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내가 미쳤나, 세상이 미쳤나?"

[기고] "이건 재판이 아니다"

Ⅰ. 소회
세상이 나를 에워싸고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아무리 호통 쳐도 나는 내 죄가 뭔지, 왜 내가 징역형을 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내가 미친 게 아니라면 세상이 미친 건데 차라리 내가 미친 것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세상이 미친 것 같으니 참으로 가슴 아프기 그지없다. 하필이면 왜 내 사건에서 세상이 미치게 됐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 글은 내가 왜 세상이 돌았다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펼쳐 보인다. 만약 그 과정에서 세상이 왜 내 사건에서 돌아버렸는지까지 힌트를 갖게 된다면 그건 덤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집단적으로 정신 줄을 놓은 건 세상이라기보다는 대다수 법조인들, 특히 사법엘리트들이다. 내 사건에 직접 관여한 판사와 검사만 해도 30명 쯤 된다. 검사는 수사팀만 4명에 검찰총장, 대검공안부장 등 지휘라인까지 10명은 된다. 법관은 중앙지법,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직접 관여자만 9인에, 대법원이 간이평의 형식으로 전원합의체를 연 것까지 감안하면 총 19명이다. 그것도 중앙법관 3인, 고등법관 3인, 대법관 13인이니 법조계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아도 크게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법학교수 출신으로 누구보다도 법의 분별력과 법관의 판단력을 신뢰해온 편이다. 입법과정과 사법과정은 웬만한 자의(恣意)와 오류를 걸러내게 돼 있다. 집단지성과 이해관계가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입법과정과 사법과정의 쉼 없는 상호작용으로 법규범은 고도의 체계성과 정합성을 갖게 된다. 헌법재판과 3심제는 특히 강력한 수단이다. 물론 헌법재판으로 위헌법령을 가려내도 악법은 남고, 3심제로 오판을 걸러내도 오판은 남는다.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나는 검찰의 기소와 1,2,3심 법원의 판결이 아래에서 상세하게 제시할 명백한 근거들로 말미암아 법리적으로 터무니없는 오판이라고 확신한다. 검찰은 공소시효를 기계적으로 계산해서 공소시효도 넘긴 사안을 무리하게 공소제기 했으며 법원은 무분별한 공소시효 해석을 수용했다. 나아가서 50년 넘게 사문화된 위헌법률을 살려내서 '닥치고 처벌'을 감행했다.
대한민국 법조계의 대표엘리트들이 어렵고 복잡할 것 하나 없는, 후보매수 선거범죄의 법리해석에서 집단 최면과 실명 상태를 오가며 오판을 거듭하게 된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은 그 자체로 법조사회학과 법 정치학의 흥미진진한 연구소재가 될 것이다. 곽노현 사건은 이런 다방면의 연구 작업이 이뤄지고 그 결과로 보다 효과적인 법조개혁이 추동될 때 비로소 그 소동과 오판의 사회적 비용을 능가하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고 할 수 있다.
먼저 1,2,3심 법원이 공히 인정한 곽노현 사건의 개요와 특징을 몇 가지만 지적하면서 시작하자. 나는 상대후보를 돈으로 매수할 생각을 꿈에서도 한 적이 없다. 경쟁후보를 돈으로 유혹해서 사퇴를 이끌어 낼 생각을 상상으로도 한 적이 없다.
단일화 당일 상대후보의 부탁을 받은 상대측 선대본부장이 자신의 손윗동서인 내 친구와 막역한 과 선배인 내 친구를 불러내 선거비용 보전조로 5억을 달라고 제안했고 내 친구들이 얼떨결에 승낙했다는 사실을 나는 새까맣게 몰랐다. 당사자인 두 친구가 입을 봉하고 내게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5개월이 지난 10월 중순께야 비로소 확인했다. 나는 선거운동의 전 과정에서 어떤 선거부정이나 비리도 행한 게 없다. 한마디로 나는 떳떳하다. 이런 내가 무엇 때문에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여의고 이곳에 갇혀있는지 내 상식과 법 감정, 전문적 법리해석으로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거침없고 당당했다. 사건 보도 이틀도 안 돼, 일요일 오후에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당시 언론이 1억 3천을 제공했다고 보도하는 상황에서 2억을 도와주었다고 밝혔다. 검찰에선 최대한 말을 아끼라는 골백번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장장 250쪽의 검찰조서를 남겼다. 불리한 연상이나 인용으로 이끌지 않도록 법정에선 선거관련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절대 삼가라는 모든 변호인의 거듭된 조언에도 불구하고, 내게 이로운 게 진실이 아니라 진실은 무조건 내게 이롭다며 숨김없이 내 생각을 다 털어놓았다. 1심 결심 공판 때는, 여전히 나를 매수범으로 모는 검찰이 하도 괘씸해, 피고인석에 앉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검사들이라고 일갈했다. 재판부한테는 유죄확신이 부족해서 피고인의 이익으로 내리는 절차법적 무죄판결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이 죄가 없기 때문에 내리는 실체법적 무죄판결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매수를 약속하고도 뭉갠 놈, 협박을 받자 일부를 이행한 놈, 그러고도 검찰과 법정에서 한사코 잡아떼며 궤변을 늘어놓는 놈으로 묘사했다. 한마디로 나를 음흉하고 교활하며 간악스런 철면피로 공격했다. 심지어 1심 판결직후 대검공안부장은 기자회견에서 비유컨대 나를 "피싱사기단 두목으로 보면 딱 맞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런 내게, 벌금이라니 화성인 판결이 아니고 무엇이냐며 이런 그림을 나름 완성하여 검찰이 처음 제시한 건 작년 10월 보석반대의견서였다. 나는 경악했다. 치를 떨었다. 그리곤 보석심리 때 법정에서 말했다. "내가 믿는 신앙 안에서 최후의 심판을 맞을 때 하느님께서, 다른 건 몰라도 네게는 음흉, 간악, 교활한 데가 없어서 내가 너를 사랑하였노라."고 평가하실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눈물이 나고 목이 멨다. 법정이 숙연해졌다.
