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2006년 기초단위 지방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구 획정은 중대선거구제를 골간으로 논의가 진행돼 왔다. 이 제도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3인 이상의 의원을 뽑을 수 있어 지역에 뿌리를 둔 개혁적인 시민사회 및 정치 세력의 의회 진입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등 기존 보수양당 체제 아래에서 질식된 지방정치를 생동감 있는 정치로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기제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4인 선거구 대부분 2인 선거구로 분할**
물론 이 과정에서 기득권을 지닌 다수의 보수정치세력들이 이 제도를 온전히 실행할까 하는 의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기초의회 의원출마자에 대한 정당공천제와 의원유급제의 도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명도'와 '명망성'을 지닌 지역인사들을 흡수하려는 기존 보수정당들의 공공연한 정치적 욕망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비판받았다. 그 같은 의도가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저지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사회관계들이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않아 중대선거구제의 '온전한 도입'에 희망을 걸면서 그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기대와 달리 보수정치세력들의 '불순한 의도'는 내밀히 발전해 '선거구 조작'을 통해 지역정치를 장악하려는 반민주적인 행태로 이어졌다. 서울, 경기, 부산 등의 선거구 획정은 아주 노골적이다. 특히 4인 선출 선거구로 상정됐던 곳이 논의과정을 거치면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2인 선거구로 분할됐다. 이는 애초 중대선거구제의 입법취지를 무색케 한 것으로 지방의회를 자신들의 수중에 묶어두려는 정략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하나의 전형으로 경기도 군포의 경우를 보자. 군포는 일산, 분당, 중동 등과 함께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공간적으로 아파트 중심의 신도시와 기존 도시(구도시)로 나눠져 있다. 선거구획정위원회(이하 획정위원회)는 애초 각 인구수와 행정 동수를 5대5의 비율로 해서 인구 16만 명인 신도시는 의원수를 5명, 인구 11만 명인 기존 도시는 3명을 배정한 후 신도시 5명을 각각 2명, 3명을 뽑는 두 개의 선거구로 분할했다. 그러나 보수양당의 압력이 가해지면서 획정위윈회는 의원 정수가 5명인 신도시에서 1명을 빼내 인구수가 5만이나 차이가 나는 기존도시에 배당해 신도시 4명, 기존도시 4명을 선출하는 선거구로 재조정했다. 이는 4명을 선출하는 선거구를 각각 2명 선거구 두 개로 다시 재분할하기 위해 띄운 '연막용 애드벌룬'이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들, 민주노동당 등의 항의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선거구는 각각 2명의 기초의원을 뽑는 4개로 획정됐다. 애초 중대선거구제의 입법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인구수 대비 의원의 대표성이라는 차원에서도 개악이 돼버렸다.
***우리당-한나라당 타협으로 만신창이 선거구 획정**
이같은 선거구 조작은 특히 서울과 경기도에서 일반적인 경향으로 관철됐다. 이 과정에서 개혁세력을 자임하는 열린우리당은 자신의 지지세가 강한 곳에서는 2인 선출 선거구를, 부산과 같이 약한 곳에서는 4인 선출 선거구를 고집하는 등 철저히 당리에 입각해 문제를 풀어나갔다. 한나라당 또한 현재 누리고 있는 지자체에서의 압도적 우위를 굳히기 위해 2인 선거구제를 관철시키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그 결과 이들의 원칙 없는 타협으로 만신창이의 선거구 획정이 이루어졌다.
경기도 이천 시의 경우 제1, 제2 선거구의 인구는 6만3703명, 4만7656명으로 인구편차가 1만6000명 정도 나는데도 각각 3명, 2명을 선출하는데 군포시의 나, 다 선거구는 인구 4만4267명, 8만947명으로 인구편차가 3만6000명이나 되는데도 똑같이 2명을 선출하게 되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런 행태는 주권자인 국민의 존재를 지역에서조차 무시하는 것이어서 국민들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보수정치에 대한 혐오로 정치적 무관심이 증대하는 게 사실이지만, 최소한 지역에서나마 새로운 시민사회운동세력, 진보정치세력의 의회 진입을 기대하는, 그리하여 자신들이 사는 곳이 '더불어 사는 지역'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하는 양식 있는 지역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선거구 획정은 '총을 들지 않은 예비 쿠데타'와 진배없다.
