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경제위기 조장'을 보고

<기고> 경제기사에 반영된 정치적 편향

미국 텍사스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이 언론의 경제위기 조장설에 관한 기고문을 보내왔다. 이에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언론의 경제위기 조장설에 관하여**

***언론의 경제적 책임감**

경제라는 것이 마치 무정한 기계처럼 작동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경제도 결국은 사람들의 경제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인 고로, 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심리 상태에 휩쓸리는가에 따라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일찍이 경제학자 케인즈가 투자 결정은 투자자들의 이른바 "동물적 감각"에 따라 좌우되며, 결국 금융위기도 투자자들이 그런 심리에 휩쓸려 "떼거리로 몰려다님(herding)"에 따라 나타난다고 설명하려 시도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또 최근의 몇몇 연구들은 그렇게 금융 시장의 동향을 좌우하는 주요 투자자들의 심리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신문이나 뉴스의 보도가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아주 예민하고 결정적인 국면에서 금융시장이 실물경제의 흐름을 벗어나 과도한 등락을 거듭하는 일이 벌어질 때가 있는데, 여기에는 그 미디어의 경제 동향 보도로 인한 투자가들의 심리 상태의 변동이 큰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보도가 야기하는과민반응"(media frenzies)이라고 불리우는 이 현상은 얼핏 카오스적이거나 비합리적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학은 이를 합리적인 투자자들의 이윤극대화라는 틀내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이론의 출발점은 투자자들이나 모든 경제행위자들은 자신들의 경제 행위를 결정함에 있어서 알고있는 정보에 기초할 수 밖에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한 정보에는 사적인 정보(private information)와 공적인 정보(public information) 두가지가 있는데, 문제는 경제환경이 아주 불확실해질수록 사람들은 사적인 정보를 크게 믿지 못하게 되며 공적인 정보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공적인 정보의 대표적인 출처는 바로 신문 뉴스 등의 언론매체이다. 고로 경제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그 등락의 향후가 결정적 기로에 서는 국면일수록 투자자는 언론의 보도에 매달리게 될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 순간 언론의 보도는 투자자의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논리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어느날 친구가 다가와 "야 장충동에 기막힌 족발집이 있다더라 한 번 가자"라고 꼬이는 바람에 우리는 장충동으로 행차했다. 그런데 길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족발집의 "물결"이다. 그래서 어느 집이 진짜 "원조" 집인가를 보려했더니 모조리 "원조"란다. 일단 빼든 칼이니 족발을 아니 먹을 수는 없고, 각자 알고 있는 무성한 소문들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고. 눈앞의 족발집 모습들로는 도저히 구별할 길이 없다. 너나 할 것없이 할머니 사진이 걸려있었다. 어느 집으로 가야 하는가. 이러한 애타는 불확실성의 순간에서 혹시 텔레비젼의 "맛따라 멋따라 출연"이라는 플랭카드가 걸린 족발집이 하나 눈에 띄게 된다면? 당연히 그 집으로 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족발을 해치우고 있는 동안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손님들도 우리를 보고 “야 저 집 사람많다”며 그 집으로 들어온다. 결국 플랭카드 하나가 어떤 집은 손님이 들끓고 어떤 집은 파리날리게 만든 것이다.

결국 신문 및 여타 여론매체가 경제의 위기 국면에서는 아주 중요한 몫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봉이 김선달 식으로 말만 어떻게 잘한다고 해서 병든 실물 경제가 실제로 좋아지는 것도 또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회초리 몇대로 때울 수 있는 잘못도 선생님 귀에 잘못 들어가면 그날 대걸레 자루 부러지도록 맞은 경험들이 다 있지 않은가. 또 바로 이런 이유에서 허위사실 유포나 오해를 유발시키는 내용을 살포하는 것이 증권거래법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언론에 포장되는 것에 따라서 경제의 향방도 똑같은 일을 겪을 수 있게 된다. 사적 정보를 믿을 수 없게 되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는 사실상 귀머거리요 소경이 된다. 여기에서 오로지 언론 만이 우리의 입이며 귀가 된다. 지금 경제 어떤 상황의 현황에 대한 정확하고 신중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정보를 전적으로 신문과 뉴스에 의존하게 된다.

