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냐 제국이냐?

[中國探究] 중국의 베스트셀러 작가론

21세기 중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현상

2000년대 이후 중국에서는 국학열을 동반한 다양한 문화열이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세간의 이목을 끈 자들은 소위 슈퍼 밀리언셀러 작가들의 등장일 것이다. 리쩌허우(李澤厚) 등이 사상적 담론으로 8,90년대 중국의 문화열을 주도했다면,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이 작가들은 20세기의 담론과는 또 다르게 더욱 자유분방한 문학적 필체를 구사하고 있다.

이 작가군 중에서 유독 필자의 눈을 사로잡는 두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중텐(易中天)과 위치우위(余秋雨)이다. 이 두 작가는 여러 공통점이 눈에 띤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들이 문학적 팔고문(八股文)을 구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중국 고문에 나오는 글귀를 즐겨 인용하지도 않고, 문장의 메시지를 과거 속에 가두어 버리지도 않는다. 그들의 문장은 동서고금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특히 작가 자신의 창조적이고 독자적인 관점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이중텐은 역사학을 전공으로 삼아 글을 쓰지만 그의 글 속에서는 사상, 정치 그리고 문학적 색채가 함께 녹아서 강물처럼 흐른다. 위치우위는 희곡을 전공했지만 그의 글 속에서는 지리, 사상, 역사, 인물적 요소가 함께 응축되어 향기를 발한다. 오늘날의 중국인들이 왜 이토록 이들의 저작에 열광하는가를 살펴보면, 첫 번째 이유로 이들이 학문적 팔고문의 공허함과 조잡함을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본래 중국의 인문학은 문사철(文史哲)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향기와 색채를 발하는 데서 그 위대함을 논할 수 있었다. 본래 공자에 따르면 사람의 사람됨은 시(詩)와 음악(樂)의 감흥과 영감 속에서 완성되고,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역사의 문제와 정신을 놓쳐서는 안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중국지식인들이 예로부터 시 쓰기를 멈추지 않고, 음악과 예술을 노래하고, 철학과 사상을 논하고, 주어진 역사의 시대정신에 반응하는 전통으로 이어졌다.
▲ 이중텐

문사철의 도광양회

이러한 전통은 중국 근대시기 루쉰(魯迅)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중국인의 글쓰기가 문사철 융합의 형태에서 갑자기 파편처럼 부서지기 시작한 것은 부득이했던 근현대시기 중국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대외적으로는 당시 우월했던 서양 학문, 즉 신학(新學)에 대응하는 중학을 구축하기 위한 몸부림에서 시작되었고, 대내적으로는 시대의 강력한 정치 이데올로기 속에서 숨죽인 지식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글쓰기를 단축시킨 결과였다.

이중텐이 <제국을 말하다>에 말했듯이, 사상이 죽으니 학문만 설치는 꼴이 되었다. 사회주의 중국이 수립된 이후, 중국에서는 강력한 철학사상이 등장하고 혁명을 고취시키는 위대한 문학이 등장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체(政體)와 합일된 문학과 철학의 생기는 단명할 수밖에 없다. 혁명의 열기가 시들자 대학에서는 학문적 팔고문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중국 사회에서 더 이상 루쉰과 같이 호방하고 자유분방한 작가는 등장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루쉰을 열망하고 추종했지만 정작 중국에선 루쉰이 다시 등장하지 않는 듯 했다.

이중텐과 위치우위는 둘 다 1940년대 후반에 태어나서 젊은 시절에 문혁(文革)의 영욕을 온 몸으로 통과한 인물들이다. 이중텐은 청년 시절 자신해서 신장(新疆)으로 가서 노동에 힘썼지만 10년 넘은 세월 동안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체험하고 도망에 도망을 거듭하면서 겨우 한 몸을 지켜낼 수 있었다. 위치우이는 문혁 시절 부친은 우파로 몰려 고초를 겪고 숙부는 조반파의 박해로 자살하는 아픔을 겪었고, 본인은 하방의 세월 속에서 눈물을 삼켜야 했다.

이들 작가들의 위대함은 시대적 아픔을 공중분해의 넋두리로 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명대 철학자 왕양명이 "마닥뜨린 사태 속에서 단련한다(事上磨煉)"고 말한 적이 있듯이, 이들도 주어진 사태 속에서 기나긴 담금질을 통한 자신만의 사로(思路)를 정련시켜 갔다. 그 후 그들의 도광양회(韜光養晦)는 정치적 메시지로 부활하지 않았다. 그들의 글쓰기는 7,80년대를 도광양회의 침묵으로 지새우고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개화하기 시작했다.

중국 문인정신의 부활

필자는 이 두 작가의 수많은 저작 중에서 특히 2007년에서 2008년에 쓰여진 두 저서에 주목했다. 한 책은 2007년에 쓰여진 이중텐의 저작 <제국을 말하다[帝國的終結]>이고, 다른 하나는 2008년에 쓰여진 위치우위의 저작 <중화를 찾아서[尋覓中華]>이다. 이 시기는 2006년 중국 CCTV에서 다큐멘터리 <대국굴기>가 방영되면서 중국의 대국적 사유가 막 보편화되기 시작한 시점이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결산이 채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 걸려있다.