그래도 보석신청은 기각됐다. 그만큼 1심 재판부도 불신이 강했다. 아직 공판이 열리기 전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지만 큰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마음을 짓누르는 고통에서 딱 하루 만에 벗어났다. 촛불집회금지조항에 대해 위헌심판을 정식으로 제청했다가 신영철 대법관 파동당시 사법부를 떠난 박재영 변호사가 그 이튿날 나를 찾아와 무료변론을 자청했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신영철 대법관을 두둔하며 박재영 판사의 사표를 수리한 이용훈 대법원장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는데 거기서 위로와 격려를 받았으니 이제 나를 위로하고 격려할 때라고 판단해서 일면식도 없는 나를 서울구치소로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내가 만난 첫 번째 천사는 내게 그렇게 찾아왔다. 나는 다시 힘이 났다.
Ⅱ. 왜 돈을 주게 되었는가?
나는 분명히 2억을 박명기 교수에게 줬다. 이렇게 마음먹은 때는 1,2,3심 모두 공소시효가 지난 12월 중순께라고 확인해줬다. 1심은 그래서 이해관계만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건 불미스런 일에 수동적으로 개입한 내 친구 둘도 이제는 형사처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나는 1,2,3심이 모두 인정하였듯이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돈거래는 있을 수 없다고 처음부터 못 박았고 5.19 동서간 합의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으므로 처음부터 내가 형사처벌을 당할 위험은 없었다. 5.19 동서간 합의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도 추인하거나 이행할 뜻이 전혀 없어 모처럼 박교수와 만난 자리를 대판 싸움으로 끝냈던 내가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공소시효도 지난 마당에 2억을 줬을까. 궁금증을 풀어보자.
분명한 건 박교수가 권력자나 잘나가는 실세가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으로 파탄상태에 빠진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준 돈은 어떤 의미로도 뇌물이나 검은돈이 아니다. 박교수가 내게 줄 수 있는 건 5.19 동서간 합의 불이행을 빌미로 나를 험담하고 다니는 것을 멈추는 것이 전부였다. 1심과 2심도 2억 제공의 결과로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이것이 전부라고 파악했다. 하지만 내가 5.19 합의의 실질당사자인 줄 잘못 알고 나를 약속도 뭉개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매도하는 것은 무책임한 명예훼손이 된다. 만약 5.19 동서간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그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겁을 주면 그건 협박이나 공갈이 된다.
당시 김윤태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돈을 주는 게 오해를 불러일으켜 문제지 돈을 안 주는 건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조언했다. 정말 정신 차리지 못하고 계속 을러대면 협박이나 공갈로 집어넣으면 된다고까지 일러줬다. 내가 잘못한 게 조금도 없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 박교수는 교육계 경력이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고 교육감의 꿈을 오랫동안 키워 온 사람인데 내가 나타나는 바람에 빛을 잃었다. 경선에서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경선에서 뛰쳐나가 '나홀로 고난의 행군'을 하던 끝에 결국 막판 사퇴로 뜻을 접었다. 한 달 넘게 단일화를 위한 사퇴압력에 시달리다 명분 반 실리 반, 자의반 타의반으로 본선 개시 전날 물러났다. 나는 이점이 늘 미안했다. 당시 나는 박교수가 본선 하루 전까지 버티다 그만두는 바람에 본선운동을 위한 각종 계약을 했고 당연히 계약금과 위약금 부담이 적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당선되고 나서는 교육감 일로 워낙 정신없이 바쁘게 지낸데다 박교수와 사이가 틀어지는 바람에 박교수의 형편에 대해 무관심한 채 잊고 있었다.
