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이 시대의 광대들이다

[이슈 인 시네마]연극 〈이(爾)〉와 영화 〈왕의 남자〉-원작자 김태웅의 감상기

12월 18일 용산으로 새로이 이전한 국립중앙박물관내 극장 용에서는 원작 '이(爾)'의 연극공연과 연이어 영화 '왕의 남자' 시사회가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연극에 출연한 배우에게 화환을 증정하는 깜짝 행사도 있었다. 이날 시사회는 시작부터 수상했다. 영상기에 문제인지 필름 자체의 문제인지 아니면 귀신의 조화인지 사운드가 앵앵거리며 목을 빼고 있는 관람객의 애간장을 태웠다. 이 사태를 무마해보겠다고 제작사인 이글픽쳐스의 대표와 본인이 무대에 올라가 말도 안 되는 만담으로 재롱까지 피워야 했다. 그날 원작자도 제작자도 광대가 되었다. 위기를 웃음으로 받아치는.... 재롱 덕인지 시사회는 무사히 끝났다. 원작자로 시사회 후기를 적어본다.

***1. 중심이동에 대하여**

연극은 공길의 드라마다. 공길은 웃음과 몸을 팔며 왕에게 세속적 권력을 하사받고 그 권력을 공고히 하고 확대해 나간다. 그 욕망의 끝에서 그는 광대의 진정한 권력은 세속적 권력에 기대서 확보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에서 중심은 장생에게 넘어간다. 그가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 광대패를 뛰쳐나가고, 저자거리에서 왕을 가지고 놀고, 왕 앞에서 왕을 웃기고, 공길이 때문에 왕과 대립한다. 공길은 장생의 욕망에 동기를 부여해준다. 그는 수줍고 다소 우유부단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이동은 사이비 이동이다. 왜냐하면 연극과 영화의 진정한 중심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들레르식 표현을 빌자면 웃음으로 깨무는 자들이 진정한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광대이다. 그들은 시대와 공간을 떠나 이 곳 저 곳 이때 저때 속속들이 곳곳에서 출몰해서 웃고 떠드는 우리와 같은 필부필남이다. 이들이 중심이다. 연산, 녹수, 장생, 공길, 육갑, 칠득, 팔복 이들은 모두 광대이다. 그러므로 중심은 예초에 없다. 중심이 있지만 그 중심은 처음부터 해체되어 있다. 누구도 중심이고 누구도 중심이 아니다.

***2. 저 어둠 뒤에 있는 것. 블랙 아웃/화이트 아웃**

연극에서 공길은 죽기 전 연산에게 부탁한다. "왕이여, 나 죽으면 한강수에 던져주오. 흘러가다 바람맞아 살랑살랑 춤도 추고, 너울너울 재주도 넘고 흘러흘러 아주 물이 되게. 저 죽은 줄도 모르게. 왕이여 부탁이니 나를 위해 한번만 더 웃어주오. 한번만 더."

공길이 죽고 나자 연산이 묻는다. "길아, 저 어둠 뒤에 무엇이 있길래 니가 가니?" 연산의 독백이 끝나고 암전이 찾아온다. 이어 가면을 쓴 광대들의 군무가 이어지고 그 군무도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그 어둠 속으로 우습게 생긴 큰 가면이 고개를 들이밀며 웃는다. 히히히!! 블랙아웃!

영화의 엔딩에서 장생과 공길은 다시 태어나도 광대로 태어나길 소망한다. 그리고 둘은 줄 위에서 하얗게 비상한다. 화이트 아웃! 그리고 이어지는 광대들의 노는 모습.

어둠 뒤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연극과 영화 모두 같은 답을 주고 있다. 그것은 웃음이고 놀이이다. 왜?

***3. 위대한 잘못하기**

연극은 뒤로 가면서 응축되고 영화는 뒤로 가면서 확산된다. 그러나 응축 없는 확산은 허무하고 확산 없는 응축은 자폐적이다. 작품을 한 수준 높이는 잘못들이 있다. 논리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삶의 오의나 신비를 잡아내는, 자본과 창작의 논리를 벗어난, 어떤 위대한 구멍. 비논리의 논리, 꽉 찬 구멍들. 그 구멍들을 막은 것은 무엇인가?

사진 김정민/프레시안무비 기자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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