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가 2019년 하반기 지구촌의 핵심 이슈가 된 지 오래다. 최대 20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범죄인 인도법 개정 반대"를 외치면서 거리로 뛰쳐나왔고, 중국 인민해방군의 개입으로 '제2의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올해 전 세계 10여 개 나라에서 동시다발 시위가 진행 중이지만, 유독 홍콩 시위는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연방 상, 하원이 사실상 만장일치로 '홍콩 인권 및 민주주의 법안(홍콩인권법)'을 통과시켰고, 지난 11월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후보들이 452석 중 347석 (76.8%)을 얻었다.
홍콩 시위를 전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홍콩 문제의 뿌리에 대한 고민과 맥이 닿아 있다. 한국 언론의 홍콩 시위 보도는 적어도 발생 뉴스의 전달이라는 관점에서는 큰 하자가 없었다고 본다. 많은 언론매체가 특파원을 현지 파견하거나, 외신 보도를 인용해 시위를 소개했다. 다만, 홍콩 문제가 안고 있는 근원적인 모순에 대한 해석과 논평은 부족했다고 본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게 이 글의 목적이다. 시위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기에 이 글은 12월 초까지 벌어진 상황을 대상으로 한다. (필자)
중국 반환 22년, '공포'가 키운 홍콩 시위
대만으로 여행을 떠났던 찬퉁카이(陳同佳, 당시 19세)는 지난해 2월 17일 타이베이 다퉁구 퍼플가든호텔 방에서 여자 친구(潘曉穎, 20세)를 살해했다. 시신을 지하철역에 유기한 뒤 홍콩으로 도주했다. 두 사람은 모두 홍콩 국적이다. 홍콩 사법당국은 찬의 살인행위를 규명했다. 하지만, 여자친구의 돈을 훔친 절도죄 및 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만으로 그를 기소해 29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살인죄는 제외했다. 범죄 발생 시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홍콩은 영토 밖에서 발생한 범죄를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범인을 대만으로 인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중국의 특별행정구(SAR,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인 홍콩은 대만과 범죄인 인도 협약은 물론 어떠한 조약도 맺지 않고 있다. 1997년 중국에 귀속된 뒤 고도의 자치 및 행정, 입법, 사법권을 누리지만, 중국 영토이기 때문이다. 공식 명칭 자체가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특별행정구'이다. 영국 통치하에 제정된 보통법과 형평법, 입법의회 제정법, 부수 법령 및 관습법 등 기존 홍콩 법령은 반환 시점부터 50년 동안 유효하다. 하지만 기본법에 따라 외교 및 국방은 중국 중앙정부가 권한을 갖고 있다. 중국은 홍콩, 마카오와 한 묶음으로 대만 역시 일국양제(一國兩制) 적용 대상이라고 일방 주장하고 있다.
홍콩 당국은 찬의 살인사건을 계기로 범죄인 인도 협약을 맺지 않은 나라에도 범죄인을 송환할 수 있도록 범죄인 인도 관련 개정 법안을 추진했다. 문제는 범죄인을 송환할 대상에 대만, 마카오 등 인도협약 미체결 국가와 함께 중국 본토를 슬그머니 포함했다는 점이다. 홍콩 입법기관인 입법회가 범죄인 인도 관련 개정 법안의 심사를 진행하자 시민 사회가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 3월 15일 홍콩의 완전한 자치를 추구하는 시민 단체 데모시스토가 중앙정부 청사 앞에서 농성을 벌인 데 이어 같은 달 31일 시민인권전선(CHRF)이 홍콩 도심 루어드 로에서 시민광장까지 행진하면서 본격적인 시위가 시작됐다. 시위 참가자들은 "범죄인이 본토로 인도되면 홍콩은 어두운 감옥이 된다"라면서 법안 제정의 중단을 요구했다. 1만2000여 명이 참가한 첫 시위는 시간이 갈수록 규모가 커졌다. 시위는 홍콩 당국이 법안위원회 심리절차를 생략한 채 개정 법안에 대한 2차 독회를 하겠다고 공표한 6월 12일이 가까워지면서 규모가 커졌다.
