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문제,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에 답이 있다

<로마인 이야기>독후감 대회 최우수상작

<프레시안>과 한길사가 공동 주최한 『로마인 이야기』독후감 공모전의 수상자가 결정됐다. 영예의 대상은 최은지 씨의 「로마, 당신의 드라마」가 차지했고, 최우수상은 김상훈 씨의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을 통해 바라본 양극화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 변화의 필요성」, 그리고 우수상에는 정지혜 씨의 「로마는 하루아침에 멸망하지 않았다」와 최문석 씨의 「인간을 이해했던 소통의 드라마」등 2편이 각각 선정됐다. 이밖에 가작 10편과 입선 10편도 선정됐다.

<프레시안>은 수상작 중 대상 「로마, 당신의 드라마」와 최우수상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을 통해 바라본 양극화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 변화의 필요성」을 싣는다. <편집자>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을 통해 바라본 양극화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 변화의 필요성

<로마인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던 때는 중학교 시절이라 10년도 넘은 지금은 이 책을 왜 읽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다시 꺼내 <로마인 이야기>를 읽는 이유는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나의 주위를 둘러싼 현실과 일어나는 현상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10대, 20대일 때는 2권과 4권을 좋아했다. 한니발·카이사르와 같은 능력 있는 영웅과 재미있는 전투가 담겨 있어 삼국지 같은 군웅물(群雄物)의 느낌이 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 나도 그런 영웅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은연중에 있었던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읽어보니 이제는 3권에 더 눈길이 간다.

3권은 로마가 도시국가에서 성장하여 포에니 전쟁에서 지중해의 패권을 쥔 후 본격적으로 확장 정책을 시행하면서 승자가 겪게 되는 문제와 해결을 위한 노력을 다루고 있다. 끊임없는 해외 원정은 로마에 광대한 영토와 부를 가져다주어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하게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주변국과의 끊임없는 마찰로 갈등이 심화되어 전쟁이 잦아졌으며 또 군대가 전쟁을 수행하러 가는 거리도 길어지면서 병력운용에도 문제가 생겼다.

로마의 해외 원정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은 계층은 자영농이었다. 자영농은 잦은 참전으로 자신의 토지를 제대로 경작할 수 없어 황폐화되었기에 수확물을 제대로 얻을 수 없었다. 거기다 원정을 통해 얻은 속주로부터 로마에 값싸게 들어오는 농산물과 전쟁을 통해 광대한 농지와 노예를 가지고 경영하는 지배층의 라티푼디움의 경쟁력은 자영농의 몰락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결국 자영농은 자신이 보유한 토지를 포기하고 라티푼디움에 예속되거나 파산하여 무산자(프롤레타리아트)가 되었다.

자영농 몰락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사회의 구조를 개혁하는 방법으로 해결책을 제시한 건 그라쿠스 형제였다. 형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국유지 임차의 상한선을 설정하고 임차권 양도를 금지시켰으며 무산자에게 일정 규모의 토지를 분배하게 하는 셈프로니우스 농지법을 제출하여 통과시킨다. 티베리우스는 부유층의 토지의 집중화가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국유지의 임차를 제한시켜 라티푼디움의 확장을 막고 국유지를 무산자를 비롯한 시민들에게 좀 더 분배하여 자영농을 육성하고자 했다.

동생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시민권 개혁법안을 제출하여 라틴 시민에게는 로마 시민권을, 이탈리아 시민은 라틴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을 인정하게 했다. 곡물법을 제정하여 시가보다 싼 가격으로 빈민들에게 곡물을 팔게 했다. 공공사업을 진흥케 하여 실업자 구제에 나섰으며 카르타고에 식민도시를 건설하고 시민들을 이주시켜 토지를 나누어주어 자영농을 육성하려 했다. 가이우스는 형 티베리우스의 개혁을 계승했으며 거기서 그치지 않고 확대하였다.

