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핵 사고 나면, 350만 명 대피·국가 파산"

[좌담] "송전탑 안전성 사업자가 입증해야"

지난 5월 20일 한국전력이 밀양 765킬로볼트 송전탑 공사를 재개하면서, 경상남도 밀양에 전국의 이목이 쏠렸다. 한국전력이 고 이치우(당시 74세) 씨의 분신자살 이후 공사를 중단한 지 8개월 만에 다시 시작된 싸움이었다. 한국전력과의 대치 과정에서 고령의 주민들이 연이어 부상을 입었다. 밀양은 말 그대로 전쟁터가 됐다.

합의점을 찾고자 국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나서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했지만 결국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좌초됐다.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10년을 향해가는 갈등은 왜 갈수록 깊어지고 있으며 해결의 방향은 어디에 있을까.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밀양 송전탑 사태의 처음과 현재를 짚어보는 좌담회가 열렸다. 우희종 서울대학교 교수가 사회를 맡고 환경법 전문가 전재경 박사와 장하나 민주당 의원이 참석했다.

이번 좌담회는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가 주최하고 프레시안과 불교생명윤리협회가 후원했다. 다음은 두 시간 동안 진행된 대화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프레시안(최형락)

'생명권'의 문제…한국 전자파 기준 833밀리가우스 vs. 스웨덴은 2밀리가우스

전재경 : 최근 밀양 송전탑 사건은 보상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 지난 1998년 과천 송전탑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에는 보상 문제로 가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서 바로 생명권의 문제를 제기했었다.

장하나 : 주민들은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국회에서 '송·변전 설비 주변 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밀양법'이라고 명명하면서 송전탑 보상액을 현실화하겠다고 나섰다. 이러면 마치 밀양이 보상을 더 많이 받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는 일단 기본적으로 사시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어 하신다. 정주생활권(定住生活圈)을 지키고 싶으신 것이다.

송전탑이 밀양에 들어서면 밀양이 과연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인지가 쟁점이다. 많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시하지 않고 한편으로는 은폐도 하는 한국전력의 행태를 보며, 주민들이 많이 분노한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생명권은 말 그대로 생존할 권리다. 송전탑이 들어서는 지역에서 주민들이 '못 살겠다'고 외치는 것은 단순히 생활이 불편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바로 이 생명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비명이다. 가장 큰 문제는 송전탑이 내뿜는 전자파다.

밀양 주민은 고압 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국제암연구소에 의해 2B 등급(발암 가능)으로 분류된 점 등을 근거로 전자파의 위해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한국전력은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 방출되는 전자파 때문에 휴대전화 역시 2B 등급으로 지정됐다는 점을 들어 주민들의 우려가 과장됐다고 반박했다. 결국 논란은 '과장된 우려'와 '지나친 안심' 간의 대결 구도가 됐다.


전재경 : 과학자들은 '내 아파트 아래층에 전등이 어디 달렸는지를 확인하고 내 침대의 위치를 결정하라'고까지 한다. 저주파 전자기파가 지속적으로 우리 몸의 바이오리듬을 교란시킨다는 것이다.

장하나 : 한국은 전자파 인체 안전 기준을 833밀리가우스로 정했다. 이는 고농도 전자파에 단시간 노출된 경우를 기준으로 정한 수치다. 그런데 이것을 기준으로 송전탑이 내뿜는 전자파가 안전하다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스웨덴과 미국 국립방사선방호학회의 기준은 2밀리가우스고 네덜란드는 4밀리가우스다.

밀양 송전탑 바로 아랫부분이 22밀리가우스쯤이다. 밀양 송전탑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지면 3.2밀리가우스다. 상황이 이런데, 833밀리가우스라는 말도 안 되는 수치를 들이대는 것은 국민에 대한 사기다.

환경부는 송전선과 거주지 거리가 100미터 이내인 초등학생들의 멜라토닌과 성장 호르몬 분비량이 유의하게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한 바 있다. 환경부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지만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 힘센 정부 부처의 눈치만 보고 이런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지도 못한다.


"송전탑 건설자들이 안전성 입증해야"

전재경 : 일반인들이 이 논쟁에 빠지면 끝이 없다. 송전탑 건설에 찬성하는 쪽도 만만치 않은 반론을 펴낸다. 환경이나 생명 문제에서는 인과 관계가 입증되기까지는 굉장히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또 그 많은 세월에 걸쳐 인과 관계가 입증된다 해도 과학적 데이터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송전탑이 인체에 전혀 해롭지 않다는 입증 책임을 건설하는 쪽에다 돌려야 한다. 송전탑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송전탑이 해롭다는 것을 입증하기 시작하면 승산이 없다. 입증 책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개발하고 싶은 쪽이 해롭지 않다고 입증해야 한다.

그래서 밀양 주민들이 지중화(송전 선로를 땅에 묻는 방식)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역시나 한국전력은 엄청난 공사 비용을 제시하며 밀양에서 지중화는 불가능하다고 아예 입을 막고 있다.

한국전력은 밀양 구간을 지중화하면 2조7000억 원이 소요된다고 밝혀왔다. 이를 두고 지역 주민은 한국전력이 공사 비용을 과다하게 측정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여전히 지중화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전재경 : 주민들이 765킬로볼트 송전탑을 세우지 말고 345킬로볼트로 세우라고 하면 한국전력은 '345킬로볼트 송전탑은 송전 손실이 높다'고 한다. 사실 과천 사례에 비하면, 765킬로볼트를 345킬로볼트로 바꾸라는 것도 송전탑 사업자가 고마워할 일이다. 과천은 345킬로볼트도 못 오게 하지 않았나. 765킬로볼트를 계속 고수하는 것은 협상의 여지를 스스로 차단하겠다는 의미다.