6월 9일 시위에는 103만 명(경찰 추산 27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대규모 시위에도 독회를 예정대로 강행한다고 밝혔지만, 독회는 결국 연기됐다. 시위를 더욱 키운 것은 경찰의 강경 진압이었다. 홍콩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가스, 고무 탄환을 사용하면서 시위대를 저지선 안에 가두는 케틀링(kettling) 방식으로 진압에 나섰다. 당국은 시위대를 '폭도(riots)'로 규정해 화를 키웠다. 캐리 람 장관은 6월 15일 개정안을 보류한 데 이어 9월 4일 백지화했다. 하지만 한번 불붙은 시위는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시위를 주도하는 뚜렷한 주체가 없는 독특한 시위이기 때문에 당국과 시위대 간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시위대를 '폭도'와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중국
주민들은 당초 요구했던 개정안 전면 철회에 더해 경찰의 폭력행위 조사, 체포된 시위자 석방, '폭도'표현 폐기, 캐리 람 장관의 사임, 입법 의원및 행정장관 직선제 등 5가지 요구사항의 관철을 주장하며 시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시위대는 국내외에서 두 개의 작은 승리를 거뒀다. 우선 지난 11월 24일 치러진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후보들이 452석 중 347석(76.8%)을 얻는 압승을 거뒀다. 구의원 선거 압승은 간접 선거 방식으로 선출하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인단에 미치는 영향이 적기 때문에 정치적으론 의미가 적다. 하지만 풀뿌리 민주주의 차원에서는 값진 승리였다. 또 미국 의회가 추진한 '홍콩 인권 및 민주주의 법안'이 지난 11월 19일 상원(만장일치), 20일 하원(찬성 417 대 반대 1)을 통과한 뒤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 공포했다. 두 가지 성과는 1997년 홍콩의 중국 귀속 이후 가장 큰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3년 7월 시위군중 50만 명이 거리에 나서 둥젠화(董建華) 행정장관 정부가 추진한 ‘보안법’을 철폐시켰지만, 이후 중국의 간섭은 은밀하게 확대됐다. 올해 홍콩 시위를 키운 동인은 멀리는 1997년 중국 반환 이후, 가까이는 2014년 '우산 혁명'으로 불린 도심 점령시위(Occupy Central) 이후 누적된 불만과 불안 심리였다. 우산 혁명의 주역들은 정계에 진출했지만, 의원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국외 추방되는 탄압을 받아왔다.
특히 주민 불안을 가중시킨 것은 2015년 중국 당국이 금서로 규정한 책을 판매한 서점 주인들이 중국에 송환돼 조사를 받는 사건이었다. 누구라도 쥐도 새도 모르게 본토에 송환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졌다.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아예 내놓고 홍콩 주민을 베이징에 송환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개정안 반대 시위에 광범위한 반대가 결집된 까닭이다. 안면인식 폐쇄회로(CC)TV는 또 다른 공포의 원천이다.
홍콩 정부는 지난달 4일 비상정황규제조례를 발동해 시위대에 복면(마스크) 착용 금지령을 내렸다. 안면인식 CCTV로 시위자들의 신상을 파악, 평생 추적할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홍콩 법원이 복면금지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함으로써 당장 추진은 어려워졌다. 하지만 시위에 나선 주민들은 어딘가에서 자신들을 촬영하고 있을 CCTV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시위대 일부가 경찰과 대치하면서 과격한 행동을 하는 저변에는 이 같은 공포가 깔려 있다. 하지만 시위대가 요구하는 대로 행정장관 직선제를 포함한 완전한 자치를 지지하기에는 몇 가지 고민을 안겨준다. 홍콩 문제의 역사적, 국제법적, 현실정치(Real Politics)적 층위를 돌아보아야 하는 까닭이다.
