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발효 이후에도 토지공개념을 꿈꾸나?

[이태경의 고공비행] ISD는 토지공개념을 질식시킬 것

도발적으로 질문해 보자. 한미FTA가 발효된 이후에도 우리가 토지공개념이라는 이상을 추구할 수 있을까? 추구할 수는 있겠지만, 실현하기는 몹시 어려울 것이다. 토지공개념이라는 헌법적 가치의 총론에는 언제나 동의하면서 각론에 들어가면 토지공개념의 이상을 종종 배반하곤 하는-종부세에 대한 세대별 합산 과세방식을 위헌으로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억해보라-헌법재판소의 미덥지 못한 태도만 해도 힘에 겨운데, 이에 더해 한미FTA에 포함된 투자자-국가소송제(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ISD)까지 들어오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미FTA 부속서 제11 - 나 '수용' 부분 제3의 나.항에 명시된 "공중보건, 안전, 환경 및 부동산 가격안정화(예컨대, 저소득층 주거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통한)와 같은 정당한 공공복지 목적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고안되고 적용되는 당사국의 비차별적인 규제 행위는 간접수용을 구성하지 아니한다"라는 조문을 근거로 부동산 관련 정책은 ISD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건 정부의 희망사항일 가능성이 높다.

재산권 보다 넓은 '투자', 헌법이 예정하지 않은 '간접수용'

한미FTA에 포함된 투자자-국가제소제(ISD)관련 문제점 중 대표적인 것은 협정문에 정의된 '투자'의 범위가 대한민국 법체계상의 '재산권' 보다 훨씬 넓다는 점, 제소의 자격 범위가 대한민국 현행 법체계보다 넓어진다는 점, 대한민국 헌법이 예정하고 있지 않고 따라서 헌법의 해석상 도입이 불가능한 '간접수용'이 본격적으로 도입될 것이라는 점 등이다.

먼저 투자의 범위에 관해서 살펴보자. 협정문 제11장(투자)의 목적상 제반용어를 정의한 제11.28조에서는 투자란 투자자가 직·간접적으로 소유 또는 지배하는 모든 자산으로서 자본 또는 그 밖의 자원의 약속, 이득 또는 이윤에 대한 기대, 또는 위험의 감수와 같은 특징을 포함하여 투자의 특징을 가진 것으로 투자가 취할 수 있는 여덟 가지 형태(가호 내지 아호)를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협정문상 투자의 개념은 상당히 넓고 포괄적인 의미로서, 그 형태는 면허·인가·허가와 국내법에 따라 부여되는 유사한 권리를 포함한다.

문제는 협정문상의 '투자'가 포괄하는 범위가 대한민국 법체계 상의 '재산권'보다 훨씬 넓다는 데 있다. 현행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재산권이란 경제적 가치가 있는 모든 공법상·사법상의 권리를 말한다. 그러므로 헌법 제23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재산권은 민법상의 소유권 뿐만 아니라 재산적 가치 있는 사법상의 물권, 채권 등 모든 권리를 포함하며, 또한 국가로부터의 일방적 급부가 아닌 자기 노력의 대가나 자본의 투자 등 특별한 희생을 통하여 얻은 공법상의 권리도 포함한다. 상속권에 대하여 헌법은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나 판례는 재산권에 포함된다고 본다. 이와 같이 헌법상 보호되는 재산권은 "사적 유용성 및 그에 대한 원칙적 처분권을 내포하는 재산가치 있는 구체적 권리"이므로 단순한 이익이나 재화획득의 기회 등은 재산권의 보장대상이 아니다. (헌재 1996. 8. 29, 95헌바36, 판례집 8-2, 103;헌재 2000. 7. 20, 99헌마452, 판례집 12-2, 151;헌재 2002. 12. 18, 2001헌바55, 판례집 14-2, 819) 언뜻 보아도 협정문 상에서 '투자'로 보호하고 있는 면허, 인.허가, 기대이익 같은 것은 대한민국 법률과 판례가 보호하는 재산권 범주 밖에 위치한다.

또한 투자의 범위가 이렇게 넓다보니 투자자의 범위도 덩달아 넓어지고, 투자자가 직접수용이건 간접수용이건 수용이 일어났다고 판단하면 정부를 상대로 ISD를 발동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국내 회사의 주식을 1주라도 가지고 있는 미국인 투자자가 정부의 처분으로 인해 자신이 투자한 회사의 주가가 하락했다고 판단하면 정부를 상대로 제소할 수 있다. 투자의 정의에 "투자자가 직,간접적으로 소유 또는 지배하는 모든 자산"이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내 법체계상으로는 설사 정부의 처분으로 인해 특정기업이 손해를 입었다고 해도 그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을 뿐 그 기업의 주주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길은 없다.

