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거대정당의 안하무인이 도를 넘고 있으며, 총선이 편법과 꼼수로 얼룩지면서 권력정치와 현실정치를 감안하더라도 제도 왜곡과 정당이기주의가 도를 넘고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소수정당들의 원내 진입 기회를 높이고,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제도의 당위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을 뿐 아니라. 양대 거대정당의 독점체제를 해체하기 위한 제도적 디자인으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다당제를 통한 협상과 타협의 정치의 가능성은 거대정당들의 독점적 정당체제 해체와 맞물려 있기도 하다. 지난해 '4(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1(대안신당)' 협의체 대 자유한국당의 패스트트랙 대결 정국에서 선거제도의 기형적 운용과 파탄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통합당의 전신인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제도에 대한 논의 자체를 거부했고, 선거법 개정 논의 초기에 민주당이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보다 선거법 논의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제도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면 제도적 디자인의 장점을 뛰어넘는 편법과 꼼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21대 총선이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치러지는 첫 선거이자 마지막 선거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기반의 비례위성정당 때문이다. 민주당은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에 상응하는 조치로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구성하기로 하고 비례대표용 연합정당을 구체화하고 있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의 관계가 모(母)정당과 위성정당임을 당명에서 알 수 있듯이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관계는 사실상의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관계로서 민주당이 주도하는 정당임을 직감할 수 있다.
미래한국당과 더불어시민당이 본질적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훼손한다 할지라도 민주당이 구상하는 비례연합정당이 과소대표되고 있는 사회적 소수와 약자의 원내진출을 모색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데에서 나름의 명분을 부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더불어시민당은 정교하게 계획된 위성정당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정당과 비례정당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소모적 논쟁을 불러올 것이라는 집권여당 실세의 발언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치가 사법적 잣대에 의해 재단되는 현상은 정치의 사법화란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주권자인 유권자 집단을 진영논리에 가두고 선택을 강요하는 꼼수정치를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선거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두 비례위성 집단의 후보 심사와 공천 과정이 공직선거법이 규정하고 있는 '민주적 심사절차를 거친 대의원과 당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이루어졌는지를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살핌으로서 정치적 꼼수를 법치로 추방할 수 있어야 한다. 선관위가 단순히 선거를 관리하는 기구가 아니고 선거와 투표의 정의를 살릴 수 있는 기관임을 보여준다면 꼼수 정치에 일정부분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미래한국당과 더불어시민당 내의 소수정당들의 행보 역시 선거법과 정당법의 틈새를 파고드는 기묘한 행태들로 점철될 것이다. 최소정의적 관점에서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헌법기관의 공정한 잣대가 절실하다. 이미 선관위는 지난 달 당 대표나 최고위원회의 등이 비례대표 후보자를 전략공천하는 행위는 위법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집권당의 근본 오류는 제1야당의 과반 의석 확보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반헌법적 탄핵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위성정당을 구성하더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지향점을 살리기 위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촛불로 집권한 정당이 적폐정당을 닮아간다는 비판이 정치를 모르는 아마추어들의 탁상 비판으로 들릴 때 정권에 그늘이 드리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을 조직화하는 정치의 기본 역할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실종된 위성정당들에 대해 유권자가 심판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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