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남쪽으로 튀어!>에 나오는 골 때리는 부부를 만나고 싶었다. 오쿠다 히데오라면 가능하다. 소설을 꼭 진지하게만 써야 할 필요가 있는가. 힘 빼고 편안하게 읽어보자. 웃어라, 울어라, 그렇지만 마지막에 남는 감동이나 깨달음만큼은 꼭 챙겨라. 이게 그의 작법 아닐까?
나는 그게 좋았다. 이런 작가도 있어야 하는 법. 더욱이 이번 소설의 제목은 입맛을 당길만하다. <꿈의 도시>(양윤옥 옮김, 은행나무 펴냄). 오호, 그가 또 뭔가 일을 저지를 모양이다.
웬걸, <꿈의 도시>는 달콤하고 흥미진진한, 누구나 기대하는 꿈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차라리 악몽이다. 너무나 추악하여 차라리 모른 척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가상 도시를 배경으로 삼고 있으나, 일본 어느 곳이나 다 이럴 듯싶다. 아니, 놀라운 것은 꼭 우리네 이야기 같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 읽기가 괴로웠다. 악몽을 읽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왕이면 적당하게 야하면서도 적절하게 환상적인 꿈 이야기를 풀어놓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교양 있는 척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이런 유 아니겠는가.
▲ <꿈의 도시>(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은행나무 펴냄). ⓒ은행나무 |
꿈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착각하지는 마라.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 꿈 꾼 것은 아니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더러운 욕망이 넘실거리는, 온통 썩은 내가 진동하는 도시가 되고 말았다. 나오는 인물의 면면이 다 그렇다.
야마도모 준이치. 시의원이다. 우리로 치면 국회의원도 욕심 내볼 만한 상황이 되었다. 아버지한테 지역구를 물려받은 데다 각종 이권에 개입해 회사를 키워왔다. 후원해주는 인물들은 야쿠자 출신의 토건 사업가다. 큰 꿈꾸고 있으면 자기 관리 들어야가야 한다. 덜 먹고 더 손해 보더라도 이미지 잘 꾸며놔야 더 큰 자리 노릴 수 있다. 그래야 그동안 본 손실을 메우고도 남는다.
그런데, 이 인물 영 아니올시다, 다. 젊은 비서를 애인으로 두고 있는데, 아내는 쇼핑 중독에 알코올 중독에 이르고 있다. 그래도 결혼 생활은 유지한다. 선거 때, 아내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다. 일이 자꾸 틀어진다. 은퇴한 시의원이 이권을 나누자고 하고 자기 아들을 시의원에 출마시키려 한다. 산업 폐기물 처리 시설로 한건 올려야 하는데 시민단체가 물고 늘어졌다.
일을 세련되게 처리해야 하는데, 야쿠자 출신의 토건업자가 끼어들며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거기에 개입하게 된다. 안팎으로 잘 되는 일이 없다. 어디선가 본 인물이지 않은가. 자꾸 눈을 다른 데로 돌리지 마라. 청문회만 하면 다 들통 나서 망신만 당하고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우리네 정치인과 똑 닮았다. 남의 이야기 아닌 듯하다고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아이하라 도모노리. 우리로 치자면 사회복지사다. 한동안 생활 보호비 수급 대상자 선정에 너그러웠던 시가 태도를 바꿨다. 시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기존 대상자 가운데 부적격자를 골라내고, 새로운 대상자 선정은 까다롭게 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아마도 복지는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누가? 누구겠는가. 잘난 시장님이시겠지.
하여튼 깐깐하게 굴었다. 이혼하고 일 안하면서 아이들 키우는 여성들을 주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일자리 알아보라, 전 남편한테 양육비 받아내라 들들 볶는다. 그 가운데 우연히 매춘도 한다. 기반 시절이 별로 없는 도시인지라, 용돈 벌 겸 시간 메울 겸 낮에 잠깐 즐기려는 유부녀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자신도 이혼남이다. 오래 굶었다. 그래서 욕망의 하수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공무 시간 중에 매춘하는 담력이 대단하다.
그렇다고 일을 등한히 한 것은 아니다. 돈 내지 못해 전기 끊기고, 난방 안 나오는 집에 우울증 앓는 실업자가 병약한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단호하게 생활 보호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한다. 그 와중에 할머니는 동사한다. 사단은 여기서 났다. 중장비 모는 일을 했던 그 남자가 덤프트럭을 몰고 그의 차를 들이받으려 한다. 이 이야기는 기억해놓아야 한다. 끝에 다시 말할 터니.
