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소위 '빅4'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실시를 주장해온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같은 청문회의 예상치 못한 효과에 당혹해 하고 있다. 특히 새정부 들어 해외정보처로의 개편, 정치사찰 전면 금지 등 국정원 개혁방안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는 가운데 진행된 이번 청문회가 원래 목적과는 전혀 다른 '사상 검증' 자리에 그쳤다는 점에서 시민단체들은 국회 정보위원들의 시대착오적 인식에 문제제기하고 있다.
이에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인 장유식 변호사가 이번 청문회 진행 과정에서의 드러난 국회 정보위원회의 문제를 비판하는 글을 본지에 긴급 기고했다.
장 변호사는 "고영구 후보자나 서동만 교수에 대해 '친북좌파성향'이라고 지적한 정보위원들의 '이념적 우편향'이야말로 진정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국정원 개혁 작업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며 "국회는 국정원 개혁을 추동하고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인권침해, 예산 유용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국민적 요구를 외면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장 변호사의 기고문 전문이다. 편집자
***정보위의 이념적 편향이 국정원 개혁의 걸림돌**
국정원 개혁의 핵심은 정치관여·인권침해의 악습을 제거하고, 탈냉전이후 통일시대에 대비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확고하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에 의해 중앙정보부가 출범한 이후 안기부, 국정원 등으로 명칭은 바뀌었지만 그들이 행한 온갖 악행은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빨갱이'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민주인사가 고문당하고 처벌됐으며, 정치사찰을 통해 수집된 정보는 권력 핵심층에 제공되어 정치공작과 권력유지의 수단이 되어왔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1천2백억원에 달하는 안기부 예산이 특정 정당의 선거자금으로 유입되는가 하면,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에 국정원이 개입하는 등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헌정사상 최초로 국정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국회 정보위에서 열렸다. 지난 22일 국회 정보위에서 진행된 국정원장 인사청문회는 새시대 국정원의 개혁방안과 역할을 논의하고 이를 지휘할 국정원 수장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검증하는 역사적인 자리였다. 그러나, 본말이 전도된 청문회는 국정원 개혁의 본질을 흐리고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말았다. 국회 정보위는 국민적 관심사인 국정원 제도개혁이라는 중심주제는 비껴간 채 인신공격과 색깔몰이에만 열중했다. 결국 정보위는 여야 할 것 없이 고영구 후보자에 대해 '친북편향성이 강하고 정보업무경험이 전무하여' 국정원장으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서를 제출했고, 청문회 대상도 아니었던 서동만 교수에 대해 같은 이유로 '절대불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회 정보위의 의견은 단지 참고자료일 뿐 대통령이 국정원장이나 중요 간부를 임명하는 데 법적 기속력을 갖지 않는다. 청와대도 이점에 대해 같은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청문회에 대해 몇 가지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국정원장으로 고영구후보가 그대로 임명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이번 청문회를 통해 국정원 개혁, 나아가 우리 사회의 이념적 편향성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 이미 저질러졌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홍준표 정형근 등 정보위원 다수가 과거 보안기관 출신"**
먼저, 이번 청문회는 국회 정보위가 정보기관의 본래의 임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21세기는 탈냉전 이후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무한경쟁시대를 돌파할 수 있는 고급경제정보의 수집, 통일에 대비한 객관적 대북정보 확보 및 주변 이해관계국의 동향 파악 등이 국정원이 정보기관으로서 수행해야 할 고유임무일 것이다. 국민들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정보기관의 탄생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위 위원들은 새로운 정보기관의 비젼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냉전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국정원장의 모습을 강요하고 있다. 과연 국정원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둘째, 정보위 위원들이 국정원장 후보에 대해 이념적 편향성을 지적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국회 정보위원들의 면면을 보자.
