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광풍', '노 대통령의 입'이 자초한 일이다

〈기자의 눈〉대통령은 무슨 일을 하는 자리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노 대통령의 '입'이 자초한 일이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논문의 공동저자인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15일 "줄기세포는 없다"고 밝힘에 따라 이같은 주장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현 정부, 나아가 한국의 신뢰도도 땅에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한 연구자의 부도덕한 행위가 국가적 문제로 확대된 '황우석 광풍'은 노 대통령의 조급증과 불필요한 개입이 낳은 비극이다.

***"기술이 아니라 마술…윤리 우려 때문에 탐구 막는 건 불가능"**

노 대통령은 그간 황우석 교수의 든든한 지원자였다.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2003년 초 황 교수의 신문 칼럼을 보고 이메일을 보내면서 서로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노무현 정부는 생명공학(BT) 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으로 만들기 위해 재정적, 정책적, 정치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부는 황 교수 연구팀에 지난 2004년 65억 원, 2005년 265억 원 등 예산을 지원했다. 황 교수는 한때 과학기술부 장관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황 교수 연구실을 직접 방문하는 등 여러 차례 황 교수를 만나 노고를 치하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03년 12월 황 교수 팀의 세계 최초 광우병 저항소 연구개발 보고회장을 방문해 "기술이 아니라 마술이라 느꼈다"고 극찬했다. 노 대통령은 "동북아시대, 2만 달러 시대의 가능성과 희망을 어디서 발견할지가 문제였는데 확실한 증거를 발견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노 대통령은 또 지난 2004년 6월에는 황 교수 연구팀 11명에게 훈장을 수여하면서 "국민들이 한국이 세계일류가 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는데 여러분이 믿음을 줬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윤리적으로 나쁜 방향으로 간다는 우려 때문에 탐구를 막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일각의 윤리 논란을 일축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서도 노 대통령은 "생명윤리에 관한 여러 논란이 이 같은 훌륭한 과학적 연구와 진보를 가로막지 않도록 잘 관리해 나가는 게 정치하는 사람들이 할 몫"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 '민주주의' 거론하며 논란에 적극 개입**

이처럼 황 교수의 든든한 후원자이던 노 대통령은 새튼 피츠버그 의대 교수의 갑작스런 결별선언과 MBC 〈PD수첩〉 보도로 황 교수 연구윤리 문제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발빠르게 논란에 개입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브리핑〉에 '줄기세포 언론보도에 대한 여론을 보며'라는 글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이 글에서 노 대통령은 MBC 〈PD수첩〉에 대한 여론의 뭇매에 대해 "관용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걱정스럽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획일주의가 압도할 때 인간은 언제나 부끄러운 역사를 남겼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노 대통령이 발 빠르게 논란에 개입한 이유는 이번 사태가 자신의 '대연정' 제기의 이유였다는 "대화와 타협을 모르는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기 때문이라고 풀이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윤리 우려 때문에 탐구를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가진 노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거론하며 논란에 개입하기 위해선 부연 설명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대통령의 입을 통해 두 가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하나는 MBC 〈PD수첩〉의 처음 취재 방향이 연구 자체가 허위라는 데에 맞춰져 있었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이 나서서 뭐라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어서 경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두 번째는 〈PD수첩〉팀이 취재 과정에서 취재윤리를 어겼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같은 사실을 박기영 과학기술보좌관이 보고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의 갑작스런 개입은 오히려 수세에 몰린 황 교수팀과 그를 옹호하던 보수 언론에게 빌미를 줘 논란을 더욱 확산시켰다.

***"덮고 가자" 주장하다가 '재검증' 결정되자 "과학계가 알아서…"**

당초 〈PD수첩〉의 의혹 제기에 대해 "기자는 기자의 할 일이 있다"며 정당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던 노 대통령은 자신의 글로 황 교수 연구 진위 문제로 논란의 초점이 옮겨 가자 이번엔 "이 정도에서 덮고 가자"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두 번째로 논란에 개입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5일 취재윤리 문제로 〈PD수첩〉의 후속보도가 불가능해지자 "황 교수팀의 연구 성과에 대한 검증 문제는 이 정도에서 정리되기를 바란다"며 "이 문제는 이후 황 교수의 연구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증명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첫번째 개입이 양비양시론의 수준에 그친 것이었다면 이번엔 사실상 '국민적 행동지침'을 내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만하자'는 대통령의 말은 그것 자체로 큰 위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 노 대통령은 아마도 그가 늘 그러했듯이 자신을 '국민적 토론의 진행자' 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은 시민사회의 몫이고 그 자신은 국민이 쥐어준 권력을 통해 문제를 판단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너무도 자명한 사실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이미 젊은 생명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황 교수 연구에 대한 재검증 요구가 일고 있었다. 그래서 주무부처 장관인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과학계에서 검증해야 한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으나 노 대통령은 이런 요구를 묵살해 버렸다.

그러나 황 교수 논문을 서울대에서 재검증하기로 결정하자 청와대는 12일 "청와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며 "과학계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며 돌연 아무 상관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또 필리핀을 방문 중인 노 대통령은 15일 노성일 이사장의 발언과 관련된 보고를 받고는 "좀 더 지켜보자"며 언급을 자제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동안 이번 사태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박기영 과학기술보좌관은 기자들을 피해 다니면서 일관되게 침묵을 지켰다.

노 대통령은 16일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한다. 이번 사태로 땅에 떨어진 정부 과학기술 정책과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노 대통령에게 주어진 최우선의 과제가 됐다.

노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획일주의' 탓으로 돌렸지만, 황 교수 연구에 대한 국민들의 절대적인 신뢰는 현 정부가 유포한 '생명공학 신화'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국민들의 '우매함'을 탓하기 전에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정부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황 교수 연구가 정부 지원을 받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황금박쥐' 멤버인 박기영 보좌관,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또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황 교수 감싸기에만 급급했던 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모든 정부 행태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였던 '대통령의 한없이 가벼운 입'에 대해서도 어떻게 할 것인지 스스로 밝혀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은 무슨 일을 하는 자리인지도 다시 한번 숙고해 행동으로 모범을 보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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