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없는 얼굴

[반전평화 릴레이詩] 김선일의 주검 앞에

***얼굴없는 얼굴
-김선일의 주검 앞에**

네 어린 날 착한 머리맡을
적시며 넘쳐나던 바다,
그 바다에 잠겨 너는 꿈꾸었겠다

황금빛 낙타의 손을 잡고
옛 궁전을 찾아가는 천일 밤 동안
나는 달디단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으리라

그러나 채 낙타를 만나기도 전에
아랍의 사막은 네 작은 몸을 덮쳐버리고
말았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캄캄한 미궁
그 시간, 먼 별빛조차 사라진 네 고향 하늘엔
어린 날 너를 사정없이 때리던 바닷물처럼
비가 쏟아졌다. 막무가내의
빗속에서 떨고있는 너를 보았다.
죽지만 말아다오

죽이지만 말아다오
절규하는 네 등뒤엔 낯을 가린
알 수 없는 얼굴들이 버텨서있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네 목덜미에 끝내 사막의
바람보다 더 날카로운 비수를 꽂아버린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네 짧은 생애에 꽃 한 송이 건넨 적 없고
네 황금빛 꿈에 향료 한 방울 보태주지 못한
고향은 먼 먼길을 얼굴 없이 돌아온 네게
목 축일 마지막 술 한잔조차 건넬 수 없어

차마 이렇게 치켜들 수 없는 뜨거운 목을 놓고,

***작가 소개**

경남 함양 출생, 91년 『녹두꽃』 3집을 통해 문단에 나왔으며 시집으로
『그곳인들 바람 불지 않겠나』, 『혼자 먹는 밥』, 『등뒤의 사랑』이 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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