사실 나는 무조건 사퇴 소식을 듣고, 박교수가 막판사퇴로 경제적 곤궁에 빠질 가능성을 걱정했다. 그래서 증인으로 나와 주신 원로들에게, "진영의 대의를 위한 사퇴로 말미암아 박교수가 극도의 경제적 궁핍에 빠진다면, 가만히 보고만 계시진 않으실거죠?"라고 반문한 바 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 진영의 집단적 부조책임이 발생한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물론, 알고보니 상대측이 결국 뒷거래를 요구했기 때문에 경우가 달랐다. 만약 대의를 위해 무조건 사퇴했더라면 당연히 공개적으로 부조를 조직했을 것이다. 나하고 관계가 6월 중순부터 틀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선자시절 박교수 심복이 이권사업계획서를 내게 제출한 것이 내가 박교수를 경계하고 멀리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심복의 비서실 채용을 7월 들어 여러 차례 부탁한 걸 내가 이권제안 전력 때문에 그 사람은 안 된다며 거절했기 때문에 박교수는 당시부터 나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하늘을 찔렀다. 10월 중순에 동서간 합의사실을 확인한 순간 이 모든 상황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
보기 나름으로 박교수는 피해자가 된 측면마저 있었다. 본인의 잘못된 선거비용전가 욕심이 모든 오해와 갈등 상황의 뿌리이긴 해도, 그래서 몹시 못 마땅하긴 해도 박교수 입장에서 내 친구들은 물론 진영 전체를 욕하고 원망할 게 틀림없어 보였다. 내가 공범자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라니 도덕적으로도 더 초라하게 느낄 터였다. 그나마 쥐고 있던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이라니 경제적으로도 기댈 곳이 없어 더 힘들 터였다. 그런 박교수가 이중으로 딱하게 여겨졌다. 박교수는 더욱이 내가 '덕불고 필유린(德不孤,必有隣)'의 취지로, 즉 대의를 행할 때에는 뒷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반드시 돕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라는 취지로 "진영의 대의를 위한 단일화 사퇴로 말미암아 박교수가 극도의 경제적 곤궁에 빠진다면 진영이 가만히 보고만 있겠느냐. 나라도 사람들을 움직이겠다"고 5.18 단일화 협상자리에서 두 차례 했던 말을 포괄적인 경제적 지원 약속으로 오해했던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동서간 합의의 배후에서 모든 사정을 보고받고 승인한 것으로 굳게 믿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가 박교수와 경쟁하며 선거과정을 거쳐온 나에게 있는 고유한 인식이다. 나와 함께 지긋지긋한 조사와 재판의 전 과정을 겪은, 화해중재자 강교수는 이런 경험과 인식이 없다. 나와 어쩔 수 없이 다른 점이다. 강교수는 내 부탁으로 박교수를 만나고 와서 박교수를 아주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했다. 이런 사람을 적대자로 만드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박교수를 도와주지 않으면 자살할지도 모른다며 걱정했다. 특히 카드 돌려막기까지 한다는 얘기를 듣는데 자기 숨이 다 막히더라는 얘기였다. 강교수는 진지하게 내게 조언했다. 사정이 워낙 딱해서 인간적으로, 정치적으로 도와주지 않을 수 없는데 이렇게 꼬인 상황에서는 통 크고 감동 있게 돕지 않으면 잘 안 풀린다며, 박교수가 3억이 꼭 필요하다고 하소연하니 눈 딱 감고 3억을 도와주라고 조언했다.
내게 강교수는 함석헌 선생의 <그대, 그 사람을 가졌는가>에 나오는 '그 사람'이다. 꼭 필요하면 내 목숨과 재산을 다 내줘도 아깝지 않을 그런 친구다. 이 사건이 터졌을 때도, 민주주의를 매수했다는 파렴치범의 혐의를 뒤집어쓴 채 형사재판이라는 몹시 극적인 장치를 통해 강교수의 인격과 지혜를 세상에 널리 알리라는 숨은 뜻이 있는 것으로 내가 받아들였을 정도다. 나는 김윤태 교수의 정반대 조언에도 불구하고 강교수의 조언을 따랐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에선 내게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밝혔듯이, 나는 강교수가 좌로 가자면 좌로 가고 우로 가자면 우로 가는 사람이다. 그만큼 신뢰한다.
선거과정에서 생긴 박교수에게 몹시 미안한 마음, 선거빚으로 인한 박교수의 경제적 어려움을 딱하게 여기는 마음, 그리고 내가 5.19 동서간 합의와 무관하다는 데서 오는 박교수의 낭패감을 또한 딱하게 여기는 마음이 강교수의 긍휼심과 화해정신을 만난 산물이 2억의 부조다.
나는 2억이 좀 많다고 생각했다. 10월 중순 내 친구한테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할 때, 박교수 빚 중에 얼마나 급한 게 있으면 자기 동서가 자기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먼저 1억 5천을 해주겠다고 했겠냐면서, 자기 동서가 그걸 못 해줘서 박교수와 사이가 틀어졌다고 한 게 기억났다. 내 짐작으로는 박교수의 선거빚이 5,6억 쯤 될 것 같았다. 따라서 악성 빚 1억 5천만 도와줘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봤다. 그런데 박교수에겐 애당초 욕심내면 안 될 선거비용 전가를 욕심낸 허물이 있다. 이 책임을 묻고 싶었다. 객관적으로 필요만으로 판단하면 1억 5천을 도와줘야 하겠지만, 본인의 잘못이 있으니 그렇게까지 도와주고 싶진 않았다. 난 그래서 1억만 도울 생각이었는데 강교수가 "이럴 때는 통 크게 도와주는 게 길게 보면 좋다"고 강하게 조언했다. 그래서 2억이 됐다.
선의로 보기에는 통념상 큰돈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왜 큰돈인 줄 모르겠는가. 그러나 나 몰라라 외면할 수 없는 특수 관계에서 선거 빚으로 눈에 핏발선 사람을 앞가림이라도 하게 도우려면 1, 2천만 원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2억은 내 경제 형편상 감당할만한 금액이었다. 외부에서 돈을 빌린 이유는 현금을 마련하는 어려움 때문이지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1억 6천 5백만원의 후원금을 예상치 못하게 받은 것도 넉넉한 마음을 먹게 된 중요한 이유였다. 위의 여러 가지 좋은 마음 외에 아무런 실리도 기대한 게 없다면 그건 사실이 아니다. 분명히 박교수가, 이쯤 도와주면 불평과 원망을 멈출 것이고 그러면 혹시라도 불미스런 5.19 합의 사실이 알려지고 내가 배후인물로 오해받아 교육감직이 스캔들에 휩싸일 정치적 위험이 사라진다는 걸 계산에 넣었다. 박교수의 교육계 인맥과 경험을 정치적 원군으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도 있었다.
