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바쁜 노무현 후보를 향해 느긋한 여유를 부린 것이다.
***지방선거 지원 바라는 노 후보에 YS 냉담**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노무현 후보는 오는 27일 후보선출 확정 이후 김대중 대통령 및 김영삼 전대통령과의 연쇄 면담을 추진하는 등 후보 신분으로의 첫 행보 구상에 착수했다. 23일 참모진에 양김과의 회동을 추진토록 일정협의를 공식 지시했다.
하지만 YS의 이날 발언은 노 후보 생각과 많이 다르다. 노 후보가 YS를 만나겠다고 하는 것은 '양김 화해를 통한 민주대연합' 구상의 일환이다. 하지만 그건 먼 얘기고, 당장은 지방선거에서의 YS 지지가 급하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재신임을 묻겠다"고 공언해 온 노 후보에게는 영남권 지방선거 승리가 절체절명의 과제다. 가장 기대를 걸어볼 만한 지역은 부산인데, 이 지역 정서상 YS의 지지는 승패를 가를 중요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때문에 노 후보의 YS 면담 신청이 이토록 급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YS의 이날 발언은 지방선거 이전에 노 후보에 대한 명확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노 후보 입장에서 정작 급한 건 지방선거인데, 지방선거는 일단 지켜보자는 자세를 취한 것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전총재는 이미 지난 달 김혁규 경남지사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면서 "존경하는 김영삼 전대통령 내외분이 오신 자리에 한자리 낄 수 있게 돼 영광"이라며 YS를 한껏 추켜세운 바 있다.
하지만 그때도 YS는 '정치인의 신의'를 강조하며 이 전총재의 몸을 달게 했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노풍'으로 영남권 표심이 흔들리면서 이회창-노무현 사이에서 몸값 올리기에 들어간 YS의 여유를 볼 수 있다.
***YS, 노 후보와 DJ와의 관계 절연 요구?**
이날 YS는 또 한 측면에서 노무현 후보를 고민에 빠뜨렸다. "김 대통령은 불행한 대통령이 될 것. 국민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DJ를 향한 직격탄을 날렸다. 이른바 '3홍 비리의혹'에 대해 "나 자신뿐만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법에 따라 철저히 처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집권중 아들 김현철씨를 감옥에 보낸 YS다. 정권교체후 DJ를 '독재자'라며 가장 앞장서 비판해 왔다. 그런데 '3홍 비리의혹'이 터졌으니 YS의 이날 발언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익히 예상 가능한 이 발언이 노무현 후보에게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차별화하기 위해 의리를 저버리지 않겠다"며 DJ 정부 개혁정책 계승자를 자임해 온 노 후보다. 아들문제에 대해서도 "아직 확실한 것이 없지 않느냐. 검찰수사를 지켜보자"는 원칙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YS가 DJ를 향해 맹공을 퍼부어댔다. 즉 YS는 노 후보를 향해 "내 지원을 얻으려면 DJ와 관계를 절연하라"는 묵시적 요구를 한 것이다. 노 후보의 입장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노 후보의 조정력 성공할 수 있을까?**
이제 여당 대통령 후보 자리에 올라선 노무현 후보 앞날엔 험로가 기다리고 있다. 그 첫 관문의 하나가 DJ-YS와의 관계설정이다.
노 후보의 기본입장은 '양김 화해를 통한 '87년 이전 민주대연합 구도의 복원'이다. 그러나 그의 구상대로 상황이 전개되어 줄지는 미지수다.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노 후보가 어떤 조정력과 돌파력을 보여줄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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