역사적, 국제법적, 현실정치적 불편함
행정장관 직선제는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한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 50년 동안 적용되는 홍콩 기본법 역시 일국양제와 함께 항인항치(港人治港)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1842년 청나라와의 아편전쟁 뒤 홍콩을 할양받은 뒤 1898년 홍콩섬과 새영토(新界)를 99년 동안 조차한 영국의 식민통치 시절에도 완전한 자치는 허용된 적이 없었다. 홍콩은 마지막까지 런던에서 파견한 총독이 다스렸다. 700만 명이 넘는 홍콩 주민들에게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자유를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 제국주의가 안고 있는 ‘원죄’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가 중국을 상대로 행정장관 직선제를 비롯한 완전한 자치를 제공하라고 주장할 명분 역시 빈약하다. 미국 의회를 통과한 홍콩인권법이 직선제를 담고 있지 않은 연유다. 중국은 2004년 4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 기본법을 재해석해 행정장관의 직선제 개헌안은 전국인민대표대회의(전인대)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2047년까지 홍콩 특별행정구의 헌법 구실을 할 홍콩 기본법 자체는 영국과의 합의 하에 중국 전인대에서 제정된 것이며 그 해석권 역시 전인대에 있다. 홍콩기본법 45항과 68항은 직접, 비밀 선거에 의한 입법의원 및 행정장관 선출을 '목표'로 인정했을 뿐, 강제규정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중국은 반환 초기 홍콩 주민들의 자치 요구에 부응하는 듯했지만, 2012년 시진핑 국가주석의 취임 이후 직선제를 도입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범민주진영은 2012년을, 친중국진영은 2017년을 행정장관의 자유, 직접선거를 도입할 해로 꼽았지만 모두 지나갔다.
한국 언론은 서구 언론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홍콩 기본법의 시효가 끝나는 28년 뒤에도 홍콩이 계속 '고도의 자치'를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기저 심리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일국양제가 종료된 이후 홍콩 체제는 중국 공산당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외국 언론이 할 수 있는 것은 시위대에 지지를 표하면서, 시위 과정에서 드러나는 경찰의 과잉진압에 초점을 맞추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운 한계를 지닌다.
올해 홍콩 시위는 경찰의 진압 강도와 중국 인민해방군의 무력 개입 암시로 긴장을 더했다. 지난 7월 홍콩섬에서 벌어진 시위에는 삼합회(三合會) 소속 깡패들로 보이는 흰색 티셔츠 차림의 폭력배들이 지하철역 내부 군중에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11월 11일 집회에서는 진압 경찰이 처음으로 실탄을 발사했다. 홍콩 당국과 중국은 그러나 인명피해를 무릅쓰고 강제진압을 하는 대신 공포를 극대화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관측된다. 11월 4일, 홍콩이공대 2층에서 의식불명인 상태로 발견돼 결국 사망한 대학생(22)과 같은 달 14일 시위대와 주민의 충돌과정에서 벽돌에 머리를 맞아 사망한 70대 노인 등이 사망자로 분류됐다. 2건의 의문사도 있었다. 특이한 점은 시위와 관련해 자살한 사람이 9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인명피해 규모와 진압 강도로만 보면, 군·경의 발포로 23명이 죽고 700여명이 다친 볼리비아 시위나, 17명이 죽고 2500여 명이 다친 칠레 시위가 더 심각했다. 그럼에도 서구 언론은 볼리비아나 칠레에 비해 강한 어조로 홍콩 당국을 비판했고, 각국에서 연대 집회가 열렸으며, 미국 의회는 유독 홍콩 문제에 대해서만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우리는 자유와 정의의 편에 선다"(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라고 선언했다. 객관적으로는 1인당 물가반영(PPP) 국내총생산(GDP)이 6만4928 달러(2018년)인 홍콩에 비해 이라크와 볼리비아, 칠레의 인권 및 민주주의의 수준이 더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미국 연방의회와 각국 시민 사회 및 언론은 왜 홍콩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을까.
'중국'에 자기 검열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이유는 폭압의 배후가 중국이기 때문이며, 또 중국이기 때문에 섣불리 비난대열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지독한 모순이지만, 국제사회 현실정치(Real Politics)의 단면이다. 홍콩 문제를 대하는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의 입김 때문이다. 유일하게 법안을 통과시켜 추후 개입의 근거를 확보한 것은 미국뿐이다. 영국의 홍콩 할양이 종료된 1997년과 보안법 반대 시위가 있었던 2003년, '우산 혁명'이 일어났던 2014년과 2019년의 차이는 중국 국력의 차이이며, 이는 각국의 반응에 정확하게 반영됐다.
