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보좌관의 후안무치…'3류 청와대'로 가는 길

〈기자의 눈〉"줄기세포 죽인 '곰팡이'에 책임 물을까"

2005년 5월 25일 서울 순화동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사무처에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한 연구자의 연구지원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청와대, 총리실, 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외교통상부, 국정원, 특허청 등 주요 부처 관계자들이 총출동했다. 물론 이 연구자는 황우석 서울대 교수였고,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은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었다.

이날 박 보좌관 주재로 열린 '황우석 교수 연구팀 지원 종합대책회의'에서는 올해 예정된 연구지원 시설비 245억 원을 차질 없이 지원하고, 줄기세포분화연구 강화를 위한 연구비는 기존 20억 원에 10억 원을 추가하기로 했다. 박 보좌관은 이 자리에서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관심과 지원, 대한변리사회의 특허업무 지원 등 황 교수 연구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할 '드림팀'을 만들어가겠다"며 확실한 지원을 약속했다.

이렇게 하던 박 보좌관은 막상 황 교수의 난자 기증 윤리, 논문 진위 문제 등이 터지고 그 동안의 의혹이 '사실'로 확정되어가는 국면에서는 일절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두문불출해 온 것이 요즘의 상황이다.

***박기영 "황교수가 논문에 대해 책임 져야"**

이렇게 사태 발생 이후 근 한 달간 "혼란이 일 수 있다"며 핸드폰을 꺼놓고 기자들의 취재에 거의 응하지 않아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던 박 보좌관이 19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침묵'을 깨고 나섰다. 그 요지는 "난 몰랐다. 황 교수가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 보좌관은 이 인터뷰에서 "과학 논문의 생명은 정직성인데 현 상황은'인위적 실수'가'조작'으로 판명돼 가고 있다"고 황 교수를 비난한 뒤 "지난 2001년부터 황 교수와 함께 일을 해 왔지만 이번 논문 조작사건으로 상당히 실망했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황 교수가 서울대에서 줄기세포라며 보여준 적이 있다"며 "적어도 그때는 황교수를 믿었기 때문에 별 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순진한 희생양'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모든 책임을 황 교수에게 전가한 뒤, 박 보좌관은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 "현재 황 교수나 노 이사장, 김선종 연구원의 얘기가 모두 달라 나 자신도 무척 혼란스러운 상태"라며"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단 지켜보겠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진대제 장관 "'황금박쥐' 요즘 잘 안 만난다"...**

'황 교수 파문'이 일기 전에는 '황금박쥐'(황우석, 김병준.박기영.진대제) 모임 결성 사실을 언론에 알리고 황 교수와의 친분을 강조하던 정부 관료들도 서둘러 등을 돌리는 '배신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19일 "최근 '황금박쥐' 멤버들은 서로의 일정이 바빠 서로 만난지 몇 개월이 지났다"고 밝혔다.

황 교수가 잘 나갈 때만 해도 이들은 한달에 한 차례 정도 만나 과학기술정책을 토론한다고 밝혔었다. '황금박쥐'는 정부 내에서 모임에 끼워달라는 사람들이 줄을 서자 "모임이 공식화된다"며 자기들끼리만의 결속을 자랑하지 않았던가.

***황 교수가 '논문 조작' 시인했는데도 진상 규명 필요하다?**

이처럼 서둘러 황 교수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은 야당 측이 '황우석 사태'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청와대 김병준 정책실장과 박기영 보좌관, 오명 과기부총리 등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정치공세"라고 일축하고 있다. 열린우리당도 "아직 진위 여부나 진실 규명이 되지 않은 상태"라면서 "책임을 묻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청와대를 지원하고 나섰다.

