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5일부터 8월 28일까지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개막된 91회 바그너축제에서 바그너의 여러 오페라들이 30회 공연되었다. 그중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보게 되었다. 음악적 접근이나 직업적 취재를 할 입장은 아니었지만 공연을 전후해 극장주변에서 여러 사람 사이에 오간 이야기들이 생생해 습관적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스케치로 소개한다.
바그너 오페라 공연에는 오케스트라의 제1 바이얼린주자 김민(서울 음대학장), 개막작품 탄호이저에 출연한 연광철(베를린 국립오페라소속). '니벨룽의 반지'에 출연한 강병운(서울 음대교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 출연한 전승현(스투트가르트오페라소속) 등 쟁쟁한 한국 음악인들이 몇 년째 참여하고 있다.
바그너 공연은 일반오페라보다 제작조건이 좀더 까다롭고 관객층도 아주 포멀(formal)한 분위기이고 긴 시간 하는 것이라 약간 별난 경험을 갖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젊은이보다는 중장년들이 많고 턱시도와 여자들의 멋진 성장에 유럽의 보수적 분위기가 있었다. 바이로이트에는 18세기 프러시아의 왕실극장이던 로코코양식의 화려한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데 바그너 극장은 그 연장선상의 공연장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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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극장 발코니에 음악가들이 나와 그날 연주곡의 한 구절을 나팔불면 극장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팡파레는 세 번 연주됐다. 극장 내부는 호사스럽지는 않았지만 화려했고 1천 4백석의 자리는 수십명분의 좌석이 한 줄로 연결돼 있어서 맨 안쪽의 사람들이 들어가 앉을 때까지 모두들 서서 지나 다닐 통로를 열어놓고 있었다. 의자는 좁고 딱딱했다. 중간 박수는 없고 숨소리도 죽인 듯 조용하게들 앉아보다가 끝난 뒤에는 마루바닥을 발로 구르면서 호감을 표시하고 무대인사가 거듭되었다.
오케스트라는 깊이 파묻혀 있어 지휘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반바지같은 편한 옷을 입고 연주한다는 것이다. 단 지휘자 아담 피셔는 나중에 무대인사를 하게 되니까 연미복을 입었다.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지속된 공연은 중간에 1시간씩 두 번의 휴식이 있었다. 밖에 나와 쉬는 동안 김민 학장이 가죽재킷과 티셔츠차림의 '연주복'을 그대로 입고 나와서 한국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에서도 40명 가량의 관객이 왔다고 했다. 우리는 강병운 연광철 전승현의 출연과 호평에 기뻐하고 이들은 프리카역의 일본 여가수 후지무라의 출연을 자랑스러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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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단 5주간만 개관하는 바그너축제극장은 한해 5만 5천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지만 전세계의 신청자가 80만에 이르러 표를 구하기가 어려워 몇년씩 기다렸다 오는 관객들이 많다. 십수명의 한국관객중 20대의 젊은 학생들이 바그너 전공연의 표를 구한 이야기는 홍미로웠다. 한국바그너협회는 젊은 층에도 표를 구할 수 있게 했지만 그외에도 비용이 적지 않게 든다.
"영수과외를 하루에 두군데씩 했죠. 한국서 못 구한 공연표는 여기 와서 '표구함(Sucke Karte)' 팻말을 들고 한 20분 서 있으면서 약간의 웃돈을 주고 다 구해 보게 된 거죠"
젊은이들은 시장끼를 지우려 봉지에 담아온 과일을 베물어 먹더니 '자 이제 '반지' 2막의 합창을 들을 수 있겠구나' 하면서 들어갔다. 청년 바그네리안의 회원인데 연주곡의 음표 하나까지 꿰고 있고 공연진행상의 어떤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들의 음악적 관심은 친구들과의 일반적 화제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제대한 다음날로 이곳에 공연을 보러 온 것이기도 했다. 세계의 도시로 오페라무대를 찾아 다니는 의사 박종호씨가 오페라 해설하는 음악모임이 있다. 서울에 돌아와 이번에 본 바그너공연을 전문가로서 해설할 것이다. 바그너협회 권승우이사처럼 판 구하기도 어렵던 시절부터 음악에 몰입해온 60대로부터 이어지는 세대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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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에는 바이로이트축제공연 오케스트라의 장기근속자를 표창하는 기념식에 김민 선생도 20주년 표창을 받게 되어 한국인 다수가 가서 축하했다. 김 학장은 1977년부터 바그너 축제공연의 연주에 나가는데 전세계에서 모여든 오케스트라단원 중 그와 독일국적의 일본 바이얼린 주자 한 사람이 유이(唯二)한 동양인이다.
