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쇼크! '新고려장' '노인 봉기' 막을 방법은…

[노인 1000만 시대가 온다] 테드 피시먼의 <회색 쇼크>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다. 매년 이맘때면 많은 비가 내린다는 건 상식이고 과학은 그 원인과 결과를 비교적 정확히 설명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년 크고 작은 수해를 겪는다. 지금의 과학이 강우의 대체적인 추세를 알려주기는 하지만, 언제 어디에 얼마나 많은 양이 얼마나 집중적으로 올지를 꼭 집어서 예측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재해에 대한 사람들의 준비 상태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그래서 피해가 있을 때마다 그것이 천재니 인재니 하는 논란이 그치지 않고, 우리 조상들은 역병이나 천재지변조차도 임금이 부덕해 하늘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탓으로 돌리곤 했다. 재난은 언제나 하늘(자연)과 사람(사회 문화)의 합작품이다.

제주도는 섬 전체가 한라산의 완만한 경사면에 위치해 있고 구멍이 많은 현무암 지반을 가지고 있어 아무리 많은 비가 와도 큰 피해가 없는 걸로 유명하다. 그런 제주도에 2007년 꽤 큰 수해가 발생했다. 경험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큰 수해를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내린 집중 호우의 위력을 무의식적으로 경시한 탓이다. 경험은 과학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인구의 고령화가 '문제'인 것은 저 출산과 수명 연장으로 인한 인구 구성의 급격한 변화와 그로 인해 생길 사회 문화적 현상을 적절히 이해하거나 예측하지 못해서 생기는 불안 때문이다. 과학은 인구 구성의 변화 추세를 비교적 정확히 헤아릴 수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주지는 못한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저 출산이 국가 정책의 중요 목표였고 예비군 훈련장에서 불임 수술을 받으면 훈련을 면제해 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은 출산율이 낮아서 큰일이라고 한탄들이다. 따라서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는다면, 전후좌우 맥락과 변화의 큰 흐름에 관한 철저한 검토 없이 무조건 출산을 장려하는 대책은 허망하다.

무엇보다 이 문제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에 대한 것이고, 우리는 생물학적 법칙이 관철되는 동물인 동시에 사회 문화적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연재해가 그렇듯이 고령화 현상도 하늘(자연)과 사람(사회 문화)이 상호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저 출산 고령화 현상을 다루는 출판물들은 특정 전문 분야(과학, 의학, 인구통계학, 문화인류학, 정치경제학, 정책학)의 입장에서 고령화 현상을 '설명'하거나 단편적 '대책'을 나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인구 변화의 추세를 수치로 보여주면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일깨워 주는 것도 있고 100세 이상 노인의 생활 방식을 조사하고 그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장수의 비결을 논하는 것도 있다. 고령 사회에서 유망한 사업을 소개하는 상업적인 것도 있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있지만, 정작 그렇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달라진 삶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이 현상의 배후에 놓여있는 거대한 사회 경제적 구조는 무엇인지를 다룬 것은 무척 드물다.

▲ <회색 쇼크 : 고령화, 쇼크인가 축복인가>(테드 피시먼 지음, 안세민 옮김, 반비 펴냄). ⓒ반비
테드 피시먼의 <회색 쇼크 : 고령화, 쇼크인가 축복인가>(안세민 옮김, 반비 펴냄)는 그 공백의 상당 부분을 메워준다. 인구 고령화의 원인과 결과를 추상화하고 일반화해서 보여주기보다는 세계 곳곳의 고령화 사회(미국의 플로리다와 록퍼드, 스페인, 일본, 중국 등)를 발로 뛰면서 변해가는 삶의 속살을 들춰낸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에 인구 구조의 변화 추세와 고령에 관한 태도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하고(2장), 노화의 과학적 메커니즘을 설명(4장)하고 과학적 노화 방지가 가능한지를 논하기도(6장) 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8장) 살펴본 다음에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와 달라질 미래를 내다보며 끝을 맺는다. 자연(과학)과 사람(인문학)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구도다.

미래의 재난에 관한 통계 수치나 합리적 설명은 사람들의 행동을 크게 바꾸지 못한다. 제주도의 주민들이 큰 비가 오는데도 빨리 움직이지 않았던 것도 역사적 경험과 즉각적 느낌의 부재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주도에도 수해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몸으로 깨달은 이후에는 훨씬 더 많이 준비하고 상황이 발생했을 때 훨씬 더 효율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이 책의 강점은 간접적으로나마 고령화 사회의 삶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독자에게 달라질 세상의 느낌을 전하려고 한다. 저자 피시먼의 목적은 그러한 경험과 느낌을 매개로 '개인의 삶을 역동적으로 변하는 세상과 연관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개의 큰 주제가 떠오르는데, '개인의 삶'과 '변하는 세상'이다.

이 책은 주로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 삶의 배경이 되는 변하는 세상을 그려내려 한다. 명시적으로 고령화의 배경이 되는 사회 경제적 구조를 다루지는 않지만, 피시먼이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갈등과 적응의 심리적·사회 문화적 구조를 은연중에 그려내는 방식을 취한다. 그 갈등과 적응의 구도에는 돌보는 이와 의존하는 이, 여성과 남성, 젊은이와 늙은이, 자식과 부모, 노동자와 회사, 회사와 회사, 제3세계와 제1세계, 가족과 국가 사이의 관계가 포함된다.

피시먼은 "고령화 사회의 특징은 세계화 시대의 체크리스트와 많이 닮았다"고 하면서도 변하는 세상의 구체적 구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고령화의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갈증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라는 세계화의 현상이 만들어내는 문제를 보여주는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김희정·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와 21세기 한국 젊은이들의 삶의 애환과 사회 경제적 배경을 그린 <88만 원 세대>(우석훈·박권일 지음, 레디앙 펴냄)와 함께 읽는 것이 좋다.

