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도, 초국적 자본이 잠식하나?

[기고] 국토부 관료들은 이완용의 뒤를 이을 것인가

국토교통부가 한국 철도를 제대로 세우겠다며 철도 발전 방안을 내놓고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수서발 KTX 민영화 문제로 시작된 철도 산업의 미래 전략을 담은 국토부의 철도 정책이 구현할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수서발 KTX 민영화 문제에 가려져서 잘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국토부가 밝힌 철도 발전 방안의 실체는 한국 철도의 자연사를 유도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국토부가 악이라고 규정한 철도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어떻게 설계 되어 있나? '적자선에 대한 민간 참여 허용'이란 항목에서 국토부가 공개한 내용을 보면, 철도공사가 운영을 포기하는 노선 등에 민간의 참여를 허용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공익 서비스 보상 노선 등 상대적으로 적자가 큰 노선, 독립 운영이 가능한 노선부터 순차적으로 최저 보조금 입찰제를 시행해서 정부의 재정 부담도 줄이고, 적자선을 매각해 철도공사의 경영 개선도 이루겠다는 것이다.

한국에 민간 철도 회사가 있나?

언뜻 보면 그럴듯해 보이는 국토부의 민간 개방안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철도공사가 운영을 포기하게 되더라도 철도공사를 대신해 철도를 운영할 수 있는 철도 회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철도는 단순히 회사를 설립한다고 운영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숙련된 기관사가 있어야 하고 열차 운영 노하우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밖에 일상적인 경정비 능력을 포함해 안전을 위해 갖추어야할 조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토부는 경쟁 입찰을 통해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을 최저가로 써내는 민간업체를 선정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열차 운영 능력을 가진 회사가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 철도공사의 노선을 운행해본 경험이나 능력을 가진 민간 철도 회사가 없는 상황이다. 국토부 방안이 현실성을 가지려면 지금이라도 철도공사의 적자선 포기를 겨냥해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언제 현실화될지도 모를 일에 대비해서 몇 년간 수입이 하나도 없는 상황을 견디며 적지 않은 자본금을 대 회사를 설립하고 직원들을 고용해서 훈련시킬 민간 회사가 있을 것인가?

적자 노선을 민간에 매각하고 싶어도 매수할 민간 철도 회사가 없는데 어디다 매각을 할 것인가? 굳이 따져 본다면 광역 전철에 진출해 있는 민간회사가 있다. 지난해부터 요금 인상과 적자 보전을 요구하는 서울 지하철 9호선과 신분당선이다. 지하철 9호선의 경우 맥쿼리를 포함한 대주주들이 고액의 배당금 잔치를 벌이면서도 "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며 요금 인상을 두고 서울시와 법정 다툼까지 벌이고 있다. 신분당선은 이전의 민자 사업자들이 누리던 최소 운송 수입 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자 기본료를 대폭 인상해서 수도권 지하철 노선 중 가장 비싼 요금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회사들에게 철도공사가 운영을 포기한 적자선을 넘기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와는 별개로 이런 회사들이 철도공사를 대체해 뛰어난 경영 능력을 보여줄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철도노조

초국적 철도회사가 한국 철도 잠식할 것

국토부가 구상하는 실체는 무엇인가? 수서발 KTX 노선을 분리하면 철도공사는 구조적 적자를 헤어날 길이 없다. 수서발 노선으로 옮겨가는 이용객만큼 그동안 확보되었던 고속철도 분야의 흑자가 감소하게 되는데, 이는 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일반 철도 및 적자 노선의 경영 상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철도공사가 적자를 감당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반강제적으로 운영권을 반납하도록 유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이런 조건에서 국내의 민간 철도 회사가 없는 상황에서 최저 입찰제를 통해 철도 운영권을 가져갈 회사는 누구인가?

