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꾼 아빠·쓰레기통 뒤지는 엄마! 그래도 행복해?

[2011 가을, 고민정의 선택] 저넷 월스의 <유리 성>

황홀한 요즘이다.

아침에는 선선한 바람이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한낮에는 물감을 탄 듯 파란 하늘이 마음 속 우울함을 바짝 말려준다. 그 뿐인가. 해질 녘에는 매일매일 다른 색깔, 다른 모양의 노을이 저절로 내 얼굴을 웃음 짓게 만든다.

이런 가을날 공원 벤치에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한 손엔 갓 뽑은 원두커피를, 한 손엔 여운을 남기는 소설책 한 권을 쥐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들고 있어야 이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될까? 신간은 내가 아니어도 너무나 많은 매체에서 광고되고 있으니 패스, 철지난 베스트셀러는 너무 뻔한 얘기에 추천하는 나조차 뻔해질 것 같아 패스!

▲ <유리 성>(저넷 월스 지음, 나선숙 옮김, 이미지박스 펴냄). ⓒ이미지박스
그렇게 심사숙고 끝에 선택한 책은 저넷 월스의 <유리 성>(나선숙 옮김, 이미지박스 펴냄)이다. 2007년에 나온 책이니 그리 오래된 책도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가 1년 후인 2008년인데 꽤나 인상 깊게 읽었는지 책 맨 뒷장에 독후감도 적어 놓았다.

'어떻게 이런 부모가 있을까. 내 부모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인종 차별을 옳지 않다며, 사람이 갖고 있는 장점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부모를 보면서 배워야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철없는 부모는 아이들을 더 빨리 성숙하게 만들었다. 좌충우돌. 이리저리 깨지면서 아이들은 삶의 방법들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아이들에게 쓰레기통을 뒤지게 하고, 집시와 같은 삶을 살게 하지만 이 부모에겐 뚜렷한 주관이 있다.'

이 책은 아빠, 엄마, 로리와 저넷 자매, 브라이언이라는 외아들, 막내딸 머린이 살아가는 일상을 담은 자전 소설이다. 역시나 범상치 않은 가족이다. 특히나 아빠인 렉스 월스와 엄마인 로즈 메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괴상하기까지 한 이들이다.

우선 아빠는 도박 중독에 알코올 중독까지 걸린 하지만 유리 성을 짓겠다는 꿈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사막에 크고 근사한 우리 집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유리 천장과 두꺼운 유리벽과 계단까지 유리로 된 집. 유리 성 위에는 태양광을 붙잡아 집안 온도를 높이거나 식히거나 가전제품을 돌리는 전력으로 바꿀 수 있는 태양 전지들이 설치될 것이다. (…) 아빠는 그 건축법과 평면도와 수학적인 계산을 거의 마무리했다. (…) 아빠는 우리가 금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고, 그 목표에 아주 가까이 왔다고 말했다. 프로스펙터 작업을 끝내고 돈벼락을 맞으면 유리 성을 짓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도박으로 번 돈은 술로 탕진하기 일쑤이니 돈이 모아질리 없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 아빠들의 1순위 의무인 요즘으로 따지자면 그야말로 자격이 없는 아빠다. 하지만 렉스 월스는 멋진 말들을 내뱉으며 아빠는 어떠해야 한다는 현대인들의 고정관념을 깨부순다. 침대 밑에 악마가 있다고 생각한 아이들이 잔뜩 겁을 먹은 채 아빠에게 달려오자 그는 말한다.

"늙은 악마에게 네가 두렵지 않다는 걸 보이기만 하면 돼."

또 어린 자식에게 수영을 가르쳐주겠다며 한다는 것이 차근차근 헤엄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깊은 물속에 아이를 빠뜨리는 일이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평생 수영장 가에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거라고, 부모로서 자식에게 가르쳐야 할 교훈은 "물에 빠지기 싫으면,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무조건 아이들을 보호만 하려는 요즘 부모님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사실 스무 살만 넘으면 많은 부분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살아가야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사회인이 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조금만 힘든 일이 생기면 자식들은 부모님에게 달려가 해결책을 달라 칭얼대고, 자식이 불혹의 나이를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고자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아빠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시 외곽에 사는 어떤 여자가 집 뒤에서 마운틴 라이언을 발견하고 경찰에 연락해 사살시켰다는 뉴스를 듣더니 벽을 내리치며 소리친다.