***언론의 사적인 이해관계 추구**

여기서 심각한 질문이 나오게 된다. 이렇듯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언론. 과연 그들은 모든 정치적 경제적 각종 이해에서 초연하게 떨어져서 항상 불편부당하게 객관적인 사실만을 공정하게 전하는 존재일까. 한국에서 몇 십년을 살아본 우리의 경험에서보면, 이들이야말로 오히려 특정한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칭칭 휘말려 있는 대표적 존재들이 아닐까. 다시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사회적 기능과 사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되면 사회적 후생 손실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게다가 그 행위의 결과가 올바른 것인지 그른 것인지의 판단조차 다분히 주관적일 경우엔, 그리고 결과에 대한 판단이 제3자에 의해 확인될 수 없는 경우 행위자들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사적인 이해관계만을 추구하게 되고, 결국 사회 전체에 패거리주의식 행태(social favoritism)가 만연하게 된다.

신문의 경제면 기사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실제로 경제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또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판단 예측하기는 사실상 매우 힘들다. 전문가라해도 심도깊은 연구를 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경제면 기사가 제대로 쓰여졌는지 어떤지도 여간해서 발각되는 법이 없다. 그렇기에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살아 있을 경우엔 언론도 사회적 기능이냐 스스로 사적 이익 추구냐라는 팽팽한 긴장에 항상 견제받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경제 기사에 관한 한 언론의 보도가 즉각적인 옳고 그름의 평가와 비판에 걸려드는 일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차피 지금 언론이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어떤지도 판별할 길이 없으니, 언론은 기사의 내용을 은근히, 그리고 종종 뻔뻔스럽게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합리적인 유인(incentive)을 가지게 된다.

***누가 경제위기를 논하는가?**

과연 언론 매체들은 "불편부당"한 자세로 보도에 임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독자들을 끌고 가려하고 있는가? 어느 교양수업 교과서에나 나올 것 같은 케케묵은 이야기같지만, 이 질문은 한국 사회에서, 특히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래 중요한 하나의 사회적 문제거리가 되어 왔다. 한 예로 <미디어 오늘>이 지난 6월 19일부터 20일까지 전국의 기자 300명(조선일보는 조사거부)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약 70 퍼센트의 기자들이 일부 언론이 노무현 정부에 대해 흠집내기식 보도를 하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약 41 퍼센트의 기자들이 현재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자사 입맛에 맞는 취재와 편집으로 인한 공정성 훼손’을 들었다고 한다. 기자들 스스로 언론의 사적인 이해관계 추구를 한탄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이는 특히 경제면 보도에 있어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현재 언론이 노무현 정부 흠집내기의 하나로 경제불안론 혹은 경제위기론을 설파하고 있다는 혐의를 계속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자사 입맛에 맞는 이주의 경제면 꾸밈? 신문이 무슨 뉘집 다이어트 주간 식단표인가?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정말일까?

간단한 방법에 의해 실증적으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최근 미국 언론에 대한 연구들은, 언론 매체들이 어떤 정치인에게 자유주의자, 극단주의자 등의 꼬리표를 은근슬쩍 달아 독자들에게 특정 정치적 견해를 주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데이타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이것은 흔히 ‘언론의 편향성’(media bias) 혹은 ‘편집부의 편향성’(editorial bias)이라고 불리우는데, 이 분야를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주로 ‘렉시스-넥시스’(Lexis-Nexis)라고 불리우는 신문기사 데이타베이스를 이용한다. 간단히 그 연구 방법을 소개하자면, 예를 들어 ‘극단적 우파’, ‘극단적 좌파’, ‘자유주의’, ‘보수주의’와 같이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신문에 어느 정도 자주 등장하는지를 데이타베이스에서 찾아내 그러한 단어들의 빈도수에 따라 신문의 정치적 입장을 양적으로 측정(measure)하고자 하는 식이다. 극단적인 예로 미국 언론의 정치적 편향에 관한 한 연구는 1977년 이후 ‘우파’(right wing)라는 단어가 ‘좌파’(left wing)라는 단어에 비해 무려 15300배가 등장했음을 보여, 언론이 우파쪽 입장을 더욱 반영하고 있음을 주장한 바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나는 한국언론재단에서 운영하는 종합뉴스테이타베이스(KINDS)에서 각 신문별(8개 주요 종합일간지, 중앙일보는 데이타베이스에 포함되어 있지 않음)로 경제면에 한하여 우선 “불안” 혹은 “위기”라는 단어들이 들어간 기사를 검색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각신문의 경제면에서 경제라는 단어와 불안이라는 단어가 동시에 들어간 기사수를 알아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경제라는 단어와 위기라는 단어가 동시에 들어간 기사수를 찾아냈다. 검색엔진의 문제상 후자의 경우 “분위기”라는 단어도 포함되므로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2002년의 경우 한겨레 신문에 "위기"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의 숫자는 152개였던 반면, 조선일보의 경우는 220개, 동아일보의 경우는 318개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같은 해에 "불안"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를 검색해보니 한겨레에는 146개, 조선일보는 237개, 동아일보는 205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1월1일부터 6월 23일)의 기간을 보면, "위기" 기사는 조선일보에 188개였지만 한겨레에는 123개에 그쳤음을 알 수 있다. 아래 도표에서 8개 종합일간지를 비교해 볼 때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특히 “위기” 기사의 경우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가 다른 신문들에 비해 높은 빈도수를 보임을 알 수 있다.

