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더러워…! 죽은 친구의 진실은 내가 밝힌다!

[프레시안 books]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

오래전, 짧게나마 초등학교에서 기간제 영어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두 개 학년, 400명 가까운 초등학생을 가르쳤는데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할 때면 내가 "성선설을 부정하게 된 때"라고 반 진담처럼 말하곤 한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한 아이가 있다. 또래보다 키도 크고 훤칠한 남자아이였는데, 동급생을 괴롭히거나 중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며 말썽을 일으켰다. 당시 내 눈에는 훌륭한 교사의 전범처럼 보이던 헌신적인 선생님조차도 그 아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될지 걱정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어느 날 내 수업 시간에 사건이 벌어졌다. 책상에 그어놓은 금을 넘어왔다는 이유로 옆자리에 앉은 짝꿍을 때려 넘어뜨리고 실내화 신은 발로 얼굴을 밟은 것이었다. 맞은 아이의 얼굴에 남은 실내화 바닥 무늬가 교사로서 내 무능력처럼 느껴져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오래 남았다.

▲ <솔로몬의 위증>(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내 경험이 그다지 특별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나 학교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경험자로서의 진실성을 갖고 말할 수 있다. 모두 학생이고 교사이고 학부모이며, 학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목격자가 되었던 경험들이 있으니까. 학교를 좋아했어도 상처를 받고, 학교에서 상처를 받고 싫어하기도 했으리라.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펴냄)은 바로 그런,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이다.

1990년의 크리스마스 아침, 도쿄. 조토 제 3중학교에서 한 아이가 눈 속으로 떨어져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그의 이름은 이 학교 2학년인 가시와기 다쿠야, 학교 내 말썽쟁이로 유명한 오이데 3인조와 다툼을 벌인 후 등교를 거부하고 있었다. 친구는 아니라도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던 동료가 죽은 사건만으로도 충격적인데, 이후에 이어진 선정적인 보도, 어른들의 책임 전가, 제보자의 죽음, 알 수 없는 화재 사건 등으로 아이들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내상을 입었다. 이렇게 상처를 입고서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아이들은 어른들의 개입을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법정을 세우기로 한다.

모든 죽음에는 안타까운 면이 있으나 특히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는 누구나 숙연한 분노를 품고 만다. 하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타인에 의해 죽음으로 몰려갔다면, 거기에는 진실을 요구하는 순수한 정의심이 일어난다. 조토 제3중학교의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에 더해 아이들의 일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해결하려는 어른들에게 신물도 느낀다. 그리하여 처음 발생한 사건, 그 진실을 자기들의 눈으로 판단하기로 한 결의, 아이들이 만든 법정이 전체 2000 페이지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에 걸쳐 펼쳐진다.

이렇게 길고 복잡하게 얽힌 사건들을 조사하고 판결하는 주체가 바로 중학생들이라는 것이 이 소설의 남다른 점이다. 소설의 안과 밖에서 어른들은 의문을 품을 것이다. 아이들이 과연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이 재판은 어른들의 판단력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자율적 판단 주체로서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야 한다. 누구나 소년 시절을 지나왔지만, 어른에게 아이들은 아직도 수수께끼다. 상식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작은 사람? 혹은 아직은 어른들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 연약한 존재?

작가는 인터뷰(☞바로가기)에서 학생들의 자율적 능력에 신뢰를 보내면서, 실제 사가 현의 한 중학교에서 일어났던 자살 사건을 언급한다. 아이들이 친구의 자살 사건에 대해서 발언한 말들을 보고 자신의 작품은 모조품에 지나지 않은 듯해서 머리가 수그러졌다는 것이다. "모른다면 알아내겠다"고 당돌히 말하는 소녀가 이 소설에 있다. 답답한 가족을 견디다 못해 다 없애고 싶다는 무서운 유혹에 넘어갈 뻔한 소년도 있다. 그런 아이들이 한데 모여 진실을 알아내고자 한다.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 추악한 존재라면 그조차도 밝히겠다고 한다.

<솔로몬의 위증>은 기록의 역사상 가장 현명한 재판관이었던 솔로몬에게서 그 제목을 따왔다. 성경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의 종은, 주님께서 선택하신 백성, 곧 그 수를 셀 수도 없고 계산을 할 수도 없을 만큼 큰 백성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많은 주님의 백성을 누가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열왕기상' 3장 8~9절, 새번역에서 인용)