강교수와 의논한 후 내가 돈을 주기로 마음먹은 때는 12월 중순쯤 공소시효가 지난 후였다. 강교수한테 박교수의 상황을 전해 들으며 이중으로 딱한 마음이 들었지만 김윤태 교수가 절대로 오해받을 짓 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조언하는데다 박교수가 강짜를 부리는 상황에서는 더욱 오해받기 딱 좋기 때문에 나는 입을 닫았다. 강교수도 김교수와 함께 박교수를 세 차례나 만나면서도 박교수의 하소연과 원망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기만 했다. 그런데 세 번째 회동에서 박교수가 종전의 모습과 다르게 확연하게 누그러졌다는 것이 었다. 그래서 네번째 회동 때는 나도 같이 나가는 게 좋겠다고 강교수가 권했다. 나는 내키지 않았다.
박교수한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이번엔 싫다고 했다. 그랬더니 지난 번 회동 때 5.19 동서간 합의의 주역인 내 친구가 자리를 함께 했는데 기질 상 박교수와 바로 죽이 맞아 노래방까지 같이 갔고 덕분에 박교수가 오해를 풀어 이제는 함께 만나도 괜찮을 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동서간 합의의 주역인 내 친구도 박교수가 참 사람 좋더라며 꼭 나와서 함께 어울리자고 내게 전화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비로소 박교수를 만났다. 바깥에는 첫눈이 펑펑 내렸고 안에서 마음이 풀린 박교수가 장시를 낭송했다. 박교수는 세분의 형님을 얻었다고 좋아했고 우리는 훌륭한 아우를 얻었다고 좋아했다. 나는 처음으로 박교수의 매력적이고 좋은 면을 직접 보고 느꼈다. 이로써 오해와 갈등의 시기가 끝났다. 화해와 협조의 시기가 온 것이다.
공소시효를 나흘 앞둔 11월 28일 밤이었다. 만약 이런 계기가 없었다면 공소시효도 지난 마당에 즉 친구들의 법적 위험까지 사라진 상황에서 2억을 도와줄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공소시효까지 지난 시점에서 약속하지도 않은 약속을 이행하라며 생떼를 쓰는 상황이 계속 되었다면 김윤태 교수 말대로 냉정하게 법적 대응을 했을 것이다. 아무튼 여러 가지 좋은 뜻이 현실화된 건 11.28의 화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만큼 결정적이다. 그럼에도 항소심과 대법원은 11.28 회동과 화해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다. 내 형량을 높이기 위해, 1심이 중요하게 본 이런 사실을 의도적으로 뺀 것이다.
아무튼 나한테는 형사처벌, 교육감직 상실, 선거비용 반환, 공무담임권 박탈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더욱이 2억이라는 자기 돈을 쓰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어떤 큰 이익도 없었다. 그래서 모든 사정을 다 듣고 실체적 진실을 파악한 1심 재판부는 내가 돈을 준 건 이해관계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실제로 강교수와 나는 궂은 일이 낀 선행을 한다고 생각했다. 설령 5.19 합의 사실이 알려져 정치적 스캔들로 비화할 경우의 정치적 위험 부담을 제거하는 것이 내게 큰 이익이라고 해도 그것 때문에 형사처벌과 당선무효는 물론 선거비용 반환과 공무담임권 제한을 감수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계산 너머의 선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없다. 실제로도 정치적 위험제거 즉 이른바 입막음 효과와 정치적 협력 확보는 가장 중요한 동기와 목적이 아니었다.
Ⅲ. 법원은 '목적' 판단을 어떻게 그르쳤나?
내 목적과 동기를 1심 법원은 "윤리적 책무감과 정치적 이해관계의 복합" 으로 파악했고 2심 법원 역시 "경제적 부조와 교육감직의 안위"라고 보았다.
다만 이 중 교육감직의 안위라는 목적과 동기는 이기적이고 불순하다고 판단했다. 눈꼽만큼도 동의할 수 없다.
내가 만약 매수약속이나 의사표시를 했고 그에 따른 형사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입막음용 돈을 줬다면 그건 비난가능성이 높다. 악에 악을 더한 셈이 된다. 그러나 내 경우는 전혀 다르다. 나는 불필요한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을 뿐이고, 오해를 받게 되면 교육감직의 권위가 떨어지고 교육혁신에 차질이 빚어질까 염려했을 뿐이다. 여기에 어디 비난받을 사익이 있는가? 조금이라도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요소가 있는가? 나는 교육감직을 잃지 않으려고 돈을 준 게 아니다. 교육감직의 원활한 수행에 혹시 모를 방해요소를 막고자 했을 뿐이다. 내가 교육감직을 잃게 된 건 약속 없고 의무 없는 선의의 돈을 줬기 때문이지 후보매수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튼 1심과 2심 모두 이른바 사후매수죄를 목적범으로 해석하면, 내게 대가제공 목적이나 약속 이행 목적이 없기 때문에 나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목적범이 아니라고 억지를 부린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한술 더떴다. 2호 범죄가 목적범이 아니라는 1심과 2심의 판단이 부적절하다고 하면서도 1심과 2심은 내게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분명히 1심과 2심은 내가 2억을 준 동기와 목적을 경제적 부조와 교육감직의 원활한 수행에서 찾았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이것은 주된 목적이 아니고 "부수적인 목적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1,2심도 그렇게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니 이 무슨 억지인가. 1,2심은 2호의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에서 등장하는 목적은 목적범의 목적이 아니라고 설시하면서 이때의 목적은 의미나 성질로 해석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 결과 대가 목적을 대가 인식 혹은 대가성으로 둔갑시켰다. 결국 1,2심은 내가 대가를 '목적'한 것은 아니지만 대가성을 '인식'했다는 이유로 유죄판단을 내렸다. 1,2심의 유죄판단 이유가 이런 데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1,2심은 실제로 내게서 대가 '목적'을 인정했다고 보는 이유는 대법원이 생각하는 '대가 목적' 판단 기준이 1,2심이 적용한 '대가성' 판단 기준과 똑같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2호의 목적은 초과주관적 구성요건으로서, 고의와 분명히 다르다고 기껏 해설해 놓고 바로 대가 목적과 대가 고의는 그 판단 기준이 똑같으므로 전혀 다를 게 없다고 자기 부정을 감행했으니 말이다.
