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2일 "지역대결구도를 극복하고 민주세력이 하나로 화합하기 위해선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대통령 간 상징적인 화해가 필요하다. 두 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화해와 통합은 한국정치에서 분열을 극복하는 일보 전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신민주연합론'이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고 있는 이회창 후보는 1일 노 후보의 연합론에 대해 "시대를 거꾸로 가는 시대착오적인 것.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시대를 거쳐 선진화시대로 가야 하는 마당에 옛날로 돌아가 정략적인 합종연횡을 통해 정권을 따자는 것은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이른바 '선진화시대론'이다.
***서로를 '악'으로 규정하는 극한대결의 대선국면**
두 논리는 상대방에 대한 성격규정도 판이하다.
노 후보는 2일 박종웅 한나라당 의원을 부산시장 후보로 영입하려는 데 대한 질문에 답하면서 "한나라당은 수절을 지켜야 할 만큼 정통성과 순수성이 있는 정당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달 27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는 이회창 후보에 대해 '제왕적 정치, 지역분열주의 정치'라고 비판했다.
반대로 이 후보는 2일 "민주당은 정계개편 음모를 벌이고 한나라당을 와해시키려 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자격이 없다"면서 "이렇게 부패하고 타락한 집단이 무슨 자격으로 민주화세력을 자처하느냐"고 비난했다. 박관용 총재권한대행은 이날 정계개편에 대해 "국민을 현혹시켜 권력부패를 덮어보자는 술수일 뿐"이라며 "김대중 대통령의 동진정책과 다를 바 없다"고 비난했다.
극단적 대치다.
이처럼 노 후보의 정계개편론 제기로 불거진 여야의 논리 싸움을 보면 연말 대선까지 정치권이 얼마나 극한 대결을 보일지 뻔해 보인다.
서로가 서로를 '정통성 순수성 없는 정당' '부패 타락 집단'으로 규정하면서 무슨 선의의 경쟁이 가능할까. 서로가 서로를 '지역분열주의에 기댄 집권전략' '동진정책에 의한 재집권전략'으로 비난하면서 어떤 정책경쟁이 가능할까.
***'양김 집권 10년 어떻게 볼 것인가', 화두로 떠올라**
김대중 정권 임기동안 정치권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적대적 대치정국이 지속되었다. 게다가 이렇게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는 식의 극단적 대결정치가 대선을 앞두고 오히려 강화되는 상황은 심히 우려스럽다.
그러나 지금 여야의 논리공방은 우리사회 전체가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커다란 논쟁점 하나를 던져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양김 집권 10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군사독재로 점철되던 한국정치사에서 DJ와 YS 양김은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30년의 정치구도는 그랬다. '87년 이후 정치구도가 바뀌기 시작했고, 90년대 들어 양김이 차례로 집권 이제 10년이 흘렀다. 그 10년의 역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YS 집권 5년과 DJ 집권 5년은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른가. 이룩한 민주화는 무엇이고, 부족한 과제는 무엇인가. 양김 집권 10년 이후의 정치적 국가적 과제는 무엇인가. 던져야 할 질문이 너무도 많다. 어느 것 하나 첨예한 논쟁점이 아닌 것이 없다.
이러한 질문들이 이 시대 화두가 되고, 각계에서 활발한 논쟁이 벌어지면서 대선정국을 이끈다면 그 나마 다행이다. 현재진행형의 역사이고, 관련자들이 모두 현역 정치인들이어서 섣불리 결론을 이끌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고민하지 않고는 21세기 첫 대통령을 뽑는 연말 대통령선거의 시대적 의미를 논할 수 없다. 다음 시대 한민족의 과제에 대한 공동체적 합의를 만들어낼 수 없다.
***사회 각계, 국민 모두가 논쟁의 주역이 되자**
프레시안은 제안한다. 정치권에만 맡겨두지 말자.
지금은 노 후보의 '신민주연합' 정계개편론 제기를 계기로 정치권이 현재의 논쟁을 주도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여야 모두 이 시대적 화두를 대선전략으로만 활용하고 있다. 갈수록 말싸움이 험악해질 것이고, 상대방에 대한 비난도 거세질 것이다.
한편으론 지역주의와 교묘히 결합하면서, 다른 한편 '표'를 의식한 '짝짓기'의 구실로 활용되면서 여야의 논리는 또 언제 어떻게 변모할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전투는 계속될 것이다.
이 정치판의 말싸움을 본격적인 분석과 논쟁의 영역으로 끌어 올리자.
사회 각계에서 해당 분야의 지난 10년을 분석하고, 공과를 엄밀히 따지자. 그래서 정치판의 말싸움에 해답을 내놓자.
해답을 줄 수 없다면 그나마 여야의 억지 주장만큼은 먹혀들지 않을 수 있는 풍토라도 만들자. 인정할 것은 서로 인정하고, 그 위에서 다툴 수 있는 환경이라도 조성하자.
정치권,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의 힘으로 이룩한 민주화의 역사다. 국민의 힘으로 만든 경제성장의 역사다. 이제 그 역사의 중요 분기점을 넘으면서 함께 지난날을 돌아보는 차분한 성찰의 시간들을 갖자.
그래서 금년을 함께 미래를 고뇌하는 시기로 만들자. 연말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함께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고뇌하다 보면 저절로 선택이 내려질 것이다.
그래야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가 할 일이 분명해진다.
정치권의 험악한 말싸움으로부터 벗어나자. 국민들이 논쟁을 주도하고, 공론의 장을 크게 만들어 정치인들은 그 한 부분으로 참여하게 하자.
프레시안은 제안한다.
'양김 집권 10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이 시대의 화두로 떠올리자. 국민적 논쟁을 벌이자. 프레시안 독자 제위가 앞장서 줄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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