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주장은 과거 제약기업에서 실제로 임상 개발을 담당해 본 내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제약업계가 자체적으로 또는 대학 등에 위탁해 실시하는 각종 전임상시험(동물실험)이나 임상시험에 얼마나 연구 부정행위가 끼어 들 소지가 많은지 소개하면서, 생물학적 동등성(생동성) 시험을 그 예로 들었다.
공교롭게도 지금 일부 위탁 시험업체와 약학 대학이 생동성 자료 조작에 관여했다는 식약청의 발표로 국내 제약업계가 완전 초상집 분위기다. 현 제도 하에서 생동성 확보는 의사가 처방한 오리지날 약을 약사가 제네릭(흔히 '카피 약'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명칭은 제네릭이다 )으로 대체 조제할 수 있게 허용하는 전제 조건이다. 따라서, 환자의 의약품 선택에 좀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의사나 약사는 드러난 생동성 자료 조작을 놓고 각자 유리하게 사태를 전개시키려 안간힘이다.
우선 의사협회는 '거 봐라, 생동성이 입증됐다고 해도 아무 약이나 바꾸면 안 된다'라며 아예 이 참에 생동성을 통한 대체 조제 허용에 전면적 손질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약사회도 가만히 있을 상황이 아니다. 의사협회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한다며 '오히려 이 기회에 성분명 처방으로 가야 한다'고 맞불을 놓는다.
독자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한 가지 전제해야 할 사항이 있다. 나는 의사지만, 이 기고문은 의약품 개발과학의 전문가 입장에서 작성됐다. 혹여라도 '팔이 밖으로 굽냐'며 내 진의와 중립성을 왜곡하지 말아 주실 것을 부탁 드린다.
정책적 고려 때문에 뒷전으로 밀린 환자 안전
생동성으로 제네릭을 허가하는 것은, 혈중 농도를 이용해서 계산된 약물의 흡수 정도가 해당 제네릭의 효과, 즉 안전성과 유효성을 예측해 주는 효과적인 대리지표(surrogate)가 될 수 있다는 가정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정은 항고혈압제, 항암제, 항생제처럼 약물의 흡수 정도와 함께 흡수의 경시적 변화 양상이 효과 및 독성, 내성 발현(항생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또는 항우울제처럼 혈중 농도와 효과의 연관성이 잘 확립돼 있지 않은 경우에는 잘 들어 맞지 않는다.
또한 현재의 생동성 기준은 집단의 '평균'적인 흡수 양상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환자간 변이 정도의 유사성이 생동성 입증에 요구되지 않는다. 더욱이 생동성 기준을 통과했다는 것이 한 환자에서 오리지날 약을 제네릭으로 교체할 때에도 흡수 정도가 유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생동성 자체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동성 자료를 이용해 제네릭을 허가하는 것은, 오리지날 약의 특허 만료 이후 일정 기준을 갖춘 양질의 제네릭을 보다 신속히 도입함으로써 약가 부담을 줄이려는 정책적 고려 때문이다.
물론, 약가 통제를 통해 의료비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탓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의 생동성 시험 시스템이 질 관리 또는 질 보증 차원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의약 분업과 대체 조제 활성화 명목 하에 놀라울 정도의 생산성(?)으로 생동성 시험을 실시하도록 장려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제네릭을 대량 허가해 주었다.
진짜 식약청의 사명은 무엇인가?
생동성 시험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이므로 반드시 의사가 주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의약분업 이전에 실시된 생동성 시험에는 아예 의사의 참여를 명문화하지 않았고, 현재도 의사가 일정 부분을 관여한다는 조건 하에 임상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 연구 책임을 맡을 수 있도록 하는 매우 기형적인 규정을 갖고 있다. 더욱이 다른 모든 임상시험이 임상시험관리기준에 의해 엄정한 시스템을 갖추어 온 것에 비해 생동성 시험은 여전히 규제기관의 면밀한 감시 하에 있지 않다.
생동성 자료 조작은 바로 이러한 질 관리 기준에 미달한 생동성 시험 시스템을 정치적 의제에 따라 무리해서 가동한 결과이다. 물론 여기에는 문자 그대로 정권의 명운을 걸고 의약분업을 밀어붙였던 이전 정부의 당국자들과 지금까지 환자의 약 선택권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해 온 의사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던 타 직종들의 견제, 거기에다 환자의 건강 보호보다는 약가 통제에 더 우위를 두었던 보건복지부의 왜곡된 사명이 일조를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생동성 조작 사건을 파헤친 이번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며 동시에 엄정한 사후 처리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 모름지기 식약청의 사명은 약가 통제를 통한 의료 재정의 안정화나 제네릭 양성을 통한 국내 제약산업의 지원에 있지 않다. 양질의 의약품만을 과학적 원칙에 따라 선별적으로 허가함으로써 환자의 건강을 보장하고 증진하는 것, 이것이 식약청의 최고 사명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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