시민사회운동세력이나 진보정치세력이 이치에 맞지 않게 3명 이상을 선출하는 선거구의 과도한 도입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공직선거법 26조 4항에는 '하나의 시도의원 지역구에서 4인 이상의 자치구.시.군 의원을 선출하는 때에는 2개 이상의 지역선거구로 분할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국회 본회의에서는 이 조항을 다루면서 '필요한 경우' 분할할 수 있다고 하여 자의적 분할을 제어하고자 했다. 이번 선거구 획정은 그러나 명백하고 객관적인 분할사유를 제시하지 않고 자행됐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법조차 무시해버리는 정치세력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참으로 난감하다.
***이러면서 지역주의 극복 주장할 수 있나**
지금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단지 선거구 획정에 있어 인구수 대비 지역간 불평등이 노출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세계화(globalization) 시대와 더불어 지방화(localization) 시대에 '풀뿌리 민주주의'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 극복',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과제를 계속 제기해 왔다. 의미는 다소 다르지만 한나라당 또한 지방화 시대의 중요성을 역설해 왔다. 심지어 노무현 정권은 지역주의, 지역불균형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한나라당에 '연정'을 제안했고, 만일 그것이 어렵다면 선거제도만이라도 개정해 이들 문제를 극복하자고 수 차례 제기했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선거구 획정은 노무현 정권과 보수정치세력들이 역설해 온 지역주의 극복, 지방화 시대의 개막이 실제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생하게 확인시켜줬다. 그것은 보수정치세력들이 나눠먹기를 통해 중앙과 지방에서 누리고 있는 기존의 지배력을 온존, 강화하자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 자신들이 지역주의를 파먹고 사는 당사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해줬다. 이들은 이번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보수좌우가 환상의 짝을 이뤄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시민사회운동세력, 정치세력의 당선 가능성을 약화시킨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2006년 지방선거가 '지역일꾼'을 뽑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다가올 지방선거의 의미는 사회양극화를 극대화시킨 '신자유주의 보수연합'의 정치를 삶의 구체적 현장인 지역에서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는가에 있다. 다가올 지자체 선거에서 보수정치세력들이 다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 이 사회의 민주주의는 나락으로 떨어져 거의 회복불능의 상황으로 나아갈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은 더욱 증대될 것이고, 지금 농민들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지역의 식민화(colonization) 또한 급속히 심화될 것이다.
이미 지방 의회와 정부는 토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정치세력들이 장악해 노동, 환경, 생태, 복지, 여성, 교육 문제 등 주민들의 삶을 규정하는 중요 의제들은 뒤로 밀려나 있는 실정이다. 이른바 지역유지, 토호들이 결탁한 난개발로 혈세는 새어나가고 생태는 파괴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예년처럼 '시가지 정비' 등의 이유를 들어 남은 세금을 쓰기 위한 '땅파기 놀음'이 여기저기에서 수없이 자행되고 있다.
***진보세력, 정체성 분명히 확립하는 게 우선과제**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이번 선거구 획정안이 시도의회에서 최종 의결을 거쳐야 하는 만큼 이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합리적인 개정 요구를 마지막 순간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대선 승리를 위한 교두보 정도로 생각하는 집권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보수 야당들이 의미 있는 화답을 할지 매우 회의적이다.
따라서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시민사회운동 세력들은 한 발 더 나아가 보수양당 체제를 문제시하며 지역의 주요 이슈를 가지고 그들과 차별성을 부각시키면서 지역주민들을 '주민이 아닌 시민'으로 재구성하는 데 모든 역량을 투여할 필요가 있다. 많은 지역주민들이 시민사회운동세력에 무관심한 것은 이들이 보수정치세력들에 비해 인적, 물적인 실행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시민사회운동세력들이 기존 보수정치세력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그 대안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장애에도 불구하고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시민사회운동 세력들 스스로가 보수정치세력들에 대해 독자적인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하는 것이다. 또 진보정치세력들과 연대해 새로운 대안의 삶, 대안의 사회관계들을 마련하고자 하는 뜻과 의지를 지역 주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시민들이 지역의 문제를 다시 보고 그들 스스로 권력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며 1995년 지방자치 실시 이후 '잃어버린 주민자치 10년'의 소외를 극복하는 행동주체로 나서게 만들어야 한다.
바로 이것만이 지금 질식의 위기에 처한 풀뿌리 정치를 더욱 생동감 있게 하고, 나아가 향후 더 거세질 신자유주의 보수연합의 정치에 대항할 수 있는, 지역의 삶에 근거한 가장 든든한 기반을 구축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보수정치세력들의 뇌리에서 아예 사라져버린 '권력은 국민 대중에게, 지역의 시민에게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각인시켜야 할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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