솔로몬은 이 기도의 첫머리에서 자신은 아직도 작은 아이라고 고백한다. 솔로몬의 지혜는 나이와 경험이 보장해준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도 자기의 일을 판단할 수 있는 타고난 분별력이 있다. 자라면서 얻은 상식도 있다. 그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재판관이 될 자질이 있었다. 하지만 또한 이 작품의 미스터리는 이처럼 지혜로운 판관이 법정에서 거짓말을 한다는 데서 발생한다. 아이들은 아직 약하고 두려우므로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솔직히 말하지 않기도 한다. 작가는 이처럼 아이들의 이성과 연약함을 동시에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들도 자기가 지나왔던 시절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 <낙원>(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사실주의적 기록자로서의 작가 역할을 자처하는 미야베 미유키가 "구상 15년, 연재 9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완성한 <솔로몬의 위증>은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단연 <모방범>(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펴냄)과 <낙원>(권일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을 닮았다. 사건에 얽힌 사람의 시점을 돌아가며 꼼꼼하게 묘사하는 르포라이터의 기술이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엄격하게 서사의 경제성 면에서 볼 때 <솔로몬의 위증>은 3분의 1 정도를 들어냈으면 훨씬 더 흥미로웠을 듯한 인상을 준다. 다만 25년 차 작가는 이 사건에 얽힌 사람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동정을 나누어주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런 집요함은 미야베의 발목을 붙드는 점이기도 하지만, 실은 그의 소설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솔로몬의 위증>은 재판이 소재라는 면에서 어딘가 <앵무새 죽이기>(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를 연상하게 하는 면이 있는데, 주인공 애티커스 핀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기 전까지는 절대로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사람 피부 속까지 파고 들어가 걸어 다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진실이 있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 금언을 언제나 가장 충실히 지키는 작가이다. 그는 어떤 사람의 문제도 가벼이 넘어가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 소설에는 등교 거부, 학교 폭력, 또래 간 구별 짓기 등 학교 내 문제뿐 아니라, 가정 해체, 버블 시대의 경제 위기, 선정 보도의 비극, 이웃 간의 악의까지 폭넓게 다뤄진다. 그러면서도 누구 하나 소홀함이 없이, 모두 소설 안에서는 한 조각의 동정을 나눠 받을 만한 인물로 묘사된다.

소설 속의 중학생들도 작가의 집요함을 그대로 닮아 결국 꼼꼼하게 조사하고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 마지막에는 모두 납득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 같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싶을 만큼 긴 여정이었다. 그 과정을 같이 따라간 독자들도 자기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을 만큼 기다란 길이었다. 이 여행에서는 모두 한 가지 이상의 역할에 자기를 대입했으리라.

누구는 후지노 료코처럼 진실을 겁내지 않고 찾아 나서기도 했겠고, 어떤 이는 오이데 슌지처럼 동급생을 괴롭혔던 경험도 있을 것이며, 다른 이는 미야케 주리처럼 외모 때문에 고민하고 비뚤어진 마음을 품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모범생이기도 했고, 따돌림 당하는 외톨이였기도 했으며, 어찌할 바 모르는 교사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학교에서는 누구든 한 가지 얼굴만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직접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솔로몬의 위증>은 그렇게 아이들을 이해해보라고 권한다.

▲ <앵무새 죽이기>(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문예출판사
<학교의 눈물>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듯이 학교는 이제 꿈과 희망이 자라나는 동산만이 아니다. 아니,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 1990년에도, 2010년도에도 학교와 집에서 좌절하는 아이들이 있다. 소설의 사건으로부터 20년이 넘은 이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아이들을 잃고 있다. 아니, 더 많은 아이가 학교로부터 사라지고 있다. 소설 속 모기 에츠오 기자의 말처럼 "학교라는 시스템 자체가 필요악"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그 악에 희생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교는 또한 아이들이 어른들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재판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죄를 묻고, 또 용서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재판을 끝내고 친구가 될 수 있는 곳이다. 모두가 여러 얼굴을 거치며 변해갈 수 있는 통로이다.

짝의 얼굴과 내 기억에 실내화 밑창 무늬를 남긴 소년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기분 따라 학급 친구를 괴롭히고, 수업 시간에 왕왕 조는 것은 중학생 형들과 어울려 다니며 나쁜 짓을 하기 때문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났던 초등학생이다. 그렇지만 부모가 떠나고 할머니와 단둘이 어렵게 사는 아이이기도 했다. 가끔 찾아오는 아버지에게 맞는 게 두렵다고 내 앞에서 울던 약한 아이이기도 했다. 한 번은 청소 시간에 와서 "선생님 가져요"라고 포켓 몬스터 종이접기를 던져 놓고 가기도 했던 귀여운 어린이였다. 나는 그가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정당한 판결을 받을 수 있었기를 바란다. 용서하고, 용서받고, 악수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얻었기를 바란다.

그도 <솔로몬의 위증>의 한 순간을 얻었기를.

"(…)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을 법정의 공기를 가슴 가득 빨아들였다.
그리고 토해냈다. 재판은 끝났다.
이제 곧 여름도 끝난다." (3권 667쪽)


이제 정말로 뜨거운 여름이 곧 끝나리라. 인생의 뜨거웠던 여름도 아득히 지나가리라. 모두 자신에게 내려진 판결을 품고 학교의 순간들을 보낼 것이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축복을 받는다면 우리는 현명하게 나이가 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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