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해결? 문재인 정부 앞에 오래된 답 있다”

[인터뷰] 권두섭 법무법인여는(민주노총 법률원) 대표변호사 下

비정규직 제로, 노동 존중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는 10월 30일, 사상 최대 연간 비정규직 노동자 증가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정부 해명대로 '고용 예상 기간'을 묻는 문항을 추가해 늘어난 인원을 제하고 봐도, 올해 비정규직 비율은 최소 33.9%다. 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비정규직 문제만이 아니다.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포기하고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한 것, 노동시간 단축 보완책으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을 택한 것, ILO 핵심 협약 비준과 사업장 점거 금지, 단체협약 기간 연장 등 노동법 후퇴안을 두고도, 노동 존중 정부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실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임기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두고 권두섭 법무법인여는(민주노총 법률원) 대표변호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권 변호사를 만난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물어보았다. 인터뷰는 지난 1일, 민주노총 근방에서 이뤄졌다.

권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두고 "일괄 전환 형태로 진행하고 간접고용을 대상에 포함한 것은 이전 정부들에 비해 진전된 점"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자회사 방식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해서 도망갈 구멍을 만든 것은 잘못됐다"고 이야기했다.

권 변호사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탄력근로제 연장 등과 관련해서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 같은 해묵은 과제를 풀어놓고, 문제가 있다는 소리가 나오면 보완책을 내는데, 엉뚱한 보완책을 내는 일을 반복하는 것 같다"며 "그럼으로써 앞에 과제를 풀었던 걸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기간제 사유 제한, 원청 사용자성 인정,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와 같은 오래된 해결방안들이 이미 있다"며 "정부뿐 아니라 정치권 전반이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전했다.

▲ 권두섭 법무법인여는 대표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정부 정규직 전환 정책, 진전된 면 있지만 자회사는 뺐어야"

프레시안 : 도로공사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이 나오면서 갈등이 촉발된 면이 있다. 자회사 방식을 열어둔 가이드라인이 없었다면,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 받고 직접고용됐을 거라는 관측도 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권두섭 : 내가 너무 문재인 정부 욕만 했는데. 잘한 면도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은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됐다. '이명박근혜' 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진행했던 정책이다. 문 정부 이전까지의 전환 정책은 전환업무나 대상 인원을 제한했다.

그러나 문 정부의 전환 정책은 일괄 전환이다. 상시지속 업무면 예외적인 사유가 없는 한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그 점에서 굉장한 차별성을 갖고 있다. 또, 그 전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서는 간접고용은 전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간접고용도 일괄전환하게 했다. 예외적인 사유가 없으면 전환해야 한다. 그 점에서 진전된 정책인 것은 분명하다.

비판 많이 받지만, 정부 통계를 신뢰한다면 공공부문에서 15만 명 정도가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지금도 간접고용은 전환이 진행되고 있어 그 수는 더 늘어날 거라고 본다. 그 부분은 평가를 해줘야 한다. 깡그리 다 부정할 건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자회사를 열어둠으로써 문제가 생겼다. 쉽게 도망가는 거다. 파견이나 용역으로 일하던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하는데, 자회사가 가능하다고 열어두니 다 그쪽으로 가버린다. 잡월드, 도로공사... 곳곳에서 이런 파열음이 생겨나고 있다.

몇 년 지나면 자회사가 전국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KTX 승무원도 자회사 소속인데 불법파견 소송을 했다. 사실 도로공사 수납 업무 같은 건 자회사가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업무다.

프레시안 : 민주노총도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만들 당시, 협의회 등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왜 가이드라인에 자회사가 들어갔다고 보나.

권두섭 : 제가 직접 들어간 건 아니지만 아는 대로 이야기하자면, 일단 협의라고 하지만 의견을 수렴하는 정도였다. 민주노총이나 공공운수노조가 정부에 의견을 제시하면, 일부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정부 원안대로 갔다. 자회사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들어갔다.

자회사를 넣더라도 통제할 수 있는 방식으로 넣었어야 했다고 본다. 아주 예외적이고 특별한 경우에 중앙이 심사해서 "여기는 자회사 할 수 있겠다"고 하면 허가를 내주는 방식으로 갔으면 이 정도 문제는 안 생겼을 거다. 그런 거 한 줄 없이 가능하다고 열어두니, 전원 직접고용하려면 머리 아프고 설득할 주체도 많으니, 덜 골치 아픈 저쪽으로 가자고 한 게 아닐까 싶다.

▲ 권두섭 법무법인여는 대표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비정규직 문제, 오래된 해결 방안이 있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 취임 일성이 비정규직 제로였다. 10월 30일 발표한 비정규직 통계를 보면, 사상 최대로 비정규직이 늘었다. 올해 비정규직 비율은 최소 33.9%다. 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어떻게 보나.


권두섭 : 신문 기사를 보고 웬 호들갑인가 생각이 들었다. 원래 정부의 비정규직 통계에 문제가 많다. 나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정부의 데이터를 재분석해서 발표하는 통계를 더 신뢰한다. 그걸 보면 옛날에는 50%가 넘었고, 작년에도 40%가 넘었다.

일단, 정부가 그간 비정규직으로 안 보던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보면서 통계가 정상화된 부분이 있고 시간제 노동자가 늘었다고 하던데, 곧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비정규직 통계를 다시 내고, 비정규직이 늘어난 이유 등을 분석한 보고서가 나올 거다. 그걸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이 이번에도 최저임금 탓을 하는 건 좀 답답하다. 뭐 문제만 있으면 최저임금 인상 때문으로 몰아간다. '기승전최저임금' 식이다.