이른바 사후매수죄에서는 금품 제공행위 자체는 불법행위가 아니므로 대가 제공 목적이 있어야만 범죄가 성립된다. 이렇듯 위법성이 오직 목적에만 존재하는 진정 목적범의 목적은 몹시 엄격하게 해석해서 직접적이고 1차적인 목적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정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증거 역시 직접적, 1차적인 목적을 증명하는 것만 인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즉, 불법으로 평가받는 목적을 느슨하게 해석하게 되면 이는 자의적인 심정 처벌의 길을 활짝 열어 주는 셈이 된다. 이렇게 볼 때 1심이 내놓은 대가성 판단 기준과 똑같은 대법원의 대가 목적 판단 기준은 잘못됐다. 둘 다 선거관련성, 특히 사퇴 연관성이 인정되면 거의 기계적으로 대가 목적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상세히 살펴본 것처럼 내가 2억을 제공한 목적과 동기는 박교수에 대한 경제적 부조와 교육감직의 원활한 수행이었다.
나와 무관한 5.19 합의에 기초한 대가 기대나 요구에 부응하여 5.19 합의를 이행하겠다는 목적은 내게 조금도 없었다. 애당초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이것이 금전을 지급한 1차적이고 주된 목적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처벌 의지를 처음부터 불태우지 않은 이상 이렇게 태연히 주된 목적을 바꿔치기 할 수 있을까? 사실심인 1심과 2심이 공히 인정한 주된 목적을 부수적인 목적에 지나지 않는다며 예외적으로 자판까지 하면서 유죄를 확정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억지로 갖다 붙여 처벌목적을 달성한 것 아닌가? 내 뜻에 반하는 5.19합의 이행과 약속하지 않은 대가 제공을 주된 목적이자 강한 목적으로 파악한 대법원의 판단은 기록과 진실에 100% 반한다.
더욱이 대법원은 나와 한 뜻으로 움직인 강교수는 목적이 없다면서 파기환송하고 나는 목적이 인정된다면서 유죄를 확정했다. 강교수가 무죄취지의 파기환송을 받은 것은 당연하지만 2억 제공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강교수를 목적이 없다고 하면서 강교수의 조언을 따른 내게는 목적이 있다고 달리 판단한 것은 실체적 진실에 반한다. 나를 처벌하기 위한 억지 외길을 걸은 것 외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이럴 수는 없다. 이건 재판이 아니라 개판에 지나지 않는다.
Ⅳ. 선거일 후 선거범죄의 공소시효,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곽노현 재판, 공소시효 지난 공소제기로 원천무효다 -
그래도 대가 목적이 있는지 여부는 내면과 심정을 들여다보는 일이니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지, 지났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검찰과 1,2,3심 법원은 공히 내 사건 공소제기가 공소시효 기간 내에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이른바 사후매수죄는 선거일 후에 가능한 선거범죄이므로 '선거일 후 6개월'의 공소시효 대신 공직선거법 제268조 제1항 괄호 규정에 따라 '행위시점부터 6개월'의 공소시효를 적용 받는 것으로 보고 내 사건의 공소시효가 마지막 금품제공시점, 즉 범죄 종료시점인 2011년 4월 8일부터 6개월 후인 2011년 10월 8일에 완성된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 계산은 100% 잘못이다. 내 사건의 공소시효는 선거일 후 6개월이 지난 2010년 12월 2일에 완성됐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1,2,3심 모두가 검찰의 잘못된 공소시효 해석과 계산을 받아들였다. 언뜻 보기에 문제없어 보이는 2011년 10월 8일이 아니라 2010년 12월 2일을 내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일로 해석해야 하는 이유를 사례로 설명해 보자.
만약 내가 경쟁후보에게 '사퇴하면 선거 끝나고 5년 지난 시점에서 5억을 주겠다'고 문서로 약속했다 치자. 약속에 따라 사퇴했고 나는 당선되었다 치자. 나아가서 나는 떳떳하게 재선에 성공해서 재선임기 첫해의 끝자락에 와 있다 치자. 이런 상황에서 사후 이행 시점이 다가와 5억을 제공했다 치자. 그리고 이 사실을 한 달 안에 검찰이 인지했다 치자. 검찰은 이 때 이 사건을 공소제기 할 수 있는가?
검찰과 법원은 공소제기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을 것이다. 왜냐하면 "괄호 부분의 '선거일 후에 행하여진 범죄'는 선거일 후에 행하여진 일체의 선거범죄를 말한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대법 판결 13쪽). 대법원은 우리 측 변호인의 다른 주장에 대해 "괄호 부분의 '선거일 후에 행하여진 범죄'를 '선거일 후 6월 이내에 행하여진 범죄'로 제한 해석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명시적으로 배척했다(대법판결 13쪽).
요컨대,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제268조 제1항의 본문의 문언과 입법취지 등에 비추어 볼 때" 위의 가상 사례에 대한 공소제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괄호안 규정에 아무런 시기 제한이 없다는 것뿐이다.
