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매년 200개의 영화제가 열린다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영화제 급증의 시대, 원인과 진단

한국은 가히 영화제의 나라가 되었다. 매년 열리는 영화제가 200개 가량이나 된다. 이렇게 말하면 모두 눈이 휘둥그레 지면서 그렇게 많이요? 라고 되묻는다. 도대체 어디서 누가 그 많은 영화제를 개최하는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널리 알려진 부산영화제 정도는 대부분의 국민이 알고 있지만 이른바 빅3에 드는 전주, 부천만 해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 나머지는 말하나마나다. 200개의 영화제가 매년 열린다면 한 영화제가 5일 정도 지속한다고 가정하고 매일 어디선가 세 가지 영화제가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웃 일본에서도 매년 180개 정도의 영화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1억2000만의 부국이라는 점, 축제 및 문화산업이 발전한 나라라는 점 등을 감안해 보면 한국의 영화제 증가는 가히 폭증이라고 부를 만 하다.


영화제 급증의 원인이 무엇이고 현황과 문제점들은 어떠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11월부터 조사를 진행하였다. 전문가 및 관계자들의 대략적인 추산은 200개가 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는데 나와 조교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올 해 진행된 것으로 192개의 영화제를 찾을 수 있었다. 정보가 누락되어 찾지 못한 것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대략 200개라는 추산은 신빙성이 있다.


이 192개 영화제가 어떤 해에 각각 시작되었나를 살펴보았다. 2019년에 무려 40개가, 그리고 2018년에 26개, 2017년에 15개 등 최근 3년 사이 도합 81개, 즉 전체 192개의 42%가 출범했다. 우연일까? 이런 숫자를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영화제 관계자들은 영화제 운영이 모두 어렵다고만 한다. 재정적으로 남는 장사가 되는 영화제는 사실상 없다. 대부분이 국고나 지방정부 재원 등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수익성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영화제란 애초 망하는 행사다. 돈을 쓰더라도 좋은 성과를 낸다면 괜찮다는 것이 암묵적인 전제다.

지역별로는 총 56개 시도에서 열렸으며 이 중 서울에서 78개(41%), 부산에서 15개(7.8%)가 개최되었다. 영화제들은 재원 조달을 복합적으로 하지만 주요 재원의 원천이 관이냐 민이냐로 대별된다. 국고(18개)나 지방자지단체 재원(116개)에 주로 의존하는 영화제가 134개로 전체 70%를 차지했다. 개최 시가를 월별로 보았더니 하반기에 쏠리는 현상이 심하게 드러났다. 152개의 영화제가 하반기에 몰려 있었다. 거의 80%에 육박하는 심한 편중이다. 왜 그런가? 예산 집행의 특성과 관계가 깊지 않겠나 짐작해 볼 수 있다.


영화제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32년 베니스로 알려져 있다. 영화사학자들은 1932~1968년 시기를 영화제 발전의 제1기 정도로 보기도 한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국가의 정치외교적 목적에 의해 영화제를 육성하고 이를 통해 대내외적 문화정치를 시도했던 시기로 본다. 또한 영화산업이 본격적인 발전을 향해 일어서는 시기이고 국제영화제작자연맹 등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50년대에는 특성을 지닌 영화제들도 등장한다. 영화에 대한 규제, 판권, 재원 조달, 기술 표준 확립, 유통과 배급 통제 등에 국제영화제는 중요한 무대가 된다. 이른바 프로그래머의 시대로 불리는 제2기는 대략 68년경부터 8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이다. 주제를 선명히 부각시키는 프로그래밍 개념이 단순히 영화를 보여준다는 개념을 대체하고 점차 영화제마다 성격을 새기기 시작했다. 국가의 간섭이나 영향으로부터 영화제 조직이 탈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 이후의 시가를 제3기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영화 산업의 급격하고 광범위한 세계화가 진행되고 사업자의 주도권이 강화된다. 감독의 역할과 위상이 확대되는 시기이다.


물론 이것은 서구의 사정이고 한국에서는 1996년 부산영화제의 시작과 함께 영화제 시대가 열린다. 그 이전에는 대종상이나 청룡영화상, 백상예술상 등과 같은 시상식 중심의 행사가 주를 이뤘고 이른바 영화제 형상이라 할만한 일은 없었다. 부산영화제의 정착과 성공은 이후 한국의 영화제 급증에 큰 지렛대가 된다. 후발이지만 아시아 최대규모의 영화제를 일궈냈으니 자랑할 만도 하고 또 이를 근거로 본격적인 영화제 산업과 문화의 발전을 도모해 볼 만도 하다.