'반지'공연의 연주만도 다섯 번째여서 5년마다 바뀌는 프로덕션의 내용을 재미나게 들려주었다. 독일인들의 배타심도 대단해 처음 한 두해는 인사도 않는 사람들이 있더니 지금 그런 것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
바그너의 옛집(지금은 바그너박물관)의 아름다운 서재에서 10주년 표창자는 은잔을 받고 20주년 표창자는 옛날 바이로이트 시가를 그린 액자를 받았다. 전에는 바그너가 쓰던 의자 등을 기념품으로 주었다고 했다. 끝 순서로 탄호이저 서곡이 나왔다. 베니스의 카페에서 연주되던 것을 케네스가 현악 5중주곡으로 편곡한 이벤트성의 바그너곡이라고 했다.
식이 끝나고 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같이 했다. 이날 강병운선생 내외와 부퍼탈 오페라에서 활동하는 김성미(전승현의 부인. 부퍼탈 극장소속), 강미 자매도 오고 권승우, 연출가 표재순 서영숙 내외, 무대의상하는 최보경, 의사이자 오페라 저널리스트 박종호, 베를린에서 예술경영을 공부중인 서정원, 젊은 학생 홍승원, 김구배, 사진가 우종덕 등이 한자리에서 얘기들을 나눴다. 김민선생의 친구 쾨니히씨(바그너축제오케스트라 바이얼린 주자). 음향전문가인 일본인 가네코, 이주카씨도 자리를 같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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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벨룽에 훈딩(강병운이 출연)이 총을 들고 나오고 발퀴레들이 공수부대원 같은 옷입고 공중에서 왔다갔다 하니 신화적 원형은 어떻게 되나 했는데 아주 현대적으로 연출됐다.'
'연출자마다 그 시대에 맞게 바그너를 해석한다. 보는 사람이 무대장치 의상 등에 이해가 가면 좋은 거다. 처음 보는 사람은 거의 정신없을 정도다'
'고전이든 현대든 다 인간의 얘기다. 금권만능주의자, 혹은 자본가로서 알베리히의 반도체 공장, 발할라성 건축현장의 사무소, 그런 무대 설정이 흥미롭다'
'(젊은) 나로선 발퀴레들이 옛날 선녀옷 같은 것을 입고 나왔다면 못 봐줄 뻔 했을거다. 군터로 나온 가수가 캐릭터도 좀 약한 것 같지만 재미나게 보았다'
'혼은 지그프리트의 뿔피리 곡조를 잘 불어야 대가소리를 듣는데 공연날 그 혼의 음색은 깨끗하게 잘 뽑아낸게 반할 만했다. 탄호이저 공연때 서곡 끝나고 오케스트라석에 불이 나가서 15분쯤 공연이 중단됐다. 볼프강 바그너 총감독이 무대에 올라 설명하고 박수와 함께 다시 시작했다.'
<스캔> 오페라 '탄호이저'의 한 장면(저작권은 바그너협회)
'보탄이 발퀴레를 불에 가두는 마지막 장면에 버버거리는 실수를 하던데'
'오케스트라석에서 그래서 깜짝 놀랐다.'
'무대위에선 잘 하다가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기억이 까매질 수도 있다. 무대앞에 대사 읊어주는 프롬프터가 있다. 프롬프터도 연습과정에 같이 참석해서 어느 가수가 어느 부분을 잘 깜빡하는지를 알아두고 그 부분에 가면 첫단어를 말해주는 식으로 땡겨준다.'