프레시안 : 정치인들이 진심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권두섭 : 오래전부터 이야기되어온 방안이 있다. 기간제는 사유를 제한하면 된다. 출산, 육아, 병가 같이 어쩔 수 없는 경우에 기간제 쓰는 걸 인정하고, 그 사유가 없으면 기간의 정함 없는 근로자로 쓰게 하면 된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면 된다. 그래도 통계로는 비정규직으로 잡히겠지만 권리는 상당히 보장될 수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는 원청에 사용자 책임을 지우면 된다. 그러면 기업도 불법파견 위험을 감수하느니 직접고용할 거다.

이런 이야기는 외면하고, 평소 비정규직 인권에는 요만큼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통계를 보고 문제라고 하면서 최저임금 탓만 한다.

프레시안 : 원청 사용자성,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ILO 핵심 협약 비준이 떠오른다. 협약 비준 과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권두섭 : ILO 협약은 그대로 비준을 하면 되는데, 협약 비준한다는 이유로 노동법 개악이 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개악 내용을 보면 '협약 비준을 해야 하나. 그런 법과 같이 통과시킨다면 비준하는 게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굳이 법안과 연결할 거였으면, 비준할 때 걸리는 최소한의 문제, 예를 들면 전교조나 공무원노조 단결권을 제한하는 부분 정도만 해서 패스트트랙에 올리던지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정권 초기에 지지율 80% 나올 때 그런 일을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국제노동기구에서도 "잘못했으니 바로 잡아라"고 하고 있으니 명분도 좋지 않나. 부자 몸조심이라고 지지율 때문에 망설이다가 아직도 해결이 안 되고 있다. 지금은 더 하기 힘든 일이 됐다.

▲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이 탄력근로제 연장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노동 문제, 자꾸 줬다 뺏지 말고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 활용해야"

프레시안 : ILO 핵심 협약 비준과 후퇴된 노동법 개정안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처럼,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탄력근로제를 연장하는 '개악'도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산입범위를 확대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런 일들을 어떻게 보나.

권두섭 : 줬다 뺏는다. 뭔가 해묵은 과제를 풀고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보완책을 만드는데, 엉뚱한 보완책을 만들어 앞의 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듯하다.

최저임금을 보면, 개인적으로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산입범위를 확대할 때 최저임금에 들어가는 항목은 다 통상임금으로 본다든지 했으면 복잡한 임금체계도 같이 손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산입범위만 확대하는 엉뚱한 보완책이 나오면서, 상여금 같은 경우 통상임금은 아닌데 최저임금 항목에는 들어가는 이상한 상황이 됐다.

탄력근로제도 똑같다. (최장노동 주 52시간제에 대해) 규모가 작은 기업이 준비가 안 됐다고 한다. 사실 2004년에 이미 주 40시간제가 도입됐는데 아직도 이런다는 게 이해는 안 간다. 다 좋다. 그래도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노동부가 특별 승인하고 처벌 유예하는 것까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왜 탄력근로제를 들고나오냐는 거다. 그건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를 반감하면서 노동자 임금을 뺏는 제도다.


이럴 거면 차라리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후퇴하면서 자꾸 국회 핑계를 댄다. 국회의 책임론을 인정한다 해도 정부가 쓸 수 있는 여러 정책 수단이 있다.

프레시안 :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에 어떤 것들이 있나. 또, 어떤 일을 했으면 좋겠나.

권두섭 : 예를 들면, 여러 기업의 노사가 한자리에 모여서 교섭하는 초기업 단위 교섭을 활성화하는 일 같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장을 보면 개별 기업 차원에서 교섭하는 게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있다. 특히 특수고용노동자 같은 경우는 특정 기업과만 교섭해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런 문제를 푸는 데 여러 정책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 교섭하면 정부기구인 노동위원회의 조정을 거치게 되어 있으니, 노동위의 적극적 역할을 통해 사용자가 초기업 단위 교섭에 나서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경총이나 여러 사업주 단체들은 여러 정부기구에 자기들 인사를 추천한다. 사용자단체라면서 권한을 행사한다. 그런 것에 대해 "권한을 행사하려면 책임도 져라. 들어오려면 초기업 단위 교섭 같은 일을 회피하지 마라"고 할 수 있다.

초기업 단위 교섭은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 공정거래법에 제품 원가가 상승하면, 부품업체, 협력업체가 원청업체를 상대로 납품단가를 올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실제로는 못한다. 이런 거 요구하면 거래가 끊어진다. 그런데 원청과 납품업체가 다 들어오는 초기업 단위 교섭이 열리면, 거기에서 노동조합이 "납품단가 상승이 돼야 임금을 올릴 수 있다"며 중소기업 사장이 못하는 말을 할 수 있다.


대신 정규직 노동자는 임금 인상을 예년에 비해 낮게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을 끌어올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하면 원청도 수용이 가능할 거다.


프레시안 : 끝으로 문재인 정부 혹은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린다.

권두섭 : 기간제 사유 제한, 원청 사용자성,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조합 할 권리, 초기업 단위 교섭같이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답들이 이미 있다. 민주노총이 오래전부터 이야기해온 것들이다. 정규직 노조 욕하는 걸로 자기 책임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진짜로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 노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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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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