그런데 영화제의 급증이 과연 영화제 산업의 발전이나 영화제를 통한 문화복지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기는 한 것일까? 영화제의 급증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제의 급증이 영화제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적으로 영화제들이 공통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훈련된 인력과 재원의 마련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한국의 영화제 급증 현상이 배태하고 있는 문제들은 더 복잡다기하다.


이제 이 글의 핵심 이슈에 대해 논의해 보기로 하자. 도대체 왜 영화제가 급증하는 것이며 누가 필요로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 많은 영화제들은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할까?


흔히 영화제가 산출할 수 있는 긍정적 기능을 경제적, 문화적, 산업적 측면에서 논의한다. 표 1은기능과 효용을 함께 고려했을 때 어떤 기능이 누구와 연관되는 지를 나타낸다. 나는 여기에 정치적 및 교육적 기능을 추가하였다. 한국의 맥락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효용 역시 많은 경우 두리뭉실하게 논의되는 경향이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누구에게 가는 효용이냐에 따라 내용이 복잡하다.


한국의 영화제들은 대체로 지역사회의 경제활동 촉진과 지역민들의 문화적 수혜 확대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가장 중요한 영화제의 기능으로 꼽는다. 문제는 경제적 기능이 잘 발휘되어 기대한 효용이 발생하느냐이다. 불행히도 영화제로 인한 경제적 효용이 발생한다고 평가 받는 영화제는 거의 없다. 부산영화제 정도가 성공이라면 성공일 것이다. 문화복지 측면에서도 많지 않은 관람객 수를 감안한다면 과연 투여한 재원 대비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는지 회의적이다. 영화제는 많은 인력을 동원하는 행사 산업이라 참여 인력에 대한 교육과 훈련의 기능도 있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극소수의 상근 인력을 중심으로 2~3개월 정도에 걸치는 다수의 단기 계약직으로 운영을 하기 때문에 인력의 전문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 훈련 효과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영화산업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극소수 대형 국제 영화제가 아닌 바에는 실질적 효용이 없다. 결국 이렇게 따지고 보면 영화제는 제대로 발휘되는 기능도 없고 결국 별 효용도 산출하지 못하는 일이다. 그런데 왜 무려 192개나 되는 영화제가 열리게 된 것일까?


해답을 찾기 위해 12명의 영화제 관련 전문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가장 중요한 동기는 지자체와 지자체장에게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진단에 따르면 영화제는 "가장 대중적인 문화콘텐츠를 다루고, 배우나 연예인을 초청하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고, … 적당한 예산으로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가성비가 좋은 축제라고 착각"을 일으키는 행사다. 이게 착각이든 아니든 지자체장들은 영화제를 좋아한다. 지자체의 입장에서는 착각이 아니고 현실이기도 하다. 지자체 시행 이후 한국의 지자체들은 엄청난 양의 행사를 조직하는데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수 많은 갖가지 축제들을 통해 지역의 산업과 상업을 진흥시킬 수 있다고 믿고 행사를 통해 예산을 집행한다. 실제 산업과 상업이 진흥되는지는 알 수 없고 또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풀리는 예산 만으로도 돈이 도는 효용은 달성하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공적 재원을 투입하여 지역민의 소득 증대 사업을 하는 셈이다.


