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00년 역사' 상하이보다 못 하다…왜?

[김경민의 도시이야기]<1>'개발 중독' 서울, 상하이를 배워라

너무도 많은 개발로 지켜졌어야 할 도시의 자원들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그 가치가 온전히 인식되지 않기에 무시되고 있거나 숨겨져 있고, 또는 철저히 부서져 없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신문지상에서 보면 북촌 한옥 한 채 가격이 몇 천만 원을 호가한다고 하는데, 이는 그만큼 북촌이라는 지역이 많은 관심을 받고 상당한 부가가치를 올리고 있다는 반증이겠다. 지금에야 굉장한 핫 플레이스(hot place)로 인식되는 북촌이지만, 시계를 불과 10년 전으로만 돌려도 북촌의 모양새는 지금처럼 깔끔하게 정돈된 것은 아니었다.
▲2000년 당시 북촌의 모습. ⓒ서울시

따라서 물리적 환경(하드웨어)이 약간 지저분하더라도 서울이라는 도시에 북촌처럼 주변과 다른 매우 독특한 공간이 있다면,갤러리, 공방, 스튜디오, 디자인 사무소, 카페와 레스토랑 등 새로운 기능(소프트웨어)이 입주하여 그 건물을 바꾸고 그 지역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가능성을 북촌에서 보고 있다. 그렇기에 최소한 북촌과 비슷한 분위기의 한옥지대는 남겨져야 한다.

하지만 공덕동 남서블록의 한옥집단지구는 2012년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익선동 166번지는 재개발의 파고에 십수 년째 고통받고 있으며, 성신여대와 보문동 일대의 한옥들은 무시되고 가리어져 있다. 창고와 공장 역시 독특한 분위기로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는 새로운 공간으로 활용된다. 그 성공가능성이 있음에도 구로디지털단지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공기업 소유의 삼우창고는 2011년 말 철거되었다. 그 뿐이랴, 구로공단의 수많은 공장들이 없어졌고 이름마저도 디지털단지로 바뀌었기에 과거 대한민국 수출 10%를 담당했던 기억은 이제 없다. 1940년대 초반 노동자들을 위해 건설된 집합주거단지, 문래동 조선영단주택단지는 또 어떠한가? 2012년 말 재개발 예정지역이 되었다.

우리의 도심 재개발이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질주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가치가 도외시된 채 개발 광풍에 파묻힌 서울 곳곳을 누비며 정리한 도시에 관한 글을 <프레시안>에 싣기로 했다. 익선동과 피맛길, 낙원상가와 동대문 등지를 누비며 그간 '지저분하다', '낡았다'고 인식되어 온 서울 구도심의 잊혀진 건물과 골목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필자 서문>


중국의 경제성장단계가 우리보다 늦었기에, 중국 도시개발 수준도 우리보다도 못하리라는 인식이 우리 저변에 있다. 부동산 도시개발을 강의하고 연구하기에 개인적으로 많은 한국 도시개발업계 종사자들을 만나는데, 그들 인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도시개발 프로세스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을 파산에 이르게끔 몰고 간 한국 도시개발업계가 중국 개발업계를 한 수 아래로 취급한다는 소식을 그들이 안다면 크게 비웃을 것이다. 우리보다 훨씬 선진적인 홍콩과 싱가포르 도시개발업계가 십수 년 전부터 중국에서 개발사업을 해오면서 지식 전파가 이루어졌기에, 웬만한 중국 토종 도시개발업계의 수준은 사실 한국업계를 압도한다.

▲세계적인 예술문화단지로 떠오르는 수저우 강변의 M50. ⓒ김경민

그리고 개발 현장에서 역사적 자원 보존과 개발을 병행하면서 도시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만약 중국 도시 개발의 첨단을 보고자 한다면 당연히 중국 최고(最古)의 산업도시 상하이가 그 비교대상이 될 것이다.

상하이 푸서 지역에 위치한 근대 유럽스타일의 웅장한 건물들과 푸동 지역의 거대한 오피스 타운을 보면, 이 도시의 역사는 매우 유서 깊고 장엄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과연 상하이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국제적인 상하이의 모습은 1843년 난징조약에 따른 개항 이후 형성됐다. 개항 이전 700년간 상하이는 고기 잡는 어부들이 사는 수변촌락으로 이뤄진 작은 항구도시였을 뿐이다. 따라서 근대 도시의 역사를 셈한다면 상하이는 불과 200년도 안 되는 역사를 간직한 젊은 도시다. 정도 600년, 그리고 위례성 이래로 2000년 역사를 간직한 서울과 비교가 되지 않는 짧은 역사의 도시일 뿐이다.

상하이는 불과 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을 뿐이기에, 도시에 존재하는 역사자원(역사적인 건물들)의 대부분은 1830년대부터 중국 공산화 이전인 1950년대 이전에 세워진 것들이다. 그렇기에 전통적인 역사건물은 생각보다 많지 않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서울의 인사동과 같이 전통 상업가로가 형성된 예원상장 정도다. 따라서 상하이 역사자원이라는 것들의 대개는 산업시대에 지어진 건물들, 즉 창고와 공장건물이다. 이들 산업시설들은 매우 다양한 건축양식을 담고 있으나 모든 건물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한국 중소도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허름한 공장과 창고도 존재한다.

특히 상하이가 볼품없는 허름한 공장과 창고마저도 원형을 보존하고 그 내부에 새로운 기능(문화와 예술)을 집어넣어 새로운 형태의 도시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만약 도저히 어떤 기능을 집어넣어서 그 건물을 활성화할지 선택하지 못한다면,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창고와 공장건물들을 그냥 내버려 둔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상하이는 2004년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 문화유산보존상을 수상했다.

▲1930년대 동양 최대 도살장이었던 라오창팡은 현대적 쓰임새에 걸맞게 변화했다. ⓒ김경민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문화유산 보존보다는 오히려 활용이다. 건물의 원형을 보존한 채, 그 내부를 창조적으로 변형시켜 새로운 창조적 기능들이 들어오게 했다. 이를 통해 창조기업들이 일하는 장소가 생겼고, 창조기업들이 창조산업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도저히 볼품없기에 버려졌던 창고와 공장건물들이 창조산업의 클러스터가 되고, 그 결과 상하이 전체가 창조도시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사실 상하이가 처음부터 오래된 건물들의 원형을 보존하는 정책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도 초기에는 가차없이 부수고 새로운 건물들을 지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신텐디개발이 오래된 역사적 건물들(당시에는 역사적 건물로 인식되지 않았음)을 활용하여 새롭게 지역을 변모시키는 것을 확인한 후, 상하이시정부 정책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이한다. 역사보존과 개발의 균형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창조산업을 일으키는 밑바탕이 되었다. 도시적으로는 커뮤니티를 없애지 않고 함께 공존하면서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북촌의 가능성을 알고 있는 서울시는 과연 어떤가. 인허가권자라는 소리만 외칠 뿐 문화유산보존과 개발의 균형자 역할을 얼마나 능동적으로 잘 수행하는지 모르겠다. 유산을 보존했어야 할 서울시는 몇 되지 않는 근대역사건축물인 서울시청의 일부를 스스로 파괴했고, 동대문 유적이 발견될 것을 알았음에도 서둘러 유적지 위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건설했다.

상하이를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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