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와 대기업의 돈, 어디로 가는지 보라"

[해외시각] "美 민주당, 월가 시위 끌어안을 주제 못돼"

월가의 탐욕과 소득불평등이 극심한 미국 사회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월가 점령 시위'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이 시위는 보스턴, 시카고, 로스앤젤레스를 넘어 미국 수도 워싱턴DC를 비롯한 전역 20개 도시로 확산되고, '유럽의 수도'로 불리는 벨기에 브뤼셀에 지난 6, 7월 스페인 등에서 분출했던 '분노하라' 시위가 다시 불붙었다.

오는 15일에는 브뤼셀과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를 비롯해 영국, 이탈리아, 스위스,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호주, 홍콩, 브라질 등 전 세계 25개국 약 400개 도시에서 동시에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벌어질 예정이다.

이에 따라 당초 이 시위에 대해 "별 것 아니다"면서 조롱하던 미국 등의 서구 주류 매체들이나 정치인들도 향후 사태 추이에 대해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지난 6일 폴 크루그먼 교수는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월가 점령 시위에 대해 구체적인 정책적 요구가 없다고 조롱하기도 하지만 월가 점령 시위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면서 "구체적인 정책작업이야말로 정치인들이 할 몫이 아니냐"고 반박했다.

나아가 크루그먼 교수는 "월가점령 시위가 일부 정치인들이 알아서 했어야 할 마땅한 일들을 하도록 압박을 한다면,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또한 그는 "오바마와 민주당은 월가 시위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그동안 친월가적인 정책으로 망쳐버린 개혁에 나설 기회를 다시 맞고 있다"고 현실 정치와 연결시킨 의미도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논객 로버트 라이시는 월가 점령 시위가 민주당에 큰 영향을 주는 운동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실망감으로 변할 수 있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이미 월가와 대기업의 돈에 자유롭지 않은 오바마와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월가 시위를 끌어안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다음은 <월가점령 시위와 민주당(The Wall Street Occupiers and the Democratic Party)>라는 이 논평(☞
원문보기)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오바마 대통령이 월가 시위에 대해 지지 발언을 했지만, 그와 민주당이 월가 시위의 요구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AP=연합
월가 시위가 진정한 운동이 될수록, 민주당은 '소화불량'

월가 점령 시위가 티파티 운동이 공화당에 끼친 만큼 영향력 있는 운동으로 발전할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회의적이게 만드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티파티는 공화당 체제에 양날의 칼이 되고 있다. 새로운 동력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무소속 유권자를 끌어들이는 데는 방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월가 점령 시위는 민주당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부자들이 공정한 세금을 내라는 월가 시위의 초기 구호는 백만장자에게 5.6%의 증세와 연소득 25만 달러 이상에 대한 부시감세 연장을 중단하는 등 민주당의 계획과 맞아떨어진다.

월가 시위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의 주제로 삼을 만한 주장도 하고 있다. 오바마는 기자회견에서 "오늘날 옳은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옳지 못한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보상을 받고 있다"면서 "월가 시위를 촉발한 좌절은 2012년 대선에서 정치적인 요구로 표현돼 우리가 다시 미국의 옛 가치를 회복하는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월가 점령 시위가 진정한 운동으로 힘이 결집된다면 민주당은 공화당이 티파티를 끌어들인 것처럼 이 운동을 동력으로 삼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어쨌든 민주당도 공화당처럼 선거자금의 상당 부분이 월가와 기업들에게서 나오는 게 현실이다. 월가와 재계는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PR과 로비스트 부대를 대규모로 거느리고 있다.

포퓰리즘을 버린 민주당의 역사

현실적인 어려움은 사실 그 이상이다. 역사를 잠깐 살펴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세기 초반 민주당은 경제적인 포퓰리즘을 끌어안는 것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민주당은 당시 과도한 산업집중이 경제를 마비시키고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다고 공격했다. 1912년 대선에서 우드루 윌슨은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에 대항한 십자군 전쟁을 벌이겠다"고 공언했다.

