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천주교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가 지난 6월 1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가톨릭포럼에서 발표된 것으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빈곤화성장(immiserizing growth)이란 경제는 성장하는데 국민생활은 더 어려워지는 현상을 말한다. 원래 이 말은 인도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바그와티(J. Bhagwati)가 1950년대 농업에 대해 주장한 것으로서 예컨대 농민이 쌀을 10% 증산했는데 쌀값은 20% 떨어지는 경우를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현상이 오늘날 다른 모습으로 세계경제 전반에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심각하여 우리의 최대 현안문제가 되어있다. 그러면 이러한 현상은 왜 생기는 것이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1. 세계경제 성장 환경의 변화
1990년을 전후하여 세계경제에는 두 가지의 큰 성장환경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하나는 신자유주의 질서이며 다른 하나는 중국경제의 부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를 지배한 질서는 케인즈 경제학이었다. 이 사상은 시장경제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다. 즉 경제를 시장에만 맡길 수 없으며 정부가 적극 나서서 재정이 주도하여 성장과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1970년을 전후하여 시카고학파의 프리드만(M. Friedman)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신고전학파가 점점 세를 불려 1990년 경부터는 세계경제의 기본질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게 된 데는 이 무렵 동구 공산권이 붕괴하여 세계경제가 시장경제로 통합된 것이 크게 작용하였다. 신자유주의 질서는 시장경제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기본이다. 즉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규제와 장벽을 제거하여 세계를 하나의 단일 시장으로 개방하고 거기서 민간 기업이 자유경쟁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성장환경 변화는 14억의 거대한 인구를 가진 중국이 긴 잠에서 깨어 세계시장경제에 들어와 개발에 나섰다는 점이다. 방대한 저임금 노동력, 대규모의 투자 및 상품시장 등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중국경제의 부상은 세계경제에 판도를 바꿀 만큼의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2. 신자유주의적 경제성장의 특징
신자유주의 정착과 중국경제의 부상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상승 작용하여 오늘날의 세계경제 성장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특징을 지니는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하나의 특징은 고성장 저물가 현상이다. 품질은 좋아지고 값은 싸지는 현상이다. 신자유주의는 좋은 품질을 값싸게 만드는 생산자가 생산을 맡게 하여 성장을 촉진하고, 그렇게 만든 상품은 세계 어디서나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곳에서 판매토록 하여 물가를 떨어트린다. 그리고 중국경제의 부상은 방대한 저임금 노동력과 새로운 시장을 공급하여 세계경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하는 한편 세계에 물건을 값싸게 공급하는 공장 구실을 했다. 그리하여 세계경제는 고성장 저물가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미국을 예로 들면 1992년부터 세계금융위기가 있기 전 해인 2007년까지의 16년간 경제성장률은 3.1%의 고성장을 누리면서도 소비자 물가는 연 2%에 불과하였다. 특히 신발이나 의류 값은 2000년을 전후한 10년 동안 오히려 10%나 떨어졌는데 이것은 중국효과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업이윤을 보면 미국은 1980년 이래, 그리고 유럽과 일본은 1930년 이래 최대 호황을 누렸으며 한국의 경우는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빈곤화 성장이다. 경제는 성장하지만 국민들 대부분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원인은 경쟁력 우위부문과 열위부문간의 양극화 현상과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하의 개방경쟁과 중국과의 개방교류는 필연적으로 경쟁력이 강한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한다.
그러나 민생부문이라 할 수 있는 중소기업, 자영업, 농업 등 경쟁력이 취약한 부문은 성장을 위축시켜 경쟁에서 퇴출시킨다. 그리고 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덜 쓰고 기술과 자본을 더 쓰는 생산방식을 채택하게 되고 그래서 실업이 늘어난다. 예컨대 20년 전만 해도 거의 모든 은행 업무를 사람이 했으나 지금은 은행업무의 약 9할을 기계가 하고 있다.
