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에서 벌어진 아파르트헤이트

<중동사태에 관한 남아공 투투 대주교 연설문>

다음은 남아공의 데스몬드 투투 주교가 지난 4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점령 종식을 위한 국제회의'에서 행한 연설의 주요 내용이다. 투투 주교는 이 연설에서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흑백간 인종화합을 이루어낸 남아공의 사례를 들면서 현재와 같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행사로는 결코 진정한 평화와 안보를 이룰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남아공 인종차별정책에 맞서 싸운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투투 주교는 백인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정권 당시의 죄상을 밝혀내고 인종간 화합을 이루기 위한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연설 요지의 원문은 영국 신문 가디언 4월 30일자에 실려 있다. 편집자


***聖地에서의 아파르트헤이트**

우리가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우고 있을 때, 유태인들은 우리의 강력한 우군이었습니다. 그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빼앗기고 억눌린 사람들 편에 섰으며 불의와 억압, 그리고 불의서 맞서 싸웠습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유태인들과 강력한 연대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남아공에 있는 홀로코스트센터의 후원자입니다. 또한 나는 이스라엘인들의 자위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안보를 위해 다른 민족들에게 행한 행위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며, 또한 정당한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최근 나는 (이스라엘의 기독교) 성지들을 돌아보면서 매우 우울한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곳의 상황은) 과거 남아공의 흑인들이 당했던 그 엄청난 고통들을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군이 세워놓은 검문소 등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당하는 굴욕을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그 광경은 어린 백인 경관들이 길거리를 오가는 흑인들을 검문하는 과거의 남아공을 연상시켰습니다.

성지 순례를 하는 도중 예루살렘의 한 성공회 주교와 함께 한 교회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유태인 정착촌을 가리키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울음소리가 섞여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의 안보 욕구는 물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의 안보를 위해 집과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한때는 자신의 집이었던 곳을 유태인들에게 빼앗긴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만났습니다. 카논 나임 아틱이란 이름의 목사와 예루살렘을 거닐었을 때, 그는 한 곳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이 저곳에 있었지요. 우리는 저 집에서 쫓겨났고 지금은 유태인들이 살고 있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사람들의 기억력이란 왜 그렇게 짧은 걸까요? 우리의 유태인 형제자매들은 자신들이 당한 고통을 벌써 잊어버렸단 말입니가? 그들 자신의 역사에서 겪은 대량학살, 집단추방의 기억을 그렇게 빨리 잊었단 말입니까? 그들 자신의 심원하고도 고매한 종교적 전통으로부터 스스로 등을 돌렸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짓밟히고 억눌린 자들을 그토록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잊었단 말입니까?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방식으로는 이스라엘은 결코 진정한 안보를 확보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평화란 오직 정의에 바탕을 둘 때만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살폭탄테러를 규탄합니다. 우리는 오직 증오만을 아는 젊은이들의 타락도 규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점령지에 대한 군사적 공격도 규탄합니다. 나아가 부상자 호송을 위한 구급차 진입마저 금지시킨 비인도적 처사를 규탄합니다.

단언컨대 최근의 군사작전으로 이스라엘인들은 결코 그들이 원하는 평화와 안보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증오만을 강화시킬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다음 세가지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전의 교착상태로 돌아가는 것,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을 절멸시키는 것, 그리고 희망컨대 정의에 바탕을 둔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방법을 선택할 경우, 이스라엘군은 모든 점령지로부터 철수해야 하며 팔레스타인들이 자신의 영토 위에 국가를 세울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유태인의 국가와 팔레스타인인의 국가는 서로의 국경을 존중하며 사이좋게 살게 될 것입니다.

남아공의 전환기는 비교적 평화스러웠습니다. 극심한 인종차별로부터 인종화합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별다른 폭력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런 일을 이루어낼 수 있다면 지구상 어디에서도 이는 가능할 것입니다. 남아공에도 평화가 왔는데 성지에 평화가 도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의 형제 나임 아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입장은 친이스라엘, 친팔레스타인,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는 친평화, 친자유입니다. 나는 반불의, 반억압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늘상 해오던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이스라엘을 비판하면 곧바로 반유태주의자로 낙인찍힙니다. 백인들의 광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백인주의자가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 이스라엘은 자신의 안보를 위해 이 인종차별적 정부(미국)와 협력하게 된 것일까요?

이곳(미국)에서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습니다.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한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낙인 찍힙니다. 왜냐하면 유태인들의 로비가 워낙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인종차별적 정부들은 매우 강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피노체트, 밀로셰비치, 이디 아민, 이들은 강력했지만 결국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불의와 억압은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언제나 신이 그들에게 주신 리트머스 시험지를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배고프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너는 어떻게 대했는가? 그 바탕 위에서 신은 심판을 내리십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국민과 정부,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평화는 가능하다', '정의에 바탕을 둔 평화는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해 당신들이 이 평화를 이루는 것을 도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게 되면 당신들은 형제와 자매로서 우애롭게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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