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진해농산고를 수료한 뒤 진방남이란 예명으로 가요계 활동을 시작했다. 1938년 태평레코드사의 전속가수가 된 뒤 '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등의 히트곡으로 인기 가수가 됐다.
해방 이후에는 반야월이라는 이름으로 가수보다 작가사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소양강 처녀', '울고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 고개', '산장의 여인', '아빠의 청춘' 등은 모두 이 시기에 그가 만든 곡이다.
'울고넘는 박달재'의 배경이 된 충북 제천에는 반야월 기념관 건립 작업이 진행 중이다.
고인은 그러나 일제 강점기 친일 군국가요를 부르기도 해 팬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지난 2010년 고인은 이 사실을 고백하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마산방송국 문예부장, 한국가요작가동지회 종신회장,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고문, 한국전통가요사랑뿌리회장 등을 역임했다. 가요계에 기여한 공로로 KBS 특별상,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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