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지난 8월 5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이후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불법 인터넷 입양이 늘어나고 있고, 입양기관의 시설에 맡겨지는 아동이 급감하고 있으며 베이비 박스에 유기되는 아동도 급증하고 있다. 이 법이 시행에 들어간 지난 8월 5일 이후 가정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입양된 아동의 숫자는 사설 민간기관이 입양을 알선하던 때에 비추어서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흘려들을 수 없는 가슴 저린 이야기들이다. 긴급한 해결책을 우리 사회가 강구해야 한다.
이런 보도에는 종종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대한 비판들이 수반된다. 아마도 네 가지 정도로 그 논점들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 입양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입법 취지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불법 입양이 조장되고 있고 결과적으로 아동인권이 훼손되고 있다. 2) 미혼모가 자기 가족관계등록부에 아동을 등재해야 하는 것은 미혼모의 익명출산 권익을 침해하고 있다. 3) 입양가정조사제도의 도입으로 심사를 회피하는 입양예비가정들이 늘어나고 있다. 4) 비밀친생자 입양의 길이 막혀서 결국 입양자녀가 세월이 흐른 후 자신의 입양 사실을 알게 될 것을 우려한 예비입양부모들이 입양을 꺼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비판의 핵심이 결국 미혼모가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산한 아동을 등재하는 일로 귀착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혼모들에게 익명출산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쉬운 말로 미혼모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온 것처럼 출산 사실을 은폐하고 아이를 입양 보낼 수 있도록 하면, 상기한 부작용들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미혼모들에게 사실상 불법적 관행이었던 익명출산권을 법적으로 부여함으로써, 입양특례법을 사실상 개정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외통수의 해법 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을까? 그리고 그것이 우리사회가 선택할 올바른 길일까? 아니다. 되돌아가는 것은 답이 아니다. 새 길을 여는 것이 답이다.
개정된 입양특례법, 어떤 법이길래?
개정된 입양특례법에는 1) 입양을 촉진할 사안으로 바라보는 정신의 폐기, 2) 가정법원에 의한 입양허가제 도입, 3) 입양숙려제의 도입, 4) 입양가족에 대한 가정조사제도의 도입, 5) 입양인들의 출생기원에 대한 알 권리 보장, 6) 중앙입양원의 법제화 등 혁신적인 내용이 담겼다. 한 마디로 입양에 관한 우리 사회의 옛 질서를 무너뜨리고 미래를 재구성하는 정초를 놓은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개정된 입양특례법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의 핵심은 가정법원에 의한 입양허가제의 도입이다. 가정법원의 입양판결을 받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아동이 국가의 공부인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된 아동이어야 한다. 이 때문에 미혼모들은 자기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내고자 할 때 먼저 출생신고를 해야만 입양에 관한 법적 절차를 개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5~16세 사이의 청소년이 본인의 가족관계등록부 상에 자신이 출산한 자녀의 이름을 등재하는 일을 상상할 수 있는가? 한국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버젓이 자녀의 출산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 가족관계등록부를 가지고 결혼과 취업의 길에 나서는 일이 얼마나 험난할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누군가 그녀와 기꺼이 결혼하고자 하고 누군가 그녀를 편견 없이 고용하고자 하는 일 모두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보건복지부와 대법원은 궁여지책으로 미혼모들의 걱정을 덜어대는 예외적인 조치를 했다. 입양가정이 가정법원의 입양판결을 받은 후 이 아동을 자신들의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하는 순간 아동의 친생모-대체로 미혼모들인-의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이 아동에 관한 기록이 자동으로 삭제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조치에도 거듭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에 미혼모가 아이를 출생신고해서 입양기관에 넘겼는데, 이 아이가 장애가 있다든지 남자아이라는 이유 때문에 입양을 못 가고 시설로 가게 될 경우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 경우 미혼모의 가족관계등록부 상에 기록되어 있는 출산 사실은 삭제되지 못한다. 이런 걱정 때문에 미혼모들이 비밀 인터넷 입양을 하고, 아동을 유기하며 심지어 살해까지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출생증명서로 가족관계등록부를 대신할 수 없는 이유
바로 여기에서 미혼모가 아동의 출생사실을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리지 말고 대신 병원의 출생증명서를 법원에 제출해서 입양판결을 받도록 하면 어떻겠냐는 주장이 등장한다. 대부분 입양기관이나 입양기관들과 연루된 미혼모 시설들에서 터져 나오는 주장이다. 물론 이런 일을 걱정하는 일부 미혼모 당사자들로부터도 이런 목소리들이 제기되고 있다. 미혼모 당사자들의 이런 문제 제기는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이 무언가 해결책을 내어 놓기에는 너무 어려운 일이어서 가슴이 저리고 아프다.
