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했나 '발명'했나?

[프레시안 books] 프랜시스 크릭의 <열광의 탐구>

한 물리학도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와중에 그는 기뢰 연구에서 꽤나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 당시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그랬듯, 그도 과학을 즐기면서 조국 영국을 위해 일했다. 전쟁이 끝난 후, 진로를 모색하던 중 그의 발길은 생물학을 향했다. 바야흐로 생물학의 시대가 열리는 때였다. 그리고 그는 유전자의 비밀을 밝혀내는 횡재를 만났다.

프랜시스 크릭! 제임스 왓슨과 함께 DNA 이중나선의 구조를 찾아냈고, 그 공로로 1962년 노벨 생의학상을 받은 위대한 과학자! 그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눈에선 레이저가 발사되고, 말은 엄청 많았고, 이제 막 연구에 입문한 풋내기 시절에 40년 이상 연구를 선도한 기라성 같은 선배 학자들 앞에서 그들의 연구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인가"(What mad pursuit!)라고 질러대는 무모함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유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왓슨과는 달리 평생 현장에서 과학 연구에 진력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그는 왓슨만큼 스포이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진정한 과학자의 표상으로 남아 있다고 평가된다.

과학자로서 그의 삶은 20세기 중반에 새롭게 형성된 과학의 조류에 올라탄 형국이었다. 그것도 맨 앞자리에. 그래서 그의 자서전은 과학자로서 그의 학문 세계와 업적, 개인적 삶의 여정은 물론 '분자생물학 러시'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시대의 과학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제공해준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은 단연코 물리학의 시대였다. 전자기학과 양자역학, 상대성이론의 발전을 넘어서 물질의 궁극인 원자를 쪼갤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갔다.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치면서 물리학의 관심은 온통 핵무기로 쏠렸다. 연합국의 핵무기 개발 계획, 맨해튼 프로젝트! 원자 속에 갇혀 있는 무한한 힘을 끄집어내어 인간(의 이성)에게 복속시켰다는 짜릿한 성취감은 수십만 명의 희생을 잠시 잊게 만들 정도였다.

그리고 전쟁은 끝났다. 물리학자들은 이제 물질의 궁극을 넘어 생명의 비밀을 찾아 나섰다. 유명한 수리물리학자 슈뢰딩거가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생명 탐구에 나선 물리학자들에게 일종의 나침반이었다. 물리학의 놀라운 성공 원리를 생물학에도 구현하라! 그 속에 프랜시스 크릭이 있었다.

이 책은 "1953년 DNA 이중나선의 발견 때부터 1966년경의 유전암호(…)의 해석이 있기까지의 기간 및 그 직전에 겪었던 일들"(19쪽)에 대한 이야기다. 그 중심에 DNA의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이 놓여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리라. 우리가 크릭을 기억하고, 이 책에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크릭은 발견의 과정을 다시 기억해내는 방식으로 자세하게 기술하지 않는다. 왓슨의 유명한 책 <이중나선>이나 영화 '어쨌든, 누구의 생명인가?', 의 다큐멘터리 '생명 이야기' 등에서 이미 반복해서 다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비교적 발견의 과정을 잘 다루고 있는 의 '생명 이야기'를 선택하여, 논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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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광의 탐구>(프랜시스 크릭 지음, 권태익·조태주 옮김, 김영사 펴냄). ⓒ김영사
이 책의 미덕은 DNA의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 그 자체가 아니라 생명의 비밀에 성큼 다가선 고전 분자생물학 시대를 본격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데 있다. 이중나선 발견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지만 '그 전과 후'에 대한 전체적 조망 속에서만 그 중요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그 후'에야 비로소 유전자와 단백질의 관계가 규명되었고, 그 과정에서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의 만남이 본격화되었다. 그 결과, 유전자재조합과 인간유전체사업으로 이어지는 생물학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 후' 고전 분자생물학의 핵심에는 중심원리(central dogma)가 놓여 있었다. 이 원리는 "DNA의 염기 서열이 해당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지정해준다"는 서열 가설에 포함된 것으로, "일단 '정보'가 단백질로 전환되면 그 정보는 역방향으로 다시 흘러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209-210쪽) 따라서 '그 후' 시대에 대한 이야기는 중심원리의 안내를 따라 고전 분자생물학이 정립되어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부록에 '고전 생물학의 개요'와 '유전암호'라는 절을 따로 두어, 유전물질인 DNA와 RNA의 구조와 작동원리, 세포핵 속의 DNA에 있는 유전자의 유전정보가 세포질에 위치한 리보솜으로 전달되어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중심원리)을 설명하고 있다.)

