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의 참맛? '응가' 하면서 읽어야지!

[김시천이 사랑하는 저자] 공자

'프레시안 books'는 2012년 신년호를 '내가 사랑하는 저자'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열두 명의 필자가 사랑하는 저자와 만났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사랑하는 저자와 만나는 기쁨을 누리길 기대합니다.

<논어>와 나의 첫 강의

1997년! 정말 한국에서는 잊기 어려운 해이다. 고도성장을 지속하던 우리 사회가 전례 없던 위기에 봉착하여 무너지던 그 때!

그런데 그 해는 내게도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았던 한 해였다. 당시 과외 지도를 하면서 용돈과 학비를 충당하던 내게, 외환 위기와 함께 몰아닥친 과외 금지 조치는 내 사적인 경제를 무너뜨린 해이기도 했다. 그 해 11월 나는 결혼을 했고, 신혼살림을 시작해야 했던 우리 집에선 정말 너무나 커다란 위기였다.

그에 더하여 내겐 잊을 수 없는 일이 대학에서 처음 강의를 했던 일이다. 당시는 박사 과정에 재학하다 휴학 중이었고, 우연히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출석 수업 강의를 하게 되었다. 3일 동안 과목당 여덟 시간으로 이루어진 강의는 강의실이 1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조는 사람 하나 없이 숨 막힐 정도로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어쩌면 지금 생각해도 그때처럼 진지하게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만나기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여전하다.

그 때 사실 난 어떻게 첫 강의를 시작할까 고민만 하다가 결정하지 못하고 강의실로 들어섰다. 신혼여행을 다녀 온 다음 날이었고, 결혼식에 신혼여행에 여러 가지로 정신이 없던 때였다.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고, 신혼여행을 다녀오자 여기저기에서 경제 위기에 관한 이야기들로 시끌벅적한 때였다. 그랬던 그 첫 강의의 첫 시간! 강의실 문을 들어서면서 퍼뜩 <논어>의 첫 번째 구절이 떠올랐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겠는가?" (<논어>, '학이' 1)

나는 출석을 부른 후 곧바로 <논어>의 이 첫 구절을 한자로 거침없이 써 나갔고, 이어지는 세 시간 강의 내내 이 한 구절을 가지고 격앙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이미 15년이 지난 일이어서 그 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때 그 시간 나는 마치 <논어>의 이야기 한 구절 한 마디가 어떤 의미였는지, 강의를 하면서 처음으로 음미하게 되었다. 아! <논어>가 이런 절실함이 있었던 책이구나!

단지 식상한 도덕군자(道德君子)의 말이라고만 생각했던 공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 날 이후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그 날 이후로 <논어>를 사랑하게 되었던 듯하다. 그것은 <노자>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쓴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노자>는 그리 좋은 책이 아니다. 오히려 <논어>야말로 정말 읽을 만한 책, 여전히 우리의 삶에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책으로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황희경의 <논어>와의 만남

▲ <삶에 집착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논어>(공자 지음, 황희경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내 서재에는 <논어> 번역본이 꽤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이런 처연한 제목을 한 <논어>도 있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논어>!" 바로 황희경이 번역한 책이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선배였고, 한문에 조예가 있고 풍격을 중시하던 그가 번역한 책이기에 꽤나 기대를 하던 참이었는데, 역시 그는 나의 기대를 조금도 저버리지 않았다. 머리말에서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제17편 '양화'에는 이런 대화가 있다.

양화(陽貨)가 공자를 만나고자 하였으나 만나주지 않자 공자에게 삶은 돼지를 예물로 보냈다. 공자는 그가 없는 틈을 타서 가서 사례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양화와 마주쳤다.
양화 : 이리 오시오. 내 그대에게 말하리라. 훌륭한 보배를 품고서 나라를 어지럽게 내버려 두는 것을 인(仁)이라고 할 수 있겠소?
공자 :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양화 : 일하기를 좋아하면서 자주 때를 놓치는 것을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소?
공자 :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양화 : 해와 달은 흘러가니 세월은 나를 위해서 기다려주지 않는 것이오.
공자 : 알겠습니다. 저는 장차 벼슬살이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논어>를 인용한 후 황희경은 이렇게 설명한다.

