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낮은데로 낮은데로"

함께 목메어 눈물떨군 진정접수창구에서의 다짐

2001년 11월 26일 오전 9시.
국가인권위원회가 문을 여는 날. 저무는 만추의 끝자락, 북한산을 바라보는 세종로의 가로수는 가을의 성장을 벗고 밤새 영하로 곤두박질친 매운 바람 속에 나신으로 긴 겨울을 향해 서 있었다.

1993년, 유엔의 비엔나회의가 세계 각국을 향해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권고안을 채택한 이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치는 동안 한국의 NGO는 꾸준히 국가인권위 설립을 요구해 왔다.

3년여에 걸친 지루한 협상과 조정 끝에 드디어 시민운동단체의 요구가 대폭 수용된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국회를 통과해 공포된 것이 지난 5월 25일이었다. 국회 몫의 인권위원 선출이 늦어져 김창국 위원장을 포함한 인권위원 11명이 임명장을 받은 것은 10월 9일.

달포밖에 안되는 설립 준비기간 동안 시행령, 직제, 청사 등을 준비하기 위해 서둘렀지만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행정자치부를 비롯한 정부 여러 부서의 몰이해로 인해 결국 정식 직원 한명 없이 헌신적인 자원활동가와 사무처 준비단 27명이 손발이 되어 국가인권위원회는 업무를 개시했다. 법이 부여한 임무중에 가장 기초적인 진정사건 접수부터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네 개의 진정 접수 부스에 각각 위원장과 상임위원 셋이 앉았다. 업무 개시 두 시간 전부터 진정인들이 몰려들어 임시 청사가 세 들어 있는 광화문 이마빌딩 501호는 초만원이었다.

위원장이 접수한 제 1호 진정자는 서울의대 김용익 교수.
그의 애제자 이희원은 91년부터 충북 제천보건소에 근무하면서 병마와 가난에 찌든 주민들의 재활사업에 매달린 장애인인데 ‘장애인은 보건소장으로 곤란하다’는 제천시장의 공개적인 거부로 인해 혹심한 차별을 받았다. 김교수 역시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인. 그는 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을 국가를 향해 고발했다.

2호 진정자는 잘 알려진 성우 양지운씨.
그는 일체의 폭력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집총을 거부해 항명죄로 징역을 살고 있는 수형자 부모 511명을 대표해 진정서를 접수했다. 초재범 및 범죄의 유형별 세분사항에 관계없이 27개월 이상 복역시키는 법무부 기준이 심각한 인권유린임을 주장했다.

***함께 목이 메어 눈물 떨군 접수창구**

필자가 앉은 3번 부스의 첫 진정인은 스리랑카 출신의 노동자들이었다.
체불임금과 퇴직금은 물론 상습적인 폭행과 욕설을 견디다 못한 그들은 김해성 목사가 운영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 피신중인 이들이었다. 서툰 우리말로 그들은 크레파스와 물감 제조회사를 상대로 ‘살색’을 없애달라고 진정했다. 지구촌 시대의 ‘살색’은 분명 전근대적인 편견의 산물이었다. 체불임금보다 그들이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살색이 다른 이들’에 대한 지독한 학대와 모욕이었던 것이다.

4호 부스의 1번 진정은 음주운전 벌금 미납으로 울산구치소에 수감된 지 이틀만에 숨진 이의 가족이었다.

필자는 첫날 접수창구에서 14건의 진정을 접수했다. 그 중 3건의 경우, 진정인과 함께 목이 메었다.

“춘천 연병장에 데려다주고 손을 흔들고 나온 것이 아들을 본 마지막이 되었어요. 100일 휴가 2주일 앞두고 쾌활하게 안부를 전하던 아이가 자살이라뇨. 연락을 받고 부대에 가보았지만 아무것도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새끼라고는 그 애 하납니다. 지금 8개월째 냉동실에...”

하염없이 울고 있는 여인에게 필자는 물을 권하면서 그녀 몰래 눈을 닦아야 했다.

이외에도 군내에서 커밍아웃한 이후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가혹행위를 당한 동성애자, 승객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다며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한 성전환자등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겪는 차별과 설움이 쏟아져 들어왔다.

단병호 위원장등 노동자의 대량구속을 항의하며 61개국 8만여명의 노동자가 서명한 석방촉구서를 진정서와 함께 제출한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그 당당한 보무가 차라리 시원했다.

그에 비해 민청학련 배후로 지목되어 75년 4월 9일, 대법원 판결 하루만에 처형된 소위 ‘인혁당’ 유가족의 하소연은 지난 시대 군사정권의 광포하고 음습한 나날들의 기억을 불러 일으켰다.

“이사람들은 유신을 반대하고 평화통일을 주장한 애국자입니다. 수사기관에서 저지른 고문만이라도 꼭 밝혀 주십시오, 지금까지 정부의 어느 한 곳에서도 우리 호소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진정을 접수하기 위해 전날 대구에서 상경했다는 유가족의 호소는 절절했다. 반백으로 변한 머리칼을 쓸어올리는 그녀는 남편의 유언을 가슴에 묻고 있었다.

‘내가 왜 죽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아내와 아이들이 무척 보고 싶다. 조국의 평화통일을 기원한다’는 유언을 남겼다던 남편. 그녀의 가슴에 묻힌 남편은 구레나룻이 파르스름한 30대이다.

필자는 차마 그들 모두에게 말하지 못했다. 인권위원회법에 의하면 진정사유 발생 1년 이전의 사건은 조사와 구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낮은 곳에서, 따뜻한 국가기구 될 터**

제나라 국민이 다른 나라 땅에서 사형을 당해도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국가는 과연 국민에게 무슨 존재일까?

정당하지 않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헌법이 보장해 놓은 국민의 기본권을 자책 한 번 없이 간단히 유린하고 정치적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사람취급 하지 않았던 지난 시대 군사정부가 남겨놓은 상처는 너무나 깊다. 어찌 첫날 국가인권위원회를 직접 찾아온 이들 뿐이겠는가.

앞으로 국가인권위원회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못 배우고 가난하고 그래서 주류로부터 소외된, 낮은 곳에 거주하는 이들일 것임이 분명하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처지가 못 되는 이들과 부당한 차별을 어디에 기대 해결할 길이 없는 이들이 올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낮은데서 살아야 한다. 권력이 있다면 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 국가의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임무를 수행하는 기구여야 한다. 민주주의의 수준은 그 사회의 소수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에 달려있다는 한 정치학자의 말을 되새길 때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분명 국가기구이다. 그러나 사람의 숨결이 있는, 다소 비효율적이더라도 아픈 사람과 뒤처진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그런 기구여야 한다. 다른 행정부처에게는 미운 오리새끼일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는 계층간의 치유와 화해, 평화를 추구하는 천사표 국가기구여야 한다.

그러나 손발 없이 출범하면서 인권위원이 직접 진정부스에 앉아야 하는 현실은 겨울의 문앞에 서 있는 사무실 창밖의 나목처럼 결연하지만 또한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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