한편 입양기관들이나 입양기관들과 연루된 미혼모 시설의 시설장이나 종사자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모습은 조금은 의아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기관들이 실상은 미혼모의 양육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사실상 그리 오랜 일이 아니고, 주로 입양 가능 아동을 확보하는 일에 진력했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입양기관이 운영하는 미혼모의 집을 일컬어 세계입양학자들이 '아기농장(Baby Farm)'이라고 칭했겠는가. 60년 세월 동안 앞장서서 낭만화시켜왔던 입양담론에 대한 진지한 반성적 성찰은 회피하면서 갑작스럽게 미혼모의 옹호자로 자처하는 모습 속에서, 기관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이 얼핏 엿보인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외국으로 보낸 해외입양인이 20만 명이니, 20만 이상의 친생모 혹은 원가족들이 입양으로 인한 결별의 상처에 내몰렸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외상 후 증후군(PTSD), 우울증, 정신분열증, 자살 충동으로 고통받거나 실제로 자살할 때, 이 땅의 입양기관들이 이들의 고통을 위해 치유사업을 벌이거나 재활을 위한 사업에 재원을 들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변해서 미혼모의 양육권이 새로운 사회의 화두가 되자 재빨리 자신들이 미혼모들을 위한 옹호자인양 나서는 모양새가 좀 그렇지 않은가. 그러면서 미혼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아동의 출생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입양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어 '그토록 고귀한 입양'이 잘 안 되고 있다고 한다. 또 미혼모의 권익도 침해하는 일이니 사사로운 민간병원의 출생증명서로 가족관계등록부를 대신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 봐서는 병원의 출생증명서로 가족관계등록부를 대신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우선 가정법원이 국가의 공부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재판을 개시할 수 있느냐는 매우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 있다. 두 번째로 병원의 사실상 사사로운 출생증명서가 이 아동의 출생 기원에 관한 유일한 문서가 된다면, 이는 우리나라가 1991년에 가입한 UN아동권리협약의 위반이다. UN아동권리협약 제7조 제1항에 의하면, 아동은 출생 즉시 등록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등록이란 국가의 공부에 등록되는 것을 말한다. 아동은 국가의 공부에 기록된 내용의 열람을 통해서 자신의 출생 기원에 대해서 알 권리가 있고, 국가는 그것을 보장해줘야 한다.
또 동 협약 제8조 제1항에 의하면, 아동은 이 출생 기원에 관한 정보에 기초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발달시킬 권리가 있다. 사람의 정체성은 엄마와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오랫동안 좀 못난 자식들을 향해 '아비 어미 없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해왔던가. 아비 어미를 모르면, 출생의 기원을 모르면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정체성을 제대로 유지 발달시켜가기 어렵다는 말이 아닌가. 출생의 기원에 대해서 알 권리 유보될 수 없는 인격권이자 인간 존엄의 보이지 않는 토대이다.
또, 만일 소위 정상 가정에서 출생한 아동에게는 국가의 공부에 등재될 권리가 보장되고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동에게는 병원에서 발급하는 출생증명서에 등재되도록 한다면, 이는 또한 UN아동권리협약 제2조 제1항이 명시하고 있는바, 모든 아동이 그 출생이나 부모의 신분 혹은 인종이나 종교로 인해서 차별받지 말아야 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 아동이 소위 정상 가정에서 출생했든지 미혼모에게서 태어났든지, 아동은 차별 없이 국가의 공부에 등재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UN아동권리협약은 우리나라가 조인한 국제조약이고, 국제조약은 국내법과 동등하게 혹은 상위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 점에서 UN아동권리협약은 사실상 우리나라의 법이나 다름이 없다.