이 두 저작 속에서 필자는 중국의 문사철 융합의 글쓰기가 화려하게 부활한 흔적을 발견한다. 특히 위치우위의 글쓰기는 유려하다 못해 고금의 문풍지를 넘나드는 향기가 나는 듯하다. 그의 <중화를 찾아서>는 끊임없이 고대 중국의 인물, 도성, 유적, 문화들의 궤적을 따라가면서도 저자만의 독특한 해석과 메시지에 충실하고 있다. 중화 속에서 역사, 문학, 사상 등의 요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위치우위만의 향기를 발하고 있다.

이중텐의 <제국을 말하다>는 번뜩이는 저자의 지성이 고대 역사의 여러 단층 속에서 과감하게 빛을 발한다. 그의 붓놀림 속에서 진제국의 시황제는 영웅으로 추존되다가도 일순간에 추악한 인물로 전락하고 만다. 중국인들에게 이중텐의 등장은 현대적 팔고문을 따라 읽어 내려갔던 번쇄한 고사 속에 벼락이 친 것과 같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대목마다 명쾌한 결론을 내리고 특정 인물과 역사에 대해 미추(美醜)를 경계를 분명하게 긋고 있다.

따라서 이 두 작가의 글쓰기는 부활적 성격과 이단적 성격이 중첩되어 있다. 문사철이 자유롭게 응축되어 작가만의 독특한 향기를 발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글쓰기는 고대 중국 문인의 전통이 화려하게 부활한 의의를 지니고, 반면 현대 중국의 팔고문적 글쓰기 속에서 거침없이 미추와 선악을 일갈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글쓰기는 분명 중국 서점가에서 새로운 바람이자 이단적 조류이다.
▲ 위치우이

중화냐, 제국이냐

이중텐의 위대한 점은 그가 제국의 필연성을 논하면서 동시에 추악함과 부족함을 동시에 논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글쓰기는 분명 그가 정통(政統)에서 한발짝 벗어나 다름대로 고대 문인의 학통(學統)에 충실한다는 증거이다. 그는 <제국을 말하다>의 서문에서 "은의 멸망은 문화의 멸망이고, 주(周)의 멸망은 제도의 멸망이다. 그리고 청의 멸망은 문화와 제도의 멸망이다"고 단정짓고 있다.

주(周)의 멸망이 제도의 멸망이라고 한 점은 제국의 등장에는 반드시 중앙집권적 체제가 확립되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秦) 제국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이중텐은 진 제국의 폭정은 부득이했고 또한 고명(高明)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부득이했기 때문에 제국이 등장했지만 고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15년만에 수명을 다하게 되었다.

또한 한 제국은 소프트한 정책으로 의해 광범위한 인민의 지지를 얻은 듯 보였지만, 통치이데올로기의 경직성으로 후대 중국 왕조의 학문이 활력을 잃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 제국의 '독존유술, 파출백가(獨尊儒術, 罷黜百家)'를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의 연장선상에 이해했다. 이로 인해 역대로 제국의 제도는 '독존유술'로 지속될 수 있었지만 '파출백가'로 인해 활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는 일갈한다. '독존유술' 이후 중국의 학술계는 사상은 드물고 학문만 존재했고, 지혜는 드물고 지식만 난무하게 되었다고.

위치우위 역시 문화적 다원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중화를 찾아서>에서 중국 역사 속에서 자행된 문자옥(文字獄)의 폐해를 끊임없이 되새기고 있다. 그는 진시황 이후 폐쇄될 수밖에 없었던 직하학궁(稷下學宮)을 언급하며 애닲아 했다. 그는 직하학궁의 학자는 관직을 맡지 않았고 관방과 독립을 유지하면서 학문과 언론의 면에서 자유로웠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의 추적은 문혁의 상처까지 언급하며 끝을 맺고 있다.

위치우위는 문화적 혼혈이 주는 생명력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졌다. 그는 한족이 아닌 역사적 인물이나 민족들, 예를 들면 당왕조의 창건자들에 흐르는 선비족의 전통, 그리고 당나라 거리에 물씬 풍겼던 다원 문명적이고 문화 혼혈적인 자신감과 똘레랑스를 넘어선 상호 숭배의 역사는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문명이 될 수 있었던 토양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중텐과 위치우위는 둘 다 역사적 반사(反思) 속에서 새로운 교훈과 생명을 발굴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중텐은 중화제국의 역사 속에는 자고로 공화제의 전통이 매우 박약했다고 기술하였다. 위치우위는 중화의 위대함은 민족이나 정권에 있지 않고 중화역사 속에 등장한 위대한 인물의 등장과 그 속에서 발현된 문화적 힘에서 찾으려 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사마천, 굴원, 두보 등은 위치우위식으로 새롭게 조명되었다.

혹자는 이들이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글쓰기를 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적어도 이들의 이 두 저작 속에서 중국의 새로운 글쓰기의 희망을 발견한다. 상업적 글쓰기에 대한 비판은 그들이 도광양회를 통해 응축해낸 문인적 향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중국인들의 책상 위에 퍼진 향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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