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었으면 뭔가 바뀌어야 한다

[김용균의 죽음 1주기] 누구를 위한 작업중지 무력화인가

2017년 9월 28일,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 등 발생 시 작업중지 명령·해제 운영기준(이하 2017년 운영기준)’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2018년 12월 11일, 태안화력발전소의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김용균 노동자의 안타까운 산재사망사고가 있었고, 이는 전국적인 추모와 투쟁, 전사회적 공감대를 일으켜 28년 만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이 이뤄졌다. 그리고 2019년 5월, 고용노동부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기존의 2017년 중대재해 작업중지 운영기준을 폐기하고,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작업중지의 범위·해제절차 및 심의위원회 운영기준(이하 2019년 운영기준)’을 새로 발표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그 어떤 것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될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또한, 임기 내에 산재사망사고를 절반으로 감축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이 때문에 적어도 산재사망사고에 대해서는 2017년보다 2019년이 뭔가 더 나아져야 정상이다. 그러나 28년 만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고용노동부의 2019년판 운영기준은 2017년판 운영기준보다 심각하게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이와 같은 중대재해 작업중지 운영기준의 후퇴는 사람이 죽어도 바뀌는 것이 없는 현장, 같은 죽음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현장을 고착화하고 있다.

2017년, 중대재해 발생 시 전면작업중지가 원칙임을 확인

고용노동부의 2017년 운영기준은 산재사망사고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전면작업중지명령을 내리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부분작업중지명령은 예외적으로 원자력 발전시설과 같이 전면작업중지로 인해 오히려 작업을 하는 노동자나 국민의 생명안전에 중대한 피해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 경우, 또는 종합병원 내 보일러실 폭발사고가 발생했을 때와 같이 완전히 별개의 업무로 해당 작업만 중지하더라도 2차 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경우와 같이 극히 제한적인 경우만 적용되었다. 심지어 용광로 등 가동정지 후 재가동에 큰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설비라고 하더라도 안전조치 미비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장의 부담을 고려하여 작업중지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없도록 엄정하게 운영하라고 적시되어 있었다.

또한, 사업주가 작업중지명령의 해제를 요청하기 위해서는 작업중지명령이 내려진 범위 전반에 대해 안전보건실태를 점검하고, 유해위험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었고, 사업주는 작업중지명령 해제 이후의 안전한 작업을 위해 안전작업계획을 수립하고 과반수 노동자의 의견을 청취한 이후 작업중지 해제를 신청할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작업중지명령이 해제된 이후에도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이 10일 이내에 현장에 출장하여 안전작업 이행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사업주는 작업중지 해제 이후 1개월간 안전작업 이행상황을 노동자대표의 확인을 받아 주1회 지방고용노동관서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다.

고용노동부의 2017년 운영기준은 사업장에서 사망사고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장에 전면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사고가 난 공정뿐만 아니라 해당 사업장 전반의 적극적인 안전보건개선조치를 진행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 삼성중공업 크레인 붕괴 사고현장 ⓒ금속노조

현실에서 잘 지켜지지 않아도 현장개선 효과는 확인

하지만 2017년 운영기준은 많은 경우 현실에서 잘 지켜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전면작업중지명령이 내려졌을 경우 타격이 큰 사업장에서는 스스로 만든 원칙을 스스로 어겼다. 심지어 전국적인 추모와 투쟁이 있었던 김용균 노동자의 산재사망사고에서도 전면작업중지명령이 내려지지 않고 태안화력발전소의 9호기와 10호기에만 부분작업중지명령이 내려졌다. 그래서 억울한 산재사망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과 현장의 노동자들은 국가기관인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2017년 운영기준을 적용하라고 투쟁해야만 했다.

하지만 원칙과 현실의 적용이 괴리되었음에도 2017년 운영기준은 의미가 있었다. 적어도 중대재해 시 전면작업중지명령이 내려지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은 분명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중대재해 시 작업중지명령의 범위는 확대되었다. 결국, 자본은 작업중지명령으로 인한 생산의 중단으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작업중지명령을 해제하기 위해서라도 고용노동부의 작업중지명령 해제절차를 따라야만 했다. 이 때문에 2017년 운영기준은 원활한 생산과 이윤추구를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자본측이 고용노동부의 행정조치들을 일정 부분 수용하게 만들었고, 나아가 기업에게 최소한의 안전보건개선조치를 강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2019년,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멈추지 않는 현장

하지만 2017년 운영기준은 급격하게 무력화되었다. 역설적으로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전면작업중지명령은 토사·구축물의 붕괴, 화재·폭발, 유해하거나 위험한 물질의 누출 등으로 인해 산업재해가 확산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불가피한 경우 내려질 수 있다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는 이를 기다린 듯 2017년 운영기준을 폐기하고 새롭게 2019년판 운영기준을 발표했다. 새로운 운영기준은 철저한 개악이었다. 우선 중대재해가 발생한 해당 작업에만 작업중지명령을 내리는 것을 포함하여 부분작업중지명령으로 원칙이 후퇴하였다. 전면작업중지명령이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내려지는 것으로 역전된 것이다. 심지어 2017년 운영기준에서 전면작업중지명령이 원칙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용광로의 예시는 작업중지명령의 범위를 축소해야 하는 근거로 뒤바뀌었다.

