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서 <전태일 평전>은 '불온도서'…인권은 없다

'힘들다' 글 올린 수습사원도 피해…"사찰ㆍ퇴출은 일상다반사"

이마트 사측이 '복수노조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노조 설립을 사전에 막는 작전을 광범위하게 수행했다는 정황 증거가 나왔다. 이마트 관리자가 작성한 문건에 따르면, 이마트 사측은 이마트에 노조가 들어서기도 전부터 이른바 '문제(MJ) 사원'을 선정해 사찰했으며 해당 사원들의 퇴사를 유도했다.

사찰 범위도 전방위적이었다. 인터넷에 '일이 힘들다'는 글을 올린 수습사원을 색출해 퇴출을 지시했을 뿐 아니라, 창고에서 <전태일 평전>이 발견되자 책 소지자를 찾아내는 작업을 벌였다. '회사에 불만이 있을 만한 사람, 혹은 회사가 규정한 불온서적을 소지한 사람' 모두 감시의 눈을 피해갈 수 없었다.

민주통합당 노웅래·장하나 의원은 16일 이마트가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직원들을 사찰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을 공개했다.

이마트 "노조 설립 무산시키기 위해 사전에 동조자 파악해야"

이마트의 인사 담당 기업문화팀은 2011년 3월 '복수노조 대응 전략'을 수립했다. 문건은 "노조 설립 이후 대응이 아니라 노조 설립 자체를 무산시킬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며 "불만 요인, 촉매자, 동조자를 사전에 파악하여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11년 3월 이마트의 인사 담당 기업문화팀이 작성한 '복수노조 대응 전략' 일부.

2011년 5월 이마트 인사노무 관리자가 작성한 문건을 보면, 이마트는 본사 및 각 지점에 입점해 있는 협력업체 노동자 1만5000여 명의 개인 정보를 불법적으로 이용해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한국노총 홈페이지 회원 가입 여부를 조회했다. 가입이 확인된 직원들에게는 퇴사를 유도할 것을 지시했다.

문건은 "(양대노총에 가입한) 해당 사원의 경우, 물량이 많고 다소 힘든 점포로 배치하여 1차적으로 자연스런 퇴사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하며 "근무하기 어려운 상황(평가점수↓, 오배송 발생 등)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방법 등으로 퇴사를 유도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이마트 관리자, 인터넷에 '일 힘들다' 글 올린 수습사원 퇴출

수습사원도 사찰의 예외가 아니었다. 이마트 측은 취업 카페에 "일이 힘들다"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수습사원의 퇴출을 지시했다.

이메일에 첨부된 해당 사원의 글에는 "아주 입사하고 힘이 드네요. 위에서 힘드냐고 물어봐도 힘들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아주 죽겠습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2011년 5월 이마트 용산점 인사총무는 "카페에 올린 글만으로 (퇴출) 사유서를 받기는 어려우니, 지각 3회로 사유서를 받아야 한다"는 이메일을 본사 인사 담당 기업문화 과장에게 보냈다. 결국 해당 사원은 수습기간 중 '불합격' 처리로 퇴출됐다고 장 의원 측은 밝혔다.

'근로기준법 수첩', <전태일 평전> 발견해 직원 수색 작업

이마트 사측은 2011년 9월 민주노총에서 매년 발간하는 '노동자 권리 찾기 안내수첩'이 이마트 경북 구미점에서 발견되자 사무실 전체를 수색하기도 했다. 이 수첩에는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산재보험법 등의 노동법률 상식이 포함됐다. 이마트는 이 책자를 불법 유인물로 규정하고 전국 이마트 매장의 점장들에게 "불법 유인물 및 책자 발견 시 즉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마트가 '불온서적'으로 규정한 책자에는 <전태일 평전>도 포함돼 있었다. 이마트 측은 2010년 10월 경기도 부천점에서 협력사 창고를 뒤져 <전태일 평전>을 발견하고, 해당 협력업체 사장을 불러들인 뒤 책 주인을 색출하는 작업을 벌였다. 장 의원 측은 "책 주인을 끝내 발견하지 못하자 사측이 시식 코너에서 일하던 중년의 여성 노동자들을 해고했다"고 밝혔다.

노조 설립 주도자 주변 인물까지 사찰

이마트에 노조가 생기기 1년 4개월 전인 2011년 6월부터 이마트 관리자는 전수찬 현 이마트노조 위원장, 최 모 씨, 김 모 씨를 "MJ(문제) 3인방"으로 규정하고 "전수찬, 최모, 김모 씨의 친밀관계도 및 이와 친분이 있는 인력에 대한 히스토리를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심지어 이마트 직원의 여자친구가 민주노총에서 일한다는 사실까지 확인해 보고했다.

문건에서 관리자는 "어떤 시점에서 이들이 세력을 결집한다고 하면 징계나 해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1년 4개월 뒤 이마트노조 위원장이 된 전수찬 씨와 노조 간부가 된 김 씨는 징계 해고됐으며, 최 씨는 강등 발령을 받은 상태다. 전 위원장은 노조 결성 20일 만에, 김 씨는 노조 창립 총회 전날 해고됐다.

▲ 노조 설립을 알리는 1인 시위에 돌입한 전수찬 이마트노조 위원장. ⓒ이마트노조

민주통합당 노웅래 의원은 "이번에 입수한 자료에는 그동안 재벌 대기업이 노동자들의 기본권과 인권을 유린한 내용이 낱낱이 드러나 있다"면서 "이마트는 오직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직원들을 감시 및 사찰했다"고 말했다.

장하나 의원은 "신세계 이마트의 무노조 경영 원칙은 그 기본부터가 문제"라며 "재벌, 대기업들의 무노조 경영 이면에는 이러한 불법이 천지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측이 마련한 '복수노조 대응 전략'에 대해 이마트 관계자는 "복수노조 제도 시행을 앞두고 상황별 시나리오를 다양하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른바 '문제 사원' 사찰과 퇴출 지시에 대해서는 "회사 사원들이 개인적으로 (인사)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다"며 "다만 일부 인사 담당자 선에서 과도하게 업무를 진행한 것은 맞는 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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