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기 '법인화=민주화'
국공립대 법인화 방침이 처음으로 공론화된 계기는 전두환 정권기 교육개혁심의회의 활동이었다. 교육개혁심의회는 전두환 정권이 교육 자율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하여 1985년 3월 구성한 대통령 직속 기구였는데, 당시의 사회적 갈등 속에서 정부의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던 탓에 뚜렷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교육개혁심의회는 민주화 직후인 1987년 12월 최종보고서인 '교육개혁종합구상'을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이 보고서의 내용 중에 국공립대는 특수법인화하여 대학의 자율적인 운영을 위한 이사회를 구성하도록 한다는 방안이 있었다.(경향신문, 1987.12.8.) 그러나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던 전두환 정권은 이 정책을 추진할 여력이 없었다.
전두환 정권은 학원 자율화·교육 자율화 정책을 정부 주도로 추진하며 대학사회 통제책의 하나로 활용해왔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는 대학사회 내부에서부터 자율화를 모색하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민주화 직후 한국사회를 관통했던 '자유화'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 사회 곳곳에서 독재의 잔재를 씻어내고자 하는 노력이 전개되는 가운데, 대학 역시 '탈정치화'를 위하여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경향신문, 1987.8.19.) 즉 한국사회에서 법인화 논의는 처음부터 '대학의 자율성'이라는 가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의 '자율화'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 따라 대체로 '민주화'와 상통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아직 논의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고, 반드시 법인화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았다.(동아일보, 1988.2.10.) 현행 국공립대 제도 내에서 충분히 자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견해와 아울러 법인화는 하나의 선택지로 제시된 정도였다.
김영삼 정권기 '법인화=효율화'
1990년대에 들어와 법인화 논의는 크게 성격이 바뀌었다. 법인화의 핵심 가치인 '자율성'을 둘러싼 담론의 지형이 '민주화'에서 '효율화'로 급속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1990년대는 '세계화' 구호가 흘러넘치며 경쟁과 성장의 논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해가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 개혁 역시 시장경쟁의 논리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어갔다. 후술하겠지만 김영삼 정부는 모든 국립대를 민영화, 혹은 법인화하는 정책을 추진했을 정도였다. 교육의 공공성을 유지한다는 명분 아래 국공립대 제도를 유지하면서 자율성을 높인다는 식의 주장은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 식의 주장은 곧잘 '교수들이 철밥통 지키려 한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1990년대 들어 대학 개혁 문제에서 수월성 논리가 공공성 논리를 제치고 힘을 얻어가는 상황에서, 서울대는 한국 최고의 대학답게(!?) 선수를 쳤다. 서울대는 각계 전문가를 초빙하여 연구팀을 구성하는 등 계획적인 준비 끝에 1995년 2월 〈2천년대를 향한 대학장기발전계획〉(계획안)을 발표했다.(경향신문, 1994.3.30.) 서울대 측은 정보화·세계화 추세에서 서울대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계획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는데, 독자적인 입학제도 운영·학과제에서 학부제로의 전환·학부정원 감축과 대학원중심대학 육성 방안 등이 계획안의 골자였다. 한편 이 계획안은 특수법인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을 명시했는데, 개혁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예산 운용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세계일보, 1995.2.14.)
서울대는 계획안을 아예 법안으로 확정하는 작업을 진행하여 1996년 2월 〈서울대법 제정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러한 서울대의 행보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서울대가 대학의 균형 발전과 건전한 경쟁을 무시하고 특권을 추구한다는 비판이 일었는데, 서울대 측은 대학의 평준화는 불가능할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면서 국가의 학문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서울대가 먼저 앞서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한국일보, 1996.3.14.) 즉 서울대는 대학 개혁의 담론 지형이 효율성과 경쟁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이익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개혁에 나섰고, 이에 대한 비판을 정면으로 돌파하려 했던 것이다.
서울대, '모든 국립대 법인화안'에 꼬리 내려
김영삼 정부 역시 '세계화'를 목 놓아 외쳤던 정부답게 교육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개혁안을 만들었다. 1996년 5월 교육부는 〈교육부문 장기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여기서 정부는 서울대보다 몇 발짝을 더 나갔다. 서울대만의 법인화가 아니라 모든 국립대를 공립화하거나 민영화·특수법인화하기로 한 것이다.(경향신문, 1996.5.23.)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 아래 사실상 특권의 유지를 위해 선도적으로 법인화를 추진했던 서울대의 입장에서는 뜨악한 일이었다. 결국 서울대는 슬그머니 물러나 유보적 입장으로 돌아섰다.(서울신문, 2005.8.27.)