그러나 그라쿠스 형제는 원로원에게 빌미를 잡혀 살해당하고 곡물법 정도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개혁안은 무산되고 만다. 그라쿠스 형제의 죽음 이후 지배층으로의 토지 집중화는 계속 진행되었으며 소작농과 무산자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더 이상 제시되지 않았다. 무산자를 자영농으로 전환시켜 노동을 하게 만들고 건전한 시민을 육성하여 힘든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대신 곡물과 검투사 경기와 같은 오락만을 제공하고 안주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로마의 미래를 결정지을 만큼의 중요한 개혁이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구조를 전환시키는 건 매우 어렵다. 기존의 사회 구조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받게 되는데 사회 구조 내에서 이익을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반발을 받는다. 그렇기에 개혁은 확고한 신념과 용기를 갖추지 않고서는 시행하기 힘들다. 흔히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을 평가할 때 급진적(急進的)이라 말한다. 그럼 나는 이렇게 그라쿠스 형제를 옹호해주고 싶다. 그라쿠스 형제 이전에 그와 비슷한 전례(前例)라도 있었냐고 말이다. 시민의 공공심은 날이 갈수록 약화되고 라틴 동맹은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양극화는 가속화되고 무산자와 노예가 늘어가며 사회 갈등은 갈수록 늘어만 갔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참고할만한 정책이 없었다. 고대나 중세에 부를 결정짓는 건 화폐나 기술보다는 토지다. 결국 부유층으로의 토지의 집중화가 문제의 핵심이니 토지 소유를 제한시킬 방안이 필요했다. 참고할 만한 전례가 없으니 당연히 개혁은 급진적이고 실행하기 힘들며 지배층에게는 충격적인 동시에 증오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개혁의 실패에 대해 섣불리 비판할 수가 없다.

전례가 있음에도 그것을 참고하지 않고 개혁을 시행한다면 비판받아야 마땅할 일이지만 새로운 방안을 위험부담을 안고 시행한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거기다 그라쿠스 형제는 자신들도 개혁을 실시하지 않으면 더 많은 이익을 볼 수 있는 귀족층임에도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개혁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었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전쟁터에서 진두에서 돌격하다 목숨을 잃는 지휘자보다 시대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려 나서는 지도자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라쿠스 형제야말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나는 로마의 한 줄기 빛과 같았던 그들이 젊은 나이에 쓰러져간 사실이 눈물이 날 만큼 애처롭다.

그라쿠스 개혁이 실패하고 마리우스의 지원병 제도가 로마의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하였다. 원로원 역시 잦은 원정으로 교대가 필요한 징병제보다는 상비군의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마리우스의 지원병 제도는 군대의 사병화와 군벌을 등장시켰기 때문에 비판을 받지만 당시 로마 제국의 규모에 적합한 병력운용을 위해서는 적절한 방안이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자영농의 육성을 통한 건전한 시민의 부흥과 더불어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대를 등에 업은 군벌은 갈수록 득세하는데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시민으로 이루어진 민회는 갈수록 힘이 점차 약해졌다. 견제세력의 힘이 약해지니 자연적으로 군벌에 의해 시행되는 전제정치로 향해갈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은 결국 처음에는 제1인자(Princeps)에 지나지 않았던 황제를 결국 주인님(Dominus)으로 부르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전제 정치로 끝난 것이 아니다. 노예와 무산자가 증가하면서 스파르타쿠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반란, 로마 시민권의 제한으로 동맹시의 불만이 폭발하여 생긴 동맹시전쟁 등 내부 갈등으로 로마 제국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런 반란은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반증하였다. 내부 갈등을 수습한 후에도 무산자를 자영농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택하기보다는 여전히 군대로 흡수시키거나 곡물을 주는 방식을 택했다. 이 방식은 로마의 확장이나 전쟁에서의 승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는 실행 가능한 재원(財源)이 공급되기에 가능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성장이 정체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자영농은 줄어드는데 무산자들 먹여 살리기 위한 세금뿐만 아니라 일정 규모의 군대와 정부 기관 그리고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 기관까지 유지하기 위한 세금은 여전히 늘어만 갔다. 부유층과 노예에게는 세금을 거두는 데 한계가 있고 자연히 대부분의 부담은 그나마 자영농으로 남아 있던 시민에게 돌아갔다. 자영농이 제대로 육성되어 있지 않으니 남아 있던 자영농은 상대적으로 과중한 세금을 부과 받았다. 자영농은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고 자신이 가진 토지에서 이탈하여 도적이 되거나 국가의 통치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니 국가에서 확보 가능한 인적 자원은 갈수록 줄어만 갔다.

