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칭찬한 'IT 영재'가 고등학교를 자퇴한 이유는…

[인터뷰] 교과부 앞 1인 시위 나선 최훈민 군

윤달 윤일(2월 29일), 18살 학생이 학교를 자퇴하고 '죽음의 입시경쟁교육 중단 촉구' 1인 시위를 하기에는 너무 극적이라고 생각하며 교육과학기술부가 있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로 향했다.

정부의 '제주 해군기지 건설 강행' 발표에 한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 관계자들과 경찰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오가고, 정부중앙청사 문이 '철커덩', 육중한 쇳소리를 내며 닫혔다.

순간, 굳게 닫힌 학교 철문이 연상됐다. 언제부터인가 학교는 입시경쟁에 내몰리고, 학교폭력에 방치된 학생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최훈민 군이 자퇴를 결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왕따 문제, 학교폭력 문제, 학생 자살 문제, 교사와 학생 간 불신 문제 모두가 "입시경쟁 위주인 현재의 교육정책 때문"이라고 했다.

자퇴 첫날, 1인 시위를 마친 최훈민 군을 정부중앙청사 근처에서 만났다.

자퇴하고, 1인 시위에 나선 이유

"저 오늘 죽음의 입시경쟁교육을 거부하며, 고등학교를 자퇴합니다. 또 학생이 주인인 진정한 학교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내일(2월29일) 11시에 이와 관련해서 교과부 앞에서 1인 시위합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최훈민 군의 트윗(@hoooonmin)에 응원이 쏟아졌다. 최 군의 트윗은 300회 이상 리트윗(RT)되며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그는 "트위터로 응원해 준 사람들 대부분이 '입시경쟁교육은 잘못됐다'라는 문제의식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퇴라는 방법론에서는 의견이 나뉘었다"고 전했다. 현재 그는 학교에 자퇴서를 낸 상태다. 궁금했다. 왜 자퇴했을까.

▲ 1인 시위 중인 최훈민 군 ⓒ프레시안(이명선)
"입시경쟁교육을 거부하는 이유도 있었고, 최근 교과부의 대책을 보고 실망했다. 그래서 스스로 결단을 내렸다."


최 군은 특히 조정현 씨의 소설 <로빈의 붉은 실내> 중 '교문이 닫혀 있어도 문제없었다. 문은 열리기 위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가 유독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한다. "'입시경쟁문제가 닫혀 있는 문이라면 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로빈의 붉은 실내>는 평범한 여고생이 우연히 자신을 둘러싼 단단한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여정을 그린 청소년 소설이다.

그렇게 최 군은 '자퇴'라는, 학생이 가진 유일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는 "학교에서 입시교육을 받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최 군은 자퇴 이유만큼이나 1인 시위 목적도 분명했다. 그는 "학교폭력과 학생자살의 원인은 입시경쟁교육"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한 언론은) 웹툰을 핑계로 문제의 본질을 피해 갔다"고 주장했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이 잇따라 자살하자, 지난 1월 7일 <조선일보>는 '열혈 초등학교'라는 웹툰의 폭력성을 지적했다. 기사는 김상균 백석대 법정경찰학부 교수의 말을 빌려 "(이런 웹툰을 통해) 폭력의 구체적 방법을 학습할 수 있다"며 "폭력을 '유쾌한 짓' 정도로 합리화하게 되면 학교 폭력을 조장할 수도 있다"고 했다.

"웹툰을 거론하며 젖혀둘 문제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1위, 행복지수는 25위다. 자동차 10중 추돌 사고만 나도 (언론에) 대서특필 되는데, 학생들이 꾸준히 죽어나가는 데도 사회와 교육 현장에서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입시를 위한 국영수 위주의 한 가지 길만을 강요하고 있다. 모든 것은 대학에 가서 하라고 하는데, 자퇴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제도권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친구의 괴롭힘으로 자살한 A(14)군 이후 3개월 동안 학생 4명이 자살했고, 학생 3명은 자살을 기도했다. 또 한국교육개발원은 2011년 한 해 동안 학업을 그만둔 초·중·고교생이 7만6489명이라고 밝혔다. 고등학생의 경우는 2008년부터 학업 중단자 수가 꾸준히 늘어 2011년에만 3만8787명이 학교를 떠났다. 하루 평균 106명꼴이다.

최 군의 표현대로 대한민국에는 '죽은 학교, 죽어 있는 교육, 죽어가는 학생'만 있는 셈이다.

왕따와 학교폭력

최근 교과부는 전국 558만여 명의 학생(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시행했다. 애초 교과부는 1월 말까지 우편 발송을 완료하고, 2월 10일까지 한국교육개발원(KEDI)에서 답신을 취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설문지를 받은 학생들은 내용이 형식적이고 애매하다며 설문지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경찰은 교과부에서 받은 30만3473건(지난달 24일 기준)의 설문조사를 토대로 561건을 실제로 내사·수사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4월 말까지 학교폭력을 근절수준으로 만들겠다"고 말한 바 있다.