1997년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뒤에도 모든 국공립대를 법인화한다는 정부의 정책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IMF의 충격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수월성 논리는 약해지기는커녕 더욱더 강해져만 갔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기본적으로 시장주의적 성향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인화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사실 모든 국공립대를 한꺼번에 법인화한다는 정책은 매우 급진적인 개혁안이었고, 학교구성원들의 저항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국공립대 교수 사회의 저항이 심한 가운데,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법인화 정책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노무현·이명박 정권기 서울대, 법인화 주도권 '덥석'
노무현 정부는 반발을 줄이려는 취지에서 2005년 중반 이후 서울대를 포함한 몇몇 대학부터 '선별적으로' 법인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했고, 그해 10월 공식 정책으로 발표했다. 즉 소수의 대학부터 법인화를 시행한 후, 그것을 모델로 삼아 장기적으로 모든 국공립대의 법인화를 추진한다는 정책이었다. 정부의 태도가 바뀌자, 서울대는 다시 적극적으로 법인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선별적 법인화 정책하에서는 서울대가 선도적으로 법인화를 하여 경쟁에서 앞서나감으로써 정부의 지원을 더욱 많이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5년 9월 정운찬 총장은 공식 석상에서는 최초로 법인화를 찬성한다고 발언했다.(국민일보, 2005.9.29.) 뒤이어 취임한 이장무 총장 역시 법인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취임 직후 신중하게 추진하겠다는 견해를 밝혔지만,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사실상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서울신문, 2006.7.22.)
서울대는 치밀한 준비 끝에 이윽고 2008년 9월 '법인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서울대와 정부는 지루한 교섭을 벌인 끝에 2009년 11월 합의에 성공했고, 12월 법인화법 정부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2010년 12월,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와중에 법인화법까지 같이 날치기 통과시켜버렸다. 심각한 절차적 결함을 안은 채 통과된 법인화법은 곧바로 강한 저항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확연한 불의를 보며 조용했던 학생사회가 드디어 행동에 나섰다. 총학생회는 법인화 반대 여론을 모으기 위해 비상총회를 열기로 하고 2011년 봄 학기가 시작되면서 집중적인 홍보에 나섰다. 5월 30일 비상총회가 성사되었고, 그 자리에서 법인화 반대와 본부 점거안이 의결되어 즉시 본부를 점거했다. 그동안 '그들만의' 법인화 논의를 지켜보기만 해왔던 학생사회가 드디어 주체로 나서는 순간이었다.
'법인화'는 서울대 특권 유지 방편
| ▲ 서울대 본관에 학생들이 붙여놓은 그림. ⓒ프레시안(김윤나영) |
둘째는 서울대가 법인화를 추진하는 '진정한' 이유이다. 서울대는 겉으로는 국가의 학문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법인화를 추진했지만, 기실 그 속내를 따져보면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법인화를 활용하고자 했다. 서울대는 시장과 경쟁의 논리가 한국사회를 지배해가는 상황에 편승하여 제일 먼저 법인화를 이루어 선점의 이익을 취하려 했지만, 막상 정부가 국공립대의 동시 법인화를 추진하자 유보적 입장으로 물러났다. 그러다가 정부가 선별적 법인화 정책으로 전환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서울대의 모습에서는 공익을 도외시하는 '집단이기주의'가 여실히 드러난다. 국공립대를 법인화하면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은 서울대뿐이라는 내외의 비판을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법인화 논의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성격이 위와 같다고 정리할 수 있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지 따져볼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의 시민들은 복지 정책에 대단히 관심이 많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성장 패러다임이 수그러지고 복지 패러다임이 부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효율성'에 기반을 둔 법인화가 과연 올바른 대안인지 의심해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무수한 탈락자를 양산하는 교육경쟁을 배격하고 교육복지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법인화는 도저히 올바른 대안이 될 수 없다. 교육의 공공성을 보장하면서도 대학의 자율성을 높일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아 나설 때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