덜란드의 PSV 에인트호벤에서 주축 수비수로 활약했던 이영표는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대표팀의 차이를 수비 조직력에서 찾았다. 하지만 그가 밝힌 수비 조직력은 수비수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30여년 전 리누스 미헬스 네덜란드 감독에 의해 탄생됐던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털축구' 철학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했다.
이영표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이 끝난 뒤 한국의 수비라인에 대폭적인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다. 하지만 단순한 수비라인의 세대교체가 수비를 탄탄하게 해주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이영표는 "세계적 수비수 4명이 포백 라인으로 포진돼 있다 하더라도 상대 필드 플레이어 10명을 당해낼 수는 없는 일이다. 2002년 월드컵 때는 한국에는 훌륭한 수비수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결코 세계 최고 수준의 수비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팀 전체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수비를 펼쳤다. 포지션에 국한되지 않고 각자가 수비 시에 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은 2002년 월드컵에서 충분히 4강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팀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영표는 2002년 월드컵 때 왼쪽 미드필더로 뛰며 공격뿐 아니라 수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한국은 당시 스리백을 썼지만 수비 시에는 이영표, 송종국이 내려와 파이브백을 형성했다. 히딩크 감독이 추구했던 '협력수비'의 완성을 위해 이영표, 송종국의 역할은 매우 컸다.
이영표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아쉬웠던 것은 수비 조직력의 부재였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이다. "수비라인은 한 경기를 치르다 보면 3~4차례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점을 하는 상황을 무조건 수비라인의 실수로만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 팀 미드필더나 공격수들의 수비에 대한 적극성이 떨어지면 상대가 쉽게 공을 연결해 우리 수비가 미쳐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경우도 고려해 봐야 할 문제다. 수비는 항상 숫자싸움이 중요하다. 세계적인 팀들은 7~8명이 함께 수비하는 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다. 하지만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이영표가 말한 이 같은 차이는 2002년 월드컵과 2006년 월드컵을 구분짓는 하나의 중요한 잣대다. 선수 전원이 끈끈한 수비력을 보인 히딩크호는 2002년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미국 전을 제외하면 단 한 차례도 선제골을 내주지 않을 수 있었다. 반면 아드보카트호는 2006년 월드컵 조별예선 세 경기에서 모두 선제골을 내주며 어려운 경기를 해야 했다.
항상 '긍정적 사고'를 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이영표는 에코토와의 주전 경쟁에 대해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좋은 선수(에코토)가 새로 영입된 것은 팀이 강해진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이다. 더욱이 축구 선수로서 주전 경쟁은 숙명이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열심히 하겠다."
그러나 이영표는 다른 한 편으로 주전 경쟁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99년 올림픽 대표팀에 뽑힌 뒤 운 좋게도 나는 한 번도 지지 않고 주전 경쟁에 밀리지 않았다. 안양 LG(FC 서울의 전신), 에인트호벤, 토트넘을 거치면서 나는 항상 나 때문에 누군가가 못 뛴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선수를 출전시키거나 벤치에 두는 것은 감독의 몫이다. 첼시에서 뛰던 데미언 더프나 맨유의 스트라이커 판 니스텔루이도 소속 팀에서 출장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해 각각 다른 팀으로 이적해야 한 것처럼 말이다. 반드시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
지금까지 성공시대를 달려 온 이영표였지만 그에게도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 물었더니 그 대답이 걸작이었다. "올림픽 대표팀에 들어가고 난 뒤나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할 때, 또 에인트호벤 시절에는 내 자신이 많이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을 받기 직전까지는 내게 늘 어려웠던 순간이었다."
이영표는 "인격적으로 훌륭한 토트넘의 수석코치 크리스 휴튼으로부터 사적인 문제나 전술적인 것에 대해 많은 조언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영표는 "유럽에서는 왼쪽 윙백은 왼발잡이가 맡는 것이 대부분인데 크리스 코치는 나처럼 오른발 잡이지만 선수 시절 왼쪽 윙백으로 뛰었다"며 둘 간의 공통점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영표는 올 시즌부터 독일 분데스리가 마인츠에서 오른쪽 윙백으로 뛰게 되는 차두리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최근 독일에 갔을 때 마인츠와 리버풀의 경기에서 두리가 후반전에 뛰는 모습을 봤다. 축구 선수마다 자기의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두리에게 특별한 조언을 해줄 것은 없다. 나는 키가 작아 나만의 스타일을 찾았다. 두리는 유럽 선수들에 비해 크게 뒤질 게 없는 체격조건을 갖고 있고, 힘도 좋은 만큼 수비수로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기를 바란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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