최 군은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 "대놓고 때리지 않으니까 당사자가 아니면 자세히 알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입시경쟁교육에 따른 계층 발생'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선생님들은 '공부 안하면 지잡대('지방대학'을 비하하는 말) 간다'며 장난인 듯 말하지만, (선생님의 말에) 학생들은 '벗어나면 다른 길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싫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공부해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친구들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가 되어 버린다. 그러니 친구 관계가 원만할 수 없다.

그렇게 경쟁하다 보면 싸움에서 진(성적 순위에서 밀린) 학생들은 이긴 학생들을 안 좋게 볼 수밖에 없다. 만약에 자신이 졌지만 힘이 우월하다면, 그 학생을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힘으로 때리거나 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계층이 발생한다. 친구가 아니라 승자와 패자, 상위권과 하위권으로 계층이 나눠지는 것이다. 사회적 계층이 학교 내에서도 똑같이 재연된다. 계층 간 갈등은 분명히 있는 것이고, 그 계층 사이에서 왕따가 발생한다."

최 군은 이어 "각자의 길을 존중해주면 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이 길은 패배자의 길, 이 길은 승리자의 길이라고 나눌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는 또 "모두가 사회에서 필요한 존재인데, 그걸 왜 일부러 계층화시켜서 패배자, 승리자로 나누느냐"고 비판했다.

학생 인권 침해하는 교권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학생회장을 했다는 최 군은 "제대로 된 학생회가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어 놀랐다"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그는 학생회의 개최와 학생회 부장 임명 문제로 선생님과 충돌했다. 그가 "규정에 학생회장이 (학생회) 부장을 임명하게 되어 있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네가 뭔데 회의를 하고, 부장을 임명 하느냐"라고 소리치며 규정을 집어던졌다.

학생들끼리 체육대회를 열면서 최 군은 학교에 '학생회 예산'으로 아이스크림 정도만이라도 제공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학교는 예산이 없다며 돈을 어디에 썼는지 밝히지 않았다. 체육대회 날, 학교가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나눠줬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학교에서 교장 판공비로 지출했다며 엄청 인심을 쓰는 척했다."

그리고 최 군은 학생 체벌 금지 '학생모니터링단'을 구성해 학교에 체벌 사례를 신고했다. 하지만 학교는 이를 묵살했다. 뿐만 아니라 학생회 신문의 '체벌 기사' 발행을 막기까지 했다. 학생들의 편집권이 침해당한 것이다.

그는 "(일부에서) 체벌을 금지시켜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며 "그러면 교사의 권리는 학생을 때리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또 "학교에서 학생들은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는데, 학생들은 (이를 견제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최 군은 기사 발행을 금지당한 것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지만, 인권위에서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다고 한다.

대신 최 군의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라고 하세요?"
"학교 이름 밝히지 말라고 하시네요."
"'최훈민', (포털 사이트에) 이름만 치면 다 나오는데…."


사실 '최훈민'은 유명인이다. 그는 '㈜씨투소프트(C2Soft)'라는 회사의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조선일보>는 "제2의 스티브 잡스는 싫다 우리 기술로 승부한다"란 기사에서 최 군을 'IT 영재'로 소개했다. 최 군은 2010년 9월 행정안전부에서 주최한 '제27회 한국정보올림피아드' 공모부문 중등부에서 금상(2위)을 수상했고, 지난해에는 학교 친구들과 함께 '소상공인 위한 통합시스템, 매장관리 앱 cookPan'을 개발했다.

'학생이 주인인 학교' 만들어요

최 군의 목표는 '학생들이 주인인 학교, 선생 없는 학교,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입시경쟁의 길 외에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무엇부터 바꿔야 할까.

"대입수학능력시험부터 없앨 것이다. 학생 개인의 개성과 하고 싶은 것을 존중해주는 그런 교육을 해야 한다. 다양성이 제대로 보장되어야 한다. 다양한 길을 만들어 놓고, 학생들을 존중하며 학교를 만들어야지. 그냥 단순히 '넌 대학가지 말고 취업이나 해'라며 몰아붙이기 식으로 진행하니까 안 되는 거다."

최 군은 "선생님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화할 것"이라며 "10명 미만이라도 좋다.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씩 만들어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삼 2년 전 고려대를 자퇴한 김예슬 씨가 떠올랐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는 책으로까지 나왔고, 지난해 10월 서울대 유윤종 씨는 '저번 주에 자퇴서를 냈는데'라는 대자보를 통해 학교를 자퇴했다. 이어 11월에는 연세대 장혜영 씨가 '공개 이별 선언문'을 내고 학교와 이별했다.

이들은 모두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을 지적했다. 입시경쟁 외 다른 길을 찾을 수 없는 우리의 교육 현실은 대학에 가서도, 사회인이 되어서도 '서열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밖에서 더 큰 가치 찾으려 학교와 이별했다"는 장 씨의 말처럼 "학교 밖에서 더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최훈민 군. 문제의 본질을 알리고, 함께할 사람을 찾기 위한 그의 1인 시위는 당분간 교과부 앞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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