몇년 뒤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노조 설립 허가, 주당 40시간 노동, 실업급여, 사회보장 등의 정책으로 기업과 금융 권력을 공격했다. 그는 부자들에게 높은 소득세율도 제도화했다.

나아가 루스벨트는 1936년 월가와 대기업들이 국민 전체를 노예로 삼고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산업독재에 의해 민주주의가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그는 대기업과 금융산업이 자신을 축출하려고 나섰다고 국민에게 직접 호소했다.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한 후보를 쫓아내기 위해 어떤 세력이 이처럼 단결한 적이 없었다"면서 "그들은 똘똘 뭉쳐 나를 증오하지만, 나는 그들의 증오를 환영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 민주당은 포퓰리즘을 포기했다. 탐욕스러운 기업인들과 사악한 금융인들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들은 미국 대선에서 사라졌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경제가 크게 달라졌다는 점도 작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는 크게 번영하면서 중산층이 폭넓어졌고, 빈부 격차가 감소했다.

1950년대 중반 미국의 민간 부문의 노동자 중 3분의 1은 노조원이고, 생산직 노동자들은 임금과 복지 혜택이 크게 증가했다.

당시 케인스주의 정책은 경기침체를 방지하는 정책으로 널리 인정받았다. 재정 및 통화정책으로 경기순환을 조절할 수 있고, 성장의 과실이 널리 분배되는 데 누가 경제적 포퓰리즘을 내세우겠는가?

하지만 민주당이 포퓰리즘에 대해 점점 불편하게 느끼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월가와 대기업을 불신하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기성체제를 부정하고 정부를 불신하는 신좌파가 태동한 것이다. 1968년 리처드 닉슨의 대선 승리는 민주당과 신좌파의 깊은 분열 속에서 이뤄졌으며, 이 분열은 향후 수십년 지속됐다.

반면 뛰어난 이야기꾼인 로널드 레이건은 포퓰리즘의 분열을 적극 이용했다. 레이건이 미국의 우익 포퓰리즘을 발명한 것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우익 포퓰리즘의 목소리를 가장 키운 인물이다. 그는 "정부는 해결책이 아니라, 그 자체가 문제"라는 구호를 반복해서 외쳤다. 레이건은 워싱턴의 정치인들과 거만한 관료들이 경제를 마비시키고 개인의 성취를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대중에 뿌리를 둔 정치적 기반을 다시 얻지 못했다. 빌 클린턴은 1992년 대선에서 "탐욕의 세력에 맞서 중산층을 위해 싸우겠다"고 약속하면서 승리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레이건과 조지 H.W 부시가 남긴 막대한 재정적자를 물려받아 싸움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클린턴은 국민건강보험을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못한 뒤 "큰 정부의 시대는 지났다"고 선언한 뒤 스스로 복지 정책을 축소했다.

오바마의 재무장관은 '월가의 주 워싱턴 대사'

오늘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현대사에 등장한 민주당 대통령들처럼 좌파 포퓰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한때 월가에 대해 "살찐 고양이들"이라고 비난하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지만, 예외적인 발언이었을 뿐 그 이후 오바마의 월가 정책은 문제투성이었다.

오바마는 월가와 대기업에 대해 매우 친화적이었다. 티머시 가이트너를 재무장관 겸 사실상 월가의 주 워싱턴 대사에 임명했고, 부시가 임명한 연준 의장 벤 버냉키를 연임시켰고, GE의 제프리 이멀트를 일자리 창출 위원장에 임명했다.

모기지 채무 조정과 공적자금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 강화 방안을 요구하기는커녕, 월가의 구제금융에 대해 어떤 조건을 붙이는 것을 꺼려한 것도 다름아닌 오바마 대통령이다.

월가 점령 시위가 민주당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무리 좋은 대통령과 의원들이 있다고 해도 워싱턴 정치판에서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좌파 진영의 압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당은 공화당이 티파티 운동을 끌어안듯,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끌어안도록 강요당한 것처럼, 좌파 포퓰리즘을 포용할 것 같지 않다. 돈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보라. 그리고 역사를 돌이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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