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심이동에 대하여**
연극은 공길의 드라마다. 공길은 웃음과 몸을 팔며 왕에게 세속적 권력을 하사받고 그 권력을 공고히 하고 확대해 나간다. 그 욕망의 끝에서 그는 광대의 진정한 권력은 세속적 권력에 기대서 확보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에서 중심은 장생에게 넘어간다. 그가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 광대패를 뛰쳐나가고, 저자거리에서 왕을 가지고 놀고, 왕 앞에서 왕을 웃기고, 공길이 때문에 왕과 대립한다. 공길은 장생의 욕망에 동기를 부여해준다. 그는 수줍고 다소 우유부단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이동은 사이비 이동이다. 왜냐하면 연극과 영화의 진정한 중심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들레르식 표현을 빌자면 웃음으로 깨무는 자들이 진정한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광대이다. 그들은 시대와 공간을 떠나 이 곳 저 곳 이때 저때 속속들이 곳곳에서 출몰해서 웃고 떠드는 우리와 같은 필부필남이다. 이들이 중심이다. 연산, 녹수, 장생, 공길, 육갑, 칠득, 팔복 이들은 모두 광대이다. 그러므로 중심은 예초에 없다. 중심이 있지만 그 중심은 처음부터 해체되어 있다. 누구도 중심이고 누구도 중심이 아니다.
***2. 저 어둠 뒤에 있는 것. 블랙 아웃/화이트 아웃**
연극에서 공길은 죽기 전 연산에게 부탁한다. "왕이여, 나 죽으면 한강수에 던져주오. 흘러가다 바람맞아 살랑살랑 춤도 추고, 너울너울 재주도 넘고 흘러흘러 아주 물이 되게. 저 죽은 줄도 모르게. 왕이여 부탁이니 나를 위해 한번만 더 웃어주오. 한번만 더."
공길이 죽고 나자 연산이 묻는다. "길아, 저 어둠 뒤에 무엇이 있길래 니가 가니?" 연산의 독백이 끝나고 암전이 찾아온다. 이어 가면을 쓴 광대들의 군무가 이어지고 그 군무도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그 어둠 속으로 우습게 생긴 큰 가면이 고개를 들이밀며 웃는다. 히히히!! 블랙아웃!
영화의 엔딩에서 장생과 공길은 다시 태어나도 광대로 태어나길 소망한다. 그리고 둘은 줄 위에서 하얗게 비상한다. 화이트 아웃! 그리고 이어지는 광대들의 노는 모습.
어둠 뒤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연극과 영화 모두 같은 답을 주고 있다. 그것은 웃음이고 놀이이다. 왜?
***3. 위대한 잘못하기**
연극은 뒤로 가면서 응축되고 영화는 뒤로 가면서 확산된다. 그러나 응축 없는 확산은 허무하고 확산 없는 응축은 자폐적이다. 작품을 한 수준 높이는 잘못들이 있다. 논리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삶의 오의나 신비를 잡아내는, 자본과 창작의 논리를 벗어난, 어떤 위대한 구멍. 비논리의 논리, 꽉 찬 구멍들. 그 구멍들을 막은 것은 무엇인가?
사진 김정민/프레시안무비 기자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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