3. 왜 한국의 빈곤화 성장문제는 더 심각한가
신자유주의와 중국경제의 부상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성장환경이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가 왜 한국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인가.
첫째로 한국경제는 대기업중심적인 성장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의 산업화과정과 관련이 있다. 한국은 외자 의존적, 수출 의존적, 정부 주도적, 농업 소외적 경제개발을 해 왔는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대기업주도의 산업화를 추진해왔다. 이것은 다른 어떤 나라와도 차별화 되는 점이다. 그래서 대기업은 선진화되어 있는 반면 중소기업, 자영업, 농업 등 은 후진적인 모습으로 낙후되어 이중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농업이나 자영업은 영세성과 저생산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중소기업은 자본과 기술면에서의 취약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로 철저한 신자유주의적 개방질서와 경제정책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품시장뿐 아니라 투자시장과 자본시장까지도 모두 개방되어 있다. 무역의존도는 높고 경제성장은 수출에 크게 의존한다. 이러한 구도에서 환율정책 금리정책 조세정책 등은 수출과 대기업에 유리하도록 이끌어지게 마련이다.
끝으로 한국은 중국경제의 영향을 가장 직접 그리고 크게 받는다는 점이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우리와 인접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규모면에서 한국보다 월등히 크기 때문에 우리에게 미치는 중국 경제의 영향은 매우 큰 것이다. 그런데 중국경제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면 우리나라의 대기업과는 보완관계가 되어 대기업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지만 중소기업, 자영업, 농업에 대해서는 경합관계로서 성장을 위축시키고 도태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4. 한국의 빈곤화 성장
한국은 매년 4-5%의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 국민의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한국의 빈곤화성장 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보기로 하자.
1) 대기업은 사상 최고의 이익을 내는 호황을 누리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수출을 독점하고 있는 반면 서민생활과 고용을 맡고 있는 중소기업, 자영업, 농업 등은 성장에서 소외되고 있다. 1980년대의 경우를 보면 경제성장률이 7.7%였는데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의 성장률이 각각 7%대로 균형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거의 전부 대기업이 이끌고 있으며 중소기업, 자영업, 농업 그리고 가계부문의 소득은 현상유지 또는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내고 있다.
2) 국민저축을 대기업이 독점하고 가계는 소외되어 있다. 총 민간저축의 부문 간 점유비중을 보면 가계저축은 2000년의 40%에서 2009년에는 20%로 줄고 기업저축은 60%에서 80%로 증가하고 있다. 기업저축에 있어서도 대기업의 비중은 크게 증가하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의 비중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2010년 현재로 보면 가계저축률은 2.8%에 불과하여 독일의 12% 미국의 6%보다도 낮으며 가계의 금융부채는 940조원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부채비율은 지난 10년 동안에 400%에서 100%로 감소하고 있고 10대 기업의 유보율은 1,200%에 이르고 있다. 20대 대기업 그룹의 3년간(2008-2011) 자산 증가율은 54%에 이르고 계열사 수는 36%나 증가하였다.
3) 고용사정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 15세 이상의 생산가능인구 중 취업자의 비율을 나타내는 고용률은 2010년 58.7%로서 2000년 이래 최저치이며 청년 실업률은 8%, 그리고 구직 단념자를 포함하면 18%에 이른다. 경제성장의 고용유발효과를 나타내는 고용유발계수는 매년 추세적으로 낮아지고 있고 매년 만들어내는 일자리 수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
4) 빈부격차는 날로 확대되고 있다. 소득분배의 경우 상위소득 20%계층소득을 하위 20%계층 소득으로 나눈 값인 5분위 분배율이나 지니계수 지표가 모두 소득격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자산격차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0년 가계자산의 소유구성을 볼 때 상위10%가 전 자산의 47%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하위 50%는 전 자산의 9%만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하여 중산층은 무너지고 저소득층은 늘어나고 있다. 전체 가구 중 중산층(중위소득의 50%-150% 사이의 소득계층)의 비중은 2005년 57.5%에서 2010년 49.9%로 감소하고 저소득계층(중위소득의 50% 이하 소득계층)의 비중은 18.1%에서 23.0%로 증가하였다.