양화가 없는 사이에 공자가 간 것은 양화를 만나는 것이 껄끄럽긴 하지만 선물을 보내온 것에 답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예는 왕래를 숭상하는 법. 공자가 어찌 예를 소홀히 하리오? 그러나 어이 알았으랴? 양화가 길목을 지키고 있는 줄을. 공자는 이미 비밀스런 행동을 하기 어려울 만큼 지명도가 높았다. 이것은 또한 우연을 가장한 양화의 노련한 응수였다.

앞뒤의 맥락이 전혀 없는 공자와 양화의 대화. 그러나 황희경은 이 부분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양화가 예물을 보낸 것은 공자를 자신의 역모(逆謀)에 참여하게 하고자 만남을 주선한 것이었고, 당시의 예에 따라 공자는 양화에게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공자는 양화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 그를 찾아갔다는 것이다. 예는 지키되 만남은 피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양화 또한 이를 예상하고, 그가 돌아가는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가 결국은 그를 만났다는 것이다.

세상이 어수선하니 자신과 함께 인의를 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제안. 그러나 공자는 양화의 숨은 의도에 이렇게 맞섰다는 것이다.

공자는 벼슬을 한다고 했지 당신 아래에서 벼슬을 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군자의 소인 대처법이다.

벼슬살이를 해야만 하는 운명을 지닌 사(士)에게 벼슬살이(仕) 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장차 벼슬살이를 할 것"이라고만 말하지, "너의 밑에 들어가서 벼슬살이 하겠다"고는 말하지 않았다는 것. 황희경은 양화와 공자의 대화 속에 숨어있던 양화의 '꼼수'를 이렇게 살려낸다. 난 그의 책을 읽으며 무릎을 탁 하고 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내 경험이 모든 사람에게 공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응가'를 하며 읽는 <논어>의 맛

처음 '프레시안 books'에서 '내가 사랑하는 저자'라는 글을 의뢰받았을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수락했다. 하지만 막상 어떤 저자, 어떤 책을 쓸지 한참을 고민하게 되었다. 2000년 전의 저자를 택하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오늘날의 어떤 철학자나 저자를 고르는 게 맞을지 수도 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생각이 <논어>에 미치자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논어>는 공자의 언행의 기록이지만, <논어>의 저자는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즉, 고르되 고르지 않아도 되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논어>를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하나 하나의 말들이 매우 짧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리고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상황과 사건이 달라서 서로 연관성이 별로 없다. 그렇기에 화장실에 가서 이른바 '응가'를 하며 책 어디를 펴서 읽어도 좋다는 점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실존적인 상황과 자세에서 공자님의 말씀의 무게는 무척이나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그 또한 나처럼 이렇게 '응가'를 하며 살지 않았겠는가!

그 때 성인(聖人) 공자는 가면을 벗고서 나에게 한 인간으로 다가온다. 그런 순간에 마주하는 <논어>의 한 구절 한 구절은 이미 먼 과거의 저편에서 살았던 한 인간의 진솔한 이야기로 다가올 뿐이다. 게다가 '누구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난 수많은 <논어>들이 있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위한 황희경의 <논어>가 있는가 하면, 유쾌한 공자 씨의 말들로 되살려 낸 신정근의 <논어>가 있는가 하면, 주자와 그의 제자들의 대화를 통해 되살려 낸 박성규의 <논어집주>도 있다.

<논어>는 하나의 책이지만, 공자의 삶과 말이라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의 숲이 있고, 또 그 이야기들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음미하며 되살려 낸 수많은 오늘의 저자들의 이야기와 해석들이 <논어>의 세계에는 가득하다. 그래서 <논어>를 읽는 시간은 즐겁고 재미있다. '프레시안 books'의 독자 여러분에게도 나는, '응가' 하며 수많은 저자들이 다양하게 되살려 낸 <논어>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논어>의 맛은 무미(無味)하다. 그러나 <논어>라는 책의 맛은 독자 자신이 스스로만이 알 수 있다. 자신만의 맛을 찾아 <논어>를 읽어보았으면 한다. 삶 자체가 경쟁인 오늘날 책 읽는 시간마저 경쟁과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자기계발서나 <손자병법>과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끔찍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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