익명출산이 필요없는 사회를 만들자
미혼모의 익명출산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서 아동의 출생 기원에 대해서 알 권리를 희생할 수는 없다. 미혼모가 익명출산이라는 사실을 은폐하는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자신이 낳은 아동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일은 정당화될 수 없다. 오히려 미혼모들이 더는 익명출산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 감으로써, 아동의 권익도 보호하고 미혼모의 권익도 침해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전망 안에서만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미혼모에게서 출생한 아동의 입양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미혼모 출산 아동을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할 것인가 병원이 발급하는 출생증명서로 그것을 가름하게 할 것인가를 가지고 논쟁을 하는 일은 현실적인 것처럼 보여도 결국 이는 누구의 권익을 침해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에 불과하다.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이 아니다. 미혼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교정하고 차별을 없애는 일에 전 방위적인 노력을 하는 것만이 해법이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견디다 못한 미혼모들이 내 낳은 자식을 입양으로 떠나보내고, 그것도 가족관계등록부에 아이의 이름이 등재되는 것이 무서워서 출생증명서로 대신하면 안 되겠느냐는 가련한 청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입양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편법을 만들고 그것이 마치 해법인 것처럼 주장하는 일을 제쳐 두고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에게 덧씌워진 편견과 차별을 걷어 내는 일에 긴급하게 사회적 역량을 모아가야 할 때다.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가 먼저 나서서 예산을 편성하고 미혼모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을 개선하는 일에 긴급하게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공익광고를 비롯한 다양한 해결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부양의무자제도를 철폐하고 미혼모가정에 대한 최저생계비 지원과 함께 주택바우처나 푸드바우처 제도를 만들어서 미혼모자가정이 건강하게 생존할 길도 조속히 열어 줘야 한다. 입양을 통한 아이와 결별이라고 하는, 일견 용이하고 편리해 보이는 해결책은 우리사회 내부에 쉽게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길 것이다.
여성이 아이를 출산하는 일은 그 어떤 경우에도 범죄가 아니다. 수치도 아니다. 만약 이것이 범죄이고 수치이면,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 도착한 아동의 존재는 무엇인가? 그가 범죄행위를 한 적도 없고 수치에 내어 몰려야 할 악행에 가담한 일도 없다. 누가 이 여성을 범죄시하고 이 아동에게 모멸과 수치를 덧씌우는가? 바로 우리 자신이고 우리 사회이다. 문제는 여성에게도 아이에게도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 혹은 우리 사회에 있다. 보건복지부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실의 은폐와 삭탈이라고 하는 예외적이고 비상식적인 조치를 한 일에 대해서 우리는 미안해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의식의 지평을 새롭게 가꾸어서 공무원들이 이런 편법을 만드는 일에 골머리를 썩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여성이 아이를 출산하는 일은 축하받고 격려받을 일이다. 그녀가 소위 정상 가정의 엄마든 혹은 미혼모든 엄마가 엄마로서 자기 낳은 아이의 양육을 결단하는 일은 존중받아야 할 일이다. 이뿐 아니라 지지와 사랑, 나아가 경제적인 지원까지도 받아야 할 일이다. 혼전에 출산한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하고, 또 그렇게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사실을 사실대로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해서 야단스러워 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이 맞다. 더는 익명출산이 아니고는 생의 길을 열어갈 수가 없다는 이들에게, 이젠 익명출산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해주는 일이 그리 대단한 꿈이 아니다. 북미대륙도 오세아니아대륙도 유럽대륙도 이미 다 그렇게 살고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이다. 기독교 신학과 신앙고백을 잠시 제쳐놓고, 사회적 정황에만 비추어 보면 마리아는 사실상 미혼모였다. 꿈에 나타나신 하느님의 깨우침에 따라 요셉은 마리아의 출산을 보호했다. 당시의 관습법에 따르면 마리아와 태중의 아기 예수는 마을 한가운데로 끌려 나와 온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돌로 쳐 죽임을 당해야 했었다. 그러나 미혼모 마리아와 미혼모의 아들 예수의 생명권은 보호받았다. 이것이 성탄절의 메시지에 대한 사회학적 해석이다.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아동은 부모의 사회적 신분에 상관없이 환영받고 보호받아야 한다. 그것이 따뜻한 사회이자 인간다운 사회이다. 태어나는 영아에게 모든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덧씌우는 어른들의 사회는 잔인한 사회일 뿐이다. 편견과 차별은 폭력을 배태하는 온상이자 그 자체가 폭력이다. 예수의 탄생 이야기는 당대의 폭군 헤롯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 예수의 출생지인 베들레헴과 그 부근 마을 일대의 두 살 미만의 모든 영아를 학살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내가 미혼모와 그 자녀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참여하고 있다면 나는 예수 탄생을 두려워해서 베들레헴과 그 주변 마을에 태어난 두 살 미만의 모든 영아를 학살했던 헤롯 임금의 잔인함에 참여하고 있는 일일 수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