그러나 황 교수가 스스로 논문 조작을 인정한 이 마당에, 그 논문이 생산되도록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아 예산낭비와 국민기만의 공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인사들에게 책임을 묻는 데에 무슨 진상규명이 더 필요한지 모르겠다. 특히 박기영 보좌관은 황 교수 연구가 '국가적 사업'이 되는데 절대적 공헌을 한 사람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논문 공저자인 박기영, 줄기세포 오염 심각성 몰랐을까?**

황우석-박기영 두 사람의 특수 관계는 황 교수가 지난 1월9일 줄기세포 오염 사실을 주무부처인 과기부가 아니라 박 보좌관에게 구두 보고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박 보좌관은 이 사실을 과기부에 통보하지 않았고, 청와대 내에서 공유한 것도 아니고, 대통령에게 보고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의 주요 사업과 관련된 보고 체계를 완전히 무시하고 보고를 누락시킨 것은 이미 드러난 귀책 사유다.

게다가 박 보좌관은 2004년 〈사이언스〉논문의 공동저자 15명 중 한 사람으로서 '무임승차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생명윤리 문제를 자문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막상 이 논문에 사용된 난자 기증 과정에서 윤리적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그는 "난자 기증 과정과는 상관 없다"고 발뺌했다.

또 박 보좌관이 '축소.왜곡보고'를 한 정황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박 보좌관은 지난달 21일께 MBC 〈PD수첩〉 취재와 관련해 노 대통령에게 취재 윤리를 어긴 점을 보고했다. 노 대통령은 이를 받아 "맨 처음 취재 방향은 연구 자체가 허위라는 것으로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취재 동기나 방법에 대해서도 얘기가 있었는데 물론 호의적인 내용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박 보좌관이 이런 내용의 보고를 한 시점은 11월 17일 〈PD수첩〉팀의 'DNA 1차분석 결과'가 나온 뒤였다. 그가 의도적으로 〈PD수첩〉의 검증 결과를 은폐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일방적으로 황 교수에게 유리한 내용만 보고한 것만은 분명하다. 김병준 정책실장이 지난달 28일 김형태 변호사를 만나고 돌아와 박 보좌관을 청와대 내부 논의구조에서 배제시킨 사실에서도 그간 박 보좌관의 보고 내용에 문제가 있었음이 방증된다.

***'서울대 조사' 핑계로 시간 끄는 것인가**

청와대와 우리당이 지적한 '현재 진행 중인 진상규명 작업'은 서울대 조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박 보좌관도 "서울대 조사위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단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 교수 본인이 논문 조작을 시인한 상태에서 그 조사 결과를 기다리자는 것은 국민의 관심과 열기가 식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행여 서울대 조사 결과 책임지지 않아도 될만한 좋은 핑계 거리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노 대통령은 정말 몰랐냐"며 대통령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하는 국면이다. 상황이 엄중하다. 황 교수의 논문 조작 시인 이후 국면이 정치적·행정적 책임론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 마당에 당사자들과 정부가 이렇게 '남의 탓'만 하며 책임지는 자세를 전혀 보이지 않으니 가뜩이나 실망한 국민들의 분노가 더욱 커지는 것도 당연하다. 민노당 박용진 대변인은 "책임져야 할 사람에게 책임지라고 한 것을 정치공세로 비하한다면 국민들은 (줄기세포를 죽였다는) '곰팡이'나 탓하란 말인가"라며 청와대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난하기도 했다.

***모든 얘기는 박기영 보좌관을 파면한 뒤에 해야 마땅하다**

처음 의혹이 불거졌을 때 깨끗이 승복하지 않고 거짓말을 되풀이하다 결국 진실이 드러나자 황 교수와 그의 연구에 대한 신뢰가 회복 불가능한 지점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정부는 기억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배반한 데 따른 댓가는 혹독하기 이를 데 없는 법이다. 특히 이 정부 내에서 황 교수 문제에 책임있는 당사자들이 후안무치하게도 '모든 게 황 교수 탓'이라며 시간이나 끌려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박기영 보좌관을 파면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김병준 정책실장과 오명 과기부총리의 책임을 묻는 일이다. 모든 얘기는 그 이후에 해야 한다. 이 사람들을 그 자리에 두고선 노 대통령이 무슨 얘기를 한다 해도 국민들이 곧이 듣기 어려울 것이다. 고작 '3류 정치인'에 '3류 청와대'라는 비아냥 외에는 돌아올 것이 없다. 노 대통령의 선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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