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와서는, 자신들을 소개하며 팔에 끼고 있던 캔버스를 쭉 펼쳐 놓았다. "우리는 서양화 전공의 대학생들입니다. 우리가 그린 그림을 직접 팔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림을 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들의 그림을 사지 않았다. 최초 스스로를 설명하는 셋을 볼 때는 사줘야겠다 싶었는데, 그림을 보고나서 그 마음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그림이 별로라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사실, 그림을 보기 전에도 어린 학생들의 그림이니까, 라고 생각하며 '스킬'에 대한 부분은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이 부분은 영향을 주지 않았다.(그들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기본기가 좋았다). 살 마음을 접게 만든 그 그림들의 문제는, '구태의연함', '식상함'이었다. 2010년대를 사는 20대 초반의 예술 전공자들이 그렸다고 볼 수 없는 그림의 소재들, 색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가져온 것들이 모조리 그랬으니까.
"집 어디에 걸어놔도 잘 어울릴 그림입니다, 나중에 우리가 유명해지면 그림 값이 오를지도 몰라요, 재료값 정도만 받을 거라서 비싸지도 않고요."
서툴지만 흥미로운 예술품을 기대했는데,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그림들을 내 놓으며 자신들의 향후 '시장 가치'를 말했다. 집 인테리어까지 고려했다고 말하는 그들의 그림은, 미안하게도 너무나 지루했다.
| ▲ <뉴욕 큐레이터 분투기>(마샤 터커 지음, 배은경 옮김, 아트북스 펴냄). ⓒ아트북스 |
마샤 터커.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여성은 미국 미술계를 전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곳으로 만든, 예술이라고 통용되던 '예술'을 거부한, 꽤나 용감한 인물이다. 그녀는 1970년대, '예술 같지 않아 보이는 예술'을 한다고 미술계에서 거부당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실을 직접 찾아다니며 작품을 열심히 봤고, 그들이 작품을 미술관에서 전시할 수 있도록 힘썼다. 작품의 주제가 알쏭달쏭한 것은 물론, "괴상망측하고, 더럽고, 역겹고,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재료를 사용한 것들마저도 선입견 없이 받아들였다.
우스꽝스럽다고 치부되는 작품의 정치적, 사회적 모티브를 짚어냈고, 그러한 작품들을 통해 '동시대(Contemporary)'의 예술이란 것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했다. '예술이란 뭘까?'에 답하는 태도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대담한 행동은 욕먹기 일쑤다. 그녀를 둘러싼 미술계 관계자들은 으르렁 대며 그녀를 압박했다, 제대로 좀 하라고.
""중개상들은 뉴뮤지엄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전시회들이 시각적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에게 전시회가 흥미롭다고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얘기입니다." 그 말의 진의는 우리 전시회가 미술 시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입신양명과 물질 지향적 태도, 그리고 노골적인 상업주의에 대한 집착으로 대변되는 시기에 뉴뮤지엄은 의도적이었든 직무태만이었든 그런 가치들에 도전하거나 비판하거나 혹은 완전히 기피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359쪽)
이 결심에는 '진짜' 예술품을 찾아다니던 그녀의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뭘까? 마샤가 생각한 예술의 조건은 뭐였을까? 그녀의 자서전인 이 책에도 잘 드러나 있고,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 그것은 예술이란, 세상을 향한 '반항심'이 만든 결과물이라는 것. 다소 유치하게 극화하면, '흥! 당신들이 마음에 들어할만한 건 절대 만들지 않겠어,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와 같은 태도로, 사람들의 애정을 뻥 걷어차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기본적 '반항심'이며 그런 '반항심'을 근간으로 만든 것이 바로 예술품이다. 까칠함과 불친절함은 예술이 뿌리 내린 토양인 셈.
물론, 과거 왕이나 귀족의 주문에 의해 그려진, 유럽의 미술관을 꽉 채운 먼지 쌓인 그림들도 (지금의 기준으로) 매우 중요한 예술이다. 역사 속 어떤 시기에는, 주문받은 예술품만을 순종적인 마음으로 제작하는 것이 당연했으므로. 하지만 지금은, 마샤 터커가 살던 1970년대에도, 예술이란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라고 하는 고집과 사람들의 험악한 조롱에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용기가 화학작용을 일으켜 만든 '어떤 것'이다.
그렇기에 진짜 예술이라 인정되는 현대의 예술품 중에는, 얼핏 보기에 괴상하고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실패한 발명품처럼 보이는 경우는 허다하고, 감동을 주기 보다는 '뭐냐 이건?'이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게 하는 것들도 태반이다. 마샤가 기획한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을 향한 사람들의 공격 또한 다르지 않았다.
