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건의료체계는 보편적 건강보험이 존재하지만 그 보장성이 낮으며, 커다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즉, 공공의료가 매우 취약하여, 의료기관의 민간소유 비중이 매우 높고(95% 이상), 얼마 안 되는 공공기관들조차 공공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민간기관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일차의료 부재 상태여서, 건강 문제로 처음 접하는 의료제공자(의사 또는 의료기관)가 일정하지 않으며, 개인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의사나 병원을 찾아가는 상황이다. 이처럼 '건강' 영역에서 시장이 공공을 압도하는 상황임에도, 최근에는 국가가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건강' 영역에서 시장의 힘을 부추기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매년 발표되는 오이시디 건강통계(2019)에서 국내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 결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진료 빈도(2017년 16.6회, 1위), 인구 천 명당 입원병상 수(2017년 12.3개, 2위)와 그 증가속도(1위), 의료비 증가속도(2007년 17 : 6.0%, 오이시디 평균 1.8%) 자살률(2018년 26.6명, 1위), 일차의료에서 관리를 잘하면 입원을 피할 수 있는 대표적 만성질환인 당뇨병 입원율(2017년 인구 십만 명당 245.2명, 2위), CT와 MRI 등 고가 첨단장비 보유율 등의 지표에서 36개 회원국들 중 최고 이거나, 최고 수준을 보인다. 게다가 건강검진이 시장에 맡겨진 상황에서 국가 검진 프로그램은 과잉진단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여 갑상선암 과잉진단율은 세계 1위이다. 중동호흡기중후군(메르스) 바이러스의 국내 감염(2015) 전파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빨랐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첫 번째 환자가 양질의 일차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했기 때문이었다.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는 비급여 서비스의 급여화를 통해 건강보험 보장률을 2017년 62.7%에서 2022년까지 70%로 높여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이시디 평균이 80%를 넘은 것을 감안할 때,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국내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그대로 둔 채 문재인 케어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장이 공공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비급여 서비스들을 급여화해도 새로운 비급여 서비스가 얼마든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건의료체계 구조개혁 정책이 필수적이다. 특히 문재인 케어의 문제로 지적되는 대형병원 환자 쏠림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차의료 강화는 가장 우선 정책이어야 한다.
일차의료 강화를 위해서는 건강을 위해 처음 만나는 의료제공자(주치의)를 정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요소이다. 주치의가 일차보건의료 팀과 함께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돌봄을 제공하며 건강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한 조정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지원하는 제도, 즉 주치의제도 도입은 일차의료 강화의 핵심이다. 주치의제도는 무분별한(과잉 또는 과소) 진료를 줄일 수 있어서 건강자원의 합리적인 이용을 가능하게 하고, 주치의-환자 사이의 신뢰 형성으로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으며,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 주치의제도 도입은 건강영역에서 시장의 영향력을 제어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최근 정부가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목표로 의료계와 협상해 왔지만, 이 같은 방식으로는 일차의료를 강화할 수 없다. 상급종합병원을 중증종합병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의뢰회송체계 개선하겠다는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 대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의료전달체계'라는 용어가 국내산 행정용어이기도 하지만, 질병 관리의 순서(1-2-3차)를 정하는 정책으로는 '일차진료'만을 활성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차의료 강화를 위해서는 주치의제도 도입이 가장 핵심인데 정부가 이를 기피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반대 의사 파업으로 인한 사회 혼란 경험이 정신적 상처로 작용하여 정책 입안을 꺼리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외교-안보-경제 문제 등 우선순위에서 밀려, 여론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 농민, 소비자를 포함하는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주치의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온 국민에게 알리고 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범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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