크릭이 31살의 늦은 나이에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방향을 돌릴 때 관심을 두었던 연구 분야는 두 가지였는데, 분자생물학과 신경생물학이었다. 전자는 '생명'의 미스터리에 대한, 후자는 '의식'의 미스터리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관심(잡담 테스트: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가를 보려면 근래에 자신이 무엇에 대해 잡담을 가장 많이 하는가를 체크해보라!)과 학문적 성공 가능성을 고려한 끝에 먼저 분자생물학을 선택했는데, 그 판단은 적중했다.

그리고 60세가 되던 1976년에 그는 또 다른 주제인 신경생물학으로 관심을 돌렸다. 분자생물학에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늙기 전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픈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과학 자체를 몹시도 즐기는 크릭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너무도 잘 어울리는 과학이라는 옷을 입은 크릭. 복 되도다, 크릭이여!

과학사회학을 연구하는 나에게 크릭의 자서전은 매우 흥미로운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놀라운 과학적 업적을 남기고, 누구보다 열심히 과학 연구에 매진한 위대한 과학자의 자서전이니 그 가치는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크릭의 이야기는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이다.

크릭은 이론 생물학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 연구와 과학적 방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 그는 특히,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옮긴 이론가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생물학에서는 물리학과 달리 실험(그리고 그 결과)에 세심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보편성이 큰 물리학과는 달리, 생물학은 자연선택의 영향을 받는 까닭에 보편 법칙을 세우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따라서 지나치게 이론적 완성도에만 매달리다간 오류를 범하기 쉽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은 규칙성과 법칙성보다는 우연성에 더 쉽게 노출된다.)

그렇지만 이론의 역할은 생물학 연구에서도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하나의 훌륭한 이론은 단순히 어떤 예측들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차후에 그 예측이 진실로 입증되도록 해준다."(275쪽) 또한, 그는 실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신중을 기해 마련한 이론에 확신이 서면 회의주의자의 입장에서 철저한 검증을 거칠 필요가 있다. 실험 결과와 맞지 않은 이론은 과감하게 수정할 필요가 있지만 실험 결과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크릭은 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대체로 과학적 방법을 따르고 있다. 과학적 방법은 (과학) 철학자들에 의해 정형화된 것으로, 주로 물리학자들의 연구 방법을 그 토대로 삼았다. 그에 따르면, 과학 활동은 먼저 가설(모델)을 세우고, 이를 실험이나 관찰에서 얻은 증거를 통해 검증한다. 매우 단순하고 명쾌하게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다. 과학적 방법이 자연과학은 물론 사회과학에서도 널리 애용되는 이유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과학적 방법에는 약점이 존재한다. 귀납법에 기초하고 있어 완벽한 검증은 애초에 불가능할 뿐 아니라 '관찰의 이론 의존성'과 '증거에 의한 이론의 과소결정성' 테제가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관찰의 이론 의존성'이란 실험(관찰)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려면 가설과 실험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이고, '과소결정성'은 증거만으로는 해당 가설을 충분히 검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크릭의 이야기에서 이런 논리적 딜레마는 전혀 찾을 수 없다. 물론 그는 실험을 통한 이론(모델)의 검증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설령 검증이 되었다고 해도 과신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그는 논리적 딜레마에 전혀 구애 받지 않은 채 과학 연구(이론 작업이든 실험 작업이든)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나간다. 어찌된 일일까? STS(과학기술학)는 과학자들의 과학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그를 통해 과학자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STS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학자의 위대함은 그가 과학적 방법에 충실하기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난관을 뚫고 현실 속에서 이용 가능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새로운 과학 세계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축된 과학 세계는 세계를 들어 올리는 지렛대로 사용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이다.

