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선거 '반중파' 압승..홍콩사태로 깨진 '중국몽'

차이잉원 재선 일등공신은 시진핑?

대만의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소속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첫 여성 총통 기록에 이어 '사상 최다표' 득표 당선이라는 기록을 거두며 재선에 성공했다.

12일 대만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차이 총통은 817만231표(57.13%)를 득표해 552만2119표(38.61%)를 얻은 '친중노선'의 중국국민당 후보 한궈위(韓國瑜) 가오슝(高雄) 시장을 264만여표 차이로 누르고 15대 중화민국 총통에 당선됐다. 차이 총의 득표수는 1996년 대만에서 총통 직선제가 시행된 이래 가장 많은 것이다. 그가 이번 선거에서 확보한 지지율도 4년 전 당선 때의 56.12%보다 1%포인트 더 높아졌다.

여당인 민진당도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대만 선관위의 최종 개표 결과에 따르면 전체 113개 의석 중 민진당은 61석을, 국민당은 38석을 차지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11일 재선에 성공한 뒤 지지자들에게 지지자들과 기쁨을 함께 하고 있다.ⓒAP=연합

'재선 불가능'에서 '사상최다표 재선' 극적 반전


현지 정치전문가들은 차이 총통의 승리 배경에 대해 '항중보대(抗中保臺, 중국에 대항하고 대만을 보호한다)'라는 선거 전략이 민심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을 '1등 요인'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항중보대'가 압승을 가져온 선거전략이 된 것에는 홍콩사태 등 외부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곁들이고 있다. 친중노선의 캐리 람 홍콩장관이 이끄는 홍콩이 '일국양제, 한 국가 두 체제)'의 노선을 추종한 결과 오히려 민주주의와 경제가 파탄나며 홍콩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경각심이 민심을 파고 들었다는 것이다.

차이 총통은 홍콩 사태를 통해 중국이 바라는 일국양제 통일 방안에 대한 대만인들의 반감과 불안감을 파고들어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대만이 될 수 있다"며 반중 노선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그 결과 2018년 11월 지방선거 참패로 당 대표직에서 밀려난 뒤 재선 도전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을 비웃듯 압도적 표차로 재선에 성공한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도 차이 총통에게 도움이 됐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 강행으로 중국 본토에서 사업을 하던 대만 기업가들이 대거 복귀했다.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대만 경제가 호전되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경제 이슈가 안보 이슈에 밀리게 됐다.


미국의 고율 관세를 우려해 중국을 떠난 다시 대만으로 돌아오는 기업들이 늘어난 가운데 대만의 작년 3분기 경제성장률(2.9%)은 대만이 자주 비교 대상으로 삼는 다른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인 홍콩(-2.9%), 싱가포르(0.1%), 한국(2.0%)보다 높았다.

홍콩사태로 홍콩 지방 선거에서 홍콩의 반중정서가 표출되며 범민주 진영이 압승한 것처럼, 대만 유권자들까지 이번 선거에서 반중노선의 차이 총통 정부에 표를 몰아주는 표심을 보여줬다.

이때문에 대만 선거의 패배자는 야당 후보 한궈위가 아니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라는 지적도 나온다. 홍콩사태와 대만 선거 결과가 '위대한 하나의 중국'을 건설하려는 '중국몽'(中國夢)' 구상을 표방해온 시진핑 주석에 정치적 타격을 줬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작년 1월 대만에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받으라고 요구하면서 무력 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급함으로써 직접 대만 압박의 포문을 열었다. 군사·외교·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파상적인 압박으로 대만의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중국 전투기가 1991년 이후 20년 만에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 대만 전투기들과 대치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항공모함을 포함한 중국 군함과 군용기들이 대만을 포위하듯이 둘러싸는 훈련 횟수도 부쩍 늘었다.

중국의 외교적 공세 속에서 작년 키리바시와 솔로몬제도가 대만과 단교하는 등 차이 총통 취임 후 7개국이 대만과 단교해 현재 대만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나라는 15개국뿐이다. 작년 8월부터는 본토인의 대만 자유 여행을 제한함으로써 대만에 연간 1조 원대로 추산되는 경제적 타격까지 가했다.

하지만 시진핑 정부의 압박은 작년 6월부터 시작된 홍콩사태로 대만인들의 반감을 자극해, '재기 불능'이라는 평가가 우세했던 차이 총통에게 오히려 '정치적 부활'을 선물하는 역효과만 초래했다. 차이 총통은 중국의 압력에 단호히 맞서 대만의 주권을 지키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하면서 지지율을 급속히 끌어올렸다.

차이 총통이 '현실적인 반중 노선'을 추구한다는 평가도 유권자 대다수의 표심을 얻는데 도움이 됐다. 급진적인 독립 노선 추구로 대만 여론을 분열시키고 국제사회 내 고립을 자처한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과 달리 차이 총통은 '현상유지'에 가까운 독립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대만 유권자 대다수는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한다기보다는 홍콩처럼 기존의 체제를 존중해 달라"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압박에 대항한 차이잉원 정부에 대한 미국의 지지도 대만 선거에 영향을 미친 요인 중 하나다. 미국은 중국의 패권 도전을 견제하는 카드로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중요시해, 중국의 대만 군사 압박에 맞서 미국은 거의 매달 군함을 대만해협에 통과시키면서 중국의 대만 공격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차이 총통의 재선을 축하하는 성명을 통해 "미국과 강력한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리더십에 감사를 드린다"면서 "끊임없는 압박에 맞서 양안 안정을 유지하는 차이 총통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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