'거인 역은 죽마(竹馬)를 타고 키를 늘려서 움직이는데 노래하는 것보다 그 막대기 타고 다니는 게 더 힘들다고 하더라. 강병운은 거인 파프너역에 익숙해 막대기 타고 뛰고 그러는데 또다른 거인역을 새로 맡은 미국가수가 막대기 타다 넘어지려고 하는걸 강선생이 탁 잡아서 사고를 막아 우리가 그걸 보면서 야! 하고 좋아했지.'
'극장과 오케스트라는 1년, 성악가, 솔리스트는 3년내지 5년단위로 계약하지만 충돌도 많고 계약중간에도 바뀌며 절충이 이루어진다. 지휘자가 특정 연주자를 데려왔다가 독일오케스트라와 충돌하기도 하고 지크프리트 역의 동독가수가 노래하다가 목이 억-하고 가는 바람에 두 번만 하고 간 적도 있다. 지그프리트역 테너의 노래가 어려워서 언제나 대역이 대기하고 있다. 프리카역의 후지무라는 작년에 대역으로 발탁되었다. 웬만한 역은 다 오디션을 거쳐 정하는데 매니저가 가수를 보내 오디션 받게 한다. 2004년 공연될 파르지팔에 우리 가수도 오디션 신청했는데 아직 결과가 안나와서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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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성악에 소질있다. 왜 성악에 소질있나 연구감이다.'
'무대장치의 기술력은 대단하다. 무대 깊이가 50미터나 되는데 무대에 강이 흐르며 거기서 헤엄을 치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집이 휙 거꾸로 돌기도 하고 돈을 엄청 들이는 것 같다. 1년 예산이 1천만불이다.'
'5년마다 공연이 새로 제작된다. 2006년 공연될 니벨룽의 반지 새 프로덕션의 스케줄이 다 나왔다. 6월 23일 틸레만지휘로 시작한다. 예산이 1년 단위라면 이런 프로젝트 안될 것이다. 바그너 공연을 국내에서 가능케 하려면 프로덕션 꿈꾸는 쪽에서 5-10년 내다보고 사람을 키우고 연출자도 바그너 공부시켜 하면 될 것이다. 길게 준비해야 된다.'
'일본의 오페라 저널리스트의 말이 일본서는 비엔나 등지에서 오페라단을 데려다 바그너 공연을 하는데 돈많이 드는 제작이라 입장료가 독일보다 비싸 70만원쯤 된다고 한다.'
'바그너 스트라쎄 24번지 게마인데하우스라는 집이 있다. 스테판 미키쉬라는 연주자가 10년 이상을 아침 10시반부터 12시까지 피아노 멜로디로 바그너 작품의 주요 부분들을 연주해가면서 해설, 비평을 겻들여가며 쇼팽 모차르트와도 비교하고 익살떨고 웃기고 한다. 바그너의 관악소리같은 것을 피아노로 다 표현하고 있으니 솜씨가 대단하다. 강당같은 1층 2층에 모두 3백명가량 모여 듣고 즐긴다. 판으로도 나왔다. 또 다른 사람이 경쟁자로 나서 그런 음악해설하는 집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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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극장 스탭들의 영역을 조금 볼 수 있었다. 무대 크기의 큰 방이 3군데 있어 테크니칼한 연습이 가능하고 무대장치 창고가 무대 뒤에 연이어 있었다. 오래된 건물의 사무실로 가는 복도에는 한스서부터 피셔까지 역대 지휘자 사진이 죽 걸려있다. 바그너 아들 지그프리트도 있고 푸르트뱅글러 등의 젊은 시절 얼굴들이 보였다. 오케스트라석은 매우 비좁아 보였다. 불편해도 음향 때문에 보수공사를 못한다고. 한쪽에선 전혀 무대가 안보였다.
각국에서 1년 단위 계약으로 모인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와 연습 1번 맞춰보고 1번 리허설하고 본공연에 들어간다. 지휘자의 요구도 연주자들에게 1번의 연습으로 수용된다. 1983년 혼을 부는 주자들이 무대위에 피운 드라이 아이스 때문에 숨이 막혀 악기를 빨리 불게 돼 지휘자가 통제를 못하게 되니 '솔티 영감이 완전히 돌아서 격노하고 야단이 났었다'고 한다.
