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흑묘백묘(黑猫白猫) 논쟁

[임상혁의 법대로 영화대로]우회상장으로 유입된 대자본, 독이 될 것인가 약이 될 것인가

최근 들어 부쩍 영화계에 이상자본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 단위별 규모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이상자본이라고 하는 이유는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코스닥 상장업체를 통한 우회 주식상장을 통해 대규모 자본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주요 영화사로 꼽히는 사이더스FNH, MK픽쳐스가 대표적인 케이스. 이 같은 자본유입 방식은 국내 영화산업의 발전에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이러한 기류가 독으로 변질되지 않고 약이 되는 방법은 무엇인가. 〈영화와 저작권〉 〈영화와 표현의 자유〉의 저자 임상혁 변호사의 진단을 들어 본다. 〈편집자〉

또 한 해가 시작됐다. 늘 그래 왔듯이 지난 연말엔 각 언론매체들이 전체 혹은 부문별 10대 뉴스를 꼽으며 지난 1년을 정리했다. 영화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5년 최고 작품도 뽑았고, 최고의 감독과 배우도 뽑았다. 그러나 영화의 특성상 각자 마음속의 '취향'과 '주관적 감정'이 중요한 것인 만큼, '객관적'으로 좋은 영화를 골라 순서를 매기는 작업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주관적인 면에서 벗어나 좀더 객관적인 '산업'이라는 틀에서 본다면, 한국 영화산업에 있어서 지난 1년은 유난히 화제가 많았던 기간이었다. 그 화제들 중에서 특징적인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아무래도 '대규모 자본의 본격적 유입'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대자본의 유입을 놓고 영화산업 전체로 보아 급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산업'이라는 개념은 투자-제작-분배 등으로 폭 넓게 규정돼야 하는 것이고, 이에 따라 '산업화'라는 것 역시 예측가능성과 합리성으로 특징 지워져야 하는 것이라면, 결국 2005년은 투자 부문에 있어서 일시적인 호황이었을 뿐인가, 아니면 체계적인 투자라인의 형성인가 하는 협의의 논쟁으로 귀결되어야 할 것 같다.

2005년도 한국 영화계에 있어 '대규모 자본의 유입'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났다.

***3대 대기업 외 거대 통신사들의 자본 진입**

첫 번째는 주로 상반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대기업의 "직접투자방식"이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영화계에 있어서 실질적인 통치권자는 CJ, 동양, 롯데 등 3개 대기업이었다. 이들이 전국을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막대한 자본력에 근거한 멀티플렉스와 대규모 투자 집행이었다. 이들은 한국 영화의 투자, 배급, 유통라인을 완전히 장악한 후 소위 '와이드 릴리스' 방식을 통해 1년에도 수백억씩 막대한 이익을 창출했고, 이를 토대로 그룹 내 미운 오리의 위치에서 한국 산업 전체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르며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다.

지난 1년은 3대 대기업의 이 같은 활동에 자극받은 다른 대기업들이 만만치않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해였다. 특히 DMB 등 각종 매체기술 발달에 따른 '창구효과(window effect)'의 현실화를 눈앞에 둔 거대 통신회사들이 그 물꼬를 텄는데, SK는 최대 매니지먼트사인 IHQ에 150억 원을 투자했고, 이에 질세라 KT는 최대 영화사인 싸이더스FNH에 280억 원을 투자했다.

영화제작사와 매니지먼트사 간의 갈등이 표면화된 가운데 공개적으로 진행된 이러한 공격적인 투자를 놓고, 풍부한 자본과 유통망, 그리고 대기업의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영화가 한층 더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긍정론과 오히려 냉혹한 자본의 논리에 영화계가 내몰릴 것이라는 부정론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었다. 즉,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떠나갈지 모르는 자본의 속성에 영화계가 휘둘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코스닥 우회상장 방식의 자본조달 유행**

영화계가 자본의 논리에 빠져들었다는 논란은 두 번째의 자본유입 방식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올해 증권가를 뜨겁게 달군 엔터테인먼트사의 코스닥 "우회상장(back door listing)"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2005년 한 해 동안만 30개가 넘는 영화사와 매니지먼트사들이 '인수합병(M&A)'이나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줄줄이 코스닥에 성공적으로 입성했고, 이에 따라 주가가 급등하자 이는 영화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이슈로까지 등장했다.