아마도 더 유혹적인 효용은 지자체장이 지역 언론을 타고 문화 행정을 성공시킨 치적을 홍보하기에 영화제는 상당히 매력적인 행사이다. 예산을 훨씬 더 투입해도 신문에 한 줄 나오기 힘든 일도 많은데 비하면 영화제는 홍보예산 정도 가지고도 ‘국제’ 행사를 만들어내는 효과가 있다. 능숙한 출연자를 직접 섭외하고 불러와야 하는 다른 종류의 문화 행사와는 달리 저비용으로 매우 큰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들을 손쉽게 틀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도 지역 언론의 호응과 협조가 용이하다. 지난 11월에 첫회가 열린 강릉국제영화제의 경우 지역 종합일간지인 강원일보와 강원도민일보는 영화제 기사를 두 언론사 합하여 12편이나 실었다. 중앙지가 한 건 정도 짧게 다룬 것에 비하면 많은 양의 기사가 나온 것이고, 특히 기사의 내용이 영화제의 성공을 축하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강릉영화제는 11월 강릉 밤바다의 추위만큼이나 싸늘하고 썰렁한 실패적으로 혹평을 받았다. 지자체가 20억 이상을 쏟아 부은 영화제가 산출한 효용은 지역 신문에 도배된 호평기사 정도였고 이를 반길 최대의 수혜자는 시장과 공무원들임이 분명해 보인다. 홍보 예산을 나누어 받았을 지역 언론사도 짭짤했을 것이다. 이에 앞서 8월에 열린 평창남북평화영화제에 대해서도 지역의 두 일간지는 도합 20건의 성공 기사를 아낌 없이 쏟아 내었지만 중앙 언론은 거의 외면하다시피 했다. 평창영화제 역시 짧은 기간에 급하게 무리한 조직을 하여 실패했다는 평가를 모면할 수 없었다. 영화제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 지역 언론의 보도는 영화제의 운영 점검과 방향 설정 등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언론의 선심성 보도가 영화제를 지속시키는 근거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강릉과 평창의 경우가 다른 수 많은 관지원 영화제와 다를 것은 없다. 오히려 첫 번째 행사를 치른 터라 그 문제점이 더 잘 드러난 경우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제 급증 현상은 앞으로도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글에서 밝힌 것처럼 지자체의 필요에 의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현행의 56개 시도가 아니라 향후에는 시군구로 확대되면서 온갖 형태의 영화제가 범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영화제가 늘어나는 것이 문제인가? 그렇지는 않다. 영화제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여러 관계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산출할 가능성이 많은 문화 자산이다. 한국 사회가 영화제를 많이 기획하고 수행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문화산업의 발전과 문화복지의 증진에 큰 효용을 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가려면 현행의 문제점들이 하나하나 극복이 되어가면서 질적 전환과 발전을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 지자체장이 공적 자원을 오남용하여 선거 전략에 영화제를 동원하는 일이 된다면 영화제의 앞길은 험난하다. 여기서는 몇 가지 새로운 방향과 관련하여 지적하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첫째, 영화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까지의 영화제는 영화인들에 의한 영화인들의 행사가 영화제의 본질이라는 의식을 깔고 있다. 영화제는 영화인과 영화광(씨네필)을 중심으로 좋은 영화를 보고, 좋은 영화와 영화인에게 상을 주고, 그러는 과정에서 영화예술과 산업이 발전할 것을 믿는 행사이다. 물론 그런 영화제도 있고 그런 영화제로 성장하는 영화제가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미디어 플랫폼 환경은 과거의 영화제 모델에 도전을 안기고 있다. 영화제는 영화를 유통하고 소비하는 일종의 플랫폼이고, 요즘 표현을 빌린다면 영화를 몰아보기 하는 플랫폼이다. 넷플릭스보다 훨씬 오래 된 몰아보기의 선조인 셈이다. 프리미어 수가 영화제의 위상을 결정할 필요도 없고 상업영화를 애써 비켜가야만 할 이유도 없다. 영화제는 비인기 종목이 모이는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둘째, 재원을 대는 지자체의 목표가 좀 더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반영될 필요가 있다. 돈은 지자체의 공적 자원에서 나오고 집행은 외지의 소수 영화관련자들이 자신들의 취향과 목표를 위해 한다면 이런 구조가 길게 발전적으로 지속될 턱이 없다. 영화제의 성공은 보다 긴 호흡의 설계를 필요로 하며 지역의 자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흡인하는 방식을 개발해 내야 한다. 영화제기 때문에 (마치 외인구단과도 같이 구성된) 영화인들만이 해야 하는 것으로 주장하면 복합적인 문화산업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셋째, 영화 기업들이 영화제의 산업적 효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온라인 유통에 점점 비중이 늘고 있지만, 영화제는 여전히 매우 경쟁력 있는 오프라인 관람 창구이다. 씨네필만이 아니라 다양한 소비자 층을 대상으로 비영화적 요소를 배합하여 영화소비로 이끌어 들이는 방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넷째, 국제영화제는 외국인들을 돈 대주고 불러다 전시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국제영화제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일단 크고 작은 국제영화제에 부지런히 들락거리며 보고 배우는 청년들이 늘어야 한다. 영화제마다 그런 부문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제성의 증진은 궁극적으로 지자체 영화제가 마을 축제에 그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될 것이다.

<프레시안>의 편집 방침상 이 글의 참고문헌을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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