이제 좀 더 깊이 읽어보자. 다양한 독서 방식이 있겠지만 내 경우는 고령화가 진행되는 동안 변해가는 세상과 개인의 삶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틀을 찾아내는 것이 깊이 읽기의 목적이었다. 개인은 언제나 세상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리되지 않는 둘 사이의 관계가 변해온 양상은 무척 중요했다.

먼저 인구 구조가 변해 온 추세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보통 인구통계학에서는 인구 구조가 3번의 큰 변천을 겪었다고 한다. 1단계는 선사와 역사 시대를 통틀어 인류가 살아온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기로 느닷없이 찾아오는 역병, 기근, 전쟁으로 대부분이 단명했던 시기다. 갓 태어난 아이가 죽는 일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적 경험이었고 거의 모두가 노화를 경험하기 전에 죽었다. 노화와 죽음이 분리되기 이전의 짧은 삶들로 구성된 시기다.

농업 혁명이 시작되면서 변화가 시작되지만 인간의 수명은 여전히 20세 전후였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일부 지배 계층의 수명이 노화 현상이 관찰될 만큼 길어졌다. 이제 노화는 지혜의 상징이 되었지만 에너지를 생산하는 노동 계급의 삶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산업혁명으로 더 많은 부가 축적되었고 오래 사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전체 인구의 연령 구성을 바꿀 만한 것은 아니었다. 고대 로마 시민의 평균 수명은 25세였고, 아무런 물질적 부족 없이 살았을 황제들은 35년, 조선 시대 왕들은 평균 43년을 살았을 뿐이다.

2단계는 인구 대부분의 영양과 주거 조건이 개선되고 공중 보건 사업과 항생제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죽이던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작된다. 이로써 인구 구조의 큰 변화가 생긴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장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세상에 관한 지식과 인생의 지혜가 축적되는 기간도 늘어나고 이에 따라 정보와 지식의 질적 개선이 보다 쉽게 이루어진다. 정보 통신 혁명으로 그 추세는 더욱 가속된다. 지식과 정보의 양과 질이 개선되고 그것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새로운 통찰이 생기고 인간 생명에 관한 지식과 정보도 급속히 늘어났다. 이 지식과 정보가 생명공학으로 유입되면서 인간 수명의 연장은 더욱 가속된다.

3단계는 수명이 늘어나면서 이전에는 드러나지 않던 심장병, 암, 당뇨 등 퇴행성 질환이 문제가 되는 시기이다.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에이즈(AIDS),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광우병, 조류독감 등 새로운 전염병에 대한 공포도 이 시기의 특징인데 한꺼번에 수백만 또는 수천만 명이 죽어나갔던 흑사병과 인플루엔자 등 과거의 역사적 경험이 그런 공포를 더욱 부추긴다. 하지만 인간 수명의 증가 추세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그 증가 추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증거와 주장도 있지만, 지금의 추세는 날마다 평균 수명이 5시간씩 늘어나는 양상이다. 그래서 <회색 쇼크>의 저자 피시먼은 4단계로 퇴행의 지연이 가능해진 시기를 상정한다.

이제 고령화라는 현상이 어떤 자연적·문화적 맥락에 놓여있는지가 좀 더 분명해졌다. 고령화는 사람들이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 축적된 부와 권력을 분배하는 양식, 생명과 질병에 관한 이해와 통제, 정보가 축적되고 유통되는 방식의 변화 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령화는 사람의 몸이라는 생물학적 존재를 둘러싼 자연 생태, 사람들이 자연과 상호 작용하여 체득한 앎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유통되는 지식 생태, 그리고 그 앎의 유통을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삶의 모습인 문화 생태가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생겨난,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과거의 틀 속에서 이해하려는 태도는 허망하다.

고령화는 자연과 문화의 모든 현상들을 인간이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운데 생겨났다. 실제로 인간이 발명한 소독제와 항생제는 생명 현상의 중요한 국면을 통제했고 인간 수명 연장에 크게 공헌했다. 하지만 저 출산과 고령화의 문제를 그처럼 단순한 인과 구조로 설명하고 해결할 수는 없다.

고령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것이 왜 문제인지부터 새로 물어야 한다. 그래야 그 문제를 보는 새로운 틀(관점)이 생긴다. 인구가 늙어 가면 소수의 젊은이가 다수의 노인을 부양해야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식의 발상은 진실의 일면을 담고 있기는 해도 무척 다양해지고 있는 노년의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결과다. 노인을 복지의 수혜자로 복지를 단순한 비용으로 보는 한심한 보수주의의 시각으로는 고령화하는 세상을 제대로 살아낼 수 없다.

ⓒ프레시안(손문상)

우리는 고령화라는 주제의 연극을 감상하는 관객이 아니라 그 무대의 주인공들이다. 이 책은 간접적으로나마 그 주인공들의 경험과 느낌을 전해준다. 읽어가다 보면, 고령화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기보다 나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동적인 '흐름'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이라는 상투적 구호에 맞춰 노년을 '설계'하기보다는 다소 불안하더라도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노령화의 흐름을 건강하게 이끌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고령 인구의 대부분이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렇게 발상을 전환하면 회색의 충격이라는 음울한 이미지는 노년들의 유쾌한 반란이라는 경쾌한 이미지로 바뀔 수도 있다. 인류는 농업 혁명, 산업 혁명, 정보 혁명을 넘어 지금 실버 혁명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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