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여 분노하라'…세계로 번지는 저항의 물결

[해외시각] 한국 청년들의 '촛불'과 닮은 그들

1년에 1000만 원이 넘어가는 등록금을 인하하라는 한국 대학생들이 잇단 집회를 벌이고 있다. 경쟁에 찌들어 정치에 무관심하다 여겨졌던 20대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은 비단 등록금 문제뿐 아니라 졸업장을 받고 나서 마주칠 척박한 고용환경이 이들의 삶을 옭죄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올해 초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시작한 청년들의 시위가 유럽으로 번져가고 있다. 한국 청년들과 마찬가지도 이들도 고등교육을 받았음에도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강력한 지도력 대신 민주적인 사고와 소셜 네트워크 기기로 무장한 이들은 공권력과 큰 충돌을 빚지 않으면서도 점차 많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하고자 한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Spiegel)은 지난 7일자 르포 기사에서 이집트와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청년들의 시위를 둘러봤다. 체제에 순응하던 과거를 벗어나 분노하고 요구하는 이들의 모습은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촛불을 든 한국 청년들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 기사의 주요 내용을 번역해 싣는다. <편집자>


유럽의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섰다

파리에서 일어나는 어떤 혁명에도 바스티유 감옥 습격은 빠지지 않는다. 200명의 젊은 시위대가 지난 2일 저녁 바스티유 광장의 나무 그늘에 앉아 어떻게 혁명을 시작할지 궁리하는 이유다.

5일이 되기 전까지 시위대의 수는 2000명 이상으로 늘었고, 바스티유 오페라 공연장 입구까지 점거했다. 최루탄을 소지한 경찰이 도착했고, 이후 이 상징적인 장소를 철통같이 감시했다.

시위대는 스페인 마드리드와 포르투갈 리스본 시위에 필적하는 운동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 그들은 진짜 민주주의(démocratie réelle)를 요구하며 파리의 거리를 행진할 수만 명의 청년들을 원한다. 그들은 프랑스에서 20%가 넘는 청년실업률과 불안정 노동, 끊임없는 위기상황이 이어지고 있기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

'행동'(Actions)라 불리는 단체에 소속된 22세의 물리학도 줄리앙(Julien)은 "지금까지 우리의 문제는 항상 개인적인 일로만 치부당해 왔다"며 "당신이 직업을 찾지 못하면 본인의 잘못이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 변화를 경험하고 있고, 이 체제에 맞선 범유럽적 운동을 조직하기 위한 행동에 뛰어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근본적 변화

유럽 곳곳에서 모여드는 청년들은 그들이 부모 세대만큼 풍요롭게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교육 수준이 높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 한다. 경제 위기 등을 겪으며 자란 '위기의 아이들' 세대는 몇 년 동안 끓어온 불만에 영향을 받았지만 누구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거리에서 싸우려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3월 12일 20만 명의 군중이 리스본 '해방로'를 행진했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 당시 '잃어버린 세대'의 행진 이후 최대 규모였다.

이집트 카이로의 혁명은 코임브라(Coimbra) 대학의 알렉산드레 데 수자 카르발류(Alexandre de Sousa Carvalho)와 친구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들은 '쓰레기 세대'(Geração à rasca)에게 시위에 함께하자고 청했다. 그들은 페이스북에 "무직에, 저임금에 인턴인 우리들은 이 나라 역사상 가장 잘 교육받은 세대"라며 "우리는 불안정한 상황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빨리 현실을 바꾸기 위해 저항하고 있다"라고 썼다.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는 25세의 카르발류는 수염을 기르고 허리에 가죽 완장을 두른 예의바른 청년이다. 그는 평소엔 잘 참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어로 석사학위를 땄음에도 제한된 고용 계약만 맺을 수 있었고 아프리카에서만 일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혜택 받지 못한 이들

포르투갈은 유로존에서 4번째로 가난한 국가다. 심지어 그리스의 1인당 GDP가 더 높다. 실업률은 지난 6년간 2배가 뛴 12.6%고 25세 미만 청년실업률은 27%에 달한다. 일자리가 있어도 절반 이상이 임시직이다. 많은 이들이 유사 자영업자(사업주가 세금 등을 회피하기 위해 자영업자로 위장한 노동자)인데 소득은 적지만 50%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카르발류는 밴드 '둘린다'(Deolinda)의 노래가 그들이 저항하는데 영감을 줬다고 말한다. 이 밴드의 노랫말은 삶에 대해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난 돈을 벌지 않는 세대야. 그게 신경 쓰이진 않아. 얼마까지 난 멍청해질 수 있지?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인턴 자리라도 건지면 다행이지. 얼마나 멍청한 세상인가, 우리는 노예가 되려고 학교에 가고 있는데."

그들은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서는 걸 그만두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 태동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카르발류는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저항을 조직하는 이들이 그에게 연락을 취해왔다고 말한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무정부주의자와 우익 활동가, 트로츠키주의자와 가톨릭 신자들이 유리창 하나 깨트리지 않고 거리 시위를 할 수 있을지 알고 싶어 했다.