국토부가 운영하는 블로그나 공개한 자료들에 답이 들어있다. 국토부 철도산업팀은 '유럽 철도 산업 경쟁 도입 현황'이라는 자료를 통해 스웨덴이 최저 보조금 입찰제로 민간 개방을 했다고 밝혔으며, 주요 간선 노선의 경쟁 사례로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예도 들고 있다. 그런데 이들 스웨덴을 비롯해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의 철도 시장에 뛰어든 사업자들의 면면을 보면 철도 강국 독일과 프랑스의 철도회사들과 다국적 운송기업들이다. 스웨덴의 지방 노선에 뛰어든 회사들은 영국의 다국적 운송기업 아리바사와 독일의 철도기업 DB, 프랑스의 초국적자본 베올리아사 등이다. 스웨덴 철도 현황 조사차 만났던 스웨덴 철도공사 SJ 관계자는 "2차 대전 때 독일이 탱크로 유럽을 점령했다면 현재는 철도로 유럽을 휩쓸려고 한다"며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철도산업에 공격적으로 진출하는 독일 철도에 우려를 표했다.

오스트리아에 진출한 베스트반이라는 민간 회사의 대주주 중 하나는 프랑스 철도 공사 SNCF이다. 이탈리아에 진출한 민간 고속철도 회사 NTV의 주식 중 20%도 SNCF의 몫이다. 이렇게 유럽의 철도 강국이 유럽연합 내의 철도에 진출한 이유는 철도 산업에서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국가적 경쟁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민간 고속철도 NTV사의 차량은 프랑스의 알스톰사가 제작한 것이다. 대주주로 참여한 SNCF의 입김이 프랑스의 철도 차량 제작업체를 이탈리아 노선에 운행할 차량공급사로 선정하는 데 작용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유럽의 철도 강국은 자국의 철도 운영 노하우와 기술력, 차량 제작 능력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미래의 중추 교통수단이 될 철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국토부가 철도공사의 자연사를 유도하여 주인을 잃은 지방의 철도 노선은 결국 이들 자본과 기술력을 가진 외국의 거대 자본에 넘겨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내에 마땅한 민간 철도 업체가 없는 상황에서 경쟁 입찰에 참여할 대상은 외국 철도 회사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제적 운송기업 베올리아사는 진작 한국에 진출해 서울 지하철 9호선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이 경험은 한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외국의 민간 기업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한미 FTA 협정에서 보장된 주요 간선의 한국 철도 독점권이 수서발 KTX 분리로 무력화되는 순간 고속선으로 진출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지방선의 적자를 감수할 외국 자본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한국 철도의 미래…자회사 팔아 민영화한 뒤, 적자 노선 폐지?

이제 국토부의 한국 철도 발전 방안이 그리는 상은 명확해졌다. 수서발 KTX를 철도공사 자회사 형태의 주식회사로 출범시킨 뒤 주식 매각을 통해 민영화를 완성한다. 더 이상 수익구조를 낼 수 없는 철도공사가 포기한 지방 적자선은 외국 자본에 넘긴다. 국토부가 강조하는 독립 운영이 가능한 노선의 대표적인 구간은 경춘선이고 경전선과 동해남부선은 높은 적자를 양산하는 노선이다. 앞으로 이 노선들에서는 한국 철도가 아닌 외국 기업의 철도를 이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국토부는 민간이 들어오지 않는 노선에 대해서는 지자체와 철도공사가 책임지는 제3섹터 체제로 간다고 하는데 이 말은 심각한 적자 노선에서 정부는 제3자로 빠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정 자립도가 부실한 지자체와 부실 공기업 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적자선이 회생하기 위해서는 철도 요금을 대폭 높이거나 노선을 폐지하는 것 이외엔 방도가 없다.

수서발 KTX의 민영화, 철도공사의 만성적 경영 악화 체제 유지, 지방선 외국 자본에 매각, 매각되지 않는 적자 노선의 폐선 유도가 국토부가 밝힌 한국 철도 발전 방안의 핵심 내용이다.

100여 년 전 열강들은 한국에 철도를 부설해 식민 통치를 완성하려고 했다. 초강대국들의 특사가 집요하게 대한제국 고종의 집무실을 찾아 철도 부설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이완용이 한국 철도 최초의 노선 경인선 부설권을 미국인 모스에 넘기고 계약서에 대한제국 대표로 서명을 한다. 이 부설권은 일본에 팔려 제국주의 침략을 노골화하는 계기가 된다. 2013년 국토부 관료들은 이완용의 뒤를 따르겠다는 것인가? 한국 철도는 서울에서 베를린, 파리, 런던까지 분단을 극복하고 대륙을 달리는 평화와 소통의 기관차가 되어야 한다. 일부 자본과 관료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원대한 꿈을 저버리기에는 너무도 소중한 나라의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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