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이달 15일 언론을 초청해 기흥사업장 내 비메모리반도체(시스템LSI)를 원판(웨이퍼)으로 생산하는 5라인과 S라인을 공개하겠다고 12일 밝혔다. 5라인과 S라인은 각각 공장에 가동 중인 가장 오래된 라인과 최신 라인으로 반도체를 생산하는 청정실(클린룸)을 포함해 전체 생산 라인을 공개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 씨의 3주기 추모행사가 3월 초에 진행된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박지연 씨가 숨지면서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에 대한 논란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국내 노동자와 인권 운동가뿐 아니라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운동(ICRT) 등 국제단체들까지 가세해 삼성 등 세계적인 전자회사 공장에서 발행하는 사고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삼성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주로 인터넷을 통해 비판 여론이 퍼지는 걸 의식해 트위터 공식계정(@samsungtomorrow)으로 고 박 씨의 죽음과 공장의 작업환경과는 연관성이 없다는 반박 글을 게재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기흥사업장에서 '삼성 나노 시티' 선포식을 열고 삼성반도체 공업단지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기흥·화성·온양사업장의 명칭을 '캠퍼스'로 바꾸고 건물과 도로를 정비하는 한편 편의시설을 확충해 임직원들의 복리후생을 증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반올림 활동가들 "삼성, 이미지 변신에만 신경 쓰나"
삼성이 고 박 씨의 죽음 이후 '후속조치'를 연달아 쏟아내고 있지만 그동안 반도체 노동자들 편에서 문제를 제기해온 활동가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그들은 이번 공장 공개가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아닌 근무환경의 실체를 확인할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공장'을 '캠퍼스'로 바꾸고 외벽을 페인트로 칠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2년 전부터 삼성 반도체 문제가 퍼져 나가고 공장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면서 이미지를 바꾸는 것에만 신경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노무사는 "문제의 본질은 수백 가지의 화학물질과 유독가스, 방사선 등을 사용하는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생산량을 할당해 안전하게 작업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정부 주무부처에서도 반도체 공장의 안전 문제와 관련해 노동자들이 인터락(안전장치)을 해제하고 작업하는 것을 첫 번째로 꼽을 정도로 공공연한 진실이다"라고 덧붙였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공유정옥 전문의는 "백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발암물질은 냄새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아 단순한 현장 순회로는 의혹을 해소할 수 없다"며 "이번 공개가 의미를 가지려면 공장을 방문하는 이들이 현장 노동자에 대한 질의 등 보이는 것보단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신경을 쓰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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