또한, 작업중지명령 해제절차도 사업주가 작업중지명령의 해제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변경되었다. 우선 작업중지범위가 축소되면서 사업주의 안전보건개선조치 범위 역시 축소되었다. 그리고 사업주가 안전보건개선조치를 자체적으로 진행한 후 이 결과에 대해 중대재해 발생 해당 작업 노동자 과반수의 의견을 청취해서 작업중지명령 해제신청서를 제출하면 4일 이내에 작업중지해제 심의위원회를 개최하도록 변경되었다. 심지어 작업중지명령의 해제 이후 안전한 작업을 위한 안전작업계획서 작성은 아예 삭제되었다.

결국, 고용노동부의 2019년 운영기준은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해당 작업에만 작업중지명령을 내리고 사업주가 빠르게 작업중지명령 해제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여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뒷전으로 밀고 자본의 이윤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중대재해 작업중지 운영기준의 후퇴가 불러온 죽음의 은폐

2019년 운영기준이 적용되는 실태를 보면 심각성은 바로 증명된다. 얼마 전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컨베이어벨트 보수작업 중이던 한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협착되어 사망했다. 작업중지명령은 이 노동자가 보수작업 중이던 컨베이어벨트와 사고가 일어난 컨베이어벨트 2개소에만 내려졌다. 심지어 똑같은 공장에 똑같은 위험을 지닌 컨베이어벨트가 넘쳐남에도 2개 외에는 작업중지명령이 내려지지 않았다. 이래서는 사업장의 전반적인 안전점검도, 근본적인 안전보건개선조치도 기대할 수 없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해당 작업에만 작업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기준이 후퇴하니 자본은 안전보건개선조치를 통해 작업중지명령을 해제하는 것이 아니라, 중대재해가 발생한 공정이 어디인지, 작업중지명령이 내려지는 범위가 어디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요 공정에서 일어난 중대재해가 아니라면 해당 작업에 대해서 작업중지명령을 내린들 자본은 압박을 받지 않는다.

심지어 이는 중대재해의 원인에 대한 왜곡과 은폐로까지 이어진다. 2019년 9월 27일 한화토탈 대산공장에서 있었던 사망사고는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노동자가 한화토탈 대산공장의 자동창고 천장 보수작업을 진행하던 중 창고 안쪽으로 떨어져 가동 중이던 창고 자동크레인에 부딪혀 사망했다. 움직이는 기계에 충돌해 사망한 것이 유력함에도 이 노동자의 사인은 추락사로 정리되었다. 안전모와 안전고리를 착용했고, 덕분에 바닥에 충돌하지 않고 공중에 매달려 있었음에도 추락사로 정리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중대재해의 원인에 따라, 작업중지의 범위에 따라 자본의 이윤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망의 근본적 원인은 추락위험이 있는 고소작업임에도 자동창고의 기계가 가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 자동크레인에 충돌해서 사망한 것이다. 하지만 자동창고에 작업중지명령이 내려지면 제품의 출하자체가 중단되고 한화토탈의 이윤에 문제가 생긴다. 반대로 추락사일 경우는 천장보수 작업만 중단하기 때문에 한화토탈의 이윤에는 문제가 없다. 결국, 이 노동자는 한화토탈의 이윤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그 죽음조차 한화토탈의 이윤을 위해 왜곡되었다.

사람이 죽었으면 무엇인가 달라져야 한다

2019년 운영기준은 사람이 죽어도 변하는 것이 없고, 심지어는 죽음의 진실조차 왜곡하는 현실을 만들고 있다. 이제 자본은 산재사망사고가 일어나도 작업중지명령의 범위를 좁히고, 작업중지명령을 빠르게 해제하는 것에만 온 힘을 쏟는다. 스스로 중대재해 작업중지 운영기준을 개악한 고용노동부는 이를 핑계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책임을 회피한다.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해도 기업의 이윤추구에 문제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와 이를 충족하기 위해 안전장치를 풀어헤치는 문재인 정권의 이중주가 참극이다.

사람이 죽었으면 뭔가 달라져야 한다. 모든 산재사망사고를 막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이유로 산재사망사고가 반복해서는 안 된다. 정말 최소한의 요구다. 하지만 이미 문재인 정부는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노골적인 개악을 일삼고 있다. 결국, 우리 사회에 남겨진 과제는 문재인 정부의 생명안전제도 개악을 시민사회의 투쟁으로 막아내는 것이다. 더 이상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해 노동자의 생명이 희생당하는 참극을 방지하기 위해 힘을 합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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