"마운틴 라이언도 그 심술궂은 할망구만큼이나 이 삶을 살 권리가 있어.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죽여서는 안 되는 거야!"

대단한 동물 보호가나 환경론자도 아니지만 지구상의 생명체를 모조리 죽이려 들면서 주인인 체하는 방식이 아닌 야생과 같이 조화를 이루어 사는 게 인간이 살아야 하는 방식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그러면서 동물원의 동물들을 탈출시킬 무모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이 대목에선 나도 모르게 '그렇지'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한창 데이트하던 시절 동물원에 간 적이 있었다. 그 날의 이벤트는 고릴라 전이었다. 역시 엄청난 인파가 전시장을 꽉 메웠고 특히나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나도 처음엔 신기하게 구경했지만 곧 불쾌한 마음이 가슴 속에 가득 찼다. 아이들은 고릴라의 괴성 지르는 모습이 재미있는지 연신 고릴라를 가둬놓은 유리창을 두들겨댔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도 가까이서 고릴라를 보게 하려고 같이 유리창을 두들겨댔다. 민감한 고릴라들은 견디기 힘들었는지 비명을 질렀고 흥분한 나머지 이리저리 날뛰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유리창을 더 세게 두들기고 고릴라는 더욱 괴로워하고…. 그 때 결심했다. 다시는 동물원에 오지 않겠다고, 내 아이가 생기면 꼭 드넓은 초원을 달리는 동물을 보여주겠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엄마 로즈 메리는 어떨까. 그야말로 렉스 월스에게 딱 어울리는 반쪽이다. 자칭 흥분 중독자에다 아마추어 화가인 그녀는 교사 자격증이 있으면서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1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이 있으면서도 거리를 누비고 다니길 좋아한다. 이 책의 첫 장면도 딸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우연히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엄마 역시 보통이 아니다.

어느 날 딸이 엄마에게 조슈아 나무를 집 앞에 옮겨 심어 멋지고 크고 똑바르게 자랄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말하자 엄마는 말한다.

"그러면 그 특별함이 망가질 거야. 조슈아 나무가 아름다운 이유는 투쟁이 있기 때문이야."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한다. 청년들에겐 당장 취업이 걱정이고, 취업 후엔 승진이 걱정, 결혼해선 집 살 일이 걱정, 아이를 낳은 이후엔 교육 때문에 걱정. 어떤 이들은 왜 나에게만 이런 어려움들이 닥치는지 모르겠다며 신세 한탄만 하다 세월을 보낸다. 반면 어떤 이들은 그 어려움을 싸워 이겨낼 때마다 자신이 커가는 걸 느끼며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리곤 자신의 삶을 자신만의 색깔로 아름답게 만들어간다.

그녀에게 삶은 재미있는 한 편의 영화 같다.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이렇게 말한다.

"삶은 비극과 희극으로 가득한 드라마야. 넌 희극적인 에피소드를 좀 더 즐길 줄 알아야 해."

마치 엄마인 로즈 메리가 확성기를 내 귀에 갖다 대고 말하는 것 같아서 난 뜨끔해졌다.

이 책은 읽는 내내 상식을 뒤엎는 부모의 행동으로 통쾌함과 유쾌함을 준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뭘 읽었지 하며 머리가 하얘지기는커녕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고민들을 툭 던져준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지루하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말로는 새로움을 말하면서 행동은 고리타분함 속에 갇혀있던 건 아니었을까, 정답을 가르쳐주는 부모가 아닌 길을 보여주는 잔소리보다는 삶으로 보여주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돈이 있음에도 돈에 끌려 다니지 않고 (조금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풍천노숙을 하며 자발적 가난을 기꺼이 택할 수 있을까, 죽는 그 순간까지 꿈과 희망 그리고 삶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아빠 렉스 월스가 죽은 후 엄마 로즈 메리는 말한다.

"너희 아버지와 같이 하는 삶은 절대 지루하지 않았어."

지루하지 않은 삶을 원한다면, 남과는 다른 나만의 삶을 살고 싶다면, 깊어지는 가을날 이렇게 살 용기는 없고 대리만족이라도 얻고 싶다면 렉스 가족을 보라. 유쾌함이 당신의 머리를 시원하게 해 줄 것이고, 식었다고 생각했던 내 안의 꿈과 열정이 가슴을 뜨겁게 해 줄 것이다. 마치 하늘을 붉게 물들인 저 저녁 노을처럼 말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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