"전시회가 시작되자 대중은 난폭해졌다. 사람들은 섬세한 철사 작품들을 벽에서 떼어내려고 했다. 또 경비들이 보지 않을 때 일부 작품의 바로 옆에 연필로 자신의 의견을 마구 휘갈겨 써놓기도 했다. 그들은 그것이 예술 작품이 아니라며 신랄하게 비난했다." (242쪽)
진짜 예술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쟁을 치러야 하며, 이를 지지하고 믿어주는 사람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예술이라는 무른 방패를 들고 총알을 받아내는 소외된 예술가들에게 마샤는 얼마나 큰 힘이 되어 주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녀의 삶은 사적 영역에서도 매우 고통스러운 일들의 연속이었는데(그녀는 한 쪽 청력을 잃었고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까지 심하게 절었다), 예술에 대한 스스로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모든 고난을 이겨냈다는 점이 무척 놀랍다. 뛰어난 감식안을 인정받았기에 휘트니 미술관 최초의 여성 큐레이터이자 뉴뮤지엄의 설립자가 된 것이겠지만, 세상이 비난하는 전시회를 자신의 의지대로 추진하는 그녀의 끈기는 절로 혀를 내두르게 한다. '예술 같은 삶'을 살았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예술작품을 보는 즉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됐어, 잘 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왜 그런지 질문하고 더 많은 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면 대개는 매우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272쪽)
앞서 말한 나의 2년 전 일화를 마샤의 이 말에 기대어 이야기 하면, 세 명의 학생들이 보여준 그림들은 이해의 과정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아무런 질문도 촉발시키지 않는 '예술'이었다.(미안하게도, 그 그림들을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말이다.) 하지만 극도의 상업성을 지향하는 한국의 미술시장을 떠올리면, 그 학생들이 왜 그렇게 순응적이고도 친-미술시장적인 그림을 그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잘 팔리는 작품을 해야만 좋은 예술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자유로워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보수 성향의 모 신문사는 매년 수백 명의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아트페어를 개최한다. 행사가 열리기 몇 달 전부터 지속적으로 아트페어 기사가 나간다. 행사가 끝난 후에는, 방긋 웃는 학생의 사진과 함께 '제 작품을 다 팔았어요, 작품을 팔아보니 진짜 작가가 된 것 같아요' 라는 인터뷰가 실린다.
-경매에서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비싼 가격에 낙찰된 작품은 언론에서 무조건 최고라며 인정해 준다.
-미술 시장이 활황이던 2007년에는 거의 모든 갤러리에서 잘 팔린다 싶은 (화려하고, 웃기고, 사진 같은) 작품들만을 전시했다.
잘 팔리는 그림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을 차단하고 다양성을 소멸시킨다는 측면에서는 분명, 매우 나쁘다. 슬픈 일이지만, 훌륭한 예술품 중에서는 판매와 거리가 먼 것들이 꽤 많으며, 잘 팔리는 미술품 가운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80퍼센트 이상이다. 보기에 좋고 예쁘장한 예술품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고로 예술이라면 '예뻐지는 것,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너무 지향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남들 다 하는 건 절대 안 해'와 같은 배짱을 부리는 것이 먼저 라는 뜻.
사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가를 보호하는 견고한 사회적 제도와, 이를 이해하고 즐기는 관객의 양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샤 터커와 같은 모험심 가득한 인물이 많아야 하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마샤와 같은 큐레이터는 매우 희귀하고 절실하다. 만난 적이 있었던가? 기억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통해 만나는 그녀는 놀랍고 신선했다.
이 책은 시간 순으로 마샤 터커의 인생을 서술하고 있어서, 개인사(부모, 연애, 결혼, 출산 등)와 엮인 일화들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녀가 미술계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시점부터(책의 3분의 1지점)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나긴 하지만,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교훈을 주려는 듯 이야기를 풀어가진 않는다. 나로서는 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물론, 지금도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미지의 보물섬 같아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큐레이터가 될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미술학도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대다수가 보물섬으로 가는 지도를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처럼 '큐레이터 되는 법'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샤의 삶은 그 자체로 심술 난 예술가의 작품 같기 때문에, 그녀의 인생 안에 녹아 있는 '예술'을 접하는 것이 더 큰 배움으로 연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굳이 '배움'과 연결하면 그렇다는 것)
또한 책은 마르셀 뒤샹, 알프레드 바(모마(MOMA, 뉴욕현대미술관) 초대 관장), 브루스 나우만(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가) 등 예술계 거장들과의 일화를 무심하게 풀어놓고 있는데, 인물의 중요도를 잘 모르는 독자들의 경우 재미가 조금 반감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더라도, 엉뚱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의 인생이 워낙 흥미롭고, '예술이란 뭘까?'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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