그 다음 '간접수용'에 대해 살펴보자. 간접수용은 미국의 '규제적 수용(regulatory taking)'의 법리를 차용한 것인데, 사적 소유권 보호에 민감한 미국적 특성이 반영된 법리라 할 것이다. '규제적 수용'이란 정부의 규제에 의하여 재산권이 제한될 뿐 재산권의 박탈에까지 이르지는 아니 하여도 보상을 요하는 수용으로 인정하는 법리다. 도시계획(zoning)같은 것이 '규제적 수용'이 인정된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간접수용'은 '규제적 수용'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미국 법원의 판례나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ICSID)의 중재사례들을 보면, 규제적 수용은 '침해되는 재산권 자체에 대한 규제 또는 제한으로 경제적 가치가 감소되는 것'임에 반하여, 간접수용은 '규제적 수용에서 더 나아가 정부의 조치의 반사적 효과로서 투자자산의 경제적 가치가 저하되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한민국 헌법이 '직접수용'만을 인정할 뿐 '간접수용'을 예정하고 있지 않고, 따라서 '간접수용'을 합헌적으로 해석할 수 없으며, '간접수용'의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 23조 3항에 언급된 공용침해(수용, 사용, 제한)에 따른 보상은 재산권 자체에 대한 공용침해를 전제한 것이지, 정부 조치의 반사적 효과까지 고려한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협정문 상에 투자자-국가제소제(ISD)의 예외(공중보건, 안전, 환경 및 부동산 가격안정화 같은 정당한 공공복지 목적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고안되고 적용되는 당사국의 비차별적인 규제 행위)의 예외로 명시한 "조치가 그 목적 또는 효과에 비추어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인 때와 같은 드문 상황(rare circumstances)"이라는 단서는 극히 모호하고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기준이다. 더욱이 투자자가 간접수용을 이유로 이에 대한 보상을 청구하는 제소를 할 때 이의 적부를 판단하는 기관은 국내 법원이 아니고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ICSID)이다.

토지공개념은 박물관으로?

투자의 범위가 너무 넓고 제소의 자격도 완화된데다 정체가 모호한 '간접수용'까지 허용되는 마당이니 내년부터 '부동산 가격 안정화'조치들을 포함한 부동산 정책 전반(토지이용규제, 각종 부담금, 개발이익환수제, 부동산 관련 각종 세금, 지자체의 개발사업에 대한 인·허가권, 기부채납, 분양제도 등)가운데 투자자-국가제소제(ISD)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영역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협정문 제11.17조을 보면 "각 당사국은 이 협정에 따라 이 절에 따른 중재에 청구를 제기하는 것에 동의한다"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미국인 혹은 머리 검은 외국인 투자자의 제소를 사전적으로 예방할 정책수단이 없다.

투자자-국가제소제(ISD)는 그 존재만으로도 부동산과 관련한 정부의 공공정책과 규제를 현저히 위축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사전검열을 의미하는 이른바 '된서리효과"((Regulatory Chill)가 발생하는 것이다. 투자자-국가제소제(ISD)의 제소대상이 되어 거액의 배상을 해 줄 수도 있는 정책을 입안하고 입법하며 집행할 수 있는 강심장을 가진 의회와 정부를 생각하기란 어렵다. 가뜩이나 부동산 문제로 신음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투기공화국의 오명을 벗기가 한결 어려워진 것이다.

부동산 관련 정책 전반이 투자자-국가제소제(ISD)의 위협에 떨고 있는 처지에 토지공개념이 온존할 리 만무다. 토지공개념의 헌법적 가치나 이상이 형해화되지는 않겠지만, 토지공개념을 실현시킬 정책수단들이 심각한 제약 아래 놓인 상황이니만큼 토지공개념은 사실상 박제(剝製)가 된 셈이다. 토지공개념의 정신과 가치를 부활시키고, 대한민국을 부동산공화국의 굴레에서 건질 방법은 없는 것일까? 대뜸 생각나는 것이 한미FTA의 폐기를 공약하는 정치권력의 선출이다.

▲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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