미국 연방의회를 제외한 각국이 내놓은 반응은 폭력에 반대한다는 외교적 수사에 그쳤다. 보리스 존슨 내각의 영국은 시위대와 진압 당국의 폭력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양측의 진정과 자제를 당부했다. 프랑스 외교부도 평화적 해법을 찾기 위한 대화를 주문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지난 8월 진압 당국의 '고강도 폭력'을 우려하면서도 "(시위대가) 마스크를 쓰고 폭력을 선동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11월 14일 외교부 대변인의 입을 통해 "홍콩 상황이 조속하게 평화적으로 해결되고 홍콩의 번영과 발전이 지속되기를 기대하는 입장"이라는 두루뭉술한 입장을 내놓았다.
홍콩 시위가 한국 사회에 던진 또 다른 충격은 중국의 입김이 국내 시민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환기한 것이다. 대학가에서의 충돌은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졌다. 연세대에서는 한국 학생들이 신촌캠퍼스에 홍콩 시위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설치했으나 중국 유학생들에 의해 무단으로 철거되는 일이 반복됐다. 고려대와 이화여대 등에서도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문구가 들어간 대자보나 현수막을 둘러싼 한·중 학생들 사이의 갈등이 이어졌다.
한양대에서는 홍콩 시위 지지를 호소하는 한국 학생들과 중국 학생들 사이에 거친 설전과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홈페이지에 올린 대변인 담화를 통해 "최근 홍콩의 상황은 국제사회로부터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며 "여러 이유로 관련 사실이 객관적이지 않고 진실을 반영하지 않아 일부 지역, 특히 대학 캠퍼스에서 중국과 한국 청년 학생들의 감정 대립이 발생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광주 인권회의를 비롯한 재야단체가 한국 내 홍콩 시민활동가들을 초청해 전남대에서 열려고 했던 간담회는 열리지 못했다. 대학 당국이 주한 중국 총영사의 항의로 장소 제공을 거부함에 따라 장소를 옛 전남도청으로 바꾸는 해프닝이 있었다. 학계와 언론계의 이른바 '중국통'들 역시 홍콩 시위 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의견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일선 기자들의 코멘트 요청에 많은 경우 익명을 요구한다. 이름을 드러내더라도 일반적인 견해를 내놓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중국 공산당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노선에 반대하는 해외 지식인과 사업가들의 중국 방문을 교묘하게 막는 한편, 친 중국 인사들을 자주 초청하거나 연구 프로젝트 지원을 제공해왔다. 중국을 전공한 학자 입장에서 중국 방문 길이 막힌다면 향후 연구 활동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기에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가장 중국을 잘 아는 지식인들이 침묵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홍콩과의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체감지수가 다른 한국 사회이기에 시민 사회만이 지지집회를 하고 있다.
중국이기에 나선 미국 의회, 중국이기에 나서지 않는 '세계'
모두가 불편하지만, 누구도 나서기를 꺼리는,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 중국 때문이다. 한국 언론에 깊이 있는 분석이나 논평이 부족했다면 그 1차적 책임은 언론이 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상당 부분 지식인 사회의 소극적인 자세 탓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이 홍콩 시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세계 극초강대국이 홍콩 주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최소한의 보호막을 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정치의 이면을 들춰보면, 이 역시 개운치 않다. 미국은 과연 홍콩 민주주의를 위해 나서고 있을까. 미국을 방문할 일이 많은 홍콩 당국자들과는 다르지만, 미국 의회가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뒤에도 북한 인권이 개선됐다는 증거는 없다. 홍콩인권법은 ‘홍콩은 중국 일부이지만, 법적, 경제적으로 독립된 체제’임을 확인하고, 미국 각 행정부의 의무사항을 규정해놓았다. 국무부는 홍콩이 미국이 제공하는 관세 및 투자, 교역상 특별지위에 걸맞게 중국으로부터 충분한 자치를 허용받고 있는지를 매년 의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특히 시민 자유와 홍콩 자치의 후퇴가 미·홍콩 협력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고에 포함해야 한다. 상무부 역시 중국이 미국의 수출통제 및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홍콩을 어떻게 악용하고 있는지 연례보고를 해야 한다. 인권에 관한 한 미국 의회는 행정부보다 원칙적이다.