5) 경제가 성장하는 속에서 생활은 더 어려워지는 현상들을 우리는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있다. 국민소득 중 노동소득의 비중을 나타내는 노동소득 분배율은 경제가 성장할수록 커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것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2005년 61%, 2010년 59%). 가계 총지출 중 음식물비의 비중인 엥겔계수는 생활이 나아질수록 감소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이것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6) 소득이 최저생계비(2011년 1인 가구 월 53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절대빈곤층은 2009년 현재 750만 명에 이르러 전 인구의 15%를 점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그나마 최소한의 정부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 수급자는 146만(전인구의 2.88%)에 불과하다. 2010년의 경우 경상가격에 의한 명목 경제성장률이 10%인데 저소득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신용카드 현금대출은 25%나 증가하였다. 특히 최저 신용등급자(7-10등급)들의 신용카드 대출자 수는 같은 해 4.4분기의 3개월 동안에 25%나 급증하였다. 그 해의 은행대출은 5% 늘었는데 저소득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상호금융대출은 17%나 늘었다. 저소득자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5. 대응책: 국내투자 늘리고 재분배정책 강화해야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한 빈곤화 성장 문제는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며 이대로 방치한다면 날이 갈수록 깊어져 시장경제에 대한 체제위기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 그래서 단호한 의지와 노력으로 이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치유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대안이 있다. 그 하나는 국내투자를 늘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분배정책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국내투자 문제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기업이 이익을 내면 이것을 국내에 투자하여 가계소득을 창출하고 가계소득은 다시 구매력화하여 기업소득으로 환류된다. 이러한 정상적 소득순환이 이루어지면 빈곤화 성장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문제는 기업소득이 국내에 투자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국내에 투자하지 않고 해외투자나 금융자산 투자 또는 부채상환이나 유보 등으로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총생산에 대한 국내총투자율은 1996년의 38%에서 2009년에는 26%로 매년 감소하고 있으며 총투자의 절대금액(실질가격)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기업들이 국내투자를 늘리도록 하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해결대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국내 고비용 구조나 좁은 시장 등 열악한 투자환경으로 인하여 투자의 기대수익이 낮기 때문에 국내투자를 기피하는 것이다. 정부는 투자환경 개선 등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민간투자를 늘려 빈곤화 성장 문제를 당장 해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민간투자 증대를 크게 기대할 수 없는 것이라면 대안은 정부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정부가 민간기업 소득을 세금으로 흡수하여 이것으로 복지시설이나 공공사업 등에 투자 하는 것이다. 법인세 인하 등 이른바 부자감세를 통해 민간기업 투자를 유발해보겠다는 것은 투자의 기대수익은 높으나 투자자금이 없어 투자를 못하는 1960년대의 발상이며 정반대의 상황인 오늘에는 맞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민간저축을 오히려 정부가 흡수하여 정부가 투자를 대행하는 것이 투자를 확실히 하는 길이며 이것이 바로 케인즈 경제학의 해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도 보완적인 역할은 기대할 수 있겠지만 문제해결에 근본대책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은 정부가 재분배 정책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과 고소득층이 소요자금을 더 부담해야 할 것이다.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국민소득의 1차분배가 양극화하여 빈곤화성장을 결과한다면 정부가 개입하는 재분배(또는 2차 분배)를 통해 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질서 하에서 분배를 개선하고 중산층 비중을 늘리는 데 있어서는 재분배정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북구유럽의 경우 1차 분배에서의 요소소득으로는 중산층 비중이 한국보다도 더 낮지만 가처분 소득에 의한 중산층 비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데 이것은 재분배정책에 의한 것이다.