1주에 500원 남짓하던 골프공 제조사가 몇 개의 엔터테인먼트업체를 인수하면서 불과 몇 달 사이에 4만 원이 넘는 황금주식으로 변하여 주가 이익실현율 4000%를 기록하는 등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주)팬텀이 그 정점에 있었다. 이러한 몇몇 황금주의 등장을 놓고 이제부터라도 실적을 중심으로 한 옥석 고르기 작업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최대의 화두가 되어 연말연시 증권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사실 별 볼일 없는 회사가 코스닥의 우량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변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의외로 간단하다. 먼저 자금을 가진 전주는 코스닥 기업 중에서 가장 실적이 없는, 그래서 가장 주가가 낮은 회사를 골라 대주주가 되어 경영권을 확보한다. IMF 직후 급조된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실적 미달로 상장폐지의 대상에까지 내몰린 기업들이 주된 타깃이다. 그 다음 엔터테인먼트 기업인수를 시작하는데, 여기에서 핵심 키워드는 '수직 계열화'다. 매니지먼트사-영화제작사 혹은 드라마제작사-유통사를 차례로 인수하면서 수직계열화 구도가 완성되면 아니 수직계열화의 계획만으로도 주가는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한쪽으로는 영화사나 매니지먼트사를 계속 신설해 놓고 언제든지 주가 띄우기용 M&A 매물로 대기시킨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아시아를 휩쓰는 한류 열풍과 우리나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서 콘텐츠 문화산업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코스닥 우회상장 열기는 대기업 자본보다 훨씬 더 위험한 측면이 있다. 대기업 자본에 비해 코스닥 우회상장에 동원된 자본은 그 출처부터 불분명한 것이 많다. 영화와 전혀 관련이 없는 단순한 기업 사냥꾼이나 주식 작전세력으로 의심되는 자본도 상당수 끼어 들어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자금은 주가 띄우기를 통한 이익실현만 완료되면 즉시 빠져나갈 가능성이 많은 돈이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지고 주가가 폭락하는 경우에는 이에 동원된 영화사들이나 매니지먼트사들은 국민들로부터 집중적인 비난의 포화를 맞을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자본은 물과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평소에는 그 고마움을 잘 느낄 수 없을 뿐더러, 본래 속성이 무색무취 할 뿐이고 아무런 색깔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훈훈하게 하는 재목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가슴을 도려내는 비수로 쓰이기도 한다. 또한 자본은 물과 같아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끊임없이 순환한다. 즉 우거진 골짜기에서 출발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 쉼 없이 이동하는 것이다.

올해에 유입된 자본들이 계속 영화계에 남아 '생산-분배-확대 재생산'이라는 선순환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산업화를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니면 영화계를 단순한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본의 투기장으로 변화시킬 것인지는 결국 영화인들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기회가 한국영화의 염원인 산업화를 이룩하는 데에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만일 자금이 투명하게 집행되고 또한 이익 실현에 성공해 투자자에게 적정하게 되돌아 갈 수 있다면 지금 유입되는 자본들은 영화산업의 선순환구조에 기여할 중요한 토대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자금 집행에 있어서 예측가능성이 실현되지 못하고 나아가 합리적인 분배에 실패한다면 이는 결국 그 동안 충무로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개인 자본들의 폐해를 똑같이 반복하는 일일 뿐이다.

나와 상관없는 돈은 검은 고양이고, 내 주위에 있는 자금은 흰 고양이라고 굳이 목소리 높여 따질 필요가 없다. 쥐를 잘 잡는 고양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영화인들의 몫이니까.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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