정반대다. 제268조 제1항의 문언과 입법취지, 관련규정을 체계적으로 해석할 때 괄호안 규정은 즉 "선거일 후에' 행하여진 범죄"는 선거일 후 '6월 이내에 행하여진 범죄로 제한해석해야 옳다.
무엇보다도 당선인의 선거범죄로 말미암아 당선인을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나 징역형에 처할 경우에는 문제의 선거범죄와 관련된 "당해 선거에 따른 당선"(법의 용어로는 그 당선)을 무효로 돌리고 선거비용 반환과 공무담임권 제한을 부과하는 것이 공직선거법의 특징이다. 선거법은 당선인의 선거범죄를 적발, 100만원이상 벌금형이나 징역형으로 처벌하면서도 선거범죄로 덕을 본 당선을 무효로 돌리지 않는 상황을 예정하거나 상상하지 않는다. 선거법은 당선인에게 당선무효의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선거범죄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 규정"을 두고 최장 1년 이내에 당선무효형 여부가 확정될 수 있도록 심급별 재판기간을 설정하고 "반드시"지켜야 한다고 규정한다.
앞에서 든 가상사례의 사후이행형 매수 범죄는 문서증거가 남아 증거가 확실하다. 공소제기가 가능하다면 당연히 100만원 벌금형 이상의 무거운 형이 선고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매수범죄가 겨냥한 '당해 선거'로 인한 당선은 4년 임기가 이미 종료했다. "그 당선"을 무효로 돌리는 게 불가능한 시점인 것이다. 그렇다고 어떤 선거범죄도 없이 떳떳하게 당선된 재선 임기를 무효로 돌릴 수도 없다. 그건 유권자의 선택, 곧 민의에 반하는 일이니까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당선 무효 없이 초선 당시의 후보매수죄만 처벌하면 될 것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선거범죄에 대해 그 죄질과 경중을 묻지 않고 선거일 후 6월이라는 초단기 공소시효를 설정하여 적극적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유권자 선택의 존중 및 공직수행의 안정성이라는 중대공익에 배치된다. 6,7개월 전의 중대 선거 범죄도 공직 수행의 안정성을 위해 선거일 후 6개월만 지나면 못 본 척 하는 것이 선거법상 공소시효 특례제도의 입법취지인데 하물며 5년 전의 후보 매수죄를 적발했다고 징역형을 선고하고 재선당선인을 감옥에 보내 재선 공직의 안정적 수행을 뒤흔드는 건 선거법이 조금도 용인할 수 있는 발상이 아니다.
사실 똑같은 매수 약속을 하고 사퇴를 이끌어 냈는데 매수 대가의 이행시점에 대한 공소시효가 고무줄처럼 연장되는 효과를 빚는다면 그것 자체로 헌법의 평등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굳이 따지자면 현금박치기형 사전이행 매수죄보다 사후이행 매수죄가 오히려 죄질이 약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후이행 시점을 장기로 잡을수록 사후이행 여부가 매수범의 재량과 호의에 의존하게 되므로 그렇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전 약속에 따른 사후이행 행위의 공소시효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은 선거범죄에 고유한 당선무효제도 및 재판기간 강행규정, 그리고 당선무효형으로 말미암은 공직 안정성 침해 위험을 조기에 종결짓기 위한 초단기 공소시효 문언과 입법취지와 부합할 길이 없다. 한 마디로 가상사례의 선거일 "5년 후" 재선임기 중의 사후 이행행위에 대한 공소시효는 이행시점부터 6개월이 될 수 없다.
이것을 달리 말하자면 "선거일 후에 행하여진 (선거)범죄의" 공소시효는 "그 행위가 있는 날부터 6월"이 아니다. 오히려 그 행위는 반드시 당해 선거에 따라 결정된 당선인의 임기 이내에 행해져야 하며, 그에 대한 공소제기 역시 공소의 결과로 당선무효형이 나올 경우 "그 당선"을 무효로 할 수 있는 시점까지는 이뤄져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시 말해서 선거일 후 선거범죄의 공소시효는 공소제기로 말미암은 유무죄와 형량이 임기 종료 전까지 확정되는 것이 가능한 시점까지다.
언제가 그 시점인가? 선거일후의 선거 범죄에 대해 언제까지 공소를 제기해야 법정재판기간을 다 채우고 당선무효형이 확정돼도 당선을 무효로 돌릴 수 있는가? 선거범죄 재판기간은 최장 1년(1심 6月 이내, 2심과 3심 각 3월 이내)까지 인정되므로 선거일 후 공소시효로 아무리 늦춰 잡아도 임기 종료 1년 전까지라는 내재적인 시간적 한계가 도출된다. 여기까지만 인정해도 선거일 후의 선거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대법원의 해석과 달리 불특정한 행위시점부터 6월이라는 불특정한 시점까지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당해 선거일로 결정된 당선자의 임기종료일 1년 전이라는 특정시점까지 인정되는 것으로 그 기간을 한정해야 하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선거일 후의 선거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당해 임기 종료 1년 전으로 해석하는 것도 선거법 268조 1항 단서의 규정에 배치되기 때문에 도저히 지탱할 수 없는 입장이다. 위의 단서조항은 선거범죄를 저지른 자가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스스로 도피하거나 공범이나 중요 참고인을 도피시킨 경우에 한해 공소시효를 선거일 후 6월에서 선거일 후 3년으로 연장한다. 적극적 사법방해죄까지 보태진 경우에 한해서 임기 내내 당선무효형의 선고를 통한 당선무효가 가능하도록 규정한 셈이다.