최근 몇 달간 세계는 거리와 광장을 메운 청년들의 모습에 익숙해져왔다. 이러한 광경은 튀니지의 하비브 부르기바(Avenue Habib Bourguiba) 거리,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바레인의 진주 광장이 다 비슷하다. 이는 아랍 혁명의 모습이며 이제는 유럽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가진 공통점이 뭘까? 아랍 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 속한다. 인구 절반이 25세 미만의 청년들이다. 반대로 유럽은 잘 살지만, 고령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청년들은 소수에 머물러 있다. 아랍 국가에서 청년들은 민주적 권리 쟁취를 위해 싸우고 있지만, 유럽의 청년들은 정치적 힘이 줄어가기 때문에 저항하고 있다.

아랍 세계의 이미지

아랍과 유럽 젊은이들은 모두 교육 수준이 높지만 일자리가 없다. 그들이 모든 혁명의 원동력이다. 시위에 동원되는 도구도 유사하다. 젊은이들은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해 시위를 조직하지만, 지도부는 없다. 유럽의 청년들에게는 아랍 세계의 그런 모습들이 필요한 것 같다.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인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에는 3주 동안 텐트촌이 만들어졌다. 광장은 분노한 이들의 차지였다. 시위대는 지방선거를 1주일 앞둔 5월 15일부터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100여 명만이 밤을 보냈다. 하지만 선거위원회가 이들을 불법이라고 규정하자 오히려 빠르게 늘어났다. 선거가 치러진 일요일에는 3만 명의 인파가 광장과 인근 거리를 채우고 경제위기와 무능력한 정치인, 부패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또 직접 민주주의를 시도했다. 시민들이 광장에 놓인 종이 상자에 그들의 제안을 던져 넣도록 했다. 매일 저녁 위원회는 단기적인 정치 분야의 아이디어에서 좀 더 미래지향적인 주제까지 토론하기 위해 모였다. 2주 전 시위대는 도시의 120개 거리에서 모임을 열였다.

순응이 최선의 전략이라며 정치에 무관심한 청년들이 밤새 정치적으로 변했다. 이 운동을 관찰한 결과 도달한 가장 놀라운 결론이다. 프랑스와 포르투갈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위대는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요구했고 청년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지지 표명을 모아갔다.

▲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중심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텐트를 치고 회의 중인 청년들. ⓒ로이터=뉴시스

"난 외국으로 가야만 한다"

18세의 파트리(Patri)는 거의 처음부터 마드리드의 시위대에 있었다. 지난 1일 그는 회색 후드 스웨터를 입고 발언대에 앉아있었다. 그는 기침을 했고 피로한 눈 아래 다크 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남아있고 싶어 했다. 그는 "우린 역사를 만들고 있다"며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어와 독일어를 전공하는 대학 1학년생이다. 번역가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는 "아마 외국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페인에서는 25세 미만 경제활동 인구의 44% 이상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대학 졸업자 3분의 1이 무직 상태다. 일자리가 있는 이들의 절반 이상이 소위 '쓰레기 계약'을 맺고 있는데 경우에 따라선 고용 기간이 몇 주 단위로 제약되기도 한다. 경기 활황기에도 청년들은 비싼 등록금과 취업난에 시달려 왔다. 3년 전 부동산 거품이 터지면서 시작된 위기의 최대 피해자도 청년들이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청년들의 처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좌절감을 느끼고 있고, 다른 유럽 도시에 시위의 여파가 차례차례 미치고 있다. 저소득 아르바이트밖에 할 수 없는 청년들이 독일 함부르크, 오스트리아 빈, 이탈리아 로마에서 거리로 향하고 있다.

바스티유 습격

아이러니하게도 젊은이들들을 이끈 이는 94세의 프랑스인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의 일원이었던 스테판 에셀(Stéphane Hessel)은 지난해 <분노하라!>(Indignez-vous!)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스페인의 '분노한 이들'(indignados)과 프랑스의 '분노한 이들'(indignées)이라는 말은 모두 에셀의 책 제목에서 따 왔다.

전 유럽에 걸친 이러한 저항 운동을 에셀이 만든 건 아니지만, 그는 무관심의 시절 이후 다시 유행이 될 무엇, 곧 시민 참여를 요구했다. 그의 호소는 많은 유럽 시위대들이 찬성하기엔 막연하고도 충분히 심각하다. 그는 양극화된 세계에서 비폭력 운동을 지지했다.

비록 프랑스의 '분노한 이들'은 리스본과 마드리드, 그리스 아테네의 시위대처럼 많지는 않지만 잘 조직돼 있다. 파리에서 그들은 대로의 중앙분리대에 앉아 연락 방법과 공격 계획을 궁리하지만 세련된 방법을 취하고 있다. 대학 강의실에 있는 것처럼 그들 중 한명이 발언하면 다른 이들은 손을 들어 찬반을 결정한다.

그들과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는 파리 교외에서 온 아랍 청년들이 앉아 있다. 도시 외곽은 고용난이 가장 심하고 차들이 아직도 (폭동으로) 불붙은 채 남아있다. 아랍 청년들은 이 낯선 모임을 보며 당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중 일부는 때로 분노에 찬 모욕적인 말을 퍼붓기도 한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온화하고 단정하며 반응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 그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할' 때 평화로움을 유지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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