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규슈 '빛은 한반도로부터>(유홍준 지음, 창비 펴냄). ⓒ창비 |
서문 격인 "일본 답사기를 시작하면서"에 잘 밝혀놓았듯이, 저자의 큰 목표는 '일본인의 고대사 콤플렉스'와 '한국인의 근대사 콤플렉스'를 벗어난 시각으로 한일 문화 교류의 흔적을 찾아 소개하는 일이다. 하지만 기존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편제는 상호교류를 다루는 프레임으로는 적당치 않아 뵌다. 결국 일본 내에서 한반도 도래 문화의 요소를 추적하도록 고찰 폭이 제한되는 터라, 일본 문화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다/못한다.
저서를 통해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역사적 고찰의 틀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점은, 삼국시대를 '사실상의 오국시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고구려·백제·신라가 한 민족이고 왜는 외적이었다는 선입견을 극복하면, 당시를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왜의 5국시대로 바라볼 수도 있다'는 주장은 참신하고 또 시의적절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는 한반도에 진출했던 왜와 그들이 남긴 역사문화유산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전방후원분을 '일본 지도층의 묘로 보는 견해'에 관해 그는, "나는 아직 이에 대해 언급할 고고학적 지식이 없다"고 발을 뺀다. 그저 논란을 피하려는 자세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문화 교류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겠다는 공언과 달리, 책의 곳곳에서는 딱히 시비를 걸기 어려운 모양새로 자리 잡은 민족주의적 견해가 드러난다. 자신이 세운 원칙을 스스로 어기는 모순된 모습이다.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한반도의 소박한 빗살무늬 토기와 보다 호방하고 다채로운 조몬 토기를 비교하다가, 굳이 "한반도에서는 이미 기원전 1000년 전부터 (…) 청동기시대로 들어가 새로운 문명을 개척"하고 있었고, "그것(풍요로운 자연)은 조몬인들이 문명의 다음 단계로 비약할 수 있는 계기를 차단한 결과를 낳았다. (…) 그것은 자연의 풍요 때문에 문명의 발달이 더뎠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몰락 과정과 비슷하다"고 묘사하는 식이다. 여몽연합군의 일본 침략을 이야기할 때도 "이는 어디까지나 원나라의 강압으로 징집된 것이지 고려의 선택이 아니었다"고 발뺌한다. '일본어로 번역 출간할 예정이라면서, 이래도 되나?'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2-아스카·나라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유홍준 지음, 창비 펴냄). ⓒ창비 |
허나 개인적으론, 일본 황실의 보물 창고인 정창원(正倉院, 쇼소인)에 전하는 한반도 관련 유물 가운데 진귀한 것이 많은데 자세히 다루지 않고 넘어간 점이 몹시 실망스러웠다. 기대하고 책을 보다가 "정창원 유물 얘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여기에는 한국과 통일신라에서 보내준 유물이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것 세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는 대목을 읽고는 얼마나 맥이 풀렸는지 모른다. 이리 소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간 것은, 정창원에 전하는 한반도 관련 유물의 전모를 연구한 학술적 성과가 아직 없는 탓일까?
1949년생인 유홍준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미학과를 졸업한 뒤, <공간>과 <계간미술>(현 <월간미술>)에서 기자로 일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의 미술평론 부문에서 당선하며 평론가로 이름을 알렸고, 같은 해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입학했다. 그가 역사문화유산 관련 강좌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때는 1985년 9월이다. 신촌역 굴다리 부근에 있던 소극장 우리마당(대표 김기종)에서 3회로 구성된 한국미술사 강연을 개최했는데, 예상 외로 80여 명의 수강생이 몰리자 10회의 강좌가 추가됐다. 성황에 관해 주최 측은 이렇게 풀이했다: "외국 것은 모른다는 이유로 열심히 공부해온 것에 비해 우리 미술에 대해서는 소홀했다는 반성과 함께, 한국 미술을 체계적으로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1986년 8월엔 인사동 그림마당민에서 "중고등학교 미술교사를 위한 한국미술사 특별강좌"를 열어 큰 인기를 끌었고, 이런 열기는 1988년에 이르러 그룹 답사 붐으로 이어졌다. 중산층의 탄생과 여가 시간의 대두, 그리고 역사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의 증가가 한데 맞물린 결과였다.