바그너극장의 무대나 스탭들의 기술을 보려면 연습기간에 1주일 정도 참관하는 바그너 협회 프로그램에 신청해서 여러 가지 구경을 할 수 있다. 연습공연에는 직업상 봐야 할 사람들이 온다. 본공연보다 캐주얼하게 임하여 볼 수 있다. 김민 선생은 특유의 쾌활한 어조로 덧붙였다.
'방송으로 나온 음악을 디지털로 잡아내서 녹음테이프 만들어 파는게 있어 사러갑니다. 불법이지만 우리에겐 그런 사람 있어서 매우 좋지요. 시내에 오일레라는 이름의 바그너가 단골이던 식당이 지금도 있고 라들러란 음료수를 들어보십시오. 맥주에 레모네이드를 섞은건가 본데 맛이 괜찮아요. 이런 재미도 없이 여기서 지내기 힘들죠.'
***바이로이트 축제에 관한 간단한 해설(글/우종덕)**
바이로이트 (Bayreute)는 독일 남부의 뮌헨에서 기차로 약 3시간, 뉘른베르크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인구 약 5만 여명의 작은 도시이다.
하지만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집과 그가 세운 축제 극장이 있음으로 해서 이곳은 전세계 골수 바그너 팬들의 정신적인 고향이 되었다. 해마다 여름에 열리는 바그너 축제에는 그의 작품을 보기위해 지구상의 수많은 팬들이 이 작은 마을에 몰려든다. 입장권 구하기도 무척이나 어려워서 일반매표는 8년에서 10년 정도 기다려야 할 정도 이다.
여름 한 달여 동안 열리는 이 바그너 축제에는 그의 작품인 '니벨룽의 반지'와 나머지 세 작품 을 합하여 총 7편이 공연된다. 이중 그의 대표작인 니벨룽의 반지는 나흘간에 걸쳐 공연되는 총길이 17시간의 대작이다. 워낙 방대한 분량이다 보니 보통 오후 4시에 시작하여도 3막의 공연을 하는 동안 1시간 씩의 휴식시간이 있어 매일 오후 10시가 훨씬 넘은 시각에 공연이 끝난다. '반지'를 제외한 다른 세 공연도 길이의 차이는 약간 있지만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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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의 경우 니벨룽의 반지 4부작(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 과 탄호이저, 로엔그린, 뉘른베르그의 명가수가 공연되었다. 반지를 제외한 나머지 세 작품은 각각 5년간 공연한 후 바그너의 다른 작품으로 교체된다. 2003년에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가 끝나고 파르시팔이 추가될 예정이다.
이 공연이 열리는 축제극장은 바그너에 의해 1876년에 완공된 건물로서 일년 중 오직 여름 축제기간에 바그너의 작품만 공연하는 전용 극장이다.
바그너는 작곡과 대본을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맡아서 하던 기존의 오페라와는 다르게 작곡, 대본을 혼자서 하였으며 그의 작품을 음악과 문학을 포함한 종합적이고 완성된 예술 작품으로 보여주려 했다.
결국 그는 그의 작품을 공연할 극장까지도 자신이 의도한 바대로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완성시켰다. 바그너의 이 극장은 훌륭한 음향과 설계로 이후 건설되는 많은 오페라 공연장들이 이 형식을 따라서 건설되기도 하였다. 이 공연장은 지금까지도 처음 개관할 당시의 음향조건을 지키기 위해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 극장이 완성된 1876년에 열린 첫번째 공연은 적자였으나 다행히도 바이에른의 왕인 루드비히 2세의 도움을 받아 축제는 지속될 수 있었다. 이 축제는 2차대전 당시 히틀러에 의해 선전 선동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전후 손자인 빌란트 바그너의 노력으로 제3제국의 그림자는 거의 없어지게 된다.
한편 이 세계적인 축제의 연출은 대대로 바그너의 가족들에 의해 운영이 되고 있는데 바그너 그 자신이 총연출을 맡았던 첫번째 해에 이어 그의 아들 지그프리드 바그너, 그의 손자 빌란트 바그너에 이어 둘째 손자인 볼프강 바그너가 올해까지의 연출을 맡고 있다.
내년부터는 누구에게든 총연출직이 넘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누가 바톤을 이어받을지에 수많은 음악팬들의 관심이 쏠려 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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