그렇다면 적극적 사법 방해를 하지 않고 선거범죄만 그것도 선거일 후에 저지른 경우의 공소시효를 당해 임기 종료 1년 전으로 잡을 수는 없다. 당해 임기는 당해 선거일 후 보통 1,2달 안에 개시하므로 당해 임기 종료 1년 전의 공소시효는 당해 선거일 후 3년의 공소시효보다 일반적으로 한 두 달이라도 더 길기 때문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선거일 후의 선거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선거범죄와 사법방해죄의 결합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인 선거일 후 3년보다는 짧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선거일 후의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는 어떤 경우에도 선거일 후 3년을 넘을 수는 없다는 법리를 체계조화적 해석을 통해 밝혔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선거일 후의 범죄행위도 일단 성립해야 그 때부터 6개월의 공소시효가 진행되는 것은 맞다. 문제는 언제까지 선거일 후 범죄행위의 성립을 인정한 것인가이다. 선거일 후 범죄행위의 공소시효가 선거일 후 3년 이내인 것은 틀림없으므로 여기서 6월을 빼면 선거일 후 2년6월 이내에만 선거일 후 선거범죄가 성립한다고 해석하면 어떨가? 즉 이때까지 행해질 때에 한해 그 때부터 6개월간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방법 말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말이 안된다. 첫 째, 절대 다수의 선거범죄에 대해 그 경중과 상관없이 공직 안정성이라는 중대공익을 위해 일률적으로 선거일 후 6월의 초단기 공소시효를 정한 점에 비추어볼 때 선거일 후에도 가능한 몇 몇 선거범죄에 대해 특별히 죄질이 중하지도 않은데 선거일 후 3년까지 발생을 기다리며 처벌시효를 열어놓은 것은 평등원칙에 위반된다. 예를 들어 같은 후보매수죄이더라도 사전이행을 한 경우에는 선거일 후 6개월로 당선무효를 불러올 수 있는 공소제기의 위험이 사라지는 반면 사전이행보다 죄질이 가벼우면 가볍지 무거울 리 없는 사후이행에 대해서는 선거일 후 3년까지 당선무효형이 가능하다면 부당한 차별대우가 아닐 수 없다.
둘째, 선거일 후 선거범죄의 성립시효를 선거일 후 2년6월, 공소시효를 그 때부터 6월인 선거일 후 최장 3년으로 잡는 해석은 사법방해를 추가로 저지른 선거범에 대해서 적용받는 경우에나 타당하므로 사법방해를 하지 않고 순수 선거범죄만 저지른 경우에는 형평에 맞지 않다.
이 시점에서 다시 분명한 것은, 예외적으로 선거일 후의 행위를 "선거"범죄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선거연관성이 확실해야 된다는 점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선거일 후의 선거범죄는 내재적인 시간적 한계를 갖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봐도 당해 선거의 과정 속에서 행해졌다고 인정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는 이상 선거일 후의 행위를 (선거일 후의) 선거범죄로 단정하는 것은 몹시 신중을 요한다. 특히 선거일 후에 생긴 목적이나 동기를 선거법상 불법목적, 예컨대 사후 '매수' 목적으로 판단하려면 더 엄격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행위자의 내심의 목적을 제멋대로 판단해서 처벌하는 심정형법의 무서운 길을 열어놓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도대체 선거일 후의 금전제공 행위를 언제까지 선거범죄로 볼 수 있을까? 공직선거의 안정성이라는 중대법익을 위해 공소시효를 행위시점이라는 불특정시점을 기준으로 설정하지 않고 선거일이라는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잡은 사실은 선거일 후 선거범죄의 공소시효도 일률적이지만 합리적인 기준이 설정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또한 99.9%의 선거범죄에 대해 선거일 후 6개월이라는 초단기 공소시효를 설정하여 당선무효형의 위험여부, 즉 공소제기 여부를 선거 끝나고 6개월 안에 확정짓도록 한 선거법의 취지를 감안할 때 선거일 후의 범죄에 적용되는 성립시효와 공소시효는 모두 선거일 후 6개월에 비해 현저하게 길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지금까지의 해석지침이 올바른 것이라면 선거일 후의 선거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선거일 후에 6개월 내에 행하여진 선거범죄에 한해 그 때부터 6개월의 공소시효가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리적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렇게 해석하면 선거일 전의 선거범죄와 달리 선거일 후의 선거범죄는 최장 6개월간 공소시효가 연장된다. 범죄성립 시점부터 6개월의 공소시효를 인정하되 선거일 후 선거범죄의 성립시효 혹은 숨은 시간적 구성요건을 선거일 후 6개월로 봄으로써 선거 범죄의 시간적 선거밀접성이라는 요건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합리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러한 해석은 선거일 후 6개월이 지나면 당선인은 당선인대로 공직의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오고 낙선자나 사퇴자 역시 낙선과 중도사퇴의 비애와 고통에서 벗어나 선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는 경험칙에 부합한다. 다시 말해서 선거가 끝난 지 6개월이 지나면 누구나 선거의 영향이나 지장에서 벗어나서 선거와 무관하게 행동하게 되므로 어떻게 행동해도 선거범죄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적 인식은 선거범죄의 특례공소시효를 선거일 후 6개월로 잡은 경험적 토대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선거범죄 공소시효는 선거 때 불법약속의 이행시효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셋째, 선거일 후의 선거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이렇게 해석할 때만이 공직의 안정성이라는 중대법익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일반 선거범죄에 비해 최장 6개월까지만 불확실성이 연장되기 때문에 감내할 만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해석해야만 죄질이 비슷한 선거일 전 선거범죄와도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공직의 안정성이 최장 6개월만 더 법적 위험에 놓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체계조화적 해석이 강제하듯이 선거일 후 선거범죄, 특히 2호 사후매수죄의 공소시효를 선거일 후 6월 이내에 범죄행위가 행하여진 경우에 한해 수사 및 기소를 위해 그 때부터 6개월의 공소시효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설할 때, 다음과 같은 선거범죄는 공소시효가 어떻게 될까?