그룹 답사 유행의 남상(濫觴)은 우리마당의 '국토기행'이었다. 1985년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좌를 수강한 120명 가운데 60여 명이 현장 답사를 통해 배운 것을 확인코자 당해 11월 여주 신륵사로 답사를 떠난 것이 처음이었다. 이후 1년에 네 번 꼴로 답사에 나서게 됐고, 자연스레 정례 프로그램처럼 자리 잡았다. (비고: 같은 시기에 스타 강사로 대두한 인물이 '민중생활사답사'를 내세운 주강현이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입학한 1988년엔, 그림마당민에서 17주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젊은 작가를 위한 한국미술사 강좌"를 열어 큰 인기를 끌었다.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정원 80명을 초과한 138명의 수강생이 몰렸던 것. 이듬해인 1989년엔 혜화동 예술마당 금강에서 15주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강좌"를 열었는데, 이때부터 <한겨레> 외의 주요 신문에 널리 보도되기 시작했다. (비고: 1988년 유홍준을 "재야교수"로 소개하며 실력파로 보도한 것이 <한겨레>의 조선희 기자였다.)
1990년엔 민미협 공동대표가 됐고, 1991년엔 제6회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강좌"를 열었고, 영남대 동양화과 교수로 채용됐다. 1992년엔 민예총아카데미가 개설돼 강좌의 인기가 폭넓게 확장됐고, 1993년 5월엔 드디어 (<사회평론>에 연재했던 원고를 보완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발간했다. 그의 나이 45세(만44세)였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3년은 때마침 '책의 해'였고, 베스트셀러 판도에도 큰 변화가 일어 사회와 역사를 다루는 서적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전성기를 맞은 창작과비평사는 공격적으로 광고에 임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신문 4단 광고로 홍보되며 승승장구했다. 당시 광고 문구는 이랬다: "역사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우리 국토 문화유산들에서 찾아낸 진실과 아름다움!"
| ▲ 미술사학자 유홍준 명지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
베스트셀러 돌입의 기점은 1993년 7~8월이었다. 소설가 박완서는 <경향신문> 1993년 7월 27일자 칼럼에 "난 기어이 말하고 싶다"는 글을 기고해,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침이 마르도록 상찬했다. 그는 "마치 장님이 눈을 뜬 것 같은 놀라움을 경험했다"고 적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발행 3개월 만에 12만부가 판매됐고, 이후 광고 카피는 "'한 권의 책'이 우리 사회에 던진 문화적 충격!"으로 바뀌었으며, 1993년 11월 30일자 한겨레엔 "유홍준 교수와 함께 겨울 여행을 떠나십시오!"란 창작과비평사의 광고가 등장했다. 1993년 '책의 해'를 결산한 기사에 따르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비소설 부문 5위를 기록했다. 전설은 그렇게 태어났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본디 학자의 저술로서 가치가 있었다기보다는 기자로서의 취재와 편집, 그리고 이야기 전개 능력이 빛을 발한 경우였다. 학술적으로 밝혀진 사실과 그간 학계와 문화계에서 떠돌던 뒷이야기를 엮어 답사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안내서를 쓰는 과정에서, 그의 편집 기자적 본능은 결정적이었다고 전한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의 공통된 증언이 그렇다.
그런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는 문화재청장이라는 고위 공직을 거쳐 점잔 빼는 고매한 미술사학자로 변신했고, 남의 말은 남의 말로 직접 인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위치에 서고 말았다. (이제 더는 취재와 편집의 융통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뜻.) 이렇게 몸이 무거워진 마당에, 그는 국내용 역사문화유산 답사의 해묵은 편제를 고수하며, 일본의 역사문화유산으로 남아 전하는 한반도 도래 요소를 바라보고 안내하는 무리수를 던졌다. 형식에 대한 재고와 성찰이 필요해 뵌다.
추신) 기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권-규슈 '빛은 한반도로부터'>에서 가장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A급 전범으로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되어 있다"는 도고 시게노리를 소개한 지면이다. 전범에 대한 비판은 빠지고,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았다는 내용만 덩그러니 활자화됐다. 역사적 사실 자체에 화가 난다기보다, 그런 식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문제를 피해가는 저자의 노회한 태도에 화가 난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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