대통령의 의무 규정도 있다. 홍콩 내 미국 시민이 충분한 법적 보호를 받지 않은 채 중국 본토나 다른 나라로 추방될 경우 대통령은 미국 시민 보호 대책 및 홍콩 당국의 법적 접합성에 대해 의회에 보고를 해야 한다. 법은 마지막으로 불법 송환 또는 고문을 포함해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인권을 침해할 경우, 인권탄압에 가담하거나 책임이 있는 인사들의 미국 방문을 금지했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 플로리다)은 "미국은 이제 홍콩 내부 문제에 대한 중국의 추가적 영향력 행사나 간섭을 막을 수단을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홍콩 시위대는 법안이 통과되자 성조기를 흔들면서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홍콩인권법은 민주주의의 가치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미국이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을 견제할 도구의 하나이기도 하다. 미·중 무역협상의 막바지에서 돌출한 홍콩인권법이 탐탁하지 않았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이 오히려 솔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월 28일 법안에 서명하면서도 "시진핑 주석과 홍콩 주민들을 존중한다"라고 말해 시위대와 홍콩 당국을 등가시했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시 주석과의 통화에서 "무역협상이 진행되는 한 홍콩 시위대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겠다"라고 공언했던 트럼프다. '역사적 I단계'에 도달한 미·중 무역협정이 최종 서명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존 3600억 달러 상당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에 더해 스마트폰과 같은 소비재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결정을 12월 15일 이전에 내릴 방침이었다.
트럼프는 의회가 사실상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법안에 어쩔 수 없이 서명하면서도 "행정부는 홍콩인권법의 각 조항을 대통령의 헌법적 권위에 비추어 다룰 것"이라고 덧붙여 의회와 다른 시각을 우정 강조했다. 이렇게 말한 트럼프 역시 필요에 따라 중국을 압박할 수단을 갖게 된 게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현실정치는 냉혹하기에 홍콩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희망 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미국의 대표적인 현실주의 정치학자인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8월 방한 강연에서 "미국은 중국이 인접 지역에 더 많은 우려를 하기 바란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이 자국으로부터 먼 지역, 또 미국과 가까운 지역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묶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 시위가 남긴 가장 불길한 신호는 중국이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있는 점이다. 지난 11월 19일 차이나데일리는 시위 학생들이 모여 있는 대학 캠퍼스를 '테러리스트의 요새'라고 규정하고, "분리주의자들이 외국 세력과 공모해 홍콩을 중국 전복을 위한 교두보로 바꾸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중국 관영매체는 시위대의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요구를 '사악한 바이러스'이자 '감염'이라고 표현했다. 작가 루이자 림이 11월 23일 자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짚었듯이 ‘분리주의자’와 ‘테러리스트’라는 용어는 중국 당국이 무슬림 100만여 명을 정치수용소에 감금해 사회주의를 강제 주입하고 있는, 신장-위구르 지역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홍콩의 취약한 '면역체계'가 문제이기 때문에 신장에서와 마찬가지로 교정교육을 통해서만 치유할 수 있다. CCTV로 홍콩 주민들을 감시하고, 교육 또는 처벌하려는 중국의 노력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시위대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중국을 나치와 동일시하는 '차이나치(Chinazi)'라는 비방이 등장했다. 홍콩 시위가 해를 넘기면서 중단된다고 해도 일국양제가 끝나기 전 주민들은 다시 거리로 나설 게 분명하다.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는 중국과 홍콩의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는 한, 이를 바라보는 한국 언론과 한국사회의 고민 역시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 23일 형을 마치고 석방된 살해범 찬은 "대만으로 가서 죗값을 치르고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대만으로 가 살인죄로 재판을 받을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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