'발견 vs. 발명'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했다고 한다. 과연, 왓슨과 크릭은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한 일은, 과학적 방법에 따라, 모델을 만든 다음 증거를 통해 그 모델을 검증한 것이다. 그 결과, 그 모델은 자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내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그 모델은 어떻게 검증된 것일까? 그 당시의 가장 강력한 증거인 X-선 회절 사진은 선명도와 증거 능력의 한계로 모델을 완벽하게 검증해줄 수는 없었다. 분자생물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실험 결과들이 있다. 하지만, 소위 결정적 실험 또는 증거는 없었다.

즉 어떤 결정적 증거가 주어졌다기보다는 조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증거들을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이리저리 꿰맞춰보면서 이론적 타당성을 검증해내는 방법을 사용했다. 크릭은 이 과정을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모델은 가까스로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증명되어 나갔는데, 그 당시 활용할 수 있었던 모든 과학적 역량이 총동원되었다.

발견이라는 표현은 '생명의 비밀'처럼 자연 속에 숨겨진 '무엇'을 전제한다. 이런 생각은 '자연의 책(Book of Nature)'에 신이 써놓은 비밀을 해독하려 했던 왕립학회의 초기 자연 철학자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무엇'을 찾는 것이야말로 과학의 임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은 침묵으로 일관해서 우리는 '무엇'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철학자 칸트는 우리가 물자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했다.) '무엇'은 다양한 해독의 가능성을 열어 둔다. 또한, 우리는 발견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야 그 '무엇'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크릭은 조금은 다른 차원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말 풀기 힘든 생물학적 문제는, 그럴 듯한 대답이 너무도 많아 그들을 구별해내고자 고통스럽게 이것저것 모두를 시도해보아야 하는 그런 것들이다."(301쪽)

'발명'이라는 표현은 어떤가? 발명을 전에 없던 어떤 것을 인간의 의식적 노력을 통해 새로 생각해내거나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과학 활동에는 적용할 수 없는 것일까? 크릭과 그의 동료들이 실제로 했던 일이란 이중나선 구조와 고전 분자생물학을 발명해낸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이 책에서 크릭의 이야기를 쫓아가보면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크릭은 수동적으로 이론(모델)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그것이 검증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의 활동은 매우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다양했다. 그는 많은 과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정보와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보와 증거를 수집하고, 훌륭한 이론(모델)을 수립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그 이론의 진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실험을 고안하고, 실험 결과를 해석하고, 그 결과를 반영하여 이론을 수정하고, 관련된 정보를 동료들과 교류하고, 학회나 학술지에 발표하고…등의 활동을 동시다발적으로 해나갔다. 사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바로 이와 같은 과학 활동을 통해 과학 연구를 진행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 크릭은 이론을 검증해내는데 그치지 않고 이론들과 실험들, 새로운 연구자들과 연구실, 연구 지원 기관, 연구 분야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해서 유전자와 이중나선 구조, 중심원리 등으로 대표되는 고전 분자생물학의 세계가 '발명'되었던 것이다.

크릭의 위대함은 그가 현장을 중시한 '순수한'(또는 평범한) 연구자로서 평생을 보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그런 활동을 통해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과학 세계를 건설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는데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고전 분자생물학의 발견기가 아니라 발명기(發明記)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개인적으로, 로절린드 프랭클린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패스"해 버린 것과 번역의 깔끔함이 들쑥날쑥하여 독서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문제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과학 세계를 발명하는데 앞장 선 위대한 과학자의 삶과 사상, 학문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기회는 그 모든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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