첫째, 사전 금품약속이나 의사표시에 따른 선거일 후 이행행위에 대해서는 공직선거후보 사후매수행위 외에는 선거일 후 6월의 공소시효가 적용된다. 왜냐하면 선거법상의 금품제공범죄 중에서 목적범 형식으로 규정된 다양한 매수범죄 처벌조항은 사후이행행위를 그 자체로 처벌하는 조항을 두지 않고 있다. 다만 사전매수행위, 즉 금품제공의 의사표시나 약속을 처벌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선거매수범죄(제230조에서 제235조까지 규정된 수많은 범죄행위)는 모두 선거일 전 선거범죄다. 단 하나의 예외로 보이는 경우가 제232조 1항 2호인데 이 조항을 법원의 해석처럼 이른바 사전 약속 없는 사후매수 처벌조항으로 이해할 경우의 공소시효는 선거일 후 선거범죄의 공소시효 법리에 따라 선거일 6개월 이내에 행하여진 선거범죄에 한 해 그 때부터 6개월로 봐야한다.
둘째, 선거법상의 금품제공죄 중에는 목적범의 형식으로 규정되지 않은 세 가지 매수 범죄가 있다. 공천관련(제47조의 2), 선거보도논평관련(제97 2항), 선거운동관련(제135조 3항) 금품제공과 그 의사표시나 약속을 금지하는 조항들이 그것이다. 세 조항 모두 "~와 관련하여" 금품제공을 금지한다고 규정한다. 목적범은 아니며 따라서 선거일 후에도 공천이나 선거 보도, 논평 또는 선거운동 관련하여 어떤 이유와 동기, 명목과 목적이든 간에 금품을 제공하거나 그 제공의사를 표시하거나 약속하면 처벌된다. 그렇다면 공천을 받은 자가 공천권자이었던 정당의 실력자에게 향후에도 자신을 밀어달라는 뜻과 공천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아 사전에 약속하거나 의사표시조차 하지 않은 거액을 전했다고 할 때 언제까지 공소를 제기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는 주고받는 관계가 독립적, 경쟁적이기 보다는 의존적, 협동적이고 간헐적, 일시적이기 보다는 지속적인 관계가 될수록 유리하다. 따라서 상호관계의 성격과 이심전심에 따라 사전약속이 없어도 금품이 오고갈 충분한 이유와 유혹이 존재한다. 그래서 입법자가 (사전) 목적범 형식 대신 사전, 사후를 막론하고 금품자체가 오가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의도로 "~와 관련하여 명목을 불문하고 금품 제공, 그 약속이나 의사표시를 처벌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만약 후보매수용 금품제공 처벌조항을 입법자가 이렇듯 사전, 사후 원천봉쇄형으로 성안하고자 하였다면 이주 간단했을 것이다. "후보 사퇴와 관련하여 명목여하를 불문하고 일체의 금품을 주고받거나 그것을 약속하거나 그 의사를 표시하고 승낙하는 자를 처벌 한다"고 규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법자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경쟁후보 관계의 특성과 후보매수의 성격상 사후매수라는 개념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보사퇴와 관련하여 사전목적범을 넘어 사후금품제공까지 엄벌할 필요도 못 느꼈을 뿐 아니라 그런 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관련범'형 사후금품제공조의 공소시효는 언제까지인가? 당연히 선거일 후 선거범죄의 공소시효 법리에 따라 선거일 후 6월 이내에 제공이나 그 약속과 의사표시가 (있는 경우에 한해) 그 때부터 6개월이다. 이런 해석은 헌법재판소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는다. 헌재는 이미 위 세 유형 매수지 문언의 "관련하여"는 "~를 동기로 하여 또는 ~에 즈음하여"로 뜻한다는 해석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를 동기로 하여"가 사물적 인과관계라면 "~에 즈음하여"는 시간적 구성요건을 시사한다. 공천에 즈음한 기간, 선거보도, 논평에 즈음한 기간, 선거운동에 즈음한 기간을 아무리 길게 잡아도 선거일 후 6개월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헌재도 우리의 해석을 지지할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선거일 후에 성립 가능한 선거범죄로는 이제 선거일 후 답례금지 (제118조)만이 남았다. 당선 또는 낙선한 데 대하여 선거구민에게 향응이나 광고 등 답례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이다. 이 조항 위반범죄는 당연히 선거일 후 선거범죄이지만 선거일 후 6월은커녕 선거일 후 한 달만 지나도 이 조항 위반으로 의율하는 것이 어색할 것이다. 따라서 선거일 후 6월 이내에 행하여진 경우에 한해 그 때부터 6월의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결론적으로 내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는 2010년 12월 2일로 도과했다. 그 때까지 금품제공이나 제공의 약속이나 의사표시가 없었고, 이런 사실이 명백하게 입증되었기 때문에, 내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남아 있지 않았다. 법원이 체계조화적 해석을 전혀 하지 않고 문자적, 기계적으로 선거범죄 공소시효를 해석해서 처벌한 것은 한국 법 적용사의 수치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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