청문회를 주도한 여야 의원 상당수는 과거 검찰과 경찰, 국정원, 군 등 보안기관에서 활동한 이들이다. 정형근 의원은 과거 안기부 대공수사국장과 1차장을 지낸 대표적인 공안통이고, 홍준표 의원은 김영삼 정부 시절 검사 신분으로 안기부에 파견대 근무했으며, 유흥수 의원은 치안본부장 출신, 함승희 의원은 80년대 공안부와 특수부 검사출신이고, 천용택 의원은 국방부 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냈다. 정치사찰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졌고, 인권침해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시절, 그 전면에 있었던 이들이 과거의 행적에 대한 어떠한 반성도 없이 국정원장 후보의 인권변호사 경력을 트집잡아 '친북좌파성향' 운운하는 것을 보면 시대가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퇴출대상' 국정원 인맥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셋째, 이번 청문회는 이념공세를 통해 국정원 개혁을 방해하려는 저의가 엿보이고 있다.
여야 정보위원들의 거센공세 이면에 '퇴출대상'이 될 것으로 미리 짐작한 국정원 일부 인맥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경우 대선 패배 직후 사라졌던 이념공세 색깔론이 다시 등장하면서 당내 개혁을 무산시키고 수구성향 민정계 의원들이 득세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념공세를 통해 개혁의 발목을 잡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여론의 관심을 일시적으로 끌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은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지름길이다. 이번 청문회 결과를 두고 청와대에서는 벌써부터 속도 조절론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는데 개혁을 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속도조절론이 나오는지 이해 못할 일이다.
네째, 정보위 위원들은 과거 역사와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대한 수구적, 왜곡된 인식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다.
서동만 교수의 국정원 개혁 구상을 "어린애같은 소리"라고 매도한 민주당 천용택 의원은 유신시절 긴급조치 9호로 옥고를 치른 서교수의 민주화 경력을 문제삼아 국정원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주장까지 폈다. 정보기관을 권력의 도구로 삼아 민주인사와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던 장본인들이 이번에도 과거 냉전적 시각, 군사정권의 잣대를 가지고 인권변호사, 진보적 소장학자를 재단하고 있다. 5. 16 쿠데타, 유신독재, 5. 18 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루어진 지 오래이다.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민주화 운동 경력을 문제삼는 것은 역사에 대한 왜곡일 뿐 아니라 민주화 운동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다섯째, 정보위원들이 이야기하는 전문성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정치사찰이나 고문수사에 관한 전문성이 아닌가 싶다.
사실 한국의 정보기관은 이 두 가지 분야를 빼놓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 실정이다. 해외정보, 대북정보의 대미의존은 심각할 정도라고 한다. 고급정보에 관한 한 한국의 정보기관은 '미국대사관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수준'이라는 자조어린 평가를 정보위원들이 모르진 않을 것이다. 이런 평가가 가능한 것은 그동안 대공정책실을 중심으로 정치사찰에 국정원의 모든 인력과 예산이 투입되었을 뿐 정작 해외부문, 대북고급정보에 접근하기 위한 투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보기관이 진정으로 국익을 수호하는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정보기관을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정보위는 국정원 개혁에 '부적절'하므로 '절대 불가'"**
고영구 국정원장 후보는 청문회를 통해 국내보안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검찰과 경찰에 넘기고, 국내정보의 수집방법을 개선하겠다는 등의 국정원개혁안을 내놓았다.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다. 그동안 논의되어왔던 해외정보처로의 재편, 정치사찰 전면금지 등 국정원 개혁안에는 한참 못미치는 '개선안'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소모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이번 청문회는 정보위 위원들의 이념적 편향성이야말로 국정원 개혁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말았다. 고후보자나 서교수에 대해 '친북좌파성향'이라고 지적한 정보위원들의 '이념적 우편향'은 진정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국정원개혁작업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그동안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국정원의 권한남용을 통제하기 위해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국정원을 통제할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 결과를 지켜보면서 이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젼도, 정보기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인식도 없이 과거의 냉전수구적 논리를 일관하고 인신공격과 사상검증에만 몰두하는 국회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나. 국민들이 국회에 바라는 것은 국정원의 개혁을 추동하고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인권침해, 예산유용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국회는 국정원 개혁의 핵심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은 우리의 정보기관을 과거 중앙정보부, 안기부 시대로 회귀시킬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결론은 이렇다. "그대들은 21세기 평화공존의 시대, 통일시대의 국정원 개혁에 전혀 '부적절'하므로 '절대불가'입니다"라고.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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