이런 가운데 게르만족·고트족·훈족 등 야만족이 끊임없이 침략하여 로마 제국을 잠식해간다. 이들 야만족을 막아야 하는데 병사로 쓸 만한 인적 자원은 부족하니 용병을 고용하게 되고, 심지어는 자신을 약탈했던 야만족까지 사실상 공물의 성격이 강한 임금을 주고 고용했다. 당연히 제대로 된 방위가 이루어질 리 없었고 이러한 기형적인 방위 체제를 유지하다 결국 로마는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했다. 자영농, 아니 중산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중간 계급의 약화가 이처럼 국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는 것을 이미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 그라쿠스 형제 (Tiberius Semprinius & Gaius Semprinius Gracchus)

내가 그라쿠스의 개혁과 로마의 멸망에 주목하는 이유는 멸망의 한 원인인 라티푼디움의 확장과 자영농의 몰락이 현재 하류화가 진행되는 한국의 사회상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대기업이 확장을 거듭하며 번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낙수 효과가 생각보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중산층이 붕괴되어 하류층으로 전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를 받고 일하는 사람이 노동자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비정규직, 반값 등록금, 하우스 푸어, 무상급식이 언론에서 많이 언급되는 이유도 '하류화'와 '중산층 부흥' 그리고 '사회 구조의 변화'와 은연중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한국의 현실과 해결 방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의 변화가 중요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사회 구조와 생산력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문제가 생긴 사회 구조를 놔둔 채 표면적인 문제에 대해서만 해결을 하려 하면 생산력이 여전히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상태로 놓여 있어 문제를 완화시킬 수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사회 구조를 모두 파괴하여 생산력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 구조를 재창조하지는 하지 않더라도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합하게 변형은 시켜야 한다. 소위 말하는 내용인 생산력과 생산 관계가 변화되어 문제가 발생하니 형식도 그에 따라 수정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요즘 등장하는 자본주의 4.0이나 동반 성장이라는 용어도 표면적인 문제 해결을 넘어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등장하고 있다. 그라쿠스의 개혁을 보고 나 역시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통해 건전한 사회를 이루는 데 일조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개혁에 따른 반동(反動)도 생각하게 한다. 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한 개혁이나 혁명은 그것이 더 나은 결과를 낳으리라는 보장도 없거니와 기득권층의 이익을 침해하기에 개혁이 있으면 자연히 반동도 수반된다. 이것이 극대화된 예가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들에 행해진 붉은 2년의 총파업 후 지주 및 자본가 계층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파시스트들의 파괴와 파시즘 세력의 집권이다. 나는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을 옹호하는 쪽이지만 개혁의 실패를 참고하여 반동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추어 봤을 때 어떤 사안에 대해 반동을 최소화시키고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지지층과 확보하는 동시에 개혁이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확실성을 인식시키고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로마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들 하지만 사실 로마의 행보는 이미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좌절되면서 결정된 게 아니었나 생각한다. 10년 전쯤에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한니발과 카이사르를 보고 영웅을 동경했지만 이제는 그라쿠스 형제를 통해 시대의 구조와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 문사철(文史哲)을 죽은 학문 취급하는 세상이지만 막상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이만한 학문도 없다고 생각한다. <로마인 이야기>는 시간을 두고 읽을 때마다 현 시대의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기에 항상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 대회 심사평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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