뭐 하나 제대로 갖추어진 것 없는 동네 지긋지긋하다. 탈출구는 도쿄로 대학 가는 길밖에 없다. 웬만한 수준이 되는 대학이 아니면 도쿄로 보낼 수 없다고 부모가 이미 공언한 마당이다. 참아야 한다. 연애질도 폭주족과 노는 짓도. 오로지 공부밖에 없다. 그런데 젠장 컴퓨터 중독증 환자한테 납치되고 만다. 이 꿈 많은 소녀의 이름은 구보 후미에.
한때 폭주족으로 이름을 날렸다. 애 딸린 여자랑 연애하다 덜컥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는데 결국 이혼했다. 되는 일이 없다. 야쿠자가 만든 방문 판매 회사에 들어가 역전의 꿈을 키운다. 말이 방문 판매이지, 주로 노인들만 사는 집이 방문해 사기로 판매하는 업이다. 그래도 사장한테 인정받고 월급도 쏠쏠히 올랐다. 같은 일을 하는 폭주족 선배가 본보기이다. 그는 승승장구다. 근데 인연의 끈이 그의 목을 조른다. 선배가 사장을 죽였다. 자수하라고 설득했다. 몇 차례 지연되었지만, 선배가 결심했다. 마침내 가토 유야는 차를 몰고 경찰서로 간다.
한명 더 있다. 애들 다 키워놓았더니 대처로 나가버렸다. 혼자 살며 근근이 생활하다 한 신흥 종교에 가입했다. 위안을 얻었다. 그런데 다른 교파와 벌인 싸움에 휘말리며 직장을 잃었다. 그 와중에 노모를 모시고 왔다. 삶의 마지막을 누추한 병원에서 보내게 할 수는 없었다. 이것저것 사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나같이 제대로 된 인물이 없다. 시간적 배경이 황량한 겨울일수밖에 없다. 움츠리고 기어들고 텅 비어 있고 쓸쓸한 것들로 가득하다. 이러니 꿈의 도시가 아니라 악몽의 도시다. 이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꿈이 성취될 리 없다. 산산이 부서지게 마련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잔인하다. 이들의 꿈을 아예 박살내버린다.
시청 직원의 차를 덤프트럭이 들이받아 연쇄 추돌이 벌어졌다. 미친놈이 여고생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트렁크에 넣고 이동하다 사고가 났다. 트렁크가 열리면서 여고생이 기어 나온다. 경찰서가 눈에 보인다. 자수만 하면 된다. 그런데 추돌 사고가 났다. 시동이 꺼졌다. 여기서 잡히면 자수하려 했다는 말을 믿지 않을 터다. 시동을 걸었더니 다시 차가 움직였다. 희망이 보였다. 그런데 차가 다시 멈추었다. 사고 현장에 경찰차가 달려온다. 병약한 어머니가 홀로 누워있다. 집에 얼른 가야한다. 근데 사고를 당했다. 어머니를 어찌 해야 하는가. 소각로로 태운 트럭 타고 가던 시의원도 사고를 당했다. 현장에 있으면 끝장이다.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간다. 정말, 본 사람이 아무도 없을까.
작품을 덮고 나면 그저 입이 떡 벌어진다. 어쩌면 어느 날 똑같은 일이 우리 사회에서도 벌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답답해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악몽의 도시를 다시 정감 넘치는 공동체로 바꾸려면. 오쿠다 히데오라고 어찌 그 답을 알겠는가. 아픈데 헤집어 놓기만 했다는 원망이 든다. 그래서 자꾸 속았다고 푸념만 늘어놓게 된다. 당신이 이런 식의 소설을 쓸 줄은 몰랐다고. 하긴, 그래서 그가 뛰어난 작가인지도 모르겠다. 독자들의 기대를 배신할 줄 아니까.
<꿈의 도시> 읽고 두루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 삶의 기반을 잃어가는 지역들을 되살릴 방법을. 토건 세력에게 옴짝달싹 못하는 지방 권력의 민주화를. 거짓위안을 내세우는 사이비에게 위안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줄 방법을. 안일하고 나태한 공무원들이 공복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을. 꿈으로 도망가기 보다는 악몽이라고 깨닫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일지 모르겠다. 오쿠다 히데오도 그것을 바라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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