한국전력은 전압이 낮을수록 장거리 송전에서 전기가 손실되니까 이를 막기 위해서 765킬로볼트 송전탑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대륙을 횡단하는 그런 큰 나라에서나 통하는 얘기다. 겨우 밀양에서 영남권에 송전하는 데는 765킬로볼트가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한국전력이 765킬로볼트를 고집하는 이유는, 345킬로볼트로 하면 전력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죽고 산다는데 전력이 좀 손실되면 어떠냐. 수돗물은 땅속에서 흘러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수돗물은 수없이 흘려보내면서도 전력은 조금이라도 손실되면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 전재경 박사. ⓒ프레시안(최형락)

강정과 밀양이 오버랩…밀양 송전탑 반대하면 좌파?

장하나 : 한국전력은 신고리 3·4호기의 건설에 맞춰서 밀양 송전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전력은 2000년 1월부터 송전탑 건설 작업에 착수했으나 마을 어르신이 이 사실을 최초로 인지한 것은 2005년이었다. 그동안은 내가 사는 마을이 송전 선로 경과지인지 알지도 못하고 지냈다. 2005년 8월에 첫 설명회가 있었는데 약 40명만이 참여할 정도로 비밀리에 이뤄졌다. 이렇듯 처음부터 절차적·행정적 문제가 있었다.

지금 70, 80되신 분들이 8년째 싸우고 계신다. 아침부터 한 시간 넘게 기다시피 산에 올라가신다. 용역의 모욕적 폭언과 폭력에 늘 노출되어 있다. 결정적으로 고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사건이 이 오래된 문제에 국민들이 관심을 갖도록 바꿨다.

강정과 밀양이 오버랩된다. 주민들을 국민이 아니라 우매한 사람 취급하며 (국가가) 행정을 진행한 것이 똑같다. 언론은 계속 '주민들이 보상을 원한다', '외부 세력이 와서 이유 없이 투쟁에 불을 지핀다'고 보도한다. 강정이나 밀양이나 똑같은 패턴이다. 밀양 송전탑에 반대하면 좌파가 되는 어이없는 구조다.

주민들이 제시한 대안…기존 선로 편입 계통

밀양 송전탑과 관련한 현안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난 5월 29일 국회 산업통자원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밀양 송전탑 전문가 협의체'를 가동키로 했다.

한국전력 추천 3인, 주민 대책위원회 추천 3인, 국회 추천 3인(여당 1인, 야당 1인, 여·야 합의 1인) 등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전문가 협의체는 애초에 최종 보고서를 내놓기로 했었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강제성을 가진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국전력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5일에는 야당 추천 위원과 대책위원회 추천 위원들이, 한국전력 추천 위원들의 보고서가 한국전력의 자료를 표절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급기야 8일 백수현 위원장(동국대 교수)은 대책위원회·야당 추천 위원들의 동의 없이, 공사에 찬성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장하나 :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가 제시한 중재안에 사인하면서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했다. 전문가 협의체에 밀양 주민들이 요구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신고리 3·4호기까지의 생산전력은 신양산~동부산, 신울산~신온산 구간의 송전 선로로 보내라는 것이다. 이렇듯 기존의 송전 선로에 계통 편입시켜서 처리 가능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었다. 또 이후 신고리 5~8호기까지 건설되려면 최소한 10년은 기본으로 걸리니까 그 사이에 지중화 문제를 다뤄달라고 요구했다.

▲ 장하나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한국도 이미 후쿠시마 사태를 겪었다"

장하나 : 나의 관점은, 밀양 송전탑은 아예 필요 없다는 것이다. 신고리 5~8호기를 건설하면 안 된다. 지금 핵발전소 비리가 줄줄이 터졌는데 국가정보원이나 갑을 관계로 신문 지면이 꽉꽉 차다 보니, 이것(핵발전소 비리)도 국기 문란 사건인데 한 달여간 묻혀버렸다. 지금 핵발전소 비리 문제를 어떻게 이슈로 끌어올릴지 고민하고 있다.

왜 이렇게 한국 핵발전소가 고장이 잦은지, 얼마나 위험한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들이다.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밀양 송전탑 자체가 필요 없어진다. 밀양 주민들이 하는 말이, '왜 무분별하게 전력을 사용하는 서울 사람들에 의해 우리가 고통받아야 하는가'이다. 이제 핵발전소를 멈추자는 인식이 형성되는 데 밀양 주민이 중요하다.

전재경 : 탈핵 문제는 정치권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 탈핵하자면 30년 정도의 계획을 가지고 어떻게 대체 에너지를 가질지에 대한 구상을 마련해야 한다.

장하나 : 밀양 송전탑에 반대한다고 하면 찬성 측 특히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 수급을 어떻게 할 거냐고 질문한다. 좀 더 발전된 단계의 신·재생 에너지 전략을 도입해야 한다. 제5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는 2024까지 신고리 5~8 호기를 건설한다고 나와 있는데 이에 대해 다른 방향을 모색하자.

핵발전소는 안 된다. 밀양도 문제지만 전력 수요자들의 마음 변화가 중요하다. 송전탑 건설로 고통받는 분들이 소수가 아니라, 우리도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한국도 이미 후쿠시마 사태를 겪었다. 지난해 2월 고리 1호기에서 정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노심이 녹지 않은 이유는 당시 계획 예방 정비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사고가 났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나. 후쿠시마 사고를 기준으로 반경 30킬로미터를 대피 범위로 잡으면 350만 명이 대피해야 한다. 이동도 못 하고 갈 데도 없다. 그 모든 난민을 수용할 수도 없다.

피폭당해서 죽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파산해서 다 죽을 수 있다. 이런데도 핵발전소를 짓자는 주장은, 안전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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