한국은 OECD국가 중 담세율이 가장 낮고 재분배 기능도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총생산에 대한 담세율은 서구 선진국들이 25% 수준이고 연금이나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비 부담을 포함하면 40%가 넘는데 우리는 담세율이 20%, 사회보장비 부담을 포함해도 26% 내외에 불과하다. 이것을 고쳐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기본수요(생존, 교육, 의료)는 사회가 공동으로 대처하고 나머지는 각자의 자유경쟁에 맡기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향에서의 재분배정책에는 최빈곤층의 생존비 보장, 실업자 대책,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와 교육 지원강화대책 등이 포함되어야 하며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는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기업과 고소득층은 세금을 더 내고 유산의 사회 환원이나 기부 등 여러 가지 형태로 그 소득을 사회에 환원토록 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소득격차보다도 자산격차가 더 크고 더 심각하다는 점에서 개인의 총자산(부동산과 금융자산)과 법인기업 이익에 부과하는 사회복지세 같은 것을 시도해 볼만 하다. 이러한 세수를 통해 담세율을 현행 20% 수준에서 일단 22% 수준으로 올리고 여기서 나오는 20-30조원의 추가재원으로 재분배 정책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분배 정책의 수단과 방법 선택에 있어서는 성장활력을 되도록 훼손하지 않도록 유념할 필요가 있다.
6. 맺는 말
노무현 정부는 확실한 친서민 정부였지만 결과는 빈곤화 성장이었다. 수혜계층은 대기업과 부유층이었고 피해계층은 저소득층이었다. 배를 열심히 동쪽으로 저어갔지만 신자유주의, 중국저임경제, 부동산 투기 등의 거센 역풍에 밀려 배는 서쪽으로 가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간 얘기만이 아니다. 나는 지난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있기 한 두 해 전인 2006년에 "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질 것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 이겨 집권하는 여당은 5년 뒤 선거에서 또 질 것이다."라고 여러 차례 공언한 일이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경제학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이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빈곤화성장의 역풍이 거세게 불어 계속 경제 사회 정치의 핵심이슈가 될 것인데 어느 정권도 이 문제 해결에 필요한 특단의 개혁을 단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빈곤화 성장은 신자유주의 질서와 중국경제 부상이라는 세계경제의 성장환경변화가 가져온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체질과 지정학적 요인 등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큰 빈곤화 성장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이 문제를 방치한다면 시장경제에 대한 체제위기로 번질 위험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민간기업과 정부의 국내투자를 늘리고 정부가 재분배정책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정책은 서로 보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투자를 늘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그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빈곤화 성장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성장과 분배의 틀을 다시 짜는 방향에서 재분배 정책을 강화하는 길 밖에 없다. 이러한 재분배정책의 강화에는 부유층과 대기업들의 복지비 부담증가가 전제되어야 할 것인데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부유층과 대기업들은 체제안정을 위해 그 부담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한편에서 성장활력을 지속시키고 한편에서는 재분배 정책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에 당면하고 있다. 성장활력을 지속시키자면 우리 기업들이 무한경쟁의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여 우리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국내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자유무역환경의 보장, 노사관계의 안정, 고비용구조의 개선 등 성장환경 조성에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벌어들인 소득이 전체국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고르게 환류될 수 있도록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마련해야 하며 성장의 수혜자인 대기업과 부유층은 이러한 재분배에 소요되는 비용을 솔선해서 부담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많은 사회적 저항이 따를 것이다. 재분배 비용을 내야 하는 대기업과 부유층 뿐 아니라 성장환경을 마련하는 데 협력해야 하는 노동조합과 농민들로부터의 저항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국민통합 노력과 특단의 정치적 결단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처럼 "나만 살면 된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 또는 집단이기주의가 판치는 사회 환경으로는 이루어낼 수 없을 것이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적 성장" 정신을 세워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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