<엑셀 도표>

이렇게 상대적으로 높은 빈도수는 이들 신문사의 노무현 정부 흠집내기를 반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김대중 정부 때는 어땠을까? 아니 김영삼이나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이번에는 범위를 좀 넓혀서 같은 방식으로 1990년 1월 1일부터 2003년 6월 23일까지의 데이타를 종합해보자. 위에서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이 시기에 8개 종합일간지에서 "불안"과 "위기"의 단어가 등장하는 연간 평균 기사수를 검색해보았더니 다음의 사실들이 관찰되었다. 우선 우리는 민주당 집권시기(1998년-2003년)에 그 단어들이 나오는 기사들은 이전에 비해 훨씬 빈번하게 나오고 있음을 쉽게 알수 있었다. 이는 1997년말 IMF 이후 이 단어들이 하나의 사회적 화두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흥미를 더욱 끄는 사실은, 신문사에 따라 그러한 기사의 숫자가 폭증하는 속도가 큰 차이가 난다는 것, 특히 보수언론이라고 이름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그 폭발적인 증가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한 계량경제학적 추정방식에 의해 나는 이들 기사의 빈도수가 집권정당의 특성, 경제성장율, 그리고 각 신문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하였다. 우선 집권정당이 빈도수에 미치는 영향을 보자면 노태우 정부 때에 비해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위기를 포함하는 기사가 183개, 불안을 포함하는 기사는 158개가 증가했다. 또 같은 식으로 노태우 정부 때에 비해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각각 126개, 38개가 증가했다. 반면 김영삼 정부 시기와 노태우 정부 시기 사이에는 특별한 기사 빈도수의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또 기사의 빈도수와 경제성장율 사이의 관계를 보자면, 경제 성장율 하락에 따라 "위기"가 포함된 기사의 빈도수도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나 경제뉴스의 색깔이 경기변동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불안"이 포함된 기사의 숫자와 경제성장율 사이에는 그러한 관계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인데, 우리는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보도 행태는 민주당 집권시기에 들어서면서 다른 신문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게재된 그 "위기"나 "불안"이 등장하는 기사의 숫자는 다른 신문들에 비해 각각 41%, 35%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김대중 정부 시기의 경우엔 27%, 25% 더 많이 게제했던 것이 보인다 (모든 추정치는 오차범위 5%하에서 유의미함). 중요한 점은 노태우 정부나 김영삼 정부 시기의 경우엔 이 신문들의 보도 행태는 다른 신문들과 별다른 차이가 보이지 않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위의 분석을 통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민주당 집권시기에, 특히나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경제면에 위기나 불안이라는 단어들이 포함된 기사를 뚜렷하게 빈번히 게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든 실증적인 연구들이 한계를 가지듯이 위의 결과가 결코 완벽하지는 못하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높은 빈도수를 특정 언론의 흠집내기라고 100% 확신을 가지고 물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단어의 빈도수가 기사의 의도와 방향성 혹은 편집부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맞춤 편집을 정확하게 반영하지는 않는다고 비판할 수 있겠다. 만약에 조선일보가 항상 “경제위기 아니다”라고 기사를 썼고 한겨레는 항상 “지금 경제위기이다”라고 기사를 썼다면 위의 결과는 완전히 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몇개의 기사를 선택 비교해볼 때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거꾸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위기나 불안을 언급하는 맥락이란 이들 신문의 정치적 입장과 패키지로 등장하는 경우가 빈번하여, 위의 분석결과는 오히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경제위기니 경제불안을 설파하고 있음을 “최소한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가다못해 이제 일분일초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세계를 휘젓는다. 이러한 때에 경제정책의 신중성(prudence)과 세계 각지에 터져나오는 각종 쇼크들에 대한 유연한 대처야말로 우리와 같은 중도국 경제에 있어서 그 어떠한 실물경제적 조건 못지않은 중요한 요인이다. 자고로 상황이 이러할진대, 경제기사에 나타나는 정치적 편향은 허위사실 유포 및 악성루머 조장 행위일 뿐만 아니라, 언론사 자신의 흥망성쇠를 결국은 좌지우지할 국가경제에 해악을 미칠 수 있기에 그러한 